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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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프랑스
Logo de l'Équipe de France de Football.png
별칭 Les Bleus (청색)
Les Tricolores (삼색기)
La Sélection (국가대표팀)
연맹 프랑스 축구 협회 (FFF)
대륙 유럽 축구 연맹 (UEFA)
감독 디디에 데샹
주장 위고 로리스
최다 출전자 릴리앙 튀랑 (142)
최다 득점자 티에리 앙리 (51)
FIFA 코드 FRA
FIFA 랭킹 7위 (2015년 1월 8일 기준)
최고 순위: 1위 (2001년 5월- 2002년 5월)
최저 순위: 27위 (2010년 9월)
첫 국제
경기 출전
벨기에 벨기에 3 - 3 프랑스 프랑스
(벨기에 브뤼셀; 1904년 5월 1일)
최다 점수차
승리
프랑스 프랑스 10 - 0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프랑스 파리; 1995년 9월 6일)
최다 점수차
패배
덴마크 덴마크 17 - 1 프랑스 프랑스
(영국 런던; 1908년 10월 19일)
유니폼
홈경기
원정경기
FIFA 월드컵
출전 횟수 14회 (1930년에 처음 출전)
최고 성적 우승 (1998년)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출전 횟수 8회 (1960년에 처음 출전)
최고 성적 우승 (1984년, 2000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출전 횟수 2회 (2001년에 처음 출전)
최고 성적 우승 (2001년, 2003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프랑스어: Équipe de France de football) 은 국제 축구 경기에서 프랑스를 대표한다. 프랑스 축구스포츠 행정부프랑스 축구 협회 (프랑스어: Fédération Française de Football) 가 관리하며, 유럽 축구를 관리하는 UEFA의 회원이다. 국가대표팀의 고유 유니폼색은 청색이며 프랑스 삼색기의 나머지 색상인 백색과 적색이 조함되어 삼색기 (drapeau tricolore) 라고도 불리기도 하며 갈리아 수탉 (coq gaulois) 이 대표팀 상징으로 사용된다. 프랑스는 흔희 청색 군단 (Les Bleus) 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데, 이 별칭은 청색 상의를 사용하는 프랑스의 타 종목 국가대표팀 별명으로 쓰인다.

프랑스는 1904년에 첫 공식 경기를 치렀고, 현재 대부분의 홈경기를 파리 근교 생드니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치른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을 한 차례,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을 두 차례, 올림픽을 한 차례, 그리고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을 한 차례 우승해, 아르헨티나와 더불어 FIFA가 주관한 남자 대회에서 모든 대회를 우승한 유이한 팀이 되었다. 프랑스는 이웃 이탈리아와 강력한 라이벌 관계를 가지고 있고, 역사적으로 벨기에, 브라질, 잉글랜드, 독일, 그리고 스페인과도 라이벌 관계를 지니고 있다.

국가대표팀은 세 차례의 "황금기"에 많은 성공을 거두어드렸다: 황금기는 1950년대,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말에서 2000년대초로, 이 시대에 수 많은 주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들였다. 프랑스는 1930년에 열린 초대 FIFA 월드컵에 참가한 유럽의 4팀들 중 하나로, 비록 예선전에서 6차례 탈락했으나, 매 FIFA 월드컵 주기에 참가한 3팀들 중 한팀이다.[1] 1958년, 레몽 코파쥐스트 퐁텐이 이끄는 팀은 1958년 FIFA 월드컵에서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1984년, 발롱도르 수상자인 미셸 플라티니가 이끄는 프랑스는 UEFA 유로 1984를 우승했다. 디디에 데샹의 지도 하에 3차례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쟁된 지네딘 지단의 협력 하에, 프랑스는 1998년 FIFA 월드컵을 우승하고, 개최국으로써 이 영예를 달성한 8개팀 중 하나가 되었다. 2년 후, 팀은 UEFA 유로 2000에서도 우승을 거두었고, 이후에는 FIFA 랭킹 1위에 처음으로 오르기도 했다. 프랑스는 그 후로, 2001년과 2003년에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두 차례 추가했고, 2006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도 올랐으나, 이탈리아에게 승부차기에서 3-5로 패했다.

