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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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별칭 Les Fennecs
(사막여우들) Les Renards (Foxes)
연맹 알제리 축구 연맹
대륙 아프리카 축구 연맹
감독 프랑스 크리스티앙 구르퀴프
주장 마지드 부게라
최다 출전자 라크다르 벨루미 (101)
최다 득점자 압델하피드 타스파우트 (35)
FIFA 코드 ALG
FIFA 랭킹 이 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최고 순위: 19위 (2012년 11월-12월)
최저 순위: 103위 (2008년 6월)
첫 국제
경기 출전
튀니지 튀니지 1 - 2 알제리 알제리
(튀니지; 1957년 6월 1일)
최다 점수차
승리
알제리 알제리 15 - 1 남예멘 남예멘
(리비아; 1973년 8월 17일)
최다 점수차
패배
헝가리 헝가리 9 - 2 알제리 알제리
(헝가리 부다페스트; 1967년 9월 16일)
유니폼
홈경기
원정경기
FIFA 월드컵
출전 횟수 4회 (1982년에 처음 출전)
최고 성적 16강 (201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출전 횟수 15회 (1968년에 처음 출전)
최고 성적 우승 (1990년)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알제리를 대표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사막여우들 또는 사막의 전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돌파와 드리블에 강점을 지니고 체격조건이 우수한 팀으로 거친 압박을 잘 사용하는 팀이다. 전통적 라이벌은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이다. 최근에는 2010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이집트 대표팀과 타이브레이크에서 1-0 승리를 거둔후에 발생한 사건 때문에 이집트와의 라이벌 관계가 더욱 심화되었다.

1982년 FIFA 월드컵 당시 유로 1980 우승국이였던 서독을 상대로 신승을 거뒀으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인 서독 대 오스트리아 경기에서 오스트리아가 서독에게 고의로 패해주는 바람에 3팀 모두 2승 1패가 되었으나 알제리는 골득실차에서 밀려 탈락했다. 이사건 이후 이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FIFA는 1986년 FIFA 월드컵부터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들은 전부 동시에 시작하도록 규정을 바꿨다.[1]


개요[편집]

알제리는 이웃 모로코, 튀니지와 비교하면 독립을 늦게 한 편이었다. 프랑스와 전쟁까지 치뤄가며 힘겹게 독립을 얻은 만큼 국내 사정이 굉장히 복잡했고, 따라서 모로코와 튀니지가 각종 국제대회 지역예선에서 매번 치고받을 때 알제리는 구경만 하는 처지였다. 196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첫 참가해서 바로 본선에 진출은 했지만 그 때 뿐이었고, 이후 월드컵이던 대륙컵이던 1차예선을 넘은 적이 거의 없었다. 1960~1970년대에는 리비아와 더불어 북아프리카의 약체 국가 중 하나였다.


북아프리카 돌풍의 중심, 승부조작의 피해자[편집]

국제대회에서 좀처럼 모습을 비추지 못하던 알제리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980년 올림픽이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열리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자본 진영 대부분이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이에 동조해 불참하는 국가들이 여럿 생겼는데 특히 가나와 이집트같이 올림픽에 단골 출전하는 국가들이 빠지면서 알제리가 기회를 잡았다. 3장의 티켓 중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처음으로 올림픽에 진출해 8강까지 오르며 선전했다.

