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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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 왕국
Königreich Hannover

1814년 ~ 1866년
Flag of Hanover 1837-1866.svg Hannover1837.jpg
국기 국장
독일 연방 가맹국
Kingdom of Hanover 1815.svg
수도 하노버
정치
공용어 독일어
정부 형태 입헌군주제
국왕 조지 3세 (1814–1820)
조지 4세 (1820–1830)
윌리엄 4세 (1830–1837)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 (1837–1851)
게오르크 5세 (1851–1866)
역사
 • 왕국 승격 1814년 10월 12일 빈 회의
 • 병합 1866년 9월 20일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하노버 왕국 (독일어: Königreich Hannover)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해체된 하노버 선제후국의 뒤를 이은 하노버 왕가의 왕국이다. 1814년 10월 빈 회의에 의해 성립이 결정되었다. 하노버 선제후국(공식명칭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국)이 왕국으로 승격됨으로써 영국의 왕이자 하노버 선제후였던 조지 3세가 하노버 국왕이 되었다. 하노버 왕국과 영국 사이의 동군연합1837년까지 유지된다.

하노버 왕국은 다른 38개의 주권국가들과 함께 독일 연방에 가맹하였으며, 가맹국 중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바이에른 왕국에 이어 4번째로 넓은 면적을 차지했다. 그러나 하노버 왕국은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중 오스트리아 제국 편으로 참전했다가 프로이센에 병합당하여 프로이센 왕국의 지방인 하노버 주가 된다. 이후 독일 제국의 프로이센 왕국 내 한 지방으로 존속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프로이센 왕국이 망하여 프로이센 자유주가 되자, 프로이센 자유주 내의 한 지방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프로이센 자유주가 해체되자, 1946년 분리되어 하나의 독립된 주가 되었으나 곧 니더작센 주에 합쳐져 소멸된다.

역사[편집]

본래 신성로마제국 내의 공국으로 시작되었다. 1692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에 의하여 선제후국으로 승격된다. 그러나 이 결정은 새로운 선제후의 등장에 대한 다른 선제후들의 반발로 인해 1708년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이로써 하노버 선제후령이 성립된다.

1714년 영국 여왕이 죽자 영국 왕위계승법에 따라 제임스 1세의 딸의 외손자였던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 1세가 영국의 조지 1세로 즉위하였다. 이때부터 하노버 선제후국은 영국과 동군연합의 관계에 놓였다.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인 1803년에 하노버 선제후국은 프랑스와 프로이센 연합군에 의해 점령되어 멸망하였다. 하노버 선제후국의 영토는 1807년틸지트 조약에 의해, 프랑스가 프로이센으로부터 할양받은 영토와 합쳐 베스트팔렌 왕국이 되었다. 이 왕국은 나폴레옹의 막내동생 제롬 보나파르트가 지배하는 프랑스의 위성국이었다. 프랑스의 지배는 1813년 10월 러시아의 코사크 군단이 이 지역을 탈환하면서 끝났다. 뒤이어 라이프치히 전투로 나폴레옹이 결정적으로 몰락하였고, 라인 연방 전체를 포함해 프랑스의 위성국들은 붕괴하였다.

1814년 빈 회의는 영국의 하노버 왕가가 다시 하노버 선제후국을 재건하여 통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하노버 선제후국에 선제후의 지위를 부여했던 신성로마제국이 이미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된 지 오래였으므로(1806년 해체), 하노버 선제후국은 선제후국이 아닌 왕국의 지위로 승격되어 부활한다. 이에 따라 하노버 선제후였던 영국 국왕 조지 3세가 하노버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새로 재건된 하노버 왕국은 선제후령이었던 시기에 비해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다.[1] 그 결과 하노버 왕국은 독일 연방 가맹국 중 4번째로 넓은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북독일 지역에서만 비교하면 프로이센 왕국에 이어 두 번째로 넓었다.

조지 4세윌리엄 4세의 통치기간인 1816년부터 1837년까지는, 그들의 동생인 케임브리지 공작 아돌퍼스 공이 하노버에서 영국 국왕을 대신하여 부왕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837년 영국에서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자, 123년에 걸친 하노버 왕국과 영국의 동군연합은 끝나게 되었다. 당시 하노버 왕국은 준 살리카 법을 왕위 계승 원칙으로 정하고 있었는데, 이 법에 따르면 남성 왕위계승권자가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 경우에는 여성 왕위계승권자는 왕위를 상속받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빅토리아는 하노버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하지 못하였고, 빅토리아 대신 빅토리아의 숙부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즉위하였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조지 4세윌리엄 4세의 동생으로서, 조지 3세의 당시까지 생존한 아들들 중 가장 연장자였다. 아우구스트보다 동생이었던 아돌퍼스는 하노버 국왕이 되지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간다.

1866년 독일 통일의 주도권을 놓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발발하자, 하노버 왕국은 처음에 다른 독일 연방 가맹 소국들과 함께 중립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14일 하노버는 프로이센에 대항하여 독일 연방군을 움직이는 것에 찬성표를 던지게 되었고, 이는 프로이센 왕국이 하노버 왕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빌미가 되었다. 전쟁의 결과 하노버 왕국은 프로이센에 병합되어 왕국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프로이센 왕국의 일부로 전락한다. 이는 하노버 왕국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노버 왕국은 프로이센의 하노버 주로 편입되어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왕가의 지배를 받게 된다. 1871년 프로이센이 독일 제국을 수립함에 따라 하노버 왕국의 옛 영토도 독일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정치[편집]

하노버 왕국은 입헌군주제를 택하였다. 영국과 동군연합 관계였던 시기에는 비록 국왕은 영국과 동일하였으나, 정부는 영국과 분리되어 별도로 수립되었다. 1837년까지 하노버 왕국과 영국은 국왕만 같았을 뿐, 서로 독립적인 별개의 나라였다.

역대 국왕[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Jansen, Curt Heinrich Conrad Friedrich: 하노버왕국 통계편람, 3쪽, 1824년.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