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연맹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1939년부터 1941년까지 사용되었던 국제 연맹의 반(半)공식적인 엠블럼.

국제 연맹(國際聯盟, 영어: League of Nations, 프랑스어: Société des Nations, 스페인어: Sociedad de Naciones)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인 1920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국제 기구였다. 그러나 미국은 상원의 비준 거부로 참여하지 않았으며, 독일러시아도 처음에는 가입을 거부당하는 등 출발부터 문제가 있었다.

국제 연맹 상임이사국은 영국, 프랑스,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 4개국이었다. 그러나 국제 연맹은 1930년대 이후부터 계속되는 국제적인 분쟁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을 막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였다.

결국 1946년 4월 18일 후신인 국제 연합이 창설되면서 국제 연맹은 업무, 위임통치령, 자산 등을 모두 국제 연합에 인계하면서 해체, 흡수되었다.

배경[편집]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나라가 하나의 조직을 만들려는 생각은 인류가 오랜 옛날부터 품어온 것이었다. 중세의 중엽부터 말엽에 이르기까지 종종 일어났던 봉건영주 사이의 전쟁을 방지할 목적으로 기독교적인 유럽 연대의 관념을 기초로 하는 몇가지 국제기구를 계획한 바 있었다. 이들 가운데 몇 가지는 1461년에 보헤미아의 왕 포디에 브리아트(1420~1471)가 제기한 마리니의 계획이나, 프랑스와 왕 앙리 4세(1553~1610, 재위 1589~1610)가 주창한 1603년의 슈리 계획 등과 같이 실제로 군주가 제기하여 여러 국가간의 교섭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18세기에 들어와서도 성직자인 생피엘(1658~1743)의 영구평화안(1713)이나 독일 철학자 칸트의 ‘영구평화를 위하여’와 같이 평화유지를 위한 국제기구의 플랜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플랜은 실현되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국제관계가 발달되지 못했고, 국제기구의 성립을 가능하게 할 만한 정치적·경제적인 여러 조건들이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평가된다.[1]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과 함께 여러 국가간의 교통과 거래가 발달함에 따라 1865년의 만국전신연합(ITU)과 일반우편연합(GPU)과 같은 행정적·기술적인 목적을 갖는 국제기구가 다수 탄생하게 되었다.[1]

국제기구로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으나 평화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협력의 기구로서 1815년에 성립한 신성동맹[2]과 또한 1899년의 헤이그 평화회의[3]에서 설립된 상설중재재판소를 들 수 있다.[1]

국제 연맹의 설립 및 경위[편집]

우드로 윌슨의 사진과 국제 연맹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담은 기념 카드
1920년 12월 10일에 발행되었던 잡지인 펀치에 실린 만평 (미국의 국제 연맹 불참을 풍자하는 만평)

1919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의 '평화 원칙' 에 의해 제창되어 베르사유 조약 제 1장에 따라 국제 연맹 규약이 결정됨으로써 설립되었다. 원래 회원국 42개국에서 1934년 소련의 가맹 등으로 회원국 수가 60개국에 달했으나, 그 이후에는 탈퇴・제명 등으로 회원국 수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미국은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원칙을 기반으로 출발한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먼로주의에 맞지 않는다며 당시 공화당이 다수였던 상원의 반대로 가입하지 않았다. 또한 러시아 혁명 직후의 소련(1934년 가입)과 패전국인 독일(1926년 가입)은 당초 참여가 인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주요국의 불참에 의해 그 기초가 처음부터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1920년대에는 소규모 분쟁을 해결한 성공 사례도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30년대에는 일본 제국나치 독일1933년에 탈퇴하였으며, 이탈리아 왕국1937년에 탈퇴했다. 이후에도 추축국 진영의 국가들의 탈퇴가 잇따라 대규모 분쟁 해결에 대한 한계를 노출했다. 또한 1925년 코스타리카는 지역 분쟁 해결 실패를 이유로, 1926년 브라질은 상임 이사국 진출 실패를 계기로 각각 연맹을 탈퇴했으며, 1930년대 후반부터 중남미 국가들의 탈퇴가 급증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연맹은 기능 상실에 빠져 1939년 12월 이사회에서 핀란드 침략(겨울 전쟁)을 이유로 소련을 제명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사회 총회는 활동을 중단했다.

국제 연합 출범 후인 1946년 4월에 열린 제21차 총회에서 국제 연맹은 투표를 통해 국제 연맹의 해체와 국제 연합에 자산을 이양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노동기구도 국제 연합에 인수되었다.