역사[편집]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1904년 5월 21일 FIFA가 창립될 때를 부근으로 창립되었고, 1904년 5월 1일, 브뤼셀에서 열린 벨기에첫 공식 국제 경기를 치렀고, 경기는 3-3 무승부로 끝났다.[2] 이듬해인 1905년 2월 12일, 프랑스는 스위스와 모국에서 첫 경기를 치렀다. 경기는 500명 관중이 웅집한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렸다. 프랑스느는 이경기에서 가스통 시프레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길 수 있었다. FIFA와 프랑스의 스포츠 연합프랑스 체육 스포츠 사회 연합 (Union des Sociétés Françaises de Sports Athlétiques, USFSA) 간의 갈등으로, 프랑스는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애로가 많았다. 1908년 5월 9일, USFSA와 상반된 입장을 지닌 프랑스 국제연합 위원회 (CFI) 는 USFSA가 아닌 FIFA가 향후 올림픽 대회에서 클럽의 출전에 관여할 것이라고 손들어주었다. 1919년, CFI는 프랑스 축구 협회로 재조직되었다. 1921년, USFSA가 프랑스 축구 협회에 합병되었다.

1930년 7월, 프랑스는 우루과이에서 열린 초대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몬테비데오의 에스타디오 포시토스에서 열린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경기에서, 프랑스는 멕시코를 4-1로 꺾었다. 뤼시앙 로랑은 프랑스의 월드컵 1호골을 득점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월드컵 역사상 1호골을 득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프랑스는 이후 아르헨티나칠레와의 나머지 조별 리그 경기에서 연달아 0-1로 패했고, 결국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듬해, 국가대표팀은 처음으로 흑인을 승선시켰다. 라울 디아뉴는 세네갈계로, 2월 15일에 2-1로 이긴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첫 출전의 영예를 안았다. 디아뉴는 이후 북아프리카계 출신으로는 최초로 국가대표팀에 승선한 라르비 벤바레크와 함께 1938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1934년 FIFA 월드컵에서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에게 2-3으로 패하며 또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팀이 파리에 귀환했을때, 4,000명의 웅집한 팬들은 영웅으로 칭송하며 환영했다. 프랑스는 1938년 FIFA 월드컵을 개최해 8강에 올랐으나,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에게 패해 탈락했다.

