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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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기록
Muhammad Ali NYWTS.jpg
무하마드 알리
미국 미국의 선수
남자 권투
올림픽
1960 로마 라이트헤비급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1942년 1월 17일 ~ )는 미국의 전직 권투 선수다.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태어났으며, 1964년 맬컴 엑스 등이 이끄는 이슬람운동에 가담하기 전까지 이름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Cassius Marcellus Clay, Jr.)였다. 알리는 1975년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목차

[편집] 경력

키 191cm, 팔길이 200cm. 아마추어 복서로서 복싱을 시작해,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땄다. 프로복서로 전향한 뒤에도 패배 전적이 없는 경기로 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했고, 그후 3차례에 걸쳐 타이틀 획득을 하여 통산 19차례 방어에 성공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64년 2월 25일 소니 리스턴과 대결에 앞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호언장담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베트남 전쟁당시 징집영장이 발부되자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는 말을 남기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했고, 인종차별 반대투쟁인 흑인 민권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기도 했다. 소니 리스턴과 두 차례 대결에서 KO승으로 확실한 헤비급 챔피언으로의 발판을 다졌으며, 그 이후로 플로이드 패터슨,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켄 노턴 등과 승부를 겨뤘다. 무하마드 알리는 1999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와 BBC가 선정한 세기의 스포츠맨으로 선정되었으며, 복싱 역사상 위대한 챔피언 중 한 명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그의 프로복싱 통산전적은 56승(37KO)5패이다. 1980년대 초부터 파킨슨병을 앓기 시작해 현재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이며, 딸 라일라 알리도 권투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 약력

  • 1960년 :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 같은해 10월 29일에 프로 데뷔.
  • 1962년 11월 15일 : 전 세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아치 무어와 대결. 경기 전에 대기실 칠판에 "무어를 4회에 KO시킨다"고 쓴 뒤 링 위에 올라갔고, 그 예언대로 4회 KO승을 거둠. 경기 전에 KO 라운드를 예고하는 `떠벌이 클레이' 전설이 시작됨.
  • 1964년 2월 25일 :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비치 컨벤션홀에서 열린 세계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소니 리스턴을 7회 TKO로 물리치고 챔피언이 됨. 링지 선정 `1964년 올해의 대결'로 선정. 이 경기후 이름을 무하마드 X와 무하마드 알리로 바꿈. 이후 9차례 방어.
  • 1966년 8월 6일 : 브라이언 런던을 3회 KO시킴.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 카메라로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속 펀치를 퍼부으면서도 모든 펀치가 클린 힛트여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 1967년 : 양심적 병역거부 때문에 헤비급 타이틀을 빼앗김. 프로복서 라이센스도 박탈당해 3년간 복서 기간의 공백이 생김.
  • 1970년 10월 26일 : 세계 헤비급 1위 제리 쿼리와 3년만의 경기에서 3회 TKO승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
  • 1971년 3월 8일 : 조 프레이저가 갖고 있던 WBC, WBA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했다가 15회 레프트 훅을 얻어맞은 끝에 판정패. 생애 첫 패배.
  • 1972년 4월 1일 : 일본 도쿄에서 열린 마크 포스터와 대결에서 15회 판정승.
  • 1973년 3월 31일 : 켄 노턴에게 판정패로 생애 두 번째 패배.
  • 1973년 9월 10일 : 켄 노턴에게 판정승하며 설욕.
  • 1974년 10월 30일 : 자이르 킨샤사에서 벌어진 WBC, WBA 헤비급 타이틀전(럼블 인 더 정글)에서 조지 포먼을 8회 KO로 물리치고 챔피언 등극(킨샤사의 기적). 이후 10차 방어 성공.
  • 1975년 3월 24일 : 무명의 척 웨프너와 1차 방어전에서 15회 KO승을 거두긴 했지만 경기 도중 다운을 당하기도 함. 이 경기를 본 실베스터 스탤론이 무명의 복서가 무적의 챔피언에 도전해 선전하는 스토리를 구상했고, 이는 후일 영화 록키의 시나리오가 된다.
  • 1975년 10월 1일 :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타이틀 방어전에서 조 프레이저에 14회 TKO승.(드릴러 인 더 마닐라)
  • 1976년 6월 26일 : 일본 무도관에서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 격투기 대결을 벌였지만 결과는 무승부로 끝남.
  • 1978년 2월 15일 : 리언 스핑크스에 판정패해 타이틀 상실. 그후 스핑크스는 지명 도전자였던 켄 노턴 대신 알리와 재대결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세계복싱평의회(WBC)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세계복싱협회(WBA) 타이틀만 보유하게 됨. WBC 타이틀은 켄 노턴에게 돌아감.
  • 1978년 9월 15일 : 리언 스핑크스에게 판정승해 WBA 타이틀을 되찾으며 3번째 타이틀 획득에 성공.
  • 1979년 9월 6일 : 알리 은퇴 선언. 타이틀 반납.
  • 1980년 10월 2일 : 링 컴백. 과거 스파링 파트너였던 래리 홈즈가 갖고 있던 WBC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10회 TKO패.
  • 1981년 12월 11일 : 트레버 버빅에 10회 판정패한 뒤 현역 은퇴.
  • 1996년 7월 19일 : 애틀랜타 올림픽 개회식에서 최종 성화 점화자로 등장. 금메달을 다시 받음.
  • 2003년 : 메이저리그(MLB) 올스타전에서 시구.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냄.
  • 2005년 11월 9일 : 미국 백악관에서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훈장인 자유훈장을 받음.

[편집] 복싱 스타일

알리는 자신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고 묘사한 복싱 스타일로 유명하다.

[편집] 명언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한 영광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지 않겠다"

"베트콩은 나를 흑인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내가 왜 베트남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가?"

"나는 복싱보다 위대하다"

"내가 링에 오르기 전에 시끄럽게 떠벌리는 것은 미지의 상대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었다"

"나는 훈련하는 모든 시간이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말했다. 포기하지말라, 지금은 고통이지만 남은 나의 일생을 챔피언으로서 살것이다,"

"상상력이 없는자는 날개도없다"

"위험을 무릎 쓸 용기가 없으면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나는 세상을 놀라게 할 것 이다"

[편집] 관련 영화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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