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 인구 | 1천 3백만 ~ 1천 4백만 명 추정[1] |
|---|---|
| 거점 | |
| 언어 | 유다어, 히브리어, 이디시어, 라디노어 외 |
| 종교 | 유다교 |
| 관련민족 | 아랍인 |
유대인(히브리어: יהודי 유다인; Yehudi) 또는 유태인(猶太人)은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유다교를 신봉하는 사람, 민족적인 의미에서는 혈연 또는 개종을 통해 고대 히브리 민족의 후예가 된 유다 민족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민족적인 의미를 다룬다.
목차 |
[편집] 유다인의 역사
구약성서에 의하면 고대 이스라엘인 또는 고대 히브리인은 아브라함의 후예로 가나안 땅에서 사울을 초대 왕으로 고대 히브리 왕국을 세웠다. 2대 다윗왕은 예루살렘을 정복, 왕국의 수도로 삼았으며 사울왕가와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이스라엘의 패권을 쥐었다. 그의 아들 3대 솔로몬왕이 예루살렘에 유다교 성전을 건축하였다. 하지만 솔로몬 사후에 가혹한 부역활동에 대한 반항으로 반란이 일어나, 북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의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어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의 살마네세르 5세에게 멸망하고 남유다는 기원전 6세기 신(新) 바빌로니아에 멸망하였다. 유다의 엘리트는 바빌론으로 끌려가나(바빌론 유수), 이후 바빌로니아가 벨사살을 암살한 다리우스가 세운 페르시아에 망한 뒤 그중 일부가 유다 땅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유다인의 명목을 이었다. 보통 구약성서의 역사기록들은 이때까지의 역사가 배경이다.
그후 유다인들의 땅은 페르시아 제국이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당한 후 시리아 지역에서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승계 셀레우코스(Seleucid)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의 유다교 성전을 제우스 신전으로 바꾸려 하자 유다교 정통파들은 마카베오 가문(Maccabees)의 지도로 반란을 일으켜 독립된 유다인 왕국을 세웠는데 당시 에피파네스 왕조의 반유다주의 및 마카베오 가문의 반란은 구약성경의 외경 중 '마카베오 상,하'에 나와 있다. 마카베오 가문의 반란으로 세워진 왕조를 하스몬 왕조(Hasmonaean Dynasty)라 하는데 기원전 165년부터 기원전 63년까지 계속되었다. 유다인들은 하누카를 통해 이 사건을 기념한다. 하지만 B.C 63년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유다이아(Judaea) 주로 편입되었다. AD 66년 유다인들은 총독과 세리를 통해 자신들을 탄압하고 수탈하는 로마 제국에 대해 제1차 유다-로마 전쟁을 일으켜 저항하였으나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는 이를 철저히 진압하고 성전을 파괴했다. 하지만 유다인들이 그들 땅에서 유다교를 믿도록 허용했다.
AD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에는 율리우스 세베루스가 바르 코흐바(bar Kokhba)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유다이아(이후 이 지방은 팔레스티나 지방으로 불린다)를 파괴했으며 135년 이후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유다이아 땅의 유다인들은 대다수 노예로 팔리거나 로마의 시민으로 동화되었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것을 두고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로마 시대의 유다인들 상당수는 헬레니즘 및 로마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와 소아시아 등지에서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로 생각된다. 실례로 외경이 포함된 구약성서인 70인역 성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들이 그리스어로 번역한 성서이다.
유다인들은 로마 제국 전역에 살았으며 이슬람교가 성장하면서는 일부가 인도와 중국까지 진출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유다인 중 일부는 지중해 연안 외의 지역에서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의 후손인데 카자르인(Khazars), 이두매아인(Edomites), 에티오피아인, 아랍인 등이 유다교로 개종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유럽의 유다인들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수난을 면치 못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유다인들에 대해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고, 직업선택과 거주지에 대한 제한을 두었다. 일반 직업에 종사할 수 없게된 유다인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인정하지 않던 직업인 금융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
[편집] 유다인의 분파
흔히 사용하는 아슈케나짐(Ashkenazim)와 세파르딤(Sephardim)의 구분은 종교적 차이와 민족적 차이를 다 포함한다. 어떤 학자들은 아슈케나짐 유다인들은 팔레스티나 유다교 전통을 따른 이들의 후손이며 세파르딤 유다인들은 바빌로니아식 유다교 전통을 따른 이들의 후손이라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유다 민족의 4대 분파는 다음과 같다.
