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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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귀한 산마리노 공화국
Serenissima Repubblica di San Marino
Flag of San Marino.svg Coat of arms of San Marino.svg
국기 국장
표어 Libertas (라틴어: 자유)
국가 산마리노 국가
San Marino on the globe (Europe centered).svg
수도 산마리노 북위 43° 56′ 00″ 동경 12° 26′ 00″ / 북위 43.933333° 동경 12.433333° / 43.933333; 12.433333
최대도시 세라발레 북위 43° 57′ 00″ 동경 12° 30′ 00″ / 북위 43.9500° 동경 12.5000° / 43.9500; 12.5000
정치
공용어 이탈리아어
정부 형태 단일 국가 의원 내각제 공화국
집정관 루카 베카리아
발레리아 차바타
역사
건국  
 • 건국 옛 전설에 따르면
301년 9월 3일
 • 정부 구성 1600년 10월 8일
지리
면적 61km² (190 위)
내수면 비율 0%
시간대 CET (UTC+1)
DST CEST (UTC+2)
인구
2005년 어림 28,117명 (212위)
인구 밀도 481명/km² (13위)
경제
GDP(PPP) 2001년 어림값
 • 전체 $9.04억 (195위)
 • 일인당 $34,600 (12위)
통화 유로 (EUR)
기타
ISO 3166-1 674, SM, SMR
도메인 .sm
국제 전화 +3781

1이탈리아와 통화 시에는 0549를 사용한다.

산마리노(San Marino, 문화어: 싼마리노)는 이탈리아 영토에 둘러싸인 독립국이다. 공식적인 명칭은 가장 고귀한 공화국 산마리노(이탈리아어: Serenissima Repubblica di San Marino)이다. 이 나라는 유럽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로, 1968년나우루(오세아니아)가 독립하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이었다.

산마리노는 외교권을 가지고 있으며, 1600년에 제정된 법을 기초로한 산마리노 헌법은 고대 로마 공화국의 전통을 이은 집정관이 이끄는 회의제 정부를 구성한다. 산마리노인은 자신들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역사[편집]

Monte titano.PNG

301년성 마리누스가 종교 박해를 피해 세운 나라라는 전설이 있다. 유고 지역의 달마티아 출신인 마리누스는 당시 로마 황제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서 신앙 공동체를 만들었고 그것이 나중에 발전하여 산마리노가 되었다고 한다. 산마리노에서는 매해 9월 3일을 공화국 설립 기념일로 경축하고 있다.

1503년 이탈리아의 전제군주 체사레 보르자에 의해 점령되기도 하였지만 1631년에 로마 교황의 인준을 받아 공식적으로 독립 국가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렇듯 여러 번 주변 국가에 의해 정복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독립을 유지해 1815년 빈 회의에서 독립 국가로 유럽 국가들의 승인을 받았다. 1862년에는 이탈리아와 관세동맹을 성립하고, 1897년에 우호조약을 맺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인 1915년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포고를 했으나, 산마리노는 중립을 지켰다.

1923년 이탈리아에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자 산마리노도 그 영향권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1922년 결성된 산마리노 파시스트당(PFS)은 1923년 4월에 첫 집정관(줄리아노 고치)을 내었고, 1926년부터 1943년까지 산마리노 파시스트당이 유일 합법정당이 되어 다른 정당의 활동은 일절 금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산마리노는 중립을 지켰다. 1943년 베니토 무솔리니가 실각하자 잠시 비(非)파시스트 정부가 들어섰으나, 독일군이 점령해 오자 산마리노 파시스트당은 1944년 1월 산마리노 공화국 파쇼라는 이름으로 부활하여 정권을 잡아, 같은 해 11월의 연합군 점령 때까지 계속되었다.

산마리노는 1992년국제연합에 가입하였다. 산마리노는 2002년부터 산마리노 리라를 사용하는 대신 유로화(貨)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유럽 연합 회원국은 아니다.

지리[편집]

북위 43도 46분, 동경 12도 25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61.2 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가지고 있는데, 서울의 약 10분의 1 정도의 크기이며, 유럽에서는 바티칸, 모나코 다음으로 작다.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이며 따뜻하고 햇볕이 좋아 좋은 와인과 치즈의 산지이다.

San Marino.png

여름 최고 기온이 섭씨 26도, 겨울 최저 기온이 섭씨 영하 7도이다. 국토는 산이 많으며 바다가 없는 내륙으로 티타노 산(해발 749미터)가 가장 높다. 영역의 가장 긴 폭은 13킬로미터 정도이며 산마리노 강이 나라를 가로지르고 있다. 전 국토가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 마르케 주에 둘러싸여 있다.

행정 구역[편집]

산마리노는 9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산마리노 시(市)이다. 산마리노 전체에는 44개의 마을이 있다.

정치[편집]

국가원수는 집정관 2인이 맡고 있으며 6개월마다 교체된다. 1243년에 처음 선출된 집정관은 고대 로마공화정 시대의 집정관 제도에서 유래하여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는데, 현대에서 유일하게 집정관이 국가원수로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입법기관은 산마리노 대평의회(이탈리아어: Consiglio grande e generale)이며, 정원(定員) 60명, 임기 5년이다.

교통[편집]

이탈리아와 연결된 철도는 없으나, 리미니에서 버스로 갈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모나코, 바티칸 시국과 같이 공항이 없고, 가장 가까운 공항은 16km 떨어진 리미니 공항이다.

인구[편집]

인구는 대부분 이탈리아계이며, 산마리노에 거주하는 외국인(주로 이탈리아인, 1천명)을 포함하면 3만 명 정도의 인구이다(2003년). 산마리노인 5천명이 외국에서 살고 있는데, 주로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언어는 이탈리아어공용어이며, 에밀리아-로마냐 방언이 널리 쓰인다.

종교[편집]

산마리노 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국민의 97%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나, 로마 가톨릭이 국교는 아니다. 유대교 같은 소수종교도 있는데, 이들이 산마리노에 정착한 역사는 600년이 넘는다.

문화[편집]

산마리노 축구 국가대표팀1986년에 처음 국제 무대에 데뷔하였다. '캄피오나토 삼마리네세 디 칼초'라는 이름의 축구 리그가 존재한다. 그러나 세계최강의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과는 판이하게 세계 최약체이다.[1]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국제대회에서 단 한번도 패한적이 없으나 산마리노 축구 국가대표팀은 2012년에 FIFA 랭킹에서 부탄,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와 함께 꼴찌를 기록했다. 다만, 산마리노는 1993년에 잉글랜드를 상대로 경기 시작 8초 만에 선취점을 얻어 낸 기록은 있다. 또한, 산마리노는 아무리 잘 해도 승점이 1점을 넘지 못한다.

치안[편집]

국방은 이탈리아에 맡기고 있지만 산마리노 자체적으로 의회호위대, 요새기병대 등의 조직이 있다.

경제[편집]

국민총생산은 2001년 9억4천만 달러였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34,600달러(2001년)였다. 중세의 고성 등 관광지가 잘 발달해 있어, 관광수입이 국가 전체의 50%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에 속하는 수준이다. 2000년에는 3백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였다. 이외 은행, 의류와 도자기 공업이 발달하였다.

대한관계[편집]

2000년 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며 업무는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2004년에는 북한과도 수교하였다.

주석[편집]

  1. 이는 산마리노의 축구 선수들이 대부분 아마추어 선수이기 때문이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