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키나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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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르키나 파소
프랑스어: Burkina Faso
Flag of Burkina Faso.svg Coat of arms of Burkina Faso.svg
국기 국장
표어 프랑스어: Unité, Progrès, Justice
(통일, 진보, 정의)
국가 어느 날 밤
Burkina Faso on the globe (Cape Verde centered).svg
수도 와가두구 북위 12° 21′ 26″ 서경 1° 32′ 07″ / 북위 12.357222° 서경 1.535278° / 12.357222; -1.535278
정치
공용어 프랑스어
정부 형태 이원집정부제 공화국
대통령 블레즈 콩파오레
총리 뤼크아돌프 티아오
역사
독립 프랑스로부터 독립
 • 독립 1960년 8월 5일
지리
면적 274,000km² (74 위)
내수면 비율 0.1%
시간대 GMT (UTC+2)
DST 사실상 (UTC+2)
인구
2005년 어림 13,228,000명
1996년 조사 10,312,669명 (66위)
인구 밀도 48명/km² (145위)
경제
GDP(PPP) 2005년 어림값
 • 전체 $168.45억 (117위)
 • 일인당 $1,284 (163위)
HDI 0.343 (183위, 2012년 조사)
통화 프랑 (XOF)
기타
ISO 3166-1 854, BF, BFA
도메인 .bf
국제 전화 +226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 문화어: 부르끼나파쏘) 또는 오트볼타아프리카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와가두구이다. 독립 당시의 이름은 오트볼타 공화국(프랑스어: République de Haute-Volta 레퓌블리크 드 오트볼타[*])였으나, 1984년부터 부르키나파소라는 국명으로 바뀌었다. 부르키나파소는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볼타강 상류 유역의 고원과 산지의 나라이다. 북부는 스텝성, 남부는 열대 사바나성 기후이다. 모시 제국이 19세기 말에 프랑스 보호령이 되었다가 1960년 8월 오트볼타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1987년, 독립 후 여섯 번째의 쿠데타를 성공한 콩파오레는 국가원수에 취임하고 신내각을 구성했다. 주민은 모시족이 반수를 차지하고 나머지가 보보·로비·만데 등의 여러 부족이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고 종교는 회교도 7%, 기독교도 4% 외에 부족 종교를 신봉한다. 부르키나파소는 아프리카에서도 생활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의 하나로, 농업 및 축산업이 주산업이며, 면화·땅콩 등을 수출하고 있다. 수입품은 기계류·자동차·석유제품 등이다. 지하자원으로는 약간의 금이 산출되고 있고, 품질 높은 망간광(鑛)의 개발이 계획되고 있다. [1]

역사[편집]

초기 역사[편집]

부르키나파소는 기원전 12000년과 500년 사이 북서쪽 지역에 수렵채집가들에의해 인구가 형성되었고, 깎는도구, 끌과 화살촉 같은 도구들이 1973년에 발견되었다. 정착은 기원전 3600년과 2600년 사이 농부들과 함께 나타났다. 농부의 건물 흔적에 기반한, 정착이 영구적인 상태로 나타난다. 철, 도자기, 연마된 돌의 이용이 기원전 1500년과 1000년 사이에 발달되었으며, 영적인 문제를 가진 선취 뿐만 아니라 매장 유물에 의해 보여진다.

도곤족의 유물이 부르키나파소의 북쪽과 북서쪽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도곤족은 15세기와 16세기 사이 반디아가라 벼랑에 정착하기 위해 그 곳을 떠났었다. 다른 장소에서는, 높은 벽의 유물이 (코트디부아르에서 뿐만아니라) 부르키나파소의 남서쪽에 제한되었지만, 유물을 쌓아 올렸던 도곤족은 규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15세기와 16세기 동안, 부르키나파소는 송가이 제국에 중요한 경제적인 지역이었다.

식민에서 독립까지[편집]

영국프랑스 사이 10년간의 대항과 경쟁 뒤에, 와가두구의 모시 왕국은 프랑스 식민지 군대에 패배했으며 1896년에 프랑스 보호령이 되었다. 강력한 지배자 사모리 투레의 힘에 반하여 고립되어 상황을 복잡하게 했던 동쪽과 서쪽 지역은 1897년 프랑스 에게 점령되었다. 1898년까지, 오늘날 부르키나파소에 상응하는 영토의 대부분이 표면상 정복으나, 많은 부분의 지배가 불확실한 상태로 남았다. 1898년 6월 14일의 프랑스와 영국은 식민지 쟁탈전을 끝내고, 양국의 식민지 사이 국경선을 그었다. 프랑스 쪽에서, 지역 사회와 정치 세력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이 대략 5년 동안 지속되었다. 1904년,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식민 제국 재편의 일환으로 볼타 강 분지가 바마코를 수도로한 상 세네갈·니제르 식민지에 합병되었다.

1960년프랑스로부터 독립을 달성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극심한 가난과 혼란 속에서 지내다가 토마스 상카라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하면서 한때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민주적인 정부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7년 상카라와 동료 앙리 총고, 국방장관 장 밥티스테 링가이 등이 동료 블레즈 콩파오레에게 살해당하면서 개혁을 실패하고 콩파오레가 대통령에 오르면서 프랑스 정부의 의도대로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지리[편집]

부르키나파소는 두 개 종류의 지리적 특성으로 나눠볼 수 있다. 대개는 기복이 많이 심하지 않고 듬성듬성 언덕이 솟아 있는 편이다. 대개는 선캄브리아 대의 지층이며 남서쪽에는 사암질의 지층을 이루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인 테나코루(Ténakourou)가 해발 749 m로 솟아 있다.