같은 해에 열린 198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도 결승까지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고, 이런 상승세에 힘입어 1982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 편성은 만만치 않았다. 유로1980 우승국 서독, 오스트리아, 칠레와 한 조가 된 것이다. 톱시드팀 서독은 말할 것도 없고 오스트리아, 칠레도 전부 월드컵 4강에 오른 적이 있었던 유럽과 남미의 강호였고 알제리는 국제대회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당연히 3전 전패 탈락이 확실시되고, 첫 경기는 서독전이었다. 서독 감독은 알제리와의 경기를 앞두고 여기서 지면 짐 싸고 귀국하겠다라는 폭탄 발언을 했는데 당시엔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여졌다. 아무도 서독이 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열리고 서독은 예상 외로 고전했고, 알제리가 득점 기회를 잘 살리면서 알제리 2:1 서독으로 경기가 끝났다. 월드컵 첫 경기에서 첫 승리였고 서독은 거짓말같은 패배를 당했는데 현재까지도 18회의 월드컵 역사상 독일이 첫 경기에서 패배한 유일한 대회로 남아있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의 팀이 유럽 최강을 이겼다는 사실에 전세계 언론은 경악했다. 오죽하면 지금까지도 1950년 FIFA 월드컵에서 미국잉글랜드를 1:0으로 이긴 것,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북한이탈리아를 1:0으로 이긴 것,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카메룬아르헨티나를 1:0으로 이긴 것,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세네갈프랑스를 1:0으로 이긴 것과 더불어 월드컵 5대 이변에 꼽힌다. 알제리 선수들은 이 기세를 이어 오스트리아와의 2차전에서도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아쉽게 0:2로 패했고, 마지막 경기에서 남미의 강호 칠레를 3:2로 이기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총합 2승 1패, 5득점 5실점으로 2라운드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오스트리아가 2승, 서독이 1승 1패로 서독이 오스트리아를 2점차 이하로 잡으며 알제리 대신 서독이 2라운드에 진출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같은 날에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서독과 오스트리아 팀은 이미 알제리:칠레전의 결과를 알고 있었고, 경우의 수를 계산해 자기들이 오를 수 있도록 암묵적으로 합의를 했다. 서독:오스트리아 경기가 시작된지 10분만에 서독 선수들이 첫 득점에 성공하고, 이후 80분 동안 두 팀 모두 공만 돌리며 지루하게 경기를 끌었다. 누가 봐도 더 이상 골을 넣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경기장에 있던 관중들은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지만 그들은 이대로 경기를 끝내고 싶어했고 결국 경기가 그대로 끝나면서 알제리가 2승 1패를 거두고도 탈락했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를 비롯해 당사자인 서독과 오스트리아 언론들도 일제히 승부조작에 비난을 퍼부었다. 결과에 충격받은 서독 축구팬이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였으며, 프랑스 감독은 대놓고 노벨 평화상감이라고 비난했고, 알제리에선 승부조작이라며 당연히 난리가 났다. 자기들의 최종 결과를 미리 알고 두 팀이 짜고 스코어를 조작했다며 FIFA에 제소를 했는데 안타깝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서독, 오스트리아가 그대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하필 오스트리아는 2라운드에서 알제리와 감정이 무척 나쁜 프랑스에 밀려 탈락했고 서독은 그런 프랑스와 세기의 명경기를 펼치고 결승까지 올라갔으니 알제리 입장에선 굉장히 억울할 노릇이었다.

서독:오스트리아의 승부조작은 지금까지도 월드컵 역사상 가장 더러운 경기, 추악한 경기로 남아있다. 월드컵 우승후보를 이기고 남미의 강호까지 이기며 첫 월드컵에서 상당히 분전한 알제리는 비록 탈락했지만 자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월드컵 최고 순위, 한 대회 최고 승점을 기록하고 있다[2] 전 대회 튀니지에 이어 북아프리카의 전력을 전세계에 알린 대회였다.

알제리는 비록 패소했지만 FIFA에서는 이런 사태가 앞으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해, 국제대회 조별리그 최종전은 동시간대에 열리는 것으로 규정을 변경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기존까지 조 2위가 토너먼트(2라운드)에 올라가는 관행을 깨고, 1986년 대회에서는 조 3위 와일드카드 제도를 시행하여 조 3위인 6팀 중 4팀을 2라운드(16강)에 오를 수 있게 규정을 바꾸었다. 이는 월드컵 참가국이 32개국으로 확대되면서 자연스레 사라지기는 했지만, 최종전을 동시간에 열리게 한 것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월드컵 본선 뿐만 아니라 지역예선, 각 대륙컵, 연령별 대회, 올림픽, 심지어 클럽 챔피언스리그에 이르기까지 모든 축구 대회에 이를 적용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알제리가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월드컵 돌풍 이후[편집]