- 아슈케나짐 - 독일과 프랑스에서 살다가 동유럽으로 이주하였다. 일부는 프랑스와 독일에 살고 있지만 인근의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라트비아, 러시아,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루마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에도 살고 있다.
- 동방 유다인 (Oriental Jews) -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살다가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등지에도 퍼졌다. 이들은 세파르딤 유다인들과 종교 의례가 거의 같아 보통 세파르딤이라 부르기도 한다.
- 예멘 유다인 (Yemenite Jews) - '테이마님(Teimanim)'이라고도 한다. 동방 유다인이었는데 지리적·사회적으로 다른 유다인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특이한 예배식과 의례가 발전하였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소수 분파가 있다.
- 에티오피아 유다인 - '팔라샤(Falasha)' 또는 '베타 이스라엘(Beta Israel)'이라고도 불린다.
- 코친 유다인 - 이들도 인도에 살았다.
- 로마니오트 (Romaniotes) - 헬레니즘 시대부터 현재까지 발칸 반도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다인들이다. 전 세계에 6천 명 정도 있다.
아슈케나짐는 전통적으로 이디시어를, 세파르딤은 라디노어(유다 포르투갈어)를 사용했다. 동방 유다인은 대부분 아랍어를 사용했으나 아람어, 페르시아어(파르시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스페인의 종교재판(Spanish Inquisition) 이후 세파르딤 유다인들은 흩어져 유럽에 이주, 아슈케나짐와 동화되거나 중동으로 이주, 동방 유다인들과 동화되었다.
오늘날 유다인의 80% 정도가 아슈케나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범 세파르딤계이다.
유다인 하위 집단에는 '그루짐(Gruzim)' 즉 카프카스 그루지야 지방의 유다인, '유후림(Juhurim)' 즉 코카서스 동부 다게스탄의 산악 유다인, '마크레빔(Maghrebim)' 즉 북아프리카 유다인, '아바유다야(Abayudaya)' 즉 우간다 유다인 등이 있다. 그밖에도 러시아의 러시아유다인,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의 중앙아시아유다인, 싱가포르, 필리핀, 중국, 일본의 아시아유다인도 있다.
한편 헝가리계 유태인 역사학자 아서 쾨슬러와 일본 학자 우노마사미 등은 아쉬케나지가 인종적으로 셈족이 아닌 백인계 터키족 카자르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텔 아비브 대학에서 중세사 교수를 지낸 폴리악도 1944년에 <카자르 왕국과 유태교 개종>이란 연구논문을 발표하여 이런 주장에 동조했다. 이들이 카자르 멸망 후 동구권으로 흩어져 아쉬케나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보통 셈족 유태인들에게는 금발이나 푸른 눈이 없으나 아쉬케나지 중에는 백인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이들이 많은 이유라 한다. [10]
세파라디와 아쉬케나지 사이엔 갈등이 많은데, 세력으로나 영향면에서 아쉬케나지가 압도적이다. [10]
[편집] 오늘날의 유다인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전 세계의 유다인 인구가 1천8백만 정도였으나 히틀러가 집권하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1천2백만 정도로 줄어들었다.[출처 필요] 오늘날 전 세계 134개국에 1천4백만 정도가 살고 있다. 미국에 5백80만, 이스라엘에 5백만 정도가 살고 있다. 그밖에 캐나다, 헝가리, 우크라이나, 프랑스, 아르헨티나, 러시아, 독일 등에 많은 수의 유다인들이 살고 있다. 유럽의 유다인 인구는 2백40만, 라틴 아메리카는 5십만 이상으로 추정된다.
1948년 5월 14일 설립된 이스라엘 공화국은 유다인이면 누구나 시민권을 발급할 수 있게 허용한다. 이는 귀환법 또는 귀향법(the Law of Return)이라고 한다. 이 법률상 조부모 중 유다인이 있거나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모두 유다인으로 간주된다. 또 유다인 이민자들과 가족관계인 비(非)유다인들에게도 이스라엘 이민을 허용한다. 이스라엘의 귀환법이 유다교에서 전통적으로 따르는 유다인의 정의보다 일부러 더 광범위하게 정의한 이유는 유다인의 친척들도 외부에서는 유다인으로 여겨 반유다주의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다인이 다수민족인 국가는 이스라엘뿐이다. 유럽에서 유다인이 가장 많은 곳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로 1백만에서 1백50만 정도가 있다고 추산된다. 유럽에서 유다인 인구가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는 국가는 독일로 특히 동유럽에서 많이 이주해 온다고 한다.