1950년대, 프랑스는 쥐스트 퐁텐, 레몽 코파, 장 뱅상, 로베르 종케, 마량 위스니에스키, 타데 시소우스키, 그리고 아르망 팡베른 등의 선수들을 앞세워 처음으로 황금기를 맞이했다. 1958년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준결승전까지 진출했으나 브라질에 패하였다. 3위 결정전에서, 프랑스는 퐁텐의 4골에 힘입어 서독을 6-3으로 격파했고, 그에 따라 퐁텐은 FIFA 월드컵 역대 한대회 최다 기록인 13골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1960년에 열린 초대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였고, 2대회 연속으로 준결승전에 올랐다. 본선에서, 프랑스는 유고슬라비아한테 75분까지 4-2로 앞서나갔으나 4-5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하였다. 3위 결정전에서,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에 0-2로 패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들어 프랑스는 여러 다른 감독의 지휘 하에 주요 대회 본선행에 실패했다. 1964년 4월 25일, 앙리 게랭이 공식적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올랐다. 게랭 감독의 지휘 하에, 프랑스는 1962년 FIFA 월드컵1964년 유럽 네이션스컵 진출에 실패했다. 국가대표팀은 1966년 FIFA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해 국제 대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따. 조세 아리바스장 스넬라는 한때 공동으로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 두 감독이 동시에 지휘한 것은 4경기로, 이후 쥐스트 퐁텐 전 국가대표가 취임해 단 두경기만 지휘했다. 루이 뒤고게는 퐁텐의 후임으로 취임했으나, 1970년 FIFA 월드컵 예선전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고, 조르주 불로뉴가 뒤를 이었으나, 팀을 본선에 진출시키지 못했다. 불로뉴도 1974년 FIFA 월드컵 본선행 실패 여파로 경질되었고, 루마니아의 슈테판 코바치가 사령탑을 맡았으며, 그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유일한 외국인이 되었다. 코바치 또한 1974년 FIFA 월드컵UEFA 유로 1976 본선행 실패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는데 그쳤다. 그도 2년 후에 경질되었고, 미셸 이달고가 후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미셸 플라티니UEFA 유로 1984에서 주장으로 참가해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달고의 지휘 하에, 프랑스는 다시 부흥했는데, 마리위스 트레소르막생 보시와 같은 수비수, 도미니크 로슈토와 같은 수비수, 그리고 팀의 중심이자 "마법의 4각형" (carré magique) 을 구성한 미셸 플라티니장 티가나, 알랭 지레스, 그리고 루이스 페르난데스등의 우수한 인재로 1982년 FIFA 월드컵을 시작으로 상대의 수비를 무너뜨리고, 서독을 상대한 준결승전까지 올라가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준결승전 경기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경기로 손꼽히는 것과 동시에 논란이 수반된 경기였다.[3] 프랑스는 그로부터 2년 후,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을 거두었는데, UEFA 유로 1984를 개최해 우승하였다. 대회에서 역대 한 대회 최다골인 9골을 기록한 플라티니의 지휘 하에,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스페인을 2-0으로 꺾었다. 이 경기에서 득점한 선수들은 플라티니와 브뤼노 벨론이었다. 유로 대회를 우승한 후, 이달고가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전 국가대표 앙리 미셸이 그의 뒤를 이었다. 프랑스는 이후 올림픽 국가대표팀1984년 하계 올림픽 축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고, 이듬해에는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의 전신인 아르테미오 프란키 트로피에서 우루과이를 2-0으로 꺾고 우승했다. 결승골은 도미니크 로슈토조세 투레가 넣었다. 1년의 기간 안에 프랑스는 3개의 주요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우승 후보로 점쳐졌고, FIFA 월드컵 2대회 연속으로 준결승전에 올라 또다시 서독을 상대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번에도 서독에 또 패했다. 벨기에와의 3위 결정전에서 4-2로 이긴 프랑스는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디디에 데샹1998년 FIFA 월드컵UEFA 유로 2000에서 주장으로 참가해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8년, 프랑스 축구 협회는 국가 축구 단지인 클레르퐁텐을 개장했다. 개장식에는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참석했다. 클레르퐁텐 개장 5개월 후, 앙리 미셸 감독이 경질되었고, 플라티니가 후임이 되었으나, 그는 1990년 FIFA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했다. 플라티니는 비록 UEFA 유로 1992 본선행에 성공하였고, 대회 전에 19경기 무패행진 기록을 세웠으나,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대회 종료 1주 후, 플라티니는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그의 수석 코치였던 제라르 울리에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울리에 감독의 지휘 하에, 프랑스 국가대표팀과 팬들은 이스라엘전과 불가리아전에서 1994년 FIFA 월드컵 본선행을 목전에 두었으나, 실패로 돌아가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프랑스는 이스라엘전에서 2-3으로 패했고, 불가리아전에서도 1-2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후 공공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 울리에는 해임되었고, 국가대표팀에 활약하던 몇몇 선수들이 은퇴했다. 그의 수석 코치인 에메 자케가 뒤를 맡게 되었다.

에메 자케의 지도 하에 국가대표팀은 가장 성공적인 시대를 겪었다. 베테랑으로 조직된 팀이 1994년 FIFA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하자, 거물급 신예들이 팀에 합류했다. 프랑스는 UEFA 유로 1996에서 준결승전에 진출해 체코에게 승부차기에서 5-6으로 지면서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다음 주요 대회인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자케는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브라질을 3-0으로 이기고 우승하였고, 프랑스 축구 역사의 정점을 찍었다. 자케는 월드컵 우승 후 감독직을 그만두었고, 수석 코치인 로제 르메르가 이어받아 UEFA 유로 2000 우승으로 이끌었다. FIFA 올해의 선수인 지단의 지휘 하에,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2-1로 잡았다. 트레제게가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득점했다. 이 대회 우승으로 프랑스는 1974년 서독 이래 처음으로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를 모두 우승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 결과, 프랑스의 FIFA 랭킹이 1위로 상승했다.

프랑스는 이어지는 주요 대회에서 이전의 성공을 반복해 내지 못했다. 비록 프랑스는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정상에 올랐으나, 프랑스는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충격적인 무득점 1라운드 탈락을 경험했다. 프랑스는 이 대회에 처녀 출전한 세네갈에게 개막전에서 0-1로 패하면서 FIFA 월드컵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결과를 냈다. 프랑스가 대회에서 조 최하위로 탈락하자, 르메르가 자리했던 사령탑은 자크 상티니가 차지했다. 다시 힘을 회복한 프랑스는 UEFA 유로 2004를 인상적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8강에서 나중에 우승을 차지할 그리스에게 무기력하게 패해 떨어졌다. 상티니 감독이 사임하자 레이몽 도메네크가 그를 대신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초반에 부진한 행보를 보였다. 그 결과, 도메네크는 전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국가대표팀 은퇴를 번복하고 본선행을 도와달라고 설득했고, 이는 예선 최종전에서 키프로스를 상대로 4-0으로 이기면서 달성되었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스페인, 브라질, 포르투갈을 차례로 제압하고 조별 리그에서부터 무패로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했고, 연장전에서 논란의 신경전 끝에 지네딘 지단이 퇴장 당했고, 결승골 득점에 실패했으며, 이탈리아에게 승부차기에서 3-5로 패해 2006년 FIFA 월드컵 우승에 실패했다.

