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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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으로 인식되는 중동의 범위
  G8에서 정의한 대중동
  중앙아시아 (때때로 대중동에 포함)
오늘날 중동의 정치와 운송 지도

중동(中東, Middle East)은 지중해 동쪽부터 페르시아만까지의 영역을 포함하는 아시아의 서부 대륙이다. 좁게는 서아시아의 국가들부터 넓게는 북아프리카, 나라의 경우는 이집트까지 포함한다. 어디까지가 중동이라는 정확한 경계선은 없지만 중동이라는 말은 보통 근동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며, 극동이라는 말과는 대비되는 의미를 가진다. 중양(中洋)으로도 불린다. ‘중동’이라는 용어는 1900년대에 들어서 영국이 사용하였다.

중동 지역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까지 쭉 중동 지역은 세계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의 중심지였다. 또한 중동은 세계의 주요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역사적인 발원지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중동 지역은 건조하고 기온이 높으며, 몇 개의 강들에 농업을 위한 관개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페르시아만 주변에 위치한 많은 국가들은 대부분이 산유국이며, 현대 시대에서 중동은 전략, 경제, 정치, 문화, 종교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지역이다.

명칭[편집]

여원[편집]

중동이라는 명칭과 중동 지역의 경계선은 뚜렷하지 않다. 지역 상 서부(서남 아시아)와 북동 아프리카에 걸쳐 분포해 있다. ‘중동'이라는 용어는 1850년영국동인도 회사에서 최초로 사용했고, 미 해군 전략가인 알프레드 테이어 마한(Alfred Thayer Mahan)이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시기는 영국러시아 제국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으로 불렸던 시기다.

미 해군은 이 지역의 전략적인 중요성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중심인 페르시아만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수에즈 운하와 페르시아만 사이 지역을 ‘중동’(Middle East)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이러한 주장은 영국이 인도를 향한 러시아의 야욕을 저지하고 인도를 통제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미 해군은 1902년 9월에 영국의 《National Review》지에 기고한 《페르시아 만과 국제 관계》(The Persian Gulf and International Relations)'란 글에서 처음으로 ‘중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동양과 서양에 비교해 중양(中洋)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 수가 많지 않다.

쓰임새와 비판[편집]

1957년 미국에서 제작된 중동 다큐멘터리 영화

'중동'의 '중'이 정확히 어디 지역까지인지는 세월에 따라 그 범주가 바뀌어 왔다. 제1차 세계 대전까지는 영어권에서 발칸반도오스만 제국 일대를 아울러 '근동' (Near East)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반면, '중동' (Middle East)라는 표현은 캅카스페르시아, 아라비아반도 일대,[1] 나아가 심지어는 아프가니스탄인도 일대까지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2] 그리고 아시아의 나머지 지역인 동아시아 (주로 한중일)은 '극동' (Far East)라 이름하였다.[3][4]

1918년 오스만제국이 몰락하자 기존의 '근동'이란 표현은 영어권에서 빠르게 사장되었고, 대신 여러 국가를 아우르는 이슬람권을 가리켜 '중동'이란 표현이 그 자리를 대체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다만 '근동'이라는 표현은 여러 학계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는데, 특히 고고학고대사 분야에서는 '중동'이라 부르는 지역과 동일함에도 '근동'이란 표현을 고수하였고 이는 곧 고대 근동 (Ancient Near East)라는 지역구분으로 굳혀졌다.

미국 정부에서 '중동'이란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1957년 수에즈 위기에 대응하여 발표된 아이젠하워 독트린이었다. 존 포스터 덜레스 당시 미 국무장관은 중동을 "서쪽으로 리비아, 동쪽으로 파키스탄, 북쪽으로 시리아이라크, 남쪽으로 아라비아반도에 더하여 수단에티오피아까지 아우르는 지역"으로 정의하였다.[5] 1958년 미국 국무부는 '근동'과 '중동'이 서로 대체되는 단어 (interchangeable)라 설명하였으며, 그 지역의 범위는 이집트, 시리아, 이스라엘,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로 한정한다고 밝혔다.[6]

한편 이렇게 보편적인 용어로 자리잡은 '중동'이라는 표현이 유럽중심주의, 식민주의적 시각에 따른 명칭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기자 루에 크레시, 역사학자 하산 하나피가 있다.[7][8][9]

국가[편집]

대표적으로 포함되는 국가[편집]