평균 해발고도는 400 m로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가 600m 이내이다. 따라서 지역적 지리가 특별하게 나타나는 곳은 드물다.

평면상의 지형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과 약간 닮았다.

수로[편집]

1년 내내 물이 흐르는 강으로는 무훈 강(Mouhoun)이 유일한데, 남서쪽으로 코모에 강(Comoé)과 함께 흘러간다. 나이저 강 퇴적분지가 전체 국토의 27%를 차지하는데 여러 강줄기는 산발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편이어서 1년 중 4~6개월 정도만 존재한다.

호수도 많이 있다. 가장 주요한 호수로는 틴그렐라(Tingrela) 호수, 밤앤뎀 호수(Bam and Dem) 등이 있다. 호수라고 하기에는 못에 불과한 곳도 더러 존재하지만 북부 지방에서는 물부족이 빈번하게 사회 문제로 떠오른다.

기후[편집]

부르키나 파소는 전체적으로 열대기후이지만 두 개의 기간으로 구분된다. 600~900mm 정도의 강우가 내리는 우기와 건기가 해당되는데 우기는 4개월 정도로 5월, 6월에서 9월까지 이어지며 북쪽일수록 강우량이 적다.

사헬지대[편집]

사헬 지대는 일년에 600mm 미만의 강우량이 오며 온도의 경우 5–47 °C로 차이가 극도로 심하다. 사헬 지대는 부르키나파소의 국경 끝부분까지 뻗혀있다.

수단-사헬 지대[편집]

위도 11°3'~ 13°5'에 해당되는 지역으로서 강우와 온도에 따라 기후 변화가 나타난다. 사헬지대는 수단의 비옥한 농토까지 뻗히는데 이 두 특성이 결합돼서 나타나는 지역이다.

수단-기니 지대[편집]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이 지대가 나타나며 900mm 이상의 강우가 내리며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아 서늘하다.

주민[편집]

주민은 모시족이 약 50%이고, 10%의 페울족이 거주한다. 그 외 그룬시족, 보보족, 로비족, 만데족, 풀라니족, 그밖에 다른 인종을 포함한 60 인종 이상으로 구성된다.

언어[편집]

헌법 35조에 “공식어는 프랑스어다. 법률은 국민어의 증진 및 공식화의 준비를 한다.”고 규정했다. 2006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총인구 14,017,262명에서 문자해독자는 2,653,807명으로 나타났다. 복수응답을 포함하여 해독 언어를 보면 프랑스어가 96.25%, 모레(모시)어가 1.59%, 아랍어가 0.93%, 영어가 0.02%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프랑스어만 해독하는 경우는 2,549,943명으로 96.086%였다. 프랑스어는 유일한 공식어이면서 유일한 교육어다.[이상 2009년 국립통계인구연구소에서 발간한 2006년 인구조사 결과]. 이 나라는 프랑스어사용국기구인 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종교[편집]

2006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이슬람교가 60.53%, 크리스트교가 23.18%-구교가 19.00%-, 정령신앙이 15.34%, 기타 종교가 0.57%, 무종교가 0.38%였다. 1960년에는 정령신앙이 68.7%였던 것을 고려하면, 독립이후 급격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은 국립통계인구소가 발간한 2006년 인구조사 결과다.

경제[편집]

1996-2005년 기간 동안 연평균 5.0%의 경제 성장을 기록하였다. [2] 부르키나파소는 아프리카에서도 생활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의 하나로, 농업 및 축산업이 주산업이다. 조의 생산량은 전 세계에서 니제르, 말리에 이어 6위이고, 옥수수는 10위를 차지하고 있다(2002년). 면화·땅콩 등을 수출하고 있다. 수입품은 기계류·자동차·석유제품 등이다. 지하자원으로는 약간의 금이 산출되고 있고, 품질 높은 망간광(鑛)의 개발이 계획되고 있다.

문화[편집]

행정 구역[편집]

부르키나파소는 13개 지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지방은 45개 주로 나뉜다.

외교 관계[편집]

부르키나파소는 유럽 연합,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2008년 4월 24일, 코소보를 승인하였다. 더불어, 부르키나파소는 코소보와의 강력한 연대를 구축하는데 대한 관심을 강조하였다. [3]

대한민국과는 1962년 오트볼타 공화국시절에 수교하였으며, 국호를 부르키나파소로 변경한 이후에도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코트디부아르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으며, 양국간 의료기술, 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오트볼타 공화국 시절에 수교하였으며, 국호가 바뀐 후에도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밖에 중화민국과 수교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출처[편집]

  1.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부르키나파소
  2. ""아프리카 전환점 돌아..성장 국면으로 들어선 듯" [WB보고서] ", 《매일경제》, 2007년 11월 15일 작성. 2010년 5월 1일 확인.
  3. Burkina Faso recognizes Kosovo. 《New Kosova Report》 (2008년 4월 24일). 2009년 7월 8일에 확인.

바깥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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