이 때의 대활약으로 알제리는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다음 대회에서 선전할 수 있을거란 기대감을 받았다. 예상대로 다음 대회인 1986년 FIFA 월드컵 진출에 성공하면서 아프리카 역사상 최초 2연속 진출이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전 대회의 돌풍을 잇지 못하고 브라질, 스페인, 북아일랜드와 만나 1무 2패로 맥없이 탈락했다. 이후 24년 동안 월드컵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으며, 80년대의 영광을 뒤로 안고 오랫동안 그저 그런 팀으로 남았다. 다만 자국에서 열린 199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잠깐 어느 정도 영향력은 보여주었지만, 그마저도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네이션스컵에서 4강 이상 오른 적조차 없었고, 간간히 기니가봉 같은 고춧가루 팀에 잡혀 네이션스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기도 했다. 이렇게 알제리는 국제 무대에서 거의 완벽하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24년만의 본선 진출[편집]

그러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이집트를 제치고 24년만에 본선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최종예선에서 이집트와 만나 치열한 혈전을 벌인 끝에 두 팀 모두 4승 1무 1패 9득점 4실점으로 최종예선을 마무리했고, 상대전적에서도 1승 1패로 각각 홈에서 알제리가 3:1, 이집트가 2:0으로 잡아 완벽한 동률을 이루어 제3국(수단)에서 단판 플레이오프를 펼쳤다.

수단에서 열린 최종 플레이오프에서 알제리가 이집트에 1:0으로 이기면서 24년만의 본선에 오르고 알제리는 축제의 장으로 바뀌었다. 당시 이집트 원정팬들이 알제리 선수단 버스에 돌을 던지고 욕설을 날려 알제리 선수 몇몇이 부상을 당하고 경기장 내에서 팬들끼리 싸움이 일어나는 등 분위기가 굉장히 험악했다. 양쪽 모두 월드컵 본선에 못 올라온지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는데, 이 때의 일로 양국 외교관계가 단절될 뻔했고 지금까지도 국민감정이 그리 좋지 않을 정도로 영향이 컸던 대회였다.

본선 C조(잉글랜드, 미국, 슬로베니아)에 속했는데 월드컵 8개조 중 가장 쉬운 조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이 중에서도 가장 약한 팀이라는 평이 대부분이었고 예상대로 1무 2패 조 최하위로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잉글랜드와 0:0 무승부를 거두긴 했지만 알제리가 잘하기보단 잉글랜드가 못 했던 경기였고, 세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게다가 20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진출조차 실패하면서 국내 팬들조차 다음 월드컵에 올라가리란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2014년 FIFA 월드컵 지역예선 H조(말리, 베냉, 르완다)에서 비교적 쉬운 상대들을 만나 5승 1패의 호성적으로 최종 플레이오프에 진출, 2시드에서 에티오피아를 제외하면 가장 약팀이었던 부르키나파소를 만났다. 1차전 원정에서 2:3으로 패하며 탈락하는가 싶었는데 2차전 홈에서 1:0으로 이기며 총합 3:3,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두 번째 2연속 진출을 일궈냈다.

상대적으로 어려운 상대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그나마도 불안불안하게 올라왔기에 월드컵 진출국 중 최하위의 전력으로 여겨졌다. 그나마 조 추첨에서 가장 쉬운 조였던 H조(벨기에, 러시아, 대한민국)에 걸리긴 했지만 여기서도 최하위의 전력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벨기에-러시아-대한민국-알제리 순으로 결과를 예측했고, 당시 감독이던 할릴호지치 감독도 알제리 협회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분위기도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가전에서 슬로베니아, 아르메니아, 루마니아를 연이어 잡아내며 조직력을 다지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상당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며 조직력과 체력에서도 우위를 보이며 유럽의 다크호스에 3연승을 거두며 결코 무시할 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제 2의 전성기[편집]

