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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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식
(鄭南湜)
개인 정보
로마자 표기 Chung Nam‑Sik
출생 1917년 2월 16일

일본 일제강점기 조선 전라북도 김제시

사망 2005년 4월 5일 (88세)
포지션 은퇴 (과거 공격수 / 미드필더)
국가대표팀
1946-195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지도자
1959.7
1965.8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기준이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기준이다.

정남식(鄭南湜, 1917년 2월 16일 ~ 2005년 4월 5일)은 1948년 런던 올림픽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각각 공격수 / 미드필더로 참가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생애[편집]

정남식은 1917년 2월 16일 전북 김제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축구에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던 그는 보성전문(현 고려대학교)과 조선전업, 조선방직, 첩보대 등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1946년에 국가대표 선수로 데뷔하여 1948년 7월 6일홍콩과 첫 A-매치 경기를 치렀는데 정남식이 4골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사상 첫 A-매치 헤트트릭 기록자와 대한민국의 첫 A-매치 득점자로 자리잡았다.[1]

1948년 런던 올림픽 때는 첫 국제 경기에서 한 골을 터트려 팀의 5 : 3 승리에 기여를 했다. 1954년 FIFA 월드컵 예선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에 진출하도록 큰 기여를 했다.

그 해에 은퇴를 한 뒤 1959년 7월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맡았고, 1965년 8월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아 메르데카 컵 대회에서 우승을 이루는 등 후진 양성에도 열정을 쏟았으며 1994년부터 1997년까지는 대한민국 OB축구회 회장으로서 축구인들의 복지와 위상을 높이는 데 힘썼다. 1994년부터는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위원과 조직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런 공로로 지난 2003년 대한축구협회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특별 공로패를 수상하기도 했다. 2005년 4월 5일에 향년 89세로 사망했을 때 그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례는 ‘축구인장’으로 치러지기도 하였다.

경력[편집]

  • 1948년 하계 올림픽 국가대표팀
  • 1954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팀
  • 1959년 7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
  • 1965년 8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메르데카 컵 대회 우승)
  • 1994년~1997년 대한민국 OB축구회 회장
  • 1994년~2002년 FIFA 월드컵 유치위원과 조직위원으로 활동
  • 2003년 대한축구협회 창립 70주년 특별 공로패 수상

주석[편집]

  1. [위원석의 레전드를 찾아서] '사커 키드'들의 역사찾기 프로젝트, 《스포츠서울》, 2007년 9월 2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