단치히 자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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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치히 자유시
Freie Stadt Danzig

 

 

1920 ~ 1939
 

국기 단치히의 국장
국기 국장
국가: 단치히를 위해 (Für Danzig)
단치히의 위치
수도 단치히
공용어 독일어
정부 형태
상원 의장
공화국
하인리히 잠 (초대)
아르투르 그라이저 (마지막)
정부수립
 • 자유시 수립
독일에 합병

1920년 1월 10일
1939년 9월 2일
면적
 • 면적
 
1,966 km²
인구
 • 1923년 어림
 • 인구 밀도
 
366,730명
186.5명/km²
통화 파피에르마르크 (1923년까지)
단치히 굴덴 (1923년부터)

단치히 자유시(독일어: Freie Stadt Danzig, 영어: Free City of Danzig) 또는 그단스크 자유시(폴란드어: Wolne Miasto Gdańsk)는 나폴레옹 시대와 양차 세계대전 사이, 두 차례에 걸쳐 존재한 도시국가인데, 흔히 단치히 자유시라고 하면 1920년 1월 10일에 두 번째로 설립된 것을 일컫는다. 발트 해 연안에 위치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단치히 정부는 자유시가 나치 독일령임을 선포하였고 이와 함께 자유시는 사라졌다.

목차

역사[편집]

나폴레옹 시대[편집]

1793년폴란드 분할이후 단치히(현재의 그단스크)지역은 프로이센령이 되면서 서프로이센 지역의 주도가 되면서 자연스레 서프로이센 지역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1807년 9월 9일에 반(半)독립의 주를 설치하였는데, 1813년 1월 22일 폐지되었다. 이 지역은 1815년 빈 조약으로 다시 프로이센 왕국으로 넘어갔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편집]

1919년 연합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 제국과 체결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서 이 도시는 국제연맹에 의해 세워진 중립도시인 단치히 자유시가 되었다. 독자적인 화폐도 있었고 독자적인 국기도 가지고 있었다. 1924년부터 냉동고, 식용유 제조공장, 철도, 조선소 등이 건설되어 발트 해 유수의 항구로 발전하였다. 1933년 의회가 독일 나치 당에 의해 장악되었고 히틀러가 단치히 반환을 구실로 폴란드 침공을 감행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폴란드 침공이후 독일군이 장악하였고 소련과의 뒤이은 전투에서 시가지와 항만시설이 모두 파괴되었다.

독일군이 이 도시를 점령하자 자유시는 소멸되었다. 그 후 전쟁 말기 소련군이 이 도시를 점령하였고 종전 후 폴란드령으로 귀속되어 종래의 독일인 주민은 모두 추방되어 현재에 이른다. 파괴된 시가지, 항만시설, 공장 등은 전후 복구되어 흥행을 이루었다. 최근에는 무역항이라기 보다는 바다와 인접하지 못한 중앙 유럽 국가들의 수출입문호 역할을 하고있다.

인구[편집]

1939년 당시 약 250,000명이었다.

주민[편집]

독일인이 대다수 였다.

함께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