첫 경기 벨기에전 역시 유망주가 넘쳐나는 톱시드팀을 상대로 선제골을 뽑아내고 시종일관 벨기에 수비진을 몰아붙이며 재밌는 경기를 보여주었다. 비록 역전 페널티킥을 허용하여 1:2로 역전패했지만 경기 내용은 비등비등했을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올라와있었다. 벨기에 선수들과 감독들 모두 하나같이 알제리는 어려운 상대였다라고 인터뷰를 할 정도로 힘든 경기였는데, 이런데도 대한민국홍명보호는 상대에 대한 대비는 전혀 하지 않고 러시아전 스쿼드를 그대로 끌고 왔다. 알제리의 할릴호지치 감독은 그나마 가능성 있는 대한민국을 잡기 위해 조 추첨 직후부터 A매치와 지역예선 경기들을 샅샅이 훑어봤으며, 선수 면면을 파악하기 위해 K리그까지 챙겨보았다. 그리고 벨기에전에서 뛰었던 선수를 5명이나 교체하여 공격적인 전술로 바꾸었고, 그게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홍명보는 4-2-3-1 전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런던 올림픽 전술을 국가대표팀까지 끌고 와 튀니지에 0:1, 가나에 0:4로 대패하는 졸전을 펼치고도 러시아전 무승부로 자신감이 붙었는지 알제리 선수가 누군지도 모른 채 경기를 펼쳤던 것이다.

모든 것이 알제리가 유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대한민국 2:4 알제리. 전반 초반 10분은 대한민국이 밀어붙이는 듯 했다가 알제리의 역습에 무너지면서 선제골, 그 뒤로는 공도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알제리의 맹공이 시작되었다. 전반전이 끝날 땐 3:0. 알제리가 9번의 슈팅을 할 동안 한국은 단 한 번도 슛을 하지 못했다. 박주영 선수는 두 경기에서 선발로 나왔음에도 단 한 번도 슈팅을 때리지 못하고 피파울 0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남겼고, 수비수 역시 알제리 선수들을 마킹하기는 커녕 공간을 열어주기 바빴고, 정성룡 골키퍼 역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졌다. 결국 후반전에 김신욱, 이근호 선수가 투입되면서 그나마 경기력이 살아났고 알제리 선수들은 장신 김신욱의 등장에 당황하며 공중볼을 내주는 등 불안한 모습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결국 한국에 2골을 허용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수비공간을 잘 파고들면서 한 골을 더 추가해 경기는 4:2로 끝났다. 아프리카 월드컵 역사상 한 경기 최다 득점 신기록이 깨졌다. 한 경기 4골은 아프리카 팀들 중 처음 기록한 것이었고, 32년만에 본선에서 승리를 가져온 경기가 되었다. 그렇게 알제리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기록을 새로 썼다. 32년만의 승리에 아프리카 한 경기 최다 득점을 올리면서 전국적인 축제에 휩싸였고, 그동안 할릴호지치 감독을 비난했던 언론과 축구협회도 입장이 돌아서게 되었다. 마지막 러시아전에서 지지만 않으면 16강을 사실상 확정짓는 상황이었다. 3차전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선제골을 내주며 어렵게 경기를 시작했지만, 경기가 진행될수록 분위기를 끌어오며 결국 동점골을 넣고 월드컵 사상 첫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16강에서는 대회 챔피언이자 32년 전 이변의 주인공 독일을 만났다. 당시 라마단 기간이어서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수들은 자국 축구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경기를 펼쳤고, 그 강력한 독일은 제대로 자신의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더운 날씨에 라마단이라는 변수로 제 기량을 펼칠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있는 힘을 다해 경기를 펼친 알제리 선수들은 그야말로 찬사를 받을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텐벡으로 막는 수비축구를 하지도 않고, 경기를 고의적으로 지연시키지도 않고, 자포자기해서 포기하다시피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플레이를 끝까지 보여주었고, 힘을 잃지 않는 정신력으로 경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독일은 너무도 강한 상대였고 결국 1:2로 졌다.

