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 임기 | 2001년 1월 20일 - 2009년 1월 20일 |
|---|---|
| 부통령 | 딕 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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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빌 클린턴(제42대)
후임: 버락 오바마(제4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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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46년 7월 6일 (65세) |
| 출생지 | 코네티컷 주 뉴헤이번 |
| 정당 | 공화당 |
| 종교 | 개신교 (연합감리교) |
| 배우자 | 로라 부시 |
| 자녀 | 바버라 피어스 부시, 제나 웰치 부시 |
| 서명 | |
| 조지 워커 부시 | |
|---|---|
| 1946년 ~ | |
| 복무 | |
| 최종 계급 | 중위 |
조지 워커 부시(George Walker Bush 듣기 , 문화어: 죠지 부쉬, 1946년 7월 6일 - )는 미국의 정치인이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 당선되어 2001년부터 제43대 대통령으로 재직했으며, 2004년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어, 2009년 1월 20일까지 재임하였다. 그는 네오콘으로 집권기간 중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해 이라크 전쟁등의 전쟁을 일으키고,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의 책임으로 수없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89년 ~ 1993년 제41대 대통령으로 재직한 조지 H. W. 부시의 장남으로,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전직 대통령의 아들로 재선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영광을 누리게 된 인물이기도 하다.
목차 |
[편집] 초기 생애
조지 워커(W.) 부시는 코네티컷 주 뉴헤이번에서 아버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와 어머니 바버라 부시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미국에서 여러 대 째 이어오는 부유한 명문 집안이며, 조부 프레스컷 부시는 유명한 기업가 출신으로 후에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다.
그의 출생 당시 부친 조지 H. W. 부시는 뉴헤이번에 있는 예일 대학교에 재학중이었다. 학업을 마치자마자 부친은 곧바로 석유 사업을 위해 텍사스 주 미들랜드로 가족을 데리고 이주하여, 조지는 미들랜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휴스턴의 명문 사립 학교를 다녔으며, 그 후 집안 대대로 다니던 매사추세츠 주의 유서 깊은 사립 고등학교인 필립스 앤도버 학교를 거쳐 예일 대학교에 입학, 역사학을 전공했다. 1968년 예일 대학교를 졸업한 후 텍사스 주방위군에 장교의 신분으로 입대하여 중위로 퇴역했다. 당시 베트남 전쟁의 상황에서 후에 그는 연방 하원의원으로 재직하던 부친의 후광으로 주방위군에 입대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출처 필요]
군복무와 함께 텍사스 대학교 법학 대학원에 지원했으나, 낙방했으며, 1973년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입학하여 경영학 석사학위 (MBA)를 취득했다. 이 기간 중 그는 이전부터 즐기던 술에 더욱 빠져들어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기도 했으며, 1976년에는 음주운전으로 벌금 150달러를 물고 운전면허를 일시 정지당하기도 했다.[1] 술은 결혼 후 줄이기 시작했으며, 1986년 40세 생일 이후로는 완전히 끊었다.
1977년 미들랜드 출신의 도서관 사서인 로라 웰치를 만나 결혼했다. 조지는 결혼과 함께 집안에서 믿던 성공회에서 부인을 따라 감리교로 개종했다. 부부는 1981년 쌍둥이 딸 제나와 바버라를 낳았다.
[편집] 정치 및 사회 활동
[편집] 초기 경력
결혼 후 미들랜드에 정착하여 석유 사업에 관계하는 동시에 조부와 부친의 뒤를 이어 정계 진출을 시도하였다. 1978년, 텍사스 주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구의 연방하원 선거에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하원 진출에 실패한 후, 석유 회사를 설립하고 다른 석유회사를 합병하는 등 적극적인 사업 활동을 했으나, 석유값 하락으로 그다지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러나 1986년 합병 후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스펙트럼 7 석유 회사를 상당한 이익을 남기고 매각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 후 워싱턴으로 옮겨, 198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부친의 선거운동 본부에서 일하며 정치를 익혔다. 부친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는 텍사스 주로 돌아가 동업자들과 함께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MLB) 구단인 텍사스 레인저스을 매입했다. 대통령의 아들로 그는 팬들과 함께 자주 경기를 관전하며 텍사스 주민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인기를 얻었다.[2]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부친의 선거 운동을 다시 도왔으나, 부친은 재선에 실패했다.
