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몬테네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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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비야 츠르나고라 연합
Државна заједница Србија и Црна Гора

2003년 ~ 2006년
 

국기 세르비아의 국장
국기 국장
표어: (없음)
국가: 슬라브족이여 (Хеј Словени)
세르비아의 위치
수도 베오그라드, 포드고리차
북위 44° 48′ 동경 20° 28′  / 북위 44.800° 동경 20.467° / 44.800; 20.467
공용어 세르보크로아트어
정부 형태 공화정
스베토자르 마로비치 (2003~2006)
정부수립
 • 성립
• 해체

2003년 2월 4일
2006년 6월 5일
면적
 •
 • 내수면 비율
 
102,350 km² (105위)
0%
인구
 • 2006년 어림
 • 인구 밀도
 
10,832,545명 (75위)
105.8명/km²
통화 유고슬라비아 신 디나르1
1당시 몬테네그로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독일 마르크를 자국 화폐로 사용하였고, 2002년 이후부터 유로(€)를 통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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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가 연합(Државна заједница Србија и ЦрнаГора / Državna zajednica Srbija i CrnaGora 드르자브나 자예드니차 스르비야 이 츠르나고라, 약칭은 'СЦГ / SCG' 문화어: 쎄르비야 쯔르나고라)은 2003년 2월 4일부터 2006년 6월 5일까지 존재한 유럽의 옛 나라이다. 2006년 6월 5일,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편집]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설립 전의 역사[편집]

세르비아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는 합심(合心)하여 1920년에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세웠다. 이 왕국은 1929년부터 유고슬라비아 왕국이라 부르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라는 말은 현지어로 "남쪽 슬라브 민족의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41년 4월 어느 날, 나치 독일파시즘의 통치 아래에 놓여 있는 이탈리아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이 땅에 여러 개의 괴뢰 정부가 세워졌다. 특히, 크로아티아 독립국(크로아티아어: Nezavisna Država Hrvatska)은 아돌프 히틀러베니토 무솔리니의 정책에 무조건 복종만 했으므로 유대인을 많이 학살했다.

유고슬라비아는 소련군의 지원 아래 1943년 11월 29일에 영토를 수복하여 연방을 세웠다. 이 국가는 1963년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세르비아어: Социјалистичка Федеративна Република Југославија / Socijalistička federativna republika Jugoslavija, 약칭은 СФРЈ / SFRJ)으로 국호를 바꾸었다(대한민국에서는 '구 유고 연방'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연방은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통치 기간 동안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티토는 민족 간의 대립을 잠재우고 국내 정세의 안정을 꾀하는 동시에 가말 압델 나세르(이집트)와 자와할랄 네루(인도)와 함께 비동맹주의를 주장해 미소 양국 사이의 권력 균형을 잡는 데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티토가 죽은 1980년 이후 유고슬라비아의 정세는 점차 불안해졌고, 구성 공화국들과 코소보 자치주에서는 자민족 중심주의를 내세워 독립을 꾀하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개혁과 개방 열풍 속에 구성 공화국들의 독립 요구는 더욱 거세어져 민족 분규로 확대되었다. 1991년1992년 사이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마케도니아 4개국이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슬로베니아는 주민의 대부분이 슬로베니아인인 데다가 북쪽 끝에 떨어져 있어 연방군은 독립 선언 10일 만에 전투를 중단, 사실상 슬로베니아의 독립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는 복잡한 민족 문제로 독립 전쟁은 대규모로 확대되었다. 전쟁에도 국제 사회는 유고슬라비아 구성 공화국들의 독립을 차츰 인정하기 시작, 1991년 후반에는 많은 나라에서 이들 국가의 독립을 승인했고,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1992년 5월 22일 정식으로 국제 연합(UN)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는 별다른 분쟁 없이 독립했으나, 그리스와의 명칭 분쟁으로 각국의 승인이 다소 늦어졌고, 1993년 뒤늦게 구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으로 UN에 가입했다. 또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는 복잡한 민족 문제로 내전은 큰 규모의 국제전으로 확대되다. 크로아티아에서는 크로아티아 내의 세르비아인과의 분쟁으로 여러 해 동안 전쟁이 이어졌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는 세르비아인·보스니아인·크로아티아인극심한 대립으로 숱한 전투와 민족간의 대량 학살이 있었다.

한편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두 구성 공화국이 잔류한 유고슬라비아는 공식 국호를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 바꾸고, 국기와 국장도 새로 변경했다(대한민국에서는 '신유고 연방' 이라고 통용된다). 그러나 주민의 대부분이 알바니아인 계통의 코소보인코소보 자치주에서 독립 요구가 거세지자 이들 주민을 대량 학살하는 등의 만행이 이어지자,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회원국들은 평화 유지군을 보내 내전의 규모가 계속 확대되었다.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내전에서 소수 민족의 학살에 관여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2000년 실각, 밀로셰비치의 독재 정치가 종식되었고, 후에 그는 체포되어 헤이그에서 전범 재판을 받은 뒤 수감되었으며, 2006년 3월 11일에 옥사했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출범과 분리[편집]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2003년 2월 4일, 국호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연방'으로 변경하고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자치권을 각각 확대하고 느슨한 형태의 연방으로 이행하기로 결정하였다. 다만, 국기와 국장, 국가는 그대로 존속시켰다. 3월 3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연방이 정식으로 출범, 70여 년 만에 유고슬라비아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새롭게 출범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대등한 지위의 국가 연합으로 구성된 것이었으나, 세르비아 쪽의 인구가 훨씬 많은 데다가 대부분의 실권은 세르비아 쪽에서 쥐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전부터 몬테네그로 내에서는 분리 독립 운동이 있었다. 몬테네그로 쪽의 분리 독립 요구가 더욱 거세어지면서, 몬테네그로의 분리 독립 국민투표 협상이 개시되었다. 결국 2006년 5월 21일 실시한 분리 독립 투표가 실시되어, 55.4%의 찬성률을 나타내어 몬테네그로의 독립이 확정되었다.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의 인구 수를 들먹여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그 동안 국내외에서 쏟아진 인권탄압의 비판 여론을 고려하여 무력 개입은 하지 않고 독립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6월 4일에 몬테네그로 의회에서 공식적인 독립 선언이 발표되었고, 이튿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연방' 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이로써 구 유고슬라비아를 구성했던 6개의 공화국이 모두 별개의 국가가 되었다. 독립한 몬테네그로는 여타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주민[편집]

1991년 조사에 따르면 세르비아인이 62.6%, 알바니아인이 16.5%, 몬테네그로인이 5%, 헝가리인이 3.3%, 기타가 12.6% 정도 존재했다.

언어[편집]

인구의 95%가 사용하는 세르비아어공용어의 지위를 누렸다. 그 외에는 알바니아어가 5% 존재하였다(특히, 코소보 지방에서 많이 존재한다).

종교[편집]

종교는 세르비아 정교회가 65%로 우위를 차지하였으며, 이슬람교가 19%로 그 다음 세력이었다. 가톨릭교가 4%, 개신교가 1%, 기타 11%가 존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