2010년에 임시 주장을 맡은 후, 위고 로리스 골키퍼는 2012년 2월을 기점으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정주장이 되었다.

프랑스는 UEFA 유로 2008예선전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쳤고, 스코틀랜드전 2패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본선행에 올랐다. 프랑스는 죽음의 조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를 포함한 조) 에서 탈락해 1라운드만에 퇴장했다. 전 대회 FIFA 월드컵 예선전처럼,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전도 프랑스는 실망스럽게 시작해 참사에 가까운 패배와 예기치 못한 승리를 거두었다. 결국 프랑스는 조에서 2위를 차지해 아일랜드남아프리카 공화국 본선행을 가지고 UEFA 플레이오프에서 경합했다. 1차전에서, 프랑스는 아일랜드를 1-0으로 이기고, 2차전에서 논란의 상황 끝에 1-1로 비겨 FIFA 월드컵 본선에 안착했다.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도, 프랑스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1라운드에서 탈락했고, 공공적으로 국가대표팀은 부정적인 평을 받아 프랑스 복귀 이후에도 더 많은 파장이 불어왔다. 대회 도중, 멕시코에게 0-2로 패하자 스트라이커 니콜라 아넬카레이몽 도메네크 국가대표팀 감독과의 언쟁 끝에 국가대표팀에서 쫓겨났다.[4][5] 아넬카와 선수들, 코칭스태프, 협회간의 불화로 인해, 선수들은 조별 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훈련을 단체 거부하는 사태가 나기도 했다.[6][7][8] 훈련 거부 사태의 여파로, 로슬린 바슐로 체육 장관은 선수들에게 "프랑스의 치욕적인 FIFA 월드컵을 A조 조별 리그 최종전 전날의 감정적인 연설과 분루로 바꾸었다"라며 선수들을 꾸짖었다.[9] 프랑스는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최종전에서 1-2로 패해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프랑스가 1라운드에서 탈락한 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다수 언론을 통해 티에리 앙리 주장의 요청에 따라 그와 만나 국가대표팀과 연관된 사건들에 대해 토론해 볼 것이라 보도되었다.[10] FIFA 월드컵 대회 종료 후, 장-피에르 에스칼레트 협회 회장이 사임했다.

이미 경질이 확정된 도메네크의 후임은 전 국가대표 로랑 블랑으로 확정되었다. 2010년 7월 23일, 블랑 감독의 요청에 따라, 협회는 노르웨이와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FIFA 월드컵에 참가했던 23명의 선수에게 모두 징계가 내려졌다.[11] 8월 6일, 5명의 선수가 2010년 FIFA 월드컵 훈련 불참 사태의 주모자인 것으로 밝혀졌고, 그에 따른 징계가 내려졌다.[12][13]

역대 감독[편집]

이름 활동 기간
자스통 바로 1936–1955
알베르 바토 1955–1962
앙리 게링 1962–1966
조세 아리바 / 장 스넬라 1966
쥐스트 퐁텐 1967
루이 뒤고게 1967–1968
조르주 불로뉴 1969–1973
슈테판 코바츠 1973–1975
미셸 이달고 1975–1984
앙리 미셸 1984–1988
미셸 플라티니 1988–1992
제라르 울리에 1992–1993
에메 자케 1994–1998
로제 르메르 1998–2002
자크 산티니 2002–2004
레이몽 도메네크 2004–2010
로랑 블랑 2010–2012
디디에 데샹 2012-현재


선수[편집]

현재 선수 명단[편집]

