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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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許載, 1965년 9월 28일 ~ )는 강원도 춘천시 출신의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농구 선수였으며, 현재 프로 농구 전주 KCC 이지스의 감독이다.

신장은 188cm이며 포지션은 슈팅 가드였다. 실업 농구 기아자동차 팀에서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 등의 중앙대학교 동문들과 함께 일명 '기아 왕조'를 구축하며 승승장구하며, 농구대잔치 7회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MVP3회 수상하였다. 215경기에 출장하여 총 5352점을 기록, 11시즌 통산 경기당 평균 득점 24.89점을 기록하였다.

프로 농구에서는 1998년 정인교를 상대로 트레이드된 이후 TG 삼보 엑써스 (당시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서 활약했다. 프로 농구 8시즌 동안 통산 4524 득점, 1148 리바운드, 1572 어시스트, 508 스틸을 기록했다. 등번호 9번은 영구 결번 처리되었다.

농구 천재, 농구 9단, 농구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탁월한 기량에 카리스마를 갖춘 그는 화려한 플레이로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누렸다. 1982년 용산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청소년대표로 선발된 이후 1999년까지 17년 동안 청소년대표,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나 아시안 게임이나 아시아 선수권 대회의 우승 경력은 없었다. 1995년에는 ABC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4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미국 연수를 거쳐 2005년부터 전주 KCC 이지스의 감독을 맡고 있다. 2009년 스포츠토토 한국농구대상 감독상을 수상하며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농구
아시안 게임
1986 서울 남자 농구
1990 베이징 남자 농구
1994 히로시마 남자 농구
아시아 선수권 대회
1987 방콕 남자 농구
1989 베이징 남자 농구
1991 고베 남자 농구
1993 자카르타 남자 농구
1995 서울 남자 농구

목차

출신학교 [편집]

경력 [편집]

수상 내역 [편집]

  • 1984년 - 농구대잔치 신인상, 어시스트상, 인기상
  • 1986년 - 서울 아시안 게임 은메달
  • 1988년 -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 1990년 - 베이징 아시안 게임 동메달
  • 1991년 - 농구대잔치 최우수선수상
  • 1992년 - 농구대잔치 우수선수상, 베스트 5
  • 1993년 - 농구대잔치 MVP, 정규리그 득점왕, 베스트 5, 수비상
  • 1994년 -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은메달
  • 1995년 - 농구대잔치 최우수선수상
  • 1995년 - ABC 남자 농구 선수권 대회 MVP
  • 1996년 - 애틀랜타 올림픽 국가대표
  • 1996년~1997년 - 프로농구 스몰포워드상
  • 1997년~1998년 -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MVP
  • 2002년~2003년 - 프로농구 정규리그 모범선수상
  • 2009년 - 스포츠토토 한국농구대상 감독상

에피소드 [편집]

  • 1988년 당시 농구 양강을 형성하고 있던[1] 삼성전자, 현대전자와의 거액 계약 제안을 뿌리치고 이미 한기범, 김유택이 입단한 기아자동차에 입단하였다. 이는 후에 강동희를 비롯한 다수의 중앙대학교 후배들이 기아자동차에 입단하는 계기가 되었다.[2]
  • 1987년 10월 5일, 농구대잔치에서 한경기 75득점 기록과 동시에 전반전 54점을 모두 혼자 넣었던 기록도 있다.
  •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전체 선수를 대표하여 당시 여자 핸드볼 선수인 손미나와 대표 선서를 하였다.[3]
  • 1990년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 이집트전에서 54점을 기록하며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 사상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을 수립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4]
  • 1990년 농구대잔치 챔피언결정전 2차전 도중 현대전자 소속이었던 임달식(현재 여자프로농구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감독)에게 얼굴을 강타당한 후 이에 격분하여 달려들다가 같은 현대전자의 김성욱 선수에게 얼굴을 맞았고 이 사건으로 6개월 자격정지 처분이 내려졌으나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자격 정지가 해제되었다.[5]
  • 1996년 여름 무면허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되어 구속 기소[출처 필요]되었으며 이후 프로농구가 출범한 1997년 징계가 풀렸음에도 경기에서는 벤치를 지켜야 했다. 이 때문에 팀은 원년 챔프를 차지했지만 최우수선수는 강동희가 차지했다. 이 때부터 시작된 최인선 감독과의 갈등설[6]은 그가 후에 원주 나래 블루버드 (현 원주 동부 프로미)로 이적하는 빌미가 되었다.[출처 필요]
  • 1998년 대전 현대 다이냇(현 전주 KCC 이지스)와 맞붙은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눈이 찢어지면서 피를 흘리고, 손등을 다치는 등 온몸이 부상병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활약을 펼쳤으며[7], 소속팀이 준우승에 그쳤음에도 이례적으로 챔피언결정전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되었다. 한국 프로농구 출범 이래 2008-2009 시즌이 끝난 현재까지 준우승 팀에서 MVP에 뽑힌 선수는 허재가 유일하다.[8]
  • 허재의 두 아들 허웅과 허훈 역시 농구선수이다. 2007년 제36회 전국소년체전에서는 당시 둘이 뛰고 있던 용산중학교삼광초등학교가 각각 우승을 차지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9]
  • 2009년 동부 프로미 프로농구에서 전주 KCC 이지스 감독으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한국 프로 농구 사상 최초로 선수 시절과 감독 시절 모두 우승한 유일한 감독이 되었다.
  • 2009년 10월 16일 부산 해운대의 어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폭행 혐의로 인해 경찰에 입건되었다.
  • 2011년 중국 기자들의 수준 낮은 질문에 화를 버럭내고 기자회견장을 나갔다. (인터뷰 내용 : 중국 국가가 나오는데 한국 선수들이 왜 움직였냐?)
  • 97년 기아자동차 멤버들이 그대로 (강동희 김유택 허재 이훈재 한기범 조동기 김영만 등)