[편집] 텍사스 주지사
젊어서 그는 마약을 복용하여 아버지 조지 H. W. 부시를 입장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3][4]주지사 재직 중 그는 대통령 출마를 결심한다. 그러나 주지사 재직 중이자 예비후보로 거론되던 2000년 마약복용 경력 등이 터져나왔으나[3][4] 그는 무난히 대통령 후보자로 추천되었다.
8월에는 주지사로 사형집행을 주관하였다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5] 사형수 중에는 IQ 100미만인 사형수도 있어 미국 변호사협회와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국가들은 그에게 사형을 집행하지 말 것을 권유하였지만 집행했던 것이며, 이를 두고 사형폐지 관련단체들은 그가 주장하는 온정주의적 보수주의는 허구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5]
[편집] 대통령 선거
[편집] 2000년 대통령 선거
2000년 11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당의 후보이자 현직 부통령이던 앨 고어와 맞대결을 펼쳤다. 투표 결과 선거인단수에서는 271대266으로 아슬아슬하게 이겼지만, 정작 득표는 약 50만표 정도 뒤졌다. 그런데 선거인단수가 매우 많으면서도 정치적 성향이 분명하지 않은 플로리다주에서의 개표 결과로 인해 당선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
이 곳에서 부재자 투표까지 합해서 불과 2700여표차로 승패가 갈렸는데, 어느 지역에서는 투표용지를 고의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어 고어와 다른 군소 후보를 혼동하게 만들고, 또 어느 지역에서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흑인들의 투표를 방해했다는 지적까지 잇따라 터져나왔다. 이에 민주당과 고어 후보의 이의제기로 일부 지역에 대한 수작업 개표가 실시되어 400여표차까지 줄어들었고, 또한 다른 지역에 대해서도 수작업 개표를 계속할 경우에는 개표 결과가 뒤바뀌어 선거인단수에서 고어에게 패배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세계 최대 민주 선진국인 미국에서 나오는 비민주적인 선거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으나 당시 집권층이었던 공화당원들에 의해 묵살되었다.
그러나 2000년 12월 연방대법원에서 공화당 성향 판사들의 주도로 재검표 중지 판결이 내려졌고, 우여곡절 끝에 사상 2번째 부자(父子)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었다.
[편집] 2004년 대통령 선거
[편집] 대통령직 활동
[편집] 집권 1기
[편집] 리크게이트 사건
이 부분의 본문은 리크게이트 사건입니다.
[편집] 집권 2기
[편집] 신발 투척 사건
2008년 12월 13일 밤에 극비리에 기자 13명과 함께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타고 이라크 방문에 나섰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가죽 점퍼에 '43'이라고 적힌 야구모자를 눌러 쓰고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들어갔다. '43'은 그가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임을 의미한다. [6] 2008년 12월 14일에는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에서 이라크의 총리인 누리 알말리키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던 중 이라크 텔레비전 방송국인 알바그다디아의 기자인 문타다르 알자이디가 조지 W. 부시에게 신발을 투척하였다. [6] 그는 신발을 던질 때 부시에게 “이것은 이라크 국민의 작별 인사다, 이 개야”[7]라고 하고 다른 한 쪽 신발을 던지면서 "과부들과 고아, 이라크에서 살해된 이들이 던지는 것" 라고 말해[6] 감옥에 수감되었다. 아랍 문화에서 사람을 '개'로 욕하며 신발을 던지는 것은 최대의 모욕이다. [6] 그 후 부시는 "기자 여러분에게 그 사람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는 것은 신발 사이즈가 10[8]이라는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 후 문타다르 알자이디는 아랍권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어떤 사우디아라비아의 신문은 한 사우디 사람이 자이디 기자가 던진 검은색 구두 한 켤레를 1000만 달러에 사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9] 리비아의 지도자인 무아마르 알카다피의 딸은 알자이디 기자에게 용기를 치하하는 메달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9]
[편집] 경제
[편집] 2008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이 부분의 본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입니다.