[편집] 유다인의 영향 [출처 필요]
오늘날 유다인은 미국, 유럽 등지에 살면서 막강한 영향과 세력을 발휘하고 있다.
- 유다인들은 금융업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해 영국 청교도 혁명 때 혁명파 수장 올리버 크롬웰에게 자금을 지원해 영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 영국에서 명예 혁명으로 윌리엄 3세가 오르자 유다인들은 윌리엄 3세에게 군자금을 지원해 화폐발행권 이권을 얻어냈고 1694년 잉글랜드 은행을 설립했다.
- 유다인들은 이후에도 영국에 막강한 영향을 끼쳐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직접 수상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다.
- 유다인은 전유럽의 금력을 바탕으로 막강해지기 시작했는데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다인 국제금융업자 가문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 예로 가문을 크게 일으킨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로스차일드 은행을 설립했다.
-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후 유럽 전역에 진출해 막강한 돈과 금융을 업고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의 첫째 아들 암셸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둘째 아들 잘로몬 로스차일드는 오스트리아 빈, 셋째 아들 네이선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영국 런던, 넷째 아들 카를 로스차일드는 이탈리아 나폴리, 다섯째 아들 제임스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프랑스 파리에 각각 진출했다.
- 로스차일드 가문의 아들들 중 셋째 아들 네이선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각 동맹국 정부에 1억 파운드씩 빌려주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 로스차일드 가문은 1875년 수에즈 운하 건설에도 융자해주고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영국 정부에 영향을 주어 유다 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밸푸어 선언을 유도하기도 했다.
- 유럽 전역에 반유다주의가 휩쓸자 로스차일드 가문은 상인 스펜서 모건과 그의 아들이자 훗날 모건 은행을 설립하는 존 피어폰 모건을 앞세워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 유다인들은 할리우드 영화 등 영화 산업을 이용해 백인 중심의 세계로 바꾸었다.
- 초기 8대 할리우드 영화사의 우두머리가 모두 유다인이었다. 워너브라더스, 메트로-골드윈-메이어, 파라마운트 픽처스, 20세기 폭스, 유니버설 스튜디오, 콜럼비아 픽처스 등 모두 유다인들이 설립한 영화사들이다.
- 1930년대까지 당시 영화시장을 독접하던 미국 영화사들이 모두 유다인 소유였다. [출처 필요]
- 미국 역사상 최대 재벌 중 하나였던 존 D. 록펠러도 유다인과 장사 수단이 비슷해 유다인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대 신문인 LA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도 유다인 소유이거나 유다인 운영 관리 회사이다.
- 세계적인 통신사 UPI, AP, AFP 역시 유다인 소유이다. [출처 필요]
- 영국 최대 통신사이자 세계 3대 통신사인 로이터 통신 역시 유다인 파울 율리우스 로이터가 세운 것이며, 프랑스의 자동차 회사 시트로앵의 창시자 앙드레 시트로앵, 이탈리아의 컴퓨터 회사 올리베티의 창시자 카밀로 올리베티 역시 유다인이다.
- 미국 3대 TV NBC, ABC, CBS-TV와 영국의 유명한 공영방송 BBC도 유다인의 세력에 있다.
- 세계적 주간지 <뉴스위크>와 경제 전문기 <더 월스트리트 저널> 등 수많은 신문, 방송, 잡지 등을 유다인이 보유하고 있다.
- FRB 회장의 4회나 맡으며 미국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던 앨런 그린스펀도 유다인이다.
- 전임 세계은행의 총재 폴 울포위츠와 현 총재 겨주기 로버트 졸릭, 국제통화기금의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프랑스 재무장관 등도 유다인이다.