예로부터 중동에 속한 것으로 취급되는 지역으로는 아라비아반도, 아나톨리아, 동트라키아, 이집트, 이란, 레반트, 메소포타미아, 소코트라가 있었다. 오늘날 이들 지역에는 유엔 회원국 17개국과 속령 1개국이 속해 있으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국기 국가
(국제전화)
면적
(km2)
인구
(2021년)
인구밀도
(명/km2)
수도 명목
GDP

(십억, 2022년)[10]
1인당
GDP
(2022)[11]
통화 정부 공용어
레바논 레바논(961) 10,452 6,769,000 648 베이루트 $19.126 $2,802.14 레바논 파운드 의회공화국 아랍어
바레인 바레인(973) 780 1,501,635 1,925 마나마 $44,169 $29.103 바레인 디나르 전제군주정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966) 2,149,690 35,013,414 16 리야드 $1.040.166 $28,759 사우디 리알
시리아 시리아(963) 185,180 18,276,000 99 다마스쿠스 $60.043 $3,285.35 시리아 파운드 대통령제 공화국
아랍에미리트 아랍에미리트(971) 82,880 9,503,738 115 아부다비 $501.354 $50,349 아랍에미리트 디르함 연방 입헌군주정
아크로티리 데켈리아 아크로티리 데켈리아(357) 254 18,195 72 에피스코피 - - 유로 (사실상) 군정
입헌군주정 하의 속령
영어
예멘 예멘(967) 527,970 30,491,000 58 사나2
아덴 (임시수도)
$28.134 $891 예멘 리알 대통령제 임시 공화국 아랍어
오만 오만(968) 309,500 4,520,471 21 무스카트 $110.127 $23,416 오만 리알 전제군주정
요르단 요르단(962) 92,300 11,098,276 120 암만 $47.745 $4,636 요르단 디나르 입헌군주정
이라크 이라크(964) 438,317 41,190,700 82.7 바그다드 $297.341 $7,038 이라크 디나르 의회공화국 아랍어
쿠르드어
이란 이란(98) 1,648,195 85,022,548 52 테헤란 $1,739,012 $20,261 이란 리알 이슬람 공화국 페르시아어
이스라엘 이스라엘(972) 20,770 9,443,420 455 예루살렘1 $520.703 $54,688 이스라엘 셰켈 의회공화국 히브리어
이집트 이집트(20) 1,010,407 102,678,136 102 카이로 $435.621 $4,162 이집트 파운드 대통령제 공화국 아랍어
카타르 카타르(974) 11,437 2,799,202 245 도하 $225.716 $84,514 카타르 리알 전제군주정
쿠웨이트 쿠웨이트(965) 17,820 4,670,713 262 쿠웨이트시 $186.610 $38,755 쿠웨이트 디나르 입헌군주정
키프로스 키프로스(357) 9,250 888,005 96 니코시아 $27.726 $30,663 유로 대통령제 공화국 그리스어
터키어
튀르키예 튀르키예(90) 783,562 83,614,362 107 앙카라 $692.380 $8,081 튀르키예 리라 튀르키예어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970) 6,220 5,227,193 840 라말라1 $18.698 $3,682 이스라엘 신 셰켈
요르단 디나르
반대통령제 공화국 아랍어
1. ^ ^ 예루살렘이스라엘의 명목상·실질적 수도로서 국회, 대법원, 정부기관 소재지이나, 팔레스타인과 분쟁 중에 있다. 팔레스타인 정부의 소재지는 라말라이지만 명목상의 수도는 동예루살렘으로, 이스라엘과 분쟁 중에 있다.
b. ^ 예멘 내전으로 후티 반군이 사나를 장악하면서 정부소재지를 아덴으로 이전하였다.

간혹 포함되는 국가[편집]

중동과 거의 동등한 개념을 지닌 지역명칭으로 근동, 레반트, 비옥한 초승달이 있다. 이 세 명칭은 지리학적 개념에 따른 구분으로서 오늘날 중동 범위 내의 적지 않은 지역을 포괄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근동이 지리학적 맥락에서 중동의 범주에 가장 근접하다.