일각에서는 이 사태의 원인으로 부시행정부시절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지목하고있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전문가들간의 많은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편집] 외교정책
[편집] 테러 국가와의 관계
조지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이슬람무장항쟁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거나 추인하는 일부 서남아시아 국가들과의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2002년 국정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표현해 화제가 됐다. 2003년에는 ‘무법정권(Outlaw Regim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2004년에는 ‘가장 위험한 정권 (the most dangerous regime)’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10] 친이스라엘 경향을 띠고 있다. 서아시아전쟁 중 끊임없이 인질사태가 발생하고 미국내의 평화주의자들의 전쟁반대시위가 계속되었다.[11] 9·11 테러 이후 체포된 테러용의자들을 수감하기 위해 관타나모수용소를 세우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인권 논란이 일기도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정부를 오사마 빈 라덴 등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미군을 투입하여 붕괴시켰고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를 소지했다는 점을 들어 4년간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수없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뒤 2006년 12월에는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을 처형하고 이라크에 과도정부를 수립했으나 정치적 이견으로 이라크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편집] 아프가니스탄
[편집] 이라크
[편집] 이란
[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2007년 2월 13일 북핵시설 불능화 및 중유 100만t 상당 에너지 경제 지원 골자로 한 ‘2·13합의’ 타결
- 2007년 10월 3일 핵불능화 및 핵신고 연내 완료를 골자로 한 ‘10·3합의’ 타결 [12]
- 2008년 6월 27일 냉각탑 폭파 [13]
- 2008년 10월 11일 테러지원국 해제 [14]
[편집] 기타
[편집] 인도
2006년 인도는 핵개발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부시는 2006년 3월 2일 인도를 방문, 뉴델리에서 인도의 국무총리 만모한 싱과의 뉴델리 정상회담에서 핵협력 협정을 타결함으로써 인도의 핵개발 의혹을 추궁하기 보다는 경제와 외교 등의 측면에서 협력을 체결했다.[15] 부시 대통령는 그날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인도와 미국은 공통의 가치에 기반을 둔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했다'고 주장하였다.[15] 그러나 인도의 핵개발을 사실상 추인해주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15]
인도 총리와의 최종 합의내용에 의하면 '인도는 핵시설을 군사용과 민간용으로 구분하고, 미국으로부터 핵연료와 기술을 공급받는다.', '군사용 원자로는 여전히 감시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15] 인도는 2006년 당시 가동 중인 15개의 원자로와 2009년까지 건설예정인 7개의 원자로 중 12개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대상인 민간용으로 분류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핵확산금지조약(NPT) 미가입국인 인도는 현재 4개의 원자로와 건설 중인 2개의 원자로에 대해서만 IAEA의 감시를 받고 있다.[15] '군사용 원자로는 여전히 감시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인도총리와의 회담에서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한 고속증식로를 군사용이나 민간용 중 어느용도로 분류할지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언급도 없었다. 부시는 인도 전체의 65%에 달하는 원자로가 사찰대상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지만 구체적 언급이 없어 인도에 핵무기 개발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15] BBC방송은 부시의 회담 에 대해 "미국 정부가 NPT와 같은 국제조약을 다른 국가에는 그토록 강요하려고 애쓰면서도 정작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편의상 무시하는 모습을 또다시 보였다"고 비판하였다.[15] 한편 미국은 이란 핵문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를 요구하고 있으며 파키스탄에서 주장하는 '인도와 동등한 핵협정 체결을 요구'는 거절한 바 있다.[15]
[편집] 대한민국
부시가 연임하면서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7년 동안 엇박자를 내었다. 부시는 첫 방한때 MD문제로 김대중 정부와 마찰을 빚었고, 2002년 말에는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으로 한국내에서 반미감정이 고조되었다. 결국에 미 대통령 중 처음으로 한국인에게 사과를 하였지만, 반미감정은 대선이 지난 뒤인 2003년 초까지 계속되었다. 또한 한국정부의 햇볕정책과는 다른 대북압박정책으로 2005년 경주에서 APEC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 동결문제로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한미FTA가 타결되고,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해 "한국은 전시 작전권을 행사할 능력이 있고, 한국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지원해 주라"고 국방장관과 주한 미군사령관 지시하면서 호의적반응을 보이면서 환수합의가 성사되었다.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부시정권에게 좀더 우호적이었으나, 2008년 대한민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으로 또 다시 한국내의 부시대통령에 대한 반미감정은 더해갔다.