- 세계적 커피 회사 스타벅스의 회장 하워드 슐츠, 헤지펀드계의 거물 조지 소로스, 인텔의 창립자 엔디 글로브, 델의 창업자 마이클 델, 러시아의 억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 옛 유코스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러시아의 미디어 재벌이던 보리스 베레좁스키, 유명한 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와 데이비드 시무어, 영국의 광고재벌 찰스 사치, 미국의 스포츠재벌 랜디 러너와 맬컴 글레이저, 로버트 크래프트, 뉴욕 시장이자 블룸버그 L.P.의 창립자 마이클 블룸버그,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 등 세계적 거물 인사들도 모두 유다인이다.
- 퓰리처상을 제정한 신문왕 조셉 퓰리처 역시 헝가리 출신 유다인계이다.
- 세계적인 인공어 에스페란토를 창시한 라자로 루드비코 자멘호프 박사도 유다인이다.
- <뉴욕타임스>의 최고논설위원 월터 리프만도 유다인이다.
- 무엇보다도 노벨상을 받은 유다인이 현재까지 무려 179명에 달한다.
-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와 펠릭스 멘델스존,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자니 클레그, 레오니트 크로이처 같은 음악가도 유다인이다.
- 막스 리버만,
-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와 러시아 혁명의 레온 트로츠키, 독일의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혁명가도 유다인이다.
-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는 조 리버먼이 부통령으로 지명되기도 했고 뉴질랜드의 총리 존 키도 유다인이다.
-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프레드 아들러, 막스 아이팅곤과 대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도 유다인이다.
- 작가 안나 제거스와 야코프 바서만, 프란츠 카프카, 전신학자 막스 라빈, 수학자 에밀 뇌터와 헤르만 민코프스키, 레오폴트 크로네커, 게오르크 칸토어, 생리학자 핸스 애돌프 크리브스, 화학자 크리츠 하버, 천문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 소련의 비밀경찰이던 겐리흐 야고다 등도 모두 유다인이다.
- 아이작 스턴이나 헨리 키신저, 오토 릴리엔탈, 찰스 린드버그, 아놀드 쇤베르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프란츠 오펜하이머, 레너드 번스타인, 스타니스와프 울람, 리바이 스트라우스 모두 유다인이다.
- 유다인과 결혼하여 개종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스티븐 스필버그, 로만 폴란스키 등 연예계에서도 유다인의 힘은 막강하다.
-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축구감독을 역임했던 호세 페케르만 역시 유다인으로 아르헨티나가 원년 월드컵 준우승을 포함하여 월드컵 우승 2회, 준우승 2회에 빛나는 축구의 명가인 관계로 월드컵 무대에서도 유태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 현재 미국 유명대학 재학 유다인 비율이 하버드 대학교 30%, 예일 대학교 28%, 보스턴 대학교 24%로 엄청나다.
- 이외에도 로버트 오펜하이머, 바뤼흐 스피노자, 발터 베냐민, 노암 촘스키, 에리히 프롬, 마르크 샤갈, 스티븐 발머 등도 모두 유다인이다.
- 미국 100대 기업의 40%가 모두 유다인의 소유이다.
- 세계 5대 메이저 식량 회사 중 3개가, 세계 7대 슈퍼메이저 석유 회사 중 6개가 유다인의 소유이다.
[편집] 유태인 민족성의 분석
[편집] 유태인 교육법
유태인들은 세계 역사에서, 특히 근현대 역사에서 뛰어난 업적을 자랑하고 있다. 인구비율에 비해 압도적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음[출처 필요]은 유태인의 뛰어난 능력과 교육법에 관심을 갖게 한다. 유태인들은 종교교육을 통해 그들 민족의 역사와 지혜를 배운다.
[편집] 주석
|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2006년 조사. (영어) Annual Assessment, Jewish People Policy Planning Institute
- ↑ (영어) 2006년 인구 조사
- ↑ 헝가리의 유다인
- ↑ Jewishtucson.org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영어) The Jewish Population of the World (2006). American Jewish Year Book, American Jewish Committee 에서 인용.
- ↑ SSEJ
- ↑ The Jews of Iran, Jewish Virtual Library
- ↑ (영어) SWEDEN 2000-1, Antisemitism And Racism
- ↑ (영어) Jewish Virtual Library Kazakhstan
- ↑ 가 나 세계사의 주역 유태인, 박재선 지음, 모아드림, 1999년
[편집]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