언어[편집]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가 국제 연맹의 공식 언어였다.

조직체[편집]

스위스의 제네바에 위치한 옛 국제 연맹 본부. 지금은 국제 연합 유럽 본부로 쓰인다.
  • 총회 (Assembly)
  • 이사회 (Council)
  • 사무국 (Secretariat)
  • 상설 국제 사법 재판소 (Permanent Court of International Justice)
  • 국제 노동 기구 (International Labour Organisation)

위의 주요 조직 이외에도 상설 위임통치위원회, 상설 군사자문위원회, 군비축소위원회, 법률전문가위원회 등으로 구성되었다. 국제 연맹 출범 당시 초기 상임이사국은 일본 제국,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왕국 4개국이다.

국제 연합과는 달리 국제 연맹의 최고결정기관은 '이사회'가 아니라 총회였다. 또한 결정 방식은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국제 연맹 본부는 스위스제네바에 있었다.

역대 사무총장[편집]

역대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다.

  1. 제임스 에릭 드러먼드 (James Eric Drummond) - 재임기간 1920년 ~ 1933년, 영국 외교관 출신
  2. 조세프 아베놀 (Joseph Avenol) - 재임기간 1933년 ~ 1940년, 프랑스 외교관 출신
  3. 숀 레스터 (Seán Lester) - 재임기간 1940년 ~ 1946년, 아일랜드 외교관 출신

가맹국[편집]

연맹에 가입한 원래의 가맹국[4]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연합국과 연맹 가입을 권유받은 중립국을 합쳐 총 42개국으로 구성되었다(국제연맹규약 제1조 제1항). 기타 국가나 완전한 자치를 하고 있는 영지(領地)·식민지는 국제의무를 성실히 지킨다는 확약과 군비에 관하여 연맹이 결정한 준칙을 수락한다는 전제하에 총회의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 가맹국이 될 수 있었으며(동 1조 2항), 이렇게 하여 가맹한 가맹국은 1920년에는 6개국, 1921년에는 3개국, 1923년에는 2개국, 1934년에는 가맹국이 가장 많은 63개국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가맹국은 2년의 예고(予告)로 연맹을 탈퇴할 수 있었다. 단 탈퇴할 때까지 모든 국제적 의무와 연맹 규약상의 의무를 이행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했다(동 1조 3항). 이 규정에 따라 연맹을 탈퇴한 나라는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도합 17개국에 달하였고 타국에 병합된 나라(오스트리아·알바니아)와 제명된 나라(소련)를 제외하면 1939년 말에는 가맹국이 45개국으로 감소되었다.[5]

국제 연맹 참여 지도      창립 당시부터 해체 때까지 함께한 회원국      창립 회원국으로서 중간에 탈퇴했다가 재가입한 나라      창립 회원국이었다가 탈퇴한 나라      나중에 가입해서 해체 때까지 함께한 나라      나중에 가입했다가 중간에 탈퇴한 나라      위임 통치 지역      비회원국      회원국의 식민지      중간에 탈퇴한 나라들의 식민지      비회원국의 식민지

비회원국[편집]

상임이사국[편집]

국제 연맹 상임이사국은 아래와 같이 변해 왔다.

1920년 - 국제 연맹 창설. 창설 당시 상임 이사국은 일본 제국, 프랑스, 영국(창립 당시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 이탈리아 왕국 4개국이었다.

미국도 국제 연맹에 가입하는 경우 상임이사국이 될 예정이었으나, 가입하지 않았다.

1926년 - 독일(바이마르 공화국) 가입, 상임이사국 참여.

1933년 - 일본 제국독일(나치 독일) 탈퇴.

1934년 - 소련 가입, 상임이사국 참여.

1937년 - 이탈리아 왕국 탈퇴.

1939년 - 소련 제명.

폴란드 폴란드, 스페인 스페인, 브라질 브라질은 상임이사국이 되고자 강력히 희망하였으나, 끝내 좌절되었다.

기타 가입국[편집]

1919년 - 창립 회원국
1920년
1921년
1922년
1923년
1924년
1926년
1931년
1932년
1934년
1937년

위임 통치 지역[편집]

국제 연맹의 위임 통치 지역으로는 다음과 같은 곳들이 있었다.