다음은 2014년 FIFA 브라질월드컵 최종 23인 명단이다

# 포지션 선수 이름 생일 (나이) 출장 클럽
GK 위고 요리스 (주장) 1986년 12월 26일(1986-12-26) (28세) 54 0 잉글랜드 토트넘 홋스퍼 FC
GK 스테판 루피에르 1986년 9월 27일(1986-09-27) (28세) 0 0 프랑스 AS 생테티엔
GK 미카엘 랑드로 1979년 5월 14일(1979-05-14) (35세) 11 0 프랑스 SC 바스티아
DF 마티유 드뷔시 1985년 7월 28일(1985-07-28) (29세) 18 2 잉글랜드 아스널 FC
DF 라파엘 바란 1993년 4월 25일(1993-04-25) (21세) 4 0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CF
DF 마마두 사코 1990년 2월 13일(1990-02-13) (25세) 16 2 잉글랜드 리버풀 FC
DF 엘리아큄 망갈라 1991년 2월 13일(1991-02-13) (24세) 3 0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 FC
DF 바카리 사냐 1983년 2월 14일(1983-02-14) (32세) 38 0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 FC
DF 루카스 디그네 1993년 7월 20일(1993-07-20) (21세) 0 0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FC
DF 파트리스 에브라 1981년 5월 15일(1981-05-15) (33세) 62 0 이탈리아 유벤투스 FC
MF 요한 카바예 1986년 1월 14일(1986-01-14) (29세) 26 2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FC
MF 앙트완 그리에츠만 1991년 3월 21일(1991-03-21) (23세) 0 0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MF 레미 카벨라 1990년 3월 8일(1990-03-08) (24세) 0 0 잉글랜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MF 모건 슈네이더린 1989년 11월 8일(1989-11-08) (25세) 0 0 잉글랜드 사우스햄튼 FC
MF 마티유 발뷔에나 1984년 9월 28일(1984-09-28) (30세) 30 5 러시아 FC 디나모 모스크바
MF 블레이즈 마투이디 1987년 4월 9일(1987-04-09) (27세) 19 0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FC
MF 무사 시소코 1989년 8월 16일(1989-08-16) (25세) 13 0 잉글랜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MF 폴 포그바 1993년 3월 15일(1993-03-15) (21세) 7 1 이탈리아 유벤투스 FC
MF 리오 마뷔바 1984년 3월 8일(1984-03-08) (30세) 9 0 프랑스 릴 OSC
FW 올리비에 지루 1986년 9월 30일(1986-09-30) (28세) 26 5 잉글랜드 아스널 FC
FW 카림 벤제마 1987년 12월 19일(1987-12-19) (27세) 64 18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CF
FW 로익 레미 1987년 1월 2일(1987-01-02) (28세) 21 4 잉글랜드 첼시 FC

최근 차출된 선수[편집]

아래 명단은 최근 1년 사이에 차출된 프랑스 대표팀 선수 명단이다.

포지션 선수 생년월일 (나이) 출장 최근 소집
GK 미카엘 랑드로 1979년 5월 14일(1979-05-14) (35세) 11 0 프랑스 SC 바스티아 2013년 10월 11일,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DF 마사디오 아이다라 1992년 12월 2일(1992-12-02) (22세) 0 0 잉글랜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13년 12월 28일, 터키 터키
DF 아딜 라미 1985년 12월 27일(1985-12-27) (29세) 26 1 이탈리아 AC 밀란 2013년 9월 10일, 벨라루스 벨라루스
DF 엘리아큄 망갈라 1991년 2월 13일(1991-02-13) (24세) 3 0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 FC 2013년 9월 10일, 벨라루스 벨라루스
DF 제레미 마티유 1983년 10월 29일(1983-10-29) (31세) 2 0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2013년 6월 9일, 브라질 브라질
DF 베누아 트레물리나 1985년 12월 28일(1985-12-28) (29세) 2 0 스페인 세비야 FC 2013년 6월 9일, 브라질 브라질
DF 크리스토프 잘레 1983년 10월 31일(1983-10-31) (31세) 5 1 프랑스 올랭피크 리옹 2013년 3월 26일, 스페인 스페인
DF 마푸 양가-음비와 1989년 5월 15일(1989-05-15) (25세) 3 0 이탈리아 AS 로마 2013년 3월 26일, 스페인 스페인
DF 앙토니 레베이에르 1979년 11월 10일(1979-11-10) (35세) 20 1 잉글랜드 선더랜드 AFC 2012년 11월 14일, 이탈리아 이탈리아
MF 막심 고날론 1989년 3월 10일(1989-03-10) (25세) 6 0 프랑스 올랭피크 리옹 2013년 9월 10일, 벨라루스 벨라루스
MF 요안 구르퀴프 1986년 7월 11일(1986-07-11) (28세) 31 4 프랑스 올랭피크 리옹 2013년 6월 9일, 브라질 브라질
MF 제레미 메네즈 1987년 5월 7일(1987-05-07) (27세) 24 2 이탈리아 AC 밀란 2013년 6월 5일, 우루과이 우루과이
FW 앙드레-피에르 지냑 1985년 12월 5일(1985-12-05) (29세) 17 4 프랑스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13년 9월 10일, 벨라루스 벨라루스
FW 바페팀비 고미스 1985년 8월 6일(1985-08-06) (29세) 12 3 웨일스 스완지 시티 AFC 2013년 6월 9일, 브라질 브라질
FW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1991년 5월 28일(1991-05-28) (23세) 2 0 프랑스 올랭피크 리옹 2013년 6월 9일, 브라질 브라질