똑같이 아랍어권에 속한다는 이유로 북아프리카마그레브 국가들도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아랍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이슬람교 영향권 내지는 인접지역인 남캅카스 3국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도 간혹 중동의 범위에 들어가기도 한다.[12]

한편 대중동 (Greater Middle East)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는 정치적 맥락에 따른 명칭으로서, 2000년대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G8 회의에서 주창하였다.[13] 대중동이라 함은 이슬람권, 특히 아프가니스탄, 이란, 파키스탄,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한 지역들을 말한다.[14]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도 가끔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15]


역사[편집]

튀르키예괴베클리 테페에 세워진 돌무더기의 지층 연대는 기원전 96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교 의식용으로 건설된 구조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16]
예루살렘통곡의 벽바위의 돔
예루살렘성모교회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카바

중동은 아프리카유라시아, 인도양지중해의 접합점에 걸쳐 있는 지방으로, 역사를 통틀어서 군사, 경제, 정치, 문화, 종교 등 세계사의 중심 무대가 된 곳이다. 특히 세계 종교에 해당되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는 물론 마니교, 예지디교, 드루즈교, 야르산교, 만다야교, 미트라교, 조로아스터교 등 여러 지역종교의 탄생지이자 중심지이다. 뿐만 아니라 농경이 독자 발전한 지역으로서, 철기시대에 이르러 유럽, 인도, 동아프리카 등으로 그 기술을 퍼뜨린 근원지이기도 했다.

선사 시대와 고대[편집]

문명이 형성되기 전 석기시대 중동에서는 온 지역에 걸쳐 발달된 문화를 이룩하였다. 농경인들은 농경지를 탐색하고, 목축민들은 목축지를 찾아 나서면서, 중동 지역 내에서 다양한 이주 현상이 벌어졌고 이는 곧 민족적, 인구학적 환경을 형성했다.

중동은 문명의 요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동 내지는 고대 근동 지역 내에서도 비옥한 초승달 지역과 나일강 계곡 지역을 중심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메르, 아카드, 아시리아, 바빌로니아)와 고대 이집트키시 문명이 발원하였다. 이들 문명의 뒤를 이어 아나톨리아에서는 히타이트, 그리스, 후르리인, 우라르투 문명이, 이란에서는 엘람, 페르시아, 메디아 문명이, 레반트에서는 에블라, 마리, 나가르, 우가리트, 가나안, 아라메아, 미타니, 페니키아, 이스라엘 문명이, 아라비아반도에서는 마잔, 셰바, 우바르 문명이 발전하였다.

이후 이들 문명은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통일되기 시작하였는데, 신아시리아 제국이 세워지면서 중동이 처음으로 통일되었으며, 아케메네스 제국, 마케도니아 제국이 그 뒤를 잇는가 하면 페르시아계 제국 (파르티아 제국사산 제국)도 등장하였다. 유럽에서 발원한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도 고대 끝무렵까지 근동 일대를 지배하였으며, 지식·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특히 사산 제국과 만나는 최전방으로서 유례없이 중요한 지역으로 등극하면서, 로마인들은 사산조나 베두인족의 침공으로부터 방어를 목적으로 5~6개 군단을 이 지역에 배치한 바 있다.

중세[편집]

4세기경부터 중동은 당대 최강국이던 동로마 제국사산 제국이 접하는 요충지가 되었다. 하지만 중세이슬람 칼리파국 건설, 특히 7세기 이슬람 세력의 대대적인 정복으로 시작된 이슬람 황금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전 중동 지역에 걸쳐 이슬람교아랍어라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대표적인 정체성[17]을 처음으로 확립하였다.

이 시기 중동을 통일한 칼리파국은 6세기 넘는 기간 동안 4대에 걸쳐 중동을 지배하였는데, 차례로 라시둔 칼리파국, 우마이야 칼리파국, 아바스 칼리파국, 파티마 칼리파국이라 칭한다. 칼리파국 외에 다른 세력이 중동을 다스린 것은 몽골 제국이 거의 전 지역을 정복한 사례가 남아 있으며, 소아르메니아 왕국이 제 지역을 다스리는가 하면, 셀주크 제국도 중동 대부분을 정복하여 튀르크-페르시아 문화를 전파하였고, 유럽의 프랑크인십자군 국가를 세워 약 2세기 동안 이스라엘 지역을 다스렸다.

당시 중동의 인구는 조시아 러셀의 추정에 따르면 서기 1000년경을 기준으로 약 1250만 명에 달하며, 그 중에 아나톨리아가 800만 명, 시리아가 200만 명, 이집트가 150만 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8]

칼리파국의 전성기가 끝나고 여러 왕조로 분열되었던 중동은 16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사파비 왕조라는 두 강대국에 의해 다시 한번 통일되었다.