할릴호지치 감독과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고 서로를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각종 인터뷰에서도 선수들이 감독 덕분에 16강에 올랐다면서 연이은 찬사를 보냈고, 감독도 선수들의 공으로 돌리면서 그동안 자신을 비난했던 언론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1982년 못지않게 알제리에서는 축제 분위기였고 임시 공휴일까지 선포되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표팀의 귀국을 반기고 감독을 직접 만나 연임하면 안 되겠냐는 제스처를 여럿 보냈지만 결국 할릴호지치 감독은 터키의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했다.

알제리의 첫 16강 진출은 1982년 대회의 그 것에 미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최근 몇 십년간의 국제대회 성적을 보면 가장 훌륭한 성적이었다. 여기에는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전부 포함이 되어 있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단점으로 꼽히는 것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회 전, 대한민국 언론은 감독과 선수들의 불화, 감독과 축구협회 언론의 불화, 선수단 안에서의 싸움 등등 가십기사를 내보내며 알제리를 별 것 아닌 식으로 여론몰이를 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열리고 언론의 설레발도 결국은 다 허구였음이 드러났다. 조직력, 개인기량, 압박, 스피드, 수비력를 비롯해 선수들의 목표를 향한 정신 자세까지 알제리의 완벽한 승리였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아프리카를 잘 모르는 타 대륙에서는 다 같은 아프리카라고 생각해 개인기는 좋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분위기가 무너지면 그대로 가라앉는다, 팀보다 돈을 더 생각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 가십 기사도 대부분 그런 방향으로 나와서 불화설이 집중적으로 언급되었다. 하지만 알제리는 이슬람교를 믿고 아랍어를 쓰는 아랍국가이다. 역사적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거의 교류가 없었으며 유럽, 중동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였고 인종적으로도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이 절대 다수인 나라다.

물론 개인기량과 피지컬이 좋은 편이긴 했지만, 할릴호지치 감독의 흔들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아프리카라서 그런게 아니었고,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의 강팀들도 심심하면 가십 기사로 내보내는 것이므로 알제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분위기가 불리하게 흘러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싸우는 모습, 팀이 하나가 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모습, 기쁨과 좌절 사이에서 보여준 서로에 대한 존중은 오히려 누가 누굴 비판해야 하는지 모를 상황이었다. 알제리가 이 대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전의 알제리와도 달랐을 뿐더러 대한민국, 카메룬, 온두라스 등등 최악의 모습만 보여준 일부 팀들에게 깊은 교훈을 남겼다.

이 월드컵으로 인해 알제리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지역예선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으로 4전 전승을 기록하며 아프리카 팀들 중 가장 먼저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상황이고, FIFA랭킹도 2014년 9월 기준 20위로서 아프리카 1위 자리를 사상 처음으로 가져왔다. 연이은 호성적으로 인해 그동안 최고랭킹이었던 19위를 새롭게 경신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FIFA 월드컵 (본선)[편집]

FIFA 월드컵 기록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무* 득점 실점 승점
우루과이 1930년 독립 이전
이탈리아 1934년
프랑스 1938년
브라질 1950년
스위스 1954년
스웨덴 1958년
칠레 1962년
잉글랜드 1966년 기권
멕시코 1970년 예선 탈락
서독 1974년
아르헨티나 1978년
스페인 1982년 조별리그 13위 3 2 0 1 5 5 6
멕시코 1986년 조별리그 22위 3 0 1 2 1 5 1
이탈리아 1990년 예선 탈락
미국 1994년
프랑스 1998년
대한민국일본 2002년
독일 2006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년 조별리그 28위 3 0 1 2 0 2 1
브라질 2014년 16강 14위 4 1 1 2 7 7 4
러시아 2018년 ? ? ? ? ? ? ? ? ?
카타르 2022년 ? ? ? ? ? ? ? ? ?
합계 4회 진출(4/13[3]) 16강(1회) 13 3 3 7 13 19 12
순위 FIFA 월드컵 역대 순위 : 41위


FIFA 월드컵 (예선)[편집]