이어져온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결승까지 무난히 진출, 프로 첫해 돌풍을 일으켰던 나래를 상대로 우승을 하게 된다.

그 이듬해 97~98 시즌 전 시즌과 비슷하게 무난하게 결승까지 진출한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현대 걸리버스 를 결승에서 만나게 된다. 상무에서 제대한 이상민/조성원 에 갓 대학을 졸업한 추승균을 보유한 kcc는 맥도웰과 제이웹 등 외국인도 막강했던 시절이었고 결승전에서 4:3으로 기아를 물리치게 된다.

1 차전 현대홈(대전) 기아 승

2 차전 현대홈(대전) 기아 승

3 차전 기아 홈 (부산) 현대 승

4 차전 기아 홈 (부산) 현대 승

5 차전 기아 홈 (부산) 기아 승

6 차전 현대홈(대전) 현대 승

7 차전 현대홈(대전) 현대 승

통산 기록 [편집]

농구대잔치 [편집]

(플레이오프 포함 기록)

연도 경기수 총득점 평균득점 총리바운드 평균리바운드 총어시스트 평균어시스트 총3점슛 평균3점슛 비고
1984 중앙대학교 18 432 24.00 144 8.00 112 6.22 룰 부재 룰 부재
1985 13 266 20.26 85 6.53 40 3.07 22 1.69
1986 23 555 24.13 171 7.43 85 3.69 91 3.95
1987 중앙대학교 대회 불참
1988 기아자동차 20 505 25.25 161 8.05 58 2.90 59 2.95
1989 19 508 26.73 127 6.68 68 3.57 77 4.05
1990 20 508 25.40 130 6.50 60 3.00 69 3.45
1991 21 469 22.22 112 5.33 71 3.38 56 2.66
1992 23 614 26.69 165 7.17 74 3.21 83 3.60
1993 17 510 30.00 111 6.52 49 2.88 76 4.47
1994 20 471 23.55 94 4.70 62 3.10 52 2.60
1995 21 514 24.47 128 6.09 79 3.76 65 3.09
통산 11시즌 215 5352 24.89 1428 6.64 758 3.52 650 3.29

프로농구 [편집]

시즌 경기수 총득점 평균득점 총리바운드 평균리바운드 총어시스트 평균어시스트 총3점슛 평균3점슛 비고
1997 기아 20 316 15.80 39 1.95 103 5.15 32 1.60
97-98 37 555 15.00 126 3.41 129 3.49 62 1.67
98-99 나래·
TG삼보
45 771 17.13 216 4.80 226 5.02 93 2.06
99-00 39 644 16.51 169 4.33 207 5.31 73 1.87
00-01 31 382 12.32 76 2.45 106 3.42 26 0.83
01-02 49 655 13.37 174 3.55 241 4.92 88 1.79
02-03 52 420 8.08 152 2.92 241 4.63 49 0.94
03-04 47 108 2.30 57 1.21 112 2.38 15 0.32
통산 8시즌 320 3581 12.03 1009 3.15 1365 4.26 438 1.36
플레이오프통산 55 733 13.33 152 2.76 232 4.22 101 1.83

주석 [편집]

  1. 정지원, '허재, '포스트 허재'를 말하다', 《Magazine S》23호, 2006, 05, 28.
  2. 1994년 발행된 '허재의 천재농구' 181 Page 참고
  3. 스포츠서울DB, '88 서울올림픽 20주년, 다시 보는 감동의 순간들', 《스포츠서울》, 2008, 09, 23.
  4. FIBA 공식 홈페이지, 1990 World Championship For Men : EGYPT vs KOREA
  5. 1994년 발행된 '허재의 천재농구' 181 Page, 1997년 발행된 '코트의 영웅들 - 허재가 쓰는 허재 이야기' 참고
  6. 허진석, '허재-하승진, 새 왕조를 수립할 것인가', 《중앙 SUNDAY》, 제112호, 2009, 05, 02.
  7. 손대범, '살아있는 전설 허재 농구인생 30년 돌아보기(1)', 《월간 JumpBall》, 2004년 4월호.
  8. 신익수, '허재 감독 "불같았던 성격이 감독된 후 물로 변해"', 《매일경제》, 2009, 06, 15.
  9. 이충원, '소년체전: 역시 허재 아들이야!', 《연합뉴스》, 2007, 05, 29.

바깥 고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