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이라크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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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Baghdad etm 2003092 lrg.jpg
바그다드 폭격
날짜 2003년 3월 20일 ~ 2003년 12월 13일
장소 중동이라크
결과 사실상 연합군의 승리. 그러나 이라크 각지에서 저항이 발생하고 있다.
교전국
미국의 국기 미국
영국의 국기 영국
덴마크의 국기 덴마크
쿠르드 자치주의 국기 쿠르드 민주당
쿠르드 자치주의 국기 쿠르드 애국 동맹
이라크의 국기 이라크 국민회의
이라크의 국기 이라크
Flag of Jihad.svg 안사르 알 이슬람
Flag of Jihad.svg/시리아의 국기 시리아에서 온 외국인 지원자들
지휘관
미국의 국기 토미 프랭크스
영국의 국기 브라이언 버리지
쿠르드 자치주의 국기 잘랄 탈라바니
쿠르드 자치주의 국기 마수드 바르자니
이라크의 국기 아메드 찰라비
이라크의 국기 사담 후세인
이라크의 국기 쿠사이 후세인
이라크의 국기 우다이 후세인
이라크의 국기 알리 하산 알 마지드
이라크의 국기 바르잔 이브라힘
이라크의 국기 이자트 이브라힘 알 두리
Flag of Jihad.svg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Flag of Jihad.svg 물라 크레카르
병력
263,000명 1,375,000명
피해 상황
사망자: 4125명
미군 3,823명
영국군 170명
그 밖 132명
민간계약 요원 사망자: 1012명
이라크 치안부대 사망자: 8,000~10,000명
전쟁 포로 수십만명

이라크 전쟁(영어: Iraq War, 아랍어: الحرب على العراق)은 2003년 3월 20일 미군영국군이 합동으로 이라크를 침투해 일어난 전쟁이다.

2003년 4월 9일에 이르면 이라크의 수도바그다드를 함락하게 되었고 같은 해 12월 13일, 1979년부터 24년간 집권해 오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체포됨으로써 끝났다.

목차

[편집] 전쟁의 까닭

미국영국이 주장한 전쟁의 까닭은 아래와 같다.

  • 이라크는 대량 파괴 무기의 보유를 과거에 선언하는 한편, 지금도 그 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 세계의 안보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국내에서 쿠르드인을 탄압하는 등 많은 압정을 실시하고 있다.
  • 거듭되는 유엔 사찰의 방해 때문에, 대량 파괴 무기의 폐기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 거듭되는 사찰 방해 때문에, 걸프 전쟁의 정전 결의인 유엔 안보리 결의 687이 찢어지고 있다.
  • 유엔 안보리 결의 1154와 "앞으로의 어떠한 안보리 결의 위반도, 이라크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결과를 부른다."라고 하는, 걸프 전쟁 정전 협정(위의 687) 파기 조건의 결의, 즉 마지막 경고 결의가 진행 중이었다.

대체로 위와 같은 까닭으로 이라크를 중동의 위협이라고 단정하고, 이라크의 무장 해제를 목적으로 한 무력행사라고 주장하여, 전쟁을 시작했다. 프랑스, 독일 등은 전쟁을 시작한다면 1441 이외로 새로운 안보리 결의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미국영국 및 동맹국은 그러한 필요가 없음을 밝히고 위의 까닭에만 기초를 두어 전쟁을 단행했다.

또, 미국과 영국 측이 승전을 선포한 뒤의 2004년 10월, 미국이 파견한 조사단이 "이라크에 대량 파괴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마지막 보고를 제출하였다. 전쟁을 시작한 근거가 된 대량 파괴 무기의 정보의 신빙성도 희박한 것이었던 것이 밝혀져 이 전쟁의 정당성이 크게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편집] 전쟁의 이름

전쟁의 이름은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과 같이 전쟁의 장소가 된 지명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출처 필요]. 이라크 전쟁이라는 이름은 미국의 입장에서 "이라크를 적대시하는 태도일 뿐이다."라는 의견도 있다[출처 필요]. 또, 전쟁에 이른 경위를 생각하여 제2차걸프 전쟁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출처 필요]

[편집] 여러 나라의 반응

[편집] 전쟁결과

징병제로 100만명이 넘는 이라크군은 숫적 우세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했으며 특히 이라크병사들의 군기는 엉망이였다. 결국 후세인의 두 아들인 우다이 후세인쿠사이 후세인이 열화우라늄탄에 맞아 숨을 거두고[1] 이후 후세인은 미군에 체포됨으로 인하여 종전되었다. 결과물로만 따진다면 전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대학살에 더 가까웠으며 사담 후세인은 추후에 처형되었다.

[편집] 더 보기

[편집] 주석

  1. http://poetry.rotten.com/u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