근현대[편집]

중동이 근대에 접어든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동맹국으로 참전했던 오스만 제국이 대영제국을 위시로 한 연합국에게 패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지배하는 여러 식민국가로 분할되면서부터였다. 이 시기를 정의하는 또다른 사건으로는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1960년대 영국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세력 축소로 인한 식민지 독립이 있다. 1970년대부터는 유럽 국가가 떠난 자리에 미국이 들어와 그 영향력을 점차 늘리기도 하였다.

한편 20세기부터 중동 지역에 원유가 대규모로 매장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전략적, 경제적 중요성이 새롭게 부여되기 시작하였다. 석유의 대량생산이 시작된 것은 1945년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쿠웨이트, 이라크, 아랍에미리트가 특히 석유 대국으로 부상하였다.[19] 추정 매장량으로만 따지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은 세계 최상위권에 들고 있으며, 오늘날 국제 석유 기구인 OPEC은 중동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냉전기 중동은 미국 (나토)과 소련 (바르샤바 조약 기구)이라는 두 초강대국이 각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 경쟁하는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 되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첫째로 중동 내 전략적 이점을 얻고자 하는 초강대국의 노림수, 둘째로 서구 경제에서 석유가 점점 더 중요한 자원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중동 지역은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3분의 2를 차지한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20] 이러한 맥락 속에서, 미국은 아랍권에서 인접국 소련의 영향력을 걷어내고자 했다는 분석이다. 미소 갈등의 각축장을 논외로 하면 중동의 각국은 비교적 평화롭고 관용적인 시기를 보내거나, 수니파시아파의 분쟁이 벌어지는 시기를 보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How the Middle East was invented”. 《The Washington Post》. 
  2. “Where Is the Middle East? | Center for Middle East and Islamic Studies”. 
  3. Clyde, Paul Hibbert, and Burton F. Beers. The Far East: A History of Western Impacts and Eastern Responses, 1830-1975 (1975). online
  4. Norman, Henry. The Peoples and Politics of the Far East: Travels and studies in the British, French, Spanish and Portuguese colonies, Siberia, China, Japan, Korea, Siam and Malaya (1904) online
  5. Davison, Roderic H. (1960). “Where is the Middle East?”. 《Foreign Affairs》 38 (4): 665–75. doi:10.2307/20029452. JSTOR 20029452. S2CID 157454140. 
  6. 'Near East' is Mideast, Washington Explains”. 《The New York Times》. 1958년 8월 14일. 2009년 10월 1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1월 25일에 확인함. (구독 필요)
  7. Khraish, Louay (2021년 7월 16일). “Don't Call Me Middle Eastern”. Raseef 22. 
  8. Hanafi, Hassan (1998). “The Middle East, in whose world? (Primary Reflections)”. Oslo: Nordic Society for Middle Eastern Studies (The fourth Nordic conference on Middle Eastern Studies: The Middle East in globalizing world Oslo, 13–16 August 1998). 2006년 10월 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9. Shohat, Ella. “Redrawing American Cartographies of Asia”. City University of New York. 2007년 3월 1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1월 12일에 확인함. 
  10.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2022년 9월 19일. 2022년 9월 19일에 확인함. 
  11. “Report for Selected Countries and Subjects”. International Monetary Fund. September 2019. 2022년 9월 14일에 확인함. 
  12. Novikova, Gayane (December 2000). “Armenia and the Middle East” (PDF). Middle East Review of International Affairs. 2014년 8월 21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8월 14일에 확인함. 
  13. Haeri, Safa (2004년 3월 3일). “Concocting a 'Greater Middle East' brew”. 《Asia Times》. 2004년 4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8월 21일에 확인함. 
  14. Ottaway, Marina & Carothers, Thomas (29 March 2004), The 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 Off to a False Start 보관됨 12 3월 2009 - 웨이백 머신, Policy Brief,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29, pp. 1–7
  15. Middle East 보관됨 15 4월 2016 - 웨이백 머신 What Is The Middle East And What Countries Are Part of It? worldatlas.com. Retrieved 16 April 2016.
  16. “The World's First Temple”. 《Archaeology magazine》. November–December 2008. 23쪽. 
  17. 이슬람교를 믿지 않거나 (이스라엘,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 아랍어를 쓰지 않는 국가 (이스라엘, 튀르키예, 이란 등)도 존재하기에 독점적인 정체성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18. Russell 1985, 298쪽.
  19. Goldschmidt (1999), p. 8
  20. Louise, Fawcett. 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Middle East. (Oxford University Press, New York,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