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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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도감(訓鍊都監)은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창설된 부대이다. 5군영 중에서 가장 먼저 창설되어 그 중심을 차지하였다.

[편집] 역사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발발 직후인 조선 선조 때에, 명나라의 유명한 전략가인 척계광의 《기효신서》에 바탕을 두어 창설되었다. 1593년 유성룡이 주장하여 처음에는 임시 기구로 설치되었다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점차 상설 기구가 되었고, 1746년(영조 22년)에 법제화되었다. 이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조총에 대항하기 위하여 기존의 활과 창으로 무장한 부대 외에 조총으로 무장한 부대를 만들었다.

화포와 총기를 사용하는 포수(砲手), 활을 사용하는 사수(射手), 칼과 창을 사용하는 살수(殺手)의 삼수병(三手兵)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운용하였다. 병사들은 4~9말의 급료를 받으며 한양 인근에 주거하는 장기복무 장병들이었다. 처음에는 1,000여 명의 규모였고 병자호란 직전에는 5,0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훈련도감은 1882년임오군란으로 인해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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