[편집] 비판
부시의 반대자들은 부시를 '자신의 폭탄부대를 출발시키기 전에, 2천 년 전 고문 속에 죽어간 한 지역의 설교가(예수)를 꼭 언급하는 미국의 대통령'이라고 비판한다. [16] 본래의 기독교는 평화주의와 비폭력주의가 핵심이지만(마태 26,52, 에페 2,14 등), 부시의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등은 기독교 정신과는 정반대라는 이유에서이다. 부시정부의 서아시아전쟁을 석유전쟁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편집] 할리우드
부시 대통령은 할리우드에서는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2005년에는 '화씨 9/11'을 통해 뜻하지 않게 매년 최악의 배우를 선정하는 '골든라즈베리상'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07년 11월 14일 미국의 인터넷 영화사이트 필름 스렛(Film Threat)이 발표한 '썰렁한 50인: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없는 사람들' 순위에서 '배우'가 아닌 부시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다. 순위 선정에 참여한 필름 스레트의 편집자들은 "부시 대통령은 배우가 아님에도 불구, '트랜스포머', '아메리칸 드림즈', '투모로우' 등의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패러디의 대상이 돼왔으며 '식코' '끝이 안 보인다' 등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집중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17] [18]
칸 영화제에서 화씨 9/11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미국측에서는 정치적 동기를 의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19] 디즈니사에서는 부시 비판 영화 배급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20]
[편집] 말실수
부시의 말실수들을 부시즘이라고도 하며, 책으로도 출판된 적이 있었다.
[편집] 패권주의 논란
부시는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하였고, 결국 세계적으로 힘으로 밀어부친다는 패권주의자로 낙인이 찍혀 미국의 대외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다. 또한 대한민국,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등 세계의 반미 정서가 더욱 심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과감한 외교압박정책과 신자유주의적인 FTA정책등을 추진해 이처럼 세계각국에 반미감정을 고조시켰고, 신제국주의자라고 비판받고있다.
[편집] 여론조사
미국 CNN방송이 오피니언 리서치사와 함께 벌인 여론조사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해서는 72%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고, 32%만이 이라크 전쟁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21]
[편집] 기타
1985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권유로 기독교 신앙에 귀의하게 되었다.[22] 이후 그는 매일 아침 성경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22] 2000년 미국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나는 교회를 사랑하고 찬송하는 것을 좋아하며 매일 기도한다"고 답하기도 했다.[22]
[편집] 퇴임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단순한 여행 목적으로 2009년 7월 31일 '전국경제인연합회 2009 제주 하계포럼' 참석을 위해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8월 3일에는 대한민국의 안동을 방문하였다. 방한 기간 동안 이명박 대통령과 회동을 갖고 재계인사 등을 만나는 등 미국과 한국 사이의 우호관계를 드러내기도했다. 그는 "퇴임 이후 행보는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 구현에 맞추고자 한다"며 "이를 위해 '부시 기념 도서관'과 '정책연구소'를 설립 중에 있다"면서 "전 세계 독재국가와 민주주의가 핍박받고 있는 나라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인사들의 글과 자료도 전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청계재단 설립 소식을 접하고는 "이명박 대통령이 전 재산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단한 일"이라고 평했다. [23]
[편집] 가족
- 아버지 : 조지 H. W. 부시, 41대 미국 대통령
- 어머니 : 바버라 부시
- 처 : 로라 부시
- 딸 : 바버라 피어스 부시
- 딸 : 제나 웰치 부시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 ↑ 美대선 이모저모 부시, 음주운전 드러나 곤경 매일경제 2000-11-03
- ↑ (영어) George W. Bush in Little League uniform Texas State Library and Archives Commission
- ↑ 가 나 자식문제로 가슴앓이하는 유력인사들 한국일보 2000년 07월 07일자
- ↑ 가 나 유력인사들 '무자식이 상팔자?'