중동·아프리카[편집]

League of Nations mandate Middle East and Africa.png
  • 중동, 아프리카
  1. 시리아
  2. 레바논
  3. 팔레스타인
  4. 트란스요르단
  5. 메소포타미아
  6. 영국령 토고랜드
  7. 프랑스령 토고랜드
  8. 영국령 카메룬
  9. 프랑스령 카메룬
  10. 루안다-우룬디
  11. 탕가니카
  12. 남서 아프리카

태평양 지역[편집]

League of Nations mandate Pacific.png
  1. 남양 군도
  2. 뉴기니 지역
  3. 나우루
  4. 서사모아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편집]

개요[편집]

국제연맹은 국제협력의 촉진과 국제평화 및 안전을 유지한다는 일반적·정치적 목적을 갖는 국제기구로서는 역사상 최초의 것이었다. 국제연맹규약은 가맹국이 전쟁에 호소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그 상호간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명시했다. 또한, 평화유지의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군비축소의 필요성을 승인하고, 연맹총회는 적용이 불가능하게 된 조약의 재심의, 계속되면 국제평화를 위태롭게 할 상태에 대한 심의를 가맹국에게 요구하기로 했다. 또한, 연맹규약의 약속을 무시하고 전쟁에 호소한 가맹국에 대해서는 다른 모든 가맹국이 경제제재를 할 것을 규정했고, 군사적 제재에 대한 가능성도 예정하고 있었다.[1]

그러나, 연맹규약의 규정은 많은 허점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연맹 자체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에 대한 전승국의 전후처리 문제 등을 유리하게 이끌고 나가려는 기구로서의 구실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이탈리아·일본 등의 파시즘·군국주의의 침략정책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되었고,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국제연맹은 붕괴되고 말았다.[1]

국제 연맹은 군대를 조직하는 등의 군사적 제재를 내릴 수 없었으며, 경제적 제재를 내리는 것에 그쳤다. 이로 인해 국제 분쟁 해결에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음이 지적된다. 뿐만 아니라, 세계 속의 현실적 갈등에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기도 했다. 그렇지만 국제 기구로는 사상 처음으로 모든 회원국의 의견 수렴을 시도했다고 평가된다.

만주 사변에 관한 일본 제국 권고안과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 왕국에 대한 경제 제재 등 상임이사국과 관련된 분쟁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대응을 했다. 현재의 국제 연합에서는 상임이사국 관련 분쟁의 처리가 곤란한 점과 비교가 된다. 그 중에서도 국제 연합의 상임이사국에게 일정한 우월적 지위가 있는 것과는 크게 비교가 되는 것이다.

가입국들이 대등한 입장에서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시스템은 평등의 견지에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움직이게 하여 국제 연맹의 여론을 만들 수 있었다는 비판도 있다.

해체[편집]

1925년 코스타리카가 지역 분쟁 해결 실패를 이유로, 1926년 브라질이 상임 이사국 진출 실패를 계기로 각각 연맹을 탈퇴한 이후 1930년대 말부터 중남미 국가들의 탈퇴가 급증했다. 1933년 독일에서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나치당나치 독일이 세워졌다. 그리고 국제 연맹이 일본 제국의 만주 침략을 문제삼자 일본 제국이 탈퇴하였으며, 뒤를 이어 나치 독일이 탈퇴하였다. 그리고 1937년에는 이탈리아 왕국이 탈퇴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사실상 이사회는 기능을 하지 못하였고, 1939년 소련을 제명시키고 이사회는 활동을 중지하였다. 그리고 국제 연합 출범 후인 1946년 4월 18일에 열린 제21차 총회에서 국제 연맹은 투표를 통해 국제 연맹의 해체와 동시에 자산의 국제 연합 이양을 결정하였으며,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노동기구도 국제 연합에 인수되었다.

주석[편집]

  1. 국제연맹, 《글로벌 세계 대백과》
  2.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등 3명의 군주가 가정 내의 가장의 입장에서 국민을 통치하고 국내외 관계를 기독교적 자애의 원리에 입각하여 규제할 것을 서약했다. ‘국제연맹’, 《글로벌 세계 대백과》 참조
  3.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2세의 초청으로 군비축소와 세계평화를 의제로 헤이그서 개최되었다. ‘국제연맹’, 《글로벌 세계 대백과》 참조
  4. 국제 연맹의 구성원을 가맹국이라고 부른다. ‘국제연맹의 가맹국’, 《글로벌 세계 대백과》 참조
  5. 국제연맹의 가맹국, 《글로벌 세계 대백과》

참고 자료[편집]

Heckert GNU white.svgCc.logo.circle.svg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