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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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유수( - 幽囚)는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하면서 시드기야왕을 비롯한 유대인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을 말하며, 기원전 538년에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 제국키루스 2세에 의해 풀려날 때까지 약 50년 동안의 기간을 뜻하기도 한다.

포로들의 대이동 -제임스 티소 작품
추방되는 유대인의 슬픔 -에드워드 벤데맨 작품

기간[편집]

히브리어 성경에 따라 유대인이 바빌론으로 추방되었던 다른 사건을 합쳐 말하기도 한다. 기원전 597년여호야긴 왕이 폐위되면서 일족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것과, 기원전 582년경 바빌로니아가 임명한 예후드 지방 총독인 게덜라이어 암살 이후 바빌론으로 잡혀간 사건을 포함하여 3차에 걸친 추방이 있었다. 이 경우 기원전 597년에 바빌론으로 추방된 시점부터 첫 귀환이 일어난 538년까지 약 59년이 된다.

특징[편집]

바빌론 유수기 동안 유대인은 고난과 고통으로 민족일치를 강화했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여 유대교를 정립하였고, 이 기간동안 경전을 정리하여 구약 성서의 기초를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바빌론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진보하고 화려한 문화를 체험하였다. 페르시아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절대적인 신을 설정하였고, 그 신이 인간들을 심판한다는 개념으로 인간사에 윤리성을 도입하였다. 이 교리를 유대인들이 받아들여 그 때까지도 현세 지향적이였던 유대교를 선진화시켰다.[1]

팔레스타인 땅으로 귀환한 후에도 유대인 중 일부는 바빌론에 남아 공동체를 유지하였으며 이들이 디아스포라의 유래가 되었다.

주석[편집]

  1. 정기문 (2004년 3월 20일). 《내 딸들을 위한 여성사》. 푸른역사. 2012년 2월 6일에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