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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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내전
내전에 의해 파괴된 베이루트 (1978 년)
내전에 의해 파괴된 베이루트 (1978 년)
날짜 1975 년 - 1977 년

1977 년 - 1982 년
1982 년 - 1983 년
1984 년 - 1990 년

장소 레바논
결과 테러 증가와 국토의 황폐화
교전국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이란 이란
레바논 LNM
레바논 자몰
헤즈볼라

국제 연합 국제 연합

미국 미국
시리아 시리아
프랑스 프랑스
아랍 연맹 아랍 제지군

레바논 LF

이스라엘 이스라엘



레바논 내전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레바논에서 일어난 내전이다. 15만에서 23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인구의 1/4인 백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35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배경[편집]

역사적 배경[편집]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주변 아랍국가가 독립하면서, 역사적으로 크리스트교도가 많았던 레바논은 중동에서 몇 안되는 크리스트교도 중심 국가가 되었다. 원래 레바논의 영역은 ‘작은 레바논’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오스만 제국 시대에 이 땅을 지배했던 들뢰즈파의 영주 파할 앗딘의 지배 영역을 근거로 한 것이다. 오랫동안 이 지역이 ‘진정한 레바논’이라고 여겨졌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사실상의 종주국이 된 프랑스는 원래의 레바논 영역(작은 레바논)을 넘어 ‘큰 레바논’이라고 불리는, 원래의 시리아 영역으로 여겨진 베커 고원, 레바논 북부와 트리폴리시, 레바논 남부를 포함하여 국경선을 획정한다. 이것은 마론파를 포함한 레바논 독립운동을 저지하려는 프랑스의 분단 정책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레바논 내전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사건이 되었다.

종교적 배경[편집]

레바논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레바논의 인구구성 중 51%를 차지했던 크리스트교 마론파와 그 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는 수니파 이슬람교도간 연합으로 성립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크리스트교 세력의 우위를 보장하기 위해 대통령은 항상 마론파에서 선출되며, 레바논의 아랍적이고 이슬람적인 성향을 보장하기 위해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에서 선출되어야 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1970년대 이슬람교도가 급증하면서 크리스트교도는 3분 1을 조금 넘는 구성 비율로 바뀌었다. 그러자 이슬람교도는 총리의 권한 강화 등 보다 강력한 권한을 요구하였다. 이에 마론파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민병대를 조직하여 이슬람에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크리스트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갈등은 1970년대 고조되어 극렬한 내전으로 치닫게 되었다.[1]

시리아의 개입[편집]

주석[편집]

  1. 김성례 <레바논 내전에 관한 연구 : 종파간의 갈등을 중심으로>(조선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