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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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Österreichisch-Ungarische Monarchie
Osztrák-Magyar Monarchia

1867년 ~ 1918년
Flag of Austria-Hungary (1869-1918).svg Wappen Österreichische Länder 1915 (Klein).png
국기 국장
표어 Indivisibiliter ac Inseparabiliter
국가 민중의 노래 (Volkshymne)
Austro-Hungarian Monarchy (1914).svg
수도 북위 48° 12′ 동경 16° 21′  / 북위 48.200° 동경 16.350° / 48.200; 16.350
정치
공용어 독일어, 헝가리어
정부 형태 입헌군주제, 동군연합체
카이저
1848년 ~ 1916년
1916년 ~ 1918년
제1총리
초대

마지막

제2총리
초대

마지막

프란츠 요제프 1세
카를 1세
(= 오스트리아 총리)
프리드리히 보이스트
(1867년 2월 ~ 1867년 12월)
하인리히 람마시
(1918년 10월 ~ 1918년 11월)
(= 헝가리 총리)
안드라시 귤라
(1867년 2월 ~ 1871년 11월)
야노스 허디크
(1918월 10월)
역사
 • 성립
 • 해체
 • 소멸
1867년 5월 29일
1918년 10월 31일
1919년 9월 10일
지리
1914년 면적 676,615km²
인구
1914년 어림 52,800,000명
기타
통화 굴덴 (1867~1892)
크로네 (1892~1918)
이전 국가
다음 국가
오스트리아 제국
독일계 오스트리아
헝가리 민주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폴란드 제2공화국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국
세르비아 왕국
이탈리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
오스트리아의 역사
Geschichte Österreichs
Austrian Flag.jpg
초기 역사
할슈타트 문명(기원전 8 ~ 6세기)
로마 제국
노리쿰 속주
판노니아 속주
라이티아 속주
마르코만니족
아바르족
사모
카란타니아 공국(658년 ~ 828년)
오스트리아 변경백국(976년 ~ 1156년)
바벤베르크 왕가
소특권(1156년)
오스트리아 공국(1156년 ~ 1457년)
합스부르크 시대
합스부르크 왕가
신성로마제국(962년 ~ 1806년)
오스트리아 대공국(1358년 ~ 1849년)
합스부르크 군주국(1526년 ~ 1804년)
오스트리아 제국(1804년 ~ 1867년)
독일 연방(1815년 ~ 1866년)
KnK 이중제국(1867년 ~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사라예보 사건(1914년)
제1차 세계 대전(1914년 ~ 1918년)
전간기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1918년 ~ 1919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1919년 ~ 1934년)
오스트리아 파시즘
오스트리아 연방국(1934년 ~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1938년)
제2차 세계 대전
국가사회주의 오스트리아(1938년 ~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1939년 ~ 1945년)
전후 오스트리아
연합국 군정기(1945년 ~ 1955년)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1955년 ~ 현재)
주제별 역사
오스트리아 전쟁사
오스트리아 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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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독일어: Österreich-Ungarn Monarchie 외스터라이히-웅가른 모나르히[*], 헝가리어: Osztrák-Magyar Monarchia 오스트라크-머저르 모너르히어[*])은 1867년부터 1918년까지 존속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국가이다. 이중 제국(독일어: Doppelmonarchie 도펠모나르히[*]), 또는 K.u.K(독일어: Kaiserlich und Königlich 카이저리히 운트 쾨니크리히[*])로도 불렸다. 공식 명칭은 제국 회의에 대표된 왕국들과 영토 및 신성 헝가리의 성 이슈트반 왕위의 영토들(독일어: Die im Reichsrat vertretenen Königreiche und Länder und die Länder der heiligen ungarischen Stephanskrone 디 임 라이히스라트 페어트레테넨 쾨니크라이헤 운트 렌더 운트 디 렌더 데어 하일리겐 웅가리셴 슈테판스크로네[*], 헝가리어: A birodalmi tanácsban képviselt királyságok és országok és a magyar szent korona országai)이다.

1867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와 헝가리헝가리인 귀족들 사이의 대타협(독일어: Ausgleich 아우스글라이히[*], 헝가리어: Kiegyezés 키에제제시[*])으로 성립되었고, 오스트리아 황제가 헝가리의 사도왕(1867년 이전에는 '헝가리 국왕'), 보헤미아(지금은 체코 공화국) 을 겸임하였다. 이 타협으로 헝가리는 큰 자치권을 누리게 되었다. 헝가리인은 오스트리아인과 함께 지배 민족이 되었고, 헝가리어독일어와 함께 공용어가 되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황제가 지배하는 제국의 서부, 북부 지역과 헝가리의 공동 사안(국방, 외교, 경제 등)에는 각각 비례 대표를 통해 참여하였다.