- ↑ 가 나 미 대선 사형 논란 증폭…시민단체 부시 맹비난 :: 네이버 뉴스
- ↑ 가 나 다 라 2008년 12월 16일, “이라크 간 부시에 날아든 신발 2짝”, 《조선닷컴》. 2009년 2월 3일 확인.
- ↑ “부시의 ‘이라크 신발 소동’ 동영상 화제”, 《고뉴스》, 2008년 12월 17일 작성. 2009년 2월 3일 확인.
- ↑ 여기서 말하는 것은 10인치이다. (약 25.4㎝)
- ↑ 가 나 ““부시에게 던진 신발 1000만 달러에 사겠다”… 메달 수여도”, 《조선닷컴》, 2008년 12월 16일 작성. 2009년 2월 3일 확인.
- ↑ 표현 유연-숨겨진 비수, 北압박 강화된다
- ↑ 공화당 전대 주변, 평화주의자 반전시위 '봇물'탈레반 인질 납치극 아직도 ‘현재 진행형’
- ↑ “부시와 협상종결 수순” vs “美 압박전술”
- ↑ 지금 북한 영변 핵시설에선 무슨 일이…
- ↑ 북한 핵실험 우려로 테러 해제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인도 핵무기개발 면죄부 준 꼴" 한국일보 2006년 3월 3일자
- ↑ Der Spiegel 2007년 5월 22일자,'무신론자들의 십자군운동(Der Kreuzzug der Gottlosen)'
- ↑ 부시 대통령, 할리우드서 '찬밥신세' 1위?
- ↑ 투모로우 흥행성공에 부시 긴장
- ↑ 화씨 9·11 논란 확산
- ↑ 디즈니사, 부시 비판 영화 배급 금지
- ↑ 미국인 75%, 미국에 '못마땅'
- ↑ 가 나 다 미 대통령 당선자 부시의 신앙 내력 :: 네이버 뉴스
- ↑ 부시 "원더풀! 하회탈춤, 세계적 문화유산 될 것", 美 전직 대통령 '클린턴'은 北으로, '부시'는 南으로
[편집] 바깥 고리
|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
- (영어) 공식 백악관 웹사이트
- (영어) 공식 백악관 전기
- 조지 W. 부시 美차기대통령 라이프 스토리, 《신동아》, 2001.1.
| 전 임 빌 클린턴 |
2001년 1월 20일 ~ 2009년 1월 20일 | 후 임 버락 오바마 |
| 조지 워싱턴 · 존 애덤스 · 토머스 제퍼슨 · 제임스 매디슨 · 제임스 먼로 · 존 퀸시 애덤스 · 앤드루 잭슨 · 마틴 밴 뷰런 · 윌리엄 헨리 해리슨 · 존 타일러 · 제임스 K. 포크 · 재커리 테일러 · 밀러드 필모어 · 프랭클린 피어스 · 제임스 뷰캐넌 · 에이브러햄 링컨 · 앤드루 존슨 · 율리시스 S. 그랜트 · 러더퍼드 B. 헤이스 · 제임스 A. 가필드 · 체스터 A. 아서 · 그로버 클리블랜드 · 벤저민 해리슨 · 그로버 클리블랜드 · 윌리엄 매킨리 · 시어도어 루스벨트 ·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 우드로 윌슨 · 워런 G. 하딩 · 캘빈 쿨리지 · 허버트 후버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해리 S. 트루먼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존 F. 케네디 · 린든 B. 존슨 · 리처드 닉슨 · 제럴드 포드 · 지미 카터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H. W. 부시 · 빌 클린턴 · 조지 W. 부시 · 버락 오바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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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선정 올해의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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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7년 ~ 195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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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 197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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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 ~ 2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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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 현재 | |
| 전 임 자크 시라크 |
G8 의장 2004년 |
후 임 토니 블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