년도 경기 무* 득점 실점 승점
우루과이 1930년 독립 이전
이탈리아 1934년
프랑스 1938년
브라질 1950년
스위스 1954년
스웨덴 1958년
칠레 1962년
잉글랜드 1966년 기권
멕시코 1970년[4] 2 0 1 1 1 2 1
서독 1974년[5] 2 1 0 1 2 5 3
아르헨티나 1978년[6] 4 1 2 1 2 3 5
스페인 1982년[7] 8 5 2 1 16 6 17
멕시코 1986년[8] 6 5 1 0 13 3 16
이탈리아 1990년[9] 6 3 2 1 6 2 11
미국 1994년[10] 8 2 3 3 8 11 9
프랑스 1998년[11] 2 1 0 1 2 3 3
대한민국일본 2002년[12] 10 3 3 4 13 14 12
독일 2006년[13] 12 3 5 4 15 15 14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년[14] 13 8 2 3 17 8 26
브라질 2014년[15] 8 6 0 2 16 7 18
합계 81 38 21 22 111 79 135


아프리카 네이션스컵[편집]

CAF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기록 네이션스컵 예선전 기록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무* 득점 실점 승점 경기 무* 득점 실점 승점
수단 1957년 독립 이전 독립 이전
이집트 1959년
에티오피아 1962년
가나 1963년 불참 불참
튀니지 1965년
에티오피아 1968년 조별리그 6위 3 1 0 2 5 6 3 4 4 0 0 9 2 12
수단 1970년 예선 탈락 4 1 1 2 3 3 4
카메룬 1972년 2 1 0 1 3 4 3
이집트 1974년 2 0 1 1 2 3 1
에티오피아 1976년 2 0 1 1 2 3 1
가나 1978년 4 2 0 2 7 5 6
나이지리아 1980년 준우승 2위 5 2 2 1 6 7 8 2 1 0 1 3 2 3
리비아 1982년 4강 4위 5 2 1 2 5 6 7 4 2 1 1 13 5 7
코트디부아르 1984년 4강 3위 5 3 2 0 8 1 11 4 2 2 0 10 4 8
이집트 1986년 조별리그 6위 3 0 2 1 2 3 2 4 2 2 0 8 1 8
모로코 1988년 4강 3위 5 1 3 1 4 4 6 2 1 1 0 2 1 4
알제리 1990년 우승 1위 5 5 0 0 13 2 15 자동참가(개최국)
세네갈 1992년 조별리그 10위 2 0 1 1 1 4 1 자동참가(전 대회 우승국)
튀니지 1994년 예선 통과 후 실격 6 4 1 1 13 4 13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6년 8강 5위 4 2 1 1 5 3 7 10 4 5 1 12 7 17
부르키나파소 1998년 조별리그 15위 3 0 0 3 2 5 0 6 3 1 2 9 5 10
가나나이지리아 2000년 8강 6위 4 1 2 1 5 4 5 8 4 1 3 14 8 13
말리 2002년 조별리그 15위 3 0 1 2 2 5 1 6 3 2 1 9 7 11
튀니지 2004년 8강 8위 4 1 1 2 5 7 4 4 3 1 0 6 1 10
이집트 2006년 예선 탈락 12 3 5 4 15 15 14
가나 2008년 6 2 2 2 6 6 8
앙골라 2010년 4강 4위 6 2 1 3 4 10 7 13 8 2 3 17 8 26
적도 기니가봉 2012년 예선 탈락 6 2 2 2 5 8 8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3년 조별리그 13위 3 0 1 2 2 5 1 4 4 0 0 9 2 12
모로코 2015년 진출 확정 4 4 0 0 8 1 12
리비아 2017년 ?
합계 15회 진출(15/26[16]) 우승(1회) 60 20 18 22 69 72 78 119 60 31 28 185 105 211
순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역대 순위 : 9위


하계 올림픽[편집]

올림픽 축구 기록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무* 득점 실점 승점
일본 1964년 불참
멕시코 1968년 진출 실패
서독 1972년
캐나다 1976년
소련 1980년 8강 8위 4 1 1 2 4 5 4
미국 1984년 진출 실패
대한민국 1988년
스페인 1992년[17]
미국 1996년[18]
오스트레일리아 2000년[19]
그리스 2004년[20]
중국 2008년[21]
영국 2012년[22]
합계 1회 진출(1/13[23]) 8강(1회) 4 1 1 2 4 5 4