제국이 존재하는 동안,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전환된 이후 발칸 반도에서의 이권을 지키는데 큰 관심을 가졌으나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이 되어 독일, 오스만 제국과 함께 동맹국으로 참전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이탈리아 전선에서 이탈리아(1915년 연합국으로 참전)에 의해 패배하였고, 1918년 11월 연합국에 항복하였다.

제국의 영토는 세르비아, 루마니아, 이탈리아, 폴란드, 우크라이나에게 할양당하고 남은 영토마저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로 각각 독립함으로써 제국은 완전 해체된다. 황제는 퇴위하고, 공화국이 선포된다(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이후 한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긴 침체기를 맞았다.

수도로는 부다페스트 두 곳이 있었다. 당시 주민은 게르만족의 혈통인 오스트리아인, 슬라브족의 혈통인 체코인, 폴란드인, 슬로바키아인, 보스니아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우크라이나인, 우랄족의 혈통인 헝가리인이 거주하였다.

역사[편집]

이 나라는 예전의 오스트리아 제국을 계속 지탱하기 위한 헝가리의 귀족들과 합스부르크 왕가 간의 대타협으로 세워졌다.

19세기는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싹이 텄던 시기로 당시 다민족 국가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정치 문제는 11개의 주 민족들 간의 분쟁이 주를 이루었다.

민족들 간의 분쟁이 많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그 50년 역사 동안 급속도의 경제 성장과 근대화 및 민주화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해체되었다.

일부 영토는 이탈리아, 루마니아를 비롯한 이웃을 접한 국가들에게 할양되는 등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에서 가장 많은 영토 손실을 입었다.

국명[편집]

다음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통용되었던 언어들로 제국의 명칭을 표기한 목록이다.

행정 구역[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행정 구역 지도

헝가리령이 아닌 부분(오스트리아령 부분)을 흔히 치스레이타니아(독일어: Cisleithanien 치스라이타니엔[*], ‘라이타 강 이편’이라는 뜻) 부르는데 이는 그 영토 대부분이 라이타 강(독일어: Leitha 라이타[*], 헝가리어: Lajta 러이터[*]) 서쪽에 있었기 때문이다(동북부의 갈리치아도 오스트리아령).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 본토 외에도 여러 딸린 영토로 이루어졌는데 1915년 이전에는 이를 아울러서 부르는 공식 명칭이 없었고 그때부터 제국 회의에 대표된 왕국들과 영토들이란 공식 명칭을 사용했다. 제국 회의(독일어: Reichsrat 라이히스라트[*])는 치스레이타니아의 의회 역할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트란스레이타니아(독일어: Transleithanien 트란스라이타니엔[*], ‘라이타 강 저편’이란 뜻), 즉 ‘헝가리령’ 부분은 헝가리 외에도 딸린 영토들이 많았고 공식적으로는 ‘신성 헝가리의 성 이슈트반 왕위의 영토들’이라 불렸다.

여기서 성 이슈트반은 헝가리 왕국의 첫 기독교도 왕으로 성인으로 추대받은 성 이슈트반 대왕(헝가리어: Szent István király 센트 이슈트반 키라이[*])을 가리킨다.

지도에 따른 영토[편집]

가나다 순이다.

지역[편집]

치스레이타니아의 ‘왕국들과 영토들’:

트란스레이타니아의 ‘영토들’:

이외에도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1908년 합병)는 제국의 독자적인 부분을 형성하였으며 양쪽이 공동으로 통치하였다.

정치[편집]

1907년부터 보통 선거제가 시행되었다.

역대 황제[편집]

군사[편집]

징병제를 채택하여, 남자들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기간동안 병력의 90%가 손실을 입었으며(이 중 대부분이 포로), 이는 참전국 중 가장 많은 수치이다. 120만 명이 전사하였고, 360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산업[편집]

문화[편집]

오스트리아는 19세기까지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독점하며 오랜 세월 동안 독일어권 문화의 중심지였으나, 비스마르크소독일주의에 따라 오스트리아를 배제하고 통일독일제국을 수립함에 따라 독일어권 문화의 중심지 자리를 독일 제국에게 내줬다.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완전히 해체되어 여러 나라로 분열됨에 따라 제국의 문화적 유산 역시 국경에 따라 흩어지게 되었다. 기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문화'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던 것들이 각국의 독립된 문화로 분리되어 나갔다.