선수 기록[편집]

최다 출장 선수[편집]

아 래 기록은 2010년 7월 12일을 기준으로 한다. (현역 선수는 굵은 글씨로 나타냄.)

# 이름 활동 기간 경기
1 릴리앙 튀랑 1994–2008 142 2
2 티에리 앙리 1997–2010 123 51
3 마르셀 드사이 1993–2004 116 3
4 지네딘 지단 1994–2006 108 31
5 파트릭 비에이라 1997–2010 107 6
6 디디에 데샹 1989–2000 103 4
7 로랑 블랑 1989–2000 97 16
= 빅상트 리자라쥐 1992–2004 97 2
9 실뱅 윌토르 1999–2006 92 26
10 파비앵 바르테즈 1994–2006 87 0


최다 득점 선수[편집]

아래 기록은 2010년 7월 12일을 기준으로 한다. (현역 선수는 굵은 글씨로 나타냄.)

# 이름 활동 기간 경기 경기당 평균 골
1 티에리 앙리 1997–2010 51 123 0.41
2 미셸 플라티니 1976–1987 41 72 0.57
3 다비드 트레제게 1998–2008 34 71 0.48
4 지네딘 지단 1994–2006 31 108 0.29
5 쥐스트 퐁텐 1953–1960 30 21 1.43
= 장피에르 파팽 1986–1995 30 54 0.56
7 유리 조르카에프 1993–2002 28 82 0.34
8 실뱅 윌토르 1999–2006 26 92 0.28
9 장 뱅상 1953–1961 22 46 0.48
10 장 니콜라 1933–1938 21 25 0.84

주석[편집]

  1. 나머지 두 팀은 미국 (1938년에 경기를 치르지 않고 기권) 과 브라질 (모든 대회 본선 진출) 이다.
  2. “France v. Belgium 1904 Match Report”. FFF. 2010년 7월 4일에 확인함. 
  3. “France v. Germany 1982 Match Report”. FFF. 2010년 6월 4일에 확인함. 
  4. “Communiqué de la Fédération”. 《FFF》 (fff.fr). 2010년 6월 19일. 2010년 6월 21일에 확인함. 
  5. “World Cup 2010: Nicolas Anelka sent home after bust-up”. UK: BBC. 2010년 6월 19일. 2010년 6월 19일에 확인함. 
  6. “French football in chaos after players' mutiny”. 《Agence France Press》 (Google). 2010년 6월 20일. 2010년 6월 21일에 확인함. 
  7. “Brazil advances, Italy held to another WCup draw”. Google. Associated Press. 2010년 6월 20일. 2010년 6월 21일에 확인함. 
  8. “Communiqué de la FFF”. 《FFF》 (FFF). 2010년 6월 20일. 2010년 6월 21일에 확인함. 
  9. [1]
  10. Kim Willsher (2010년 6월 23일). “Sarkozy to quiz Thierry Henry over French World Cup fiasco”. UK: The Guardian. 
  11. “France World Cup squad suspended for Norway friendly”. BBC Sport. 2010년 7월 23일. 2010년 7월 24일에 확인함. 
  12. “Nicolas Anelka laughs at 'nonsense' 18-match French ban”. BBC Sport. 2010년 8월 18일. 2010년 8월 18일에 확인함. 
  13. Davies, Lizzy (2010년 8월 17일). “Nicolas Anelka suspended for 18 matches by France over World Cup revolt”. UK: The Guardian. 2010년 8월 18일에 확인함.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