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에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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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디슨

토머스 앨바 에디슨(Thomas Alva Edison,1847년 2월 11일 ~ 1931년 10월 18일)은 미국발명가사업가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남긴 사람으로 1,093개의 미국 특허가 에디슨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1]

[편집] 생애

에디슨의 출생지

미국 오하이오 주 밀란에서 7번째로 출생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사무엘은 지붕 판자를 만드는 공장 사장이었다. 일곱살때 이사간 미시간 주, 포트 휴런에서 성장하였다. 에디슨은 어린시절에 듣는 문제가 있었다. 귀먹음의 원인은 성홍열 발병의 탓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에디슨이 학교 교육을 받은 것은 초등학교 3개월 뿐이었는데, 이는 일체의 의문을 허용하지 않는, 그래서 학생들의 논리적인 사고를 말살해버리는 교육방법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그러나 처녀시절 교사로 일한 어머니가 직접 집에서 아들을 가르치는 열성을 보인 덕분에 에디슨은 점차 과학자로서의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데, 열살 때는 지하실에 화학실험실을 만들었다. 에디슨의 가족이 밀란에서 포드 휴런으로 이사를 간 뒤, 에디슨은 포트 휴론에서 디트로이트까지 달리는 기차에서 과자와 신문을 팔았었다. 12세 때 철도의 신문팔이 일을 하는 한편, 화학 실험을 시작하였다. 후에 인쇄기를 사서 열차에 싣고 다니며 신문을 발행하였다. 15세 때 3살 연상의 역장 아들 지미 맥켄지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전신 기사가 되었다. 지미의 아버지, 마운트 클레멘스의 역장 J.U 맥켄지는 너무 고맙게 여겨서 에디슨을 전신기사로서 훈련시켰다. 1866년 19살 때 토마스 에디슨은 웨스턴 유니온의 직원로서 AP 통신사 전선을 작업했던 곳인 켄터키 주, 루이빌로 이사를 갔다.

1876년 멜론파크에 연구소를 세워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의 발명은 굉장히 많아서 특허의 수효만도 1,300여 개나 된다.[출처 필요] 1874년 자동 발신기, 1877년 축음기, 1879년 전화 송신기, 1880년 신식 발전기와 전등 부속품, 1881년 전차의 실험, 1882년 발전소 건설, 1888년 영화, 1895년 광물을 가려내는 법, 1900년 시멘트 공업의 개량, 1909년 엔진형 축전지 등이 있다.

'에디슨 효과'의 발견은 3극 진공관 발명의 기초가 되어 라디오 발명의 길을 열어 준 과학상의 중요한 발견이다. 에디슨이 한 명언 중 잘못 알려진 것이 바로 "천재라는 것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다"라는 명언이다. 이 명언은 현재 대부분 '노력이 영감보다 중요하다'라는 뜻으로 한 명언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영감이 없으면 노력을 한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편집] 각주

  1. Edison's Patents (영어) (htm). 《Rutgers》 (2009년 3월 23일). 2009년 4월 22일에 확인.

[편집] 바깥 고리 및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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