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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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Hong Myung-Bo.jpg
개인 정보
전체 이름 Hong Myung-Bo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 1969년 2월 12일(1969-02-12) (45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182cm
포지션 은퇴 (과거 센터백 / 스위퍼)
청소년 클럽
1987-1991 대한민국 고려대학교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1991-1992
1992-1997
1997-1998
1999-2001
2002
2003-2004
합계
대한민국 상무
대한민국 포항제철 아톰즈
일본 쇼난 벨마레
일본 가시와 레이솔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미국 LA 갤럭시

1100(14)
0420(0)
0720(7)
0190(0)
0380(0)
2810(21)
국가대표팀2
1990-2002 대한민국 대한민국 1360(10)
팀 감독/코치
2005-2007
2006-2008
2009
2009-2012
2013
2013-2014
대한민국 대한민국 (코치)
대한민국 대한민국 U-23 (코치)
대한민국 대한민국 U-20
대한민국 대한민국 U-23
러시아 안지 마하치칼라 (코치)
대한민국 대한민국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05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05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홍명보 (洪明甫, 1969년 2월 12일, 대한민국 서울 ~ )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축구 감독이다. 대한민국 축구 선수 중 유일하게 FIFA 100에 선정되었다.[1] 2013년 6월 24일 최강희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4년 7월 10일 사퇴하였다.

학력

축구

선수

포항 스틸러스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상무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친 후 1992년 유공 코끼리의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권 트레이드로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했다. 1992년 포항의 K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하여 신인 선수로는 최초로 MVP를 수상했다. 1997년 5월 J리그 클럽 벨마레 히라츠카로 이적하여 활약하였다가,[2]

1999년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여 그 해 J리그 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2002년 친정 팀 포항 스틸러스로 잠시 복귀했다가[3] 2003년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로스앤젤레스 갤럭시로 이적하였다.[4]

2004년 10월 8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선수로서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5]

국가 대표

1990년 2월 4일 노르웨이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하여, 1990년 FIFA 월드컵부터 2002년 FIFA 월드컵까지 4번의 월드컵에 참가하여 2골을 넣었다. 월드컵 4회 참가는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이다.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예선 1차전 스페인전 추격골과 동점골의 어시스트, 3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었다.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아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강을 이룩한 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브론즈 볼을 수상했다.[6]

지도자

딕 아드보카트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을 때 코치로 발탁되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에서 인증하는 코치 라이센스를 취득하기 전이어서 무자격, 특혜 논란이 일었다.[7] 2006년 FIFA 월드컵이 끝난 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물러나고 핌 페르베이크이 새 감독이 되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발탁되었다.[8] 2007년 AFC 아시안컵 3·4위전인 일본전 때에는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다가 핌 페르베이크 감독, 코사 골키퍼 코치와 함께 퇴장당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그 뒤에 핌 페르베이크 감독이 사퇴한 이후에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남아 있었다. 한때 올림픽 대표팀 감독(핌 페르베이크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도 겸임하고 있었으며 사퇴한 이후 결국 박성화 감독으로 결정되었다.) 유력 후보로 떠올랐으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되지 않고, 박성화 감독 취임 이후 올림픽 대표팀의 코치로 합류하였다.[9]

2009년 2월 19일, 조동현 감독의 후임으로 U-20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10] 그리고 200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18년만에 8강에 진출하여 좋은 경기를 펼쳤다.[11]그리고 이후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여[12] 2012년 하계 올림픽 동메달에 기여하였다.

2012년 하계 올림픽이 끝난 후 2012년 연말까지 휴식기를 가지고, 2013년 1월부터 거스 히딩크가 감독을 맡고 있는 러시아 프로 축구팀 안지 마하치칼라에서 6개월 동안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약했다.[13] 이후 2013년 6월 24일 계약이 만료된 최강희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가진 첫 경기인 동아시안컵 오스트레일리아전에서 0:0으로 비겼으나, 경기가 끝난 뒤 오스트레일리아홀거 오지크 감독은 대한민국이 무척 강한 팀이 될 것이라는 언급을 했다.[14]