선수단[편집]

최근 선수 명단[편집]

일자: 2014년 6월 2일 종류: 2014년 FIFA 월드컵 선수 명단

# 포지션 선수 이름 생일 (나이) 출장 클럽
1 GK 세드릭 시 모하메드 1985년 1월 09일(1985-01-09) (29세) 1 0 알제리 CS 콘스탄틴
16 GK 무함마드 제마무시 1985년 3월 19일(1985-03-19) (29세) 7 0 알제리 USM 알제리
23 GK 라이스 음보리 1986년 4월 25일(1986-04-25) (28세) 28 0 불가리아 PFC CSKA 소피아
2 DF 마지드 부게라 1982년 10월 7일(1982-10-07) (32세) 62 4 카타르 레크위야 스포츠 클럽
5 DF 라피크 할리시 1986년 9월 2일(1986-09-02) (28세) 29 1 포르투갈 아카데미카 드 코임브라
6 DF 자멜 메스바흐 1984년 10월 9일(1984-10-09) (30세) 26 0 이탈리아 UC 삼프도리아
12 DF 칼 메자니 1985년 5월 15일(1985-05-15) (29세) 26 1 프랑스 발랑시엔 FC
4 DF 에사이드 벨칼렘 1989년 1월 1일(1989-01-01) (25세) 13 1 잉글랜드 왓포드 FC
17 DF 리아신 카다무로 1988년 3월 5일(1988-03-05) (26세) 7 0 스페인 RCD 마요르카
3 DF 파우치 굴람 1991년 2월 1일(1991-02-01) (23세) 6 0 이탈리아 SSC 나폴리
20 DF 아이사 만디 1991년 10월 22일(1991-10-22) (23세) 2 0 프랑스 스타드 드 랭스
8 MF 메드히 라센 1984년 5월 15일(1984-05-15) (30세) 30 0 스페인 헤타페 CF
7 MF 하산 옙다 1984년 3월 14일(1984-03-14) (30세) 25 2 이탈리아 우디네세 칼초
11 MF 야신 브라히미 1990년 4월 08일(1990-04-08) (24세) 6 0 포르투갈 FC 포르투
14 MF 나빌 벤탈렙 1994년 11월 24일(1994-11-24) (20세) 3 1 잉글랜드 토트넘 홋스퍼 FC
19 MF 사피르 타이데르 1992년 4월 29일(1992-04-29) (22세) 11 3 이탈리아 US 사수올로 칼초
22 MF 메흐디 모스테파 1983년 8월 30일(1983-08-30) (31세) 23 0 프랑스 AC 아작시오
9 FW 나빌 길라스 1990년 4월 20일(1990-04-20) (24세) 5 2 포르투갈 FC 포르투
10 FW 소피앵 페굴리 1989년 12월 26일(1989-12-26) (24세) 19 5 스페인 발렌시아 CF
13 FW 이슬람 슬리마니 1988년 1월 18일(1988-01-18) (26세) 20 10 포르투갈 스포르팅 CP
15 FW 엘 아르비 힐렐 수다니 1987년 11월 25일(1987-11-25) (27세) 22 11 크로아티아 GNK 디나모 자그레브
18 FW 압델무멘 자부 1987년 1월 31일(1987-01-31) (27세) 8 1 튀니지 클럽 아프리칸
21 FW 리야드 마흐레즈 1991년 4월 21일(1991-04-21) (23세) 2 0 잉글랜드 레스터 시티 FC


주요선수[편집]


관련 항목[편집]


주석[편집]

