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이라크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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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라크 침공
바그다드 폭격
바그다드 폭격
날짜 2003년 3월 20일 ~ 2003년 5월 1일(공식적으로는 2011년 12월 15일)
장소 중동이라크
결과 연합군의 승리.
그러나 2011년 12월 15일 공식 종전을 선언하기 전까지 이라크 각지에서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시아파와 수니파의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교전국
2011년 철수국[1]

대한민국 대한민국
덴마크 덴마크
라트비아 라트비아
루마니아 루마니아
마케도니아 공화국 마케도니아 공화국
몰도바 몰도바
몽골 몽골
미국 미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불가리아 불가리아
싱가포르 싱가포르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알바니아 알바니아
엘살바도르 엘살바도르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영국 영국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일본 일본
조지아 (국가) 조지아
체코 체코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통가 통가
폴란드 폴란드
2003년 철수국
네덜란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노르웨이
뉴질랜드 뉴질랜드
니카라과 니카라과
도미니카 연방 도미니카 연방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스페인 스페인
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온두라스 온두라스
이탈리아 이탈리아
타이 타이
포르투갈 포르투갈
필리핀 필리핀
헝가리 헝가리
내전 중인 국가
쿠르드 자치구 쿠르드 민주당
쿠르드 자치구 쿠르드 애국 동맹
이라크 이라크 국민회의

이라크 이라크
Flag of Jihad.svg 안사르 알 이슬람
Flag of Jihad.svg
지휘관
미국 조지 W. 부시
미국 토미 프랭크스
영국 브라이언 버리지
쿠르드 자치구 잘랄 탈라바니
쿠르드 자치구 마수드 바르자니
이라크 아메드 찰라비
이라크 사담 후세인
이라크 쿠사이 후세인
이라크 우다이 후세인
이라크 알리 핫산 알 마지드
이라크 바르잔 이브라힘
이라크 이자트 이브라힘 알 두리
Flag of Jihad.svg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Flag of Jihad.svg 물라 크레카르
병력
263,000명 1,375,000명
피해 규모
사망자: 4125명
미군 3,823명
영국군 170명
그 밖 132명
민간계약 요원 사망자: 1012명
이라크 치안부대 사망자: 8,000~10,000명
전쟁 포로 수십만명


2003년 이라크 침공(영어: 2003 invasion of Iraq, 아랍어: الغزو الأمريكي للعراق)은 2003년 3월 20일 미군과 영국군이 합동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사건으로, 이로 인해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였다.

2003년 4월 9일에 이라크의 수도바그다드를 함락하게 되었고 같은 해 5월 1일에 끝났다.(공식적으로는 미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2011년 12월 15일 이라크 전쟁이 끝났다고 공식 선언하였다.)

목차

침공의 근거 [편집]

미국영국이 주장한 침공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 이라크는 과거 대량 살상 무기의 보유를 밝힌바 있고, 여전히 그 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 세계의 안보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국내에서 쿠르드인을 탄압하는 등 많은 압정을 실시하고 있다.
  • 거듭되는 유엔 사찰의 방해 때문에, 대량 살상 무기의 폐기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 거듭되는 사찰 방해 때문에, 걸프 전쟁의 정전 결의인 유엔 안보리 결의 687이 찢어지고 있다.
  • 유엔 안보리 결의 1154와 "앞으로의 어떠한 안보리 결의 위반도, 이라크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결과를 부른다."고 하는, 걸프 전쟁 정전 협정(위의 687) 파기 조건의 결의, 즉 마지막 경고 결의가 진행 중이었다.

대체로 위와 같은 까닭으로 이라크를 중동의 위협이라고 단정하고, 이라크의 무장 해제를 목적으로 한 무력행사라고 주장하여, 이라크를 침공했다. 프랑스, 덴마크, 독일, 뉴질랜드, 러시아, 스페인 등은 전쟁을 시작한다면 1441 이외로 새로운 안보리 결의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미국영국 및 동맹국은 그러한 필요가 없음을 밝히고 위의 까닭에만 기초를 두어 전쟁을 단행했다.

또, 미국과 영국 측이 승전을 선포한 뒤의 2004년 10월, 미국이 파견한 조사단이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지막 보고를 제출하였다. 전쟁을 시작한 근거가 된 대량 살상 무기의 정보의 신빙성도 희박한 것이었던 것이 밝혀져 이 전쟁의 정당성이 크게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여러 나라의 반응 [편집]

이로 인해 바그다드 군사기지의 80%파괴되었다.

  • 아르헨티나에서는 자국 내에 위치한 맥도날드 등 미국인의 업체에 테러를 가하는 등의 강경한 폭력 반미시위가 벌어졌다.

침공 결과 [편집]

미군에 의해 교육, 훈련, 창설된 이라크 제6군(2009)

징병제로 100여만 명이 넘는 이라크군은 수적 우세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했으며 패배 이유중에서는 이라크병사들의 군기는 엉망인 것이 큰 이유였다. 2006년 결국 후세인의 두 아들인 우다이 후세인쿠사이 후세인열화우라늄탄에 맞아 숨을 거두고[2] 이후 후세인은 미군의 체포로 인하여 종전되었다. 미군은 후세인 독재세력의 지지기반을 와해시킴으로써 그동안 유지되던 이라크 내 치안이 와해되었으며 이로 인해 보복살해 등 종파분쟁이 발생하고 치안부재로 인한 무장세력의 형성과 이들의 저항으로 미군 수천 명이 전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뒤늦게 부족한 지상군을 증원하고 이라크 경찰과 군을 재건하여 미군 전사자 수가 크게 줄고 안정을 되찾아 갔으나 미군이 철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7년이 지난 2010년 8월 20일. 모든 전투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 2011년 12월 15일 미국에서 공식으로 종전을 선언하였으며 같은해 12월 18일 미군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더 보기 [편집]

주석 [편집]

  1. '2011년 철수국과 2003년 철수국'의 문단은 위키백과 영어판을 참조하였다.
  2. Udai and Qusay Post Morte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