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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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촬영된 인천항 감리서 전경

감리서(監理署)는 조선의 제2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 (高宗)의 재위기간 중, 개항장(開港場) 및 개시장(開市場)의 통상(通商) 업무를 담당하던 관아이다. 기관장은 감리(監理)이며,[1] 관청의 별칭은 감리아문(監理衙門).

역사[편집]

1883년(고종 20년)에 부산항, 인천항, 원산항에 처음 감리아문을 두었으며, 중간에 감리서로의 관청 명칭 개칭과 일시 폐지, 재설치를 거쳤다. 이후 전국의 8 개 항구 --웅기(雄基, 경흥), 증남포(증남포), 군산포, 목포, 마산포, 성진, 용암포((龍巖浦), 신의주 -- 와 평양 등 3개 개시장에 확대 설치했다가 1906년(광무 10년)에 모두 폐지했다.

개장항 감리서[편집]

  • 인천항 감리서 (인천 감리서) : 1883년 설치, 1895년 폐지, 1896년 재설치, 경기도 인천도호부 소재 (인천 제물포)
  • 부산항 감리서 (동래 감리서) : 1883년 설치, 1895년 폐지, 1896년 재설치, 경상도 동래도호부 소재 (동래 부산포)
  • 원산항 감리서 (덕원 감리서) : 1883년 설치, 1895년 폐지, 1896년 재설치, 함경도 덕원도호부 소재 (덕원 원산포)
  • 경흥항 감리서 (경흥 감리서) : 1889년 설치, 1895년 폐지, 1896년 재설치, 함경도 경흥도호부 소재 (경흥 경흥진)
  • 목포항 감리서 (무안 감리서) : 1897년 설치, 전라도 무안군 소재 (무안 목포진)
  • 삼화항 감리서 (삼화 감리서) : 1897년 설치, 평안도 삼화군 소재 (삼화 증남포)[2]
  • 군산항 감리서 (옥구 감리서) : 1900년 설치, 전라도 옥구군 소재 (옥구 군산포)
  • 창원항 감리서 (창원 감리서) : 1900년 설치, 경상도 창원군 소재 (창원 마산포)
  • 성진항 감리서 (성진 감리서) : 1900년 설치, 함경도 성진군 소재 (길주 성진포)[3]
  • 용천항 감리서 (용천 감리서) : 1905년 설치, 평안도 용천군 소재 (용천 용암포)

개시장 감리서[편집]

  • 회령 감리서 : 1896년 설치, 함경도 회령도호부 소재
  • 평양 감리서 : 1900년 설치, 평안도 평양부 소재[4]
  • 의주 감리서 : 1905년 설치, 평안도 의주군 소재

임무[편집]

  • 개장항에 설치된 해관(海關, 세관)의 관리, 감독
  • 개항장에 있는 외국인의 상업 활동 등을 관리 (개장항 소재 각국 영사관에 대응하는 업무)[5]

지사서[편집]

지사서(知事署)는 감리서가 1895년에 폐지된 후, 기존 감리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덕원(원산항), 경흥(경흥항)에 설치되었던 기관이다.[6] 1896년(고종 33년) 1월에 설치되어 운영되다가 그해 8월경 두 항구에 감리서가 복설되면서 폐지되었다. 지사서의 기관장인 지사(知事)는 감리(監理)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였다.

각주[편집]

  1. 관직 설치 당시의 정식 직함은 '감리OO항통상사무(監理OO港通商事務)'이다.
  2. 증남포(甑南浦)에서 진남포(鎭南浦)로 개칭된다. 현재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포특별시 지역이다.
  3. 함경도 성진군 소재 성진항 감리서, 즉 성진 감리서로 설치되었는데 1902년(고종 39년)에 성진군(성진부)이 길주군과 합쳐진 때에는 길주 감리서로 호칭되었다. 1904년에 성진과 길주가 다시 분리되었다.
  4. 평양부 이아(二衙), 즉 예전 평양부윤 근무 건물에 설치되었다.
  5. 민회수, 2012년, 논문 〈조선 개항장 감리서의 성립 과정 (1883~1886)〉
  6. 인천항, 부산항의 감리서 기능은 각각 인천부 관찰사, 동래부 관찰사가 행사하였다.

외부 링크[편집]

  • [디지털 昌原文化大典의 창원감리서 부분이 소개하는 서기 1900년 전후의 감리서 전반에 관련되는 기록:

http://changwon.grandculture.net/Contents/Contents?dataType=01&contents_id=GC02200426&isTreeSpread=Y[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