2014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1무 2패로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경기력을 차지하고 친분을 따려 선수를 선발했다는 '의리 논란'에 휘말렸다. 홍명보 감독은 알제리와의 2차전에서 12분 동안 세 골을 얻어맞고 벨기에와의 3차전에서 수적 우위를 누렸음에도 패배하는 등 경기 내적으로는 전술 구사력도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5] 홍명보 감독의 계약기간은 2015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대회까지로 대한축구협회의 재신임을 받아서 계속 지휘봉을 잡는다. [15] 홍명보 감독은 2014년 7월 10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명보 감독은 전격 사퇴를 발표하면서 "국민들께 죄송하다.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면서 "앞으로도 좀 더 발전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였다.[16]

행정가

홍명보는 은퇴 당시 기자회견에서 행정가의 길을 걷겠다고 이야기했었고, 2005년 김주성 등과 함께 대한축구협회 이사에 선임되었다.[17] 그 뒤, 각급 대표팀의 코치와 감독을 차례로 맡아서 행정가의 길을 접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아직 행정가의 꿈은 계속 열어놓고 있다고 밝혔다.

플레이 스타일

상대 공격의 ‘맥’을 읽고 차단해내는 판단력과 지능적인 플레이가 능했고, 무엇보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수비라인 및 팀 전체를 통솔하는 리더쉽이야말로 10년 넘게 홍명보를 '한국대표팀 부동의 수비수'로 존재하게 만든 근원이었다.

그라운드 전체를 꿰뚫는 폭넓은 시야와 전방으로 연결하는 날카로운 패스, 노련한 경기운영능력과 적절한 위치선정은 홍명보에게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라는 호칭을 안겨줬다. 즉, 실상 가장 공격적인 수비수이면서 가장 수비적인 공격수, ‘리베로’의 전형이었다.

홍명보 자선축구 대회

홍명보가 사비를 털어 만든 (재)홍명보장학재단에서는 2003년을 시작으로,[18] 매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희귀병을 앓는 어린이들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기 위한 자선 경기를 펼치고 있다. 재단 이사장인 홍명보를 비롯해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올스타와 연예인들이 모여 자선 경기를 가진다.

2008년 4월 17일, 홍명보장학재단은 독일 스포츠 브랜드 푸마2010년까지 3년간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하였다.[19]

일자 장소 메인스폰서
1 2003년 12월 21일 고양종합운동장 푸마
2 2004년 12월 26일 인천문학경기장 푸마
3 2005년 12월 18일 수원월드컵경기장 푸마
4 2006년 12월 26일 수원월드컵경기장 푸마
5 2007년 12월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현대자동차
6 2008년 12월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하나은행

2008년 크리스마스에는 대한민국 축구 선수들과 연예인들이 소아암어린이와 소년소녀 가장을 돕기 위한 홍명보 자선축구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2008년 자선 경기시엔 1만 5천여 관중들이 캐롤 송을 함께 불러 많은 사람들이 캐롤송 함께부르기 기네스 기록에 도전하기도 하였다. 세계 기네스 기록에는 아쉽게 미치지 못하였지만 대한민국 기록의 새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20]

그 외

  • 동료들 사이에서 마음이 너무 좋다고 해서 '흥부'라는 별명이 생겼다. 또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인하여 '영원한 리베로'로 불리기도 한다.
  • 2004년 11월 19일, 독일과의 친선경기에서 객원 해설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21]
  • 2005년, 홍명보는 일본이하라 마사미와 함께 한일 축구 친선대사에 선정되었다.[22]
  • 2008년에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추진하는 ‘K-리그 안전캠페인’ 홍보영상에 출연하기도 했다.[23]
  • 2002년 FIFA 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5번째 키커로 나서 4강 진출을 알리는 깔끔한 골과 함께 드러낸 홍명보의 보기드문 환한 미소를 기억하고 있는 이가 많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당시 상황에서 본인의 킥이 실축할 시의 막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이를 슛과 함께 떨쳐냈기 때문에 진심으로 '살았다. 다행이다.'라는 의미의 미소가 나왔다고 한다.

경력

광고

수상

개인

클럽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일본 가시와 레이솔

주석

  1. 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582930& 홍명보, FIFA 100대 스타 인증서 수여
  2. 프로축구 7일 LG와 고별전 홍명보 일본 리그 간다.
  3. 홍명보 4년 만에 고국 무대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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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고리


전 임
대한민국 최강희
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3년 6월 24일 - 2014년 7월 10일
후 임
공석
이 전
프랑스 릴리앙 튀랑
제6대 FIFA 월드컵 브론즈볼
2002년
다 음
 이탈리아 안드레아 피를로 
이 전
대한민국 정용환
제10대 K리그 MVP
1992년
다 음
 대한민국 이상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