이러한 이유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문화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축소 평가되어 있다.[1]

그러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세기 당시 유럽의 주요국가(유럽 대륙에서 면적은 2위, 인구는 3위)이자 열강으로서 1867년 ~1918년 존속하면서 수많은 문화적 유산을 남겼다.

철학[편집]

이 시기에 활동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사상가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비트겐슈타인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창시함으로써,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철학을 발전시킴으로써 후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에드문트 후설도 오스트리아 출신이며, 신칸트학파에 대항하여 독일-오스트리아 학파를 세운 프란츠 브렌타노도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경제학[편집]

오스트리아 학파를 세운 카를 멩거,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 프리드리히 폰 비저가 활동했다.

건축학[편집]

건축가 오토 바그너가 대표적이다. 그는 유럽 근대 건축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음악[편집]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활동하였다.

미술[편집]

'입맞춤' 등이 대표작인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이 나라 출신으로서, 빈 아르누보 운동을 이끌었다.

문학[편집]

프란츠 카프카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라하 출신이다.

과학[편집]

오스트리아의 병리학자인 란트슈타이너에 의해 ABO식 혈액형과 Rh인자가 발견되었다. 그는 1930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민족 관계[편집]

민족 분포
민족 인구 비율
독일인
헝가리인
체코인
폴란드인
루테니아인
루마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바키아인
세르비아인
슬로베니아인
이탈리아인
24%
20%
13%
10%
8%
6%
5%
4%
4%
3%
3%

체코인(보헤미아, 모라비아, 오스트리아령 실레시아에서 다수민족) 폴란드인·우크라이나인(갈리치아), 슬로베니아인(카르니올라, 카린티아, 스티리아 남부), 크로아티아인, 이탈리아인, 이스트리아의 슬로베니아인은 각각 치스레이타니아 정치에서 발언권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동시에 트란스레이타니아에서의 헝가리인(머저르인) 지배는 트란실바니아바나트 동부의 루마니아인, 오늘날의 슬로바키아 영토의 슬로바키아인, 크로아티아 왕국과 달마티아 왕국(오늘날의 크로아티아 영토)·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보이보디나크로아티아인세르비아인의 도전을 받았다.

루마니아인들과 세르비아인들은 또 새로 세워진 독립국 루마니아(1859년-1878년)와 세르비아의 동족들과의 합병을 원하였다.

종교[편집]

국교는 로마 가톨릭이었다.

종교 전체 오스트리아 제국 헝가리 왕국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로마 가톨릭 76.6% 90.9% 61.8% 22.9%
개신교 8.9% 2.1% 19.0% 0%
동방정교회 8.7% 2.3% 14.3% 43.5%
유대교 4.4% 4.7% 4.9% 0.6%
이슬람교 1.3% 없음 없음 32.7%

국기 및 국장[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기로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기를 사용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기를 국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이며,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사용하였다. 해군기는 패턴이 현재의 국기와 같으나 가운데에 문장이 들어있는 기를 사용하였다.

국기[편집]

황기[편집]

1915년 이전[편집]

1915년 이후[편집]

군기[편집]

장군 및 제독의 기[편집]

장군의 기[편집]

제독의 기[편집]

국장[편집]

1915년 이전[편집]

1915년 이후[편집]

육해군 휘장[편집]

대외 관계[편집]

대한 관계[편집]

흥선 대원군이 물러나기 전까지의 조선은 서양과의 수교를 강경하게 거부하였다. 그러나 1876년에 맺어진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서양 열강들과 수교하게 되었다. 1892년 6월 23일에는 오스트리아와도 조·오수호통상조약(朝奧修好通商條約)을 맺으면서 양국간의 정식 외교 관계가 시작되었다.

1897년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면서 민영익이 주 오스트리아-헝가리 대사로 임명되었으나, 신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1900년 6월 이진범이 참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일본 제국에 빼앗기면서 양국간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대 독일 관계[편집]

대 러시아 관계[편집]

대 루마니아 관계[편집]

루마니아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연합국에 가담하여 한때 전 국토가 동맹국에 유린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연합국이 승리하여 오스트리아로부터 트란실바니아를 얻어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오스트리아는 19세기까지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독점하며~: Wiliam M. Johnston 지음,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 합스부르크 제국의 정신사와 문화사의 재발견》 (원제: The Austrian Mind: An Intellectual and Social History, 1848-1938 ), 글항아리, 2008, ISBN 978-89-546-0531-1 6쪽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