  1. "What's the dodgiest game in football history?", 《The Guardian》, 2004년 8월 10일 작성.
  2.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에 올랐지만 최종 성적은 1승 1무 2패로 2승 1패의 1982년보다 승점이 모자란다. 최종 순위 역시 14위로, 1982년에는 조별리그 탈락 국가 중 가장 높은 13위를 기록했다.
  3. 본선 진출 횟수 비율. 독립 이후로 계산
  4. 1차예선에서 튀니지에 1무 1패(홈 1:2, 원정 0:0)로 밀려 2차예선 진출에 실패했다.
  5. 1차예선에서 기니에 1승 1패(홈 1:0, 원정 1:5)로 골득실에 밀려 2차예선 진출에 실패했다.
  6. 1차예선에서 리비아에 1승 1무(홈 1:0, 원정 0:0)로 앞서 처음으로 2차예선 진출했으나 튀니지에게 1무 1패(원정 0:2, 홈 1:1)로 밀려 3차예선에 가지 못했다.
  7. 1차예선에서 시에라리온을 1승 1무(원정 2:2, 홈 3:1), 2차예선에서 수단을 1승 1무(홈 2:0, 원정 1:1), 3차예선에서 니제르를 1승 1패(홈 4:0, 원정 0:1) 골득실로 누르고 최종예선에 진출하여 나이지리아에 2승(원정 2:0, 홈 2:1)을 거두며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고, 본선에서도 서독과 칠레를 이기며 이변을 일으켰다.
  8. 전 대회의 선전에 힘입어 2차예선부터 경기를 시작했다. 앙골라에 1승 1무(원정 0:0, 홈 3:2), 3차예선에서 잠비아에 2승(홈 2:0, 원정 1:0), 최종예선에서도 튀니지에게 2승(원정 4:1, 홈 3:0)하며 2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9. 2차예선부터 참가했다. 2차예선 A조(코트디부아르, 짐바브웨, 리비아(중간기권))에서 3승 1무 조 1위로 최종라운드 진출했으나, 이집트에게 1무 1패(홈 0:0, 원정 0:1)로 밀려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10. 1차예선 A조(가나, 부룬디, 기권 - 우간다)에서 2승 1무 1패 조 1위로 최종예선에 진출했으나, A조(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에서 2무 2패 최하위로 탈락했다.
  11. 1차예선에서 케냐와 1승 1패(원정 1:3, 홈 1:0)로 승점은 같았지만 골득실에 밀려 2차예선에도 가지 못했다.
  12. 1차예선 A그룹에서 카보베르데를 1승 1무(합계 2:0)으로 누르고 최종예선에 진출, C조(세네갈, 모로코, 이집트, 나미비아)에서 2승 2무 4패 조 4위로 탈락했다. 프랑스를 잡는 이변을 일으키며 대회 8강까지 오른 세네갈, 전통적인 북아프리카 강호 모로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최다 우승국 이집트와 한 조에 묶인 죽음의 조였다.
  13. 1차예선에서 니제르에 2승(합계 7:0)으로 2차예선에 진출했으나, 4조(앙골라, 나이지리아, 짐바브웨, 가봉, 르완다)에서 1승 5무 4패에 그치며 조 5위로 탈락하는 굴욕을 맛봤다.
  14. 1차예선 없이 2차부터 참여했다. 2차예선 6조(감비아, 세네갈, 라이베리아)에서 3승 1무 2패 조 1위로 최종예선에 진출, C조(이집트, 잠비아, 르완다)에서 4승 1무 1패(9득점 4실점)이집트와 승점, 골득실, 다득점, 승자승까지 같아 수단에서 최종 플레이오프를 치뤘다. 여기서 1:0으로 승리하면서 24년만의 본선에 올랐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감정이 격해진 이집트 훌리건들이 알제리 선수단 차에 돌을 던져 부상을 입히는 사태도 발생했다.
  15. 1차예선 없이 2차부터 참여했다. 2차예선 H조(말리, 베냉, 르완다)에서 5승 1패 조 1위를 했지만 2차예선이 10개조로 이루어져 있어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부르키나파소를 만나 1승 1패(합계 3:3)로 동률이 되었지만 원정 다득점(원정 2:3, 홈 1:0)에 앞서 2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다.
  16. 본선 진출 횟수 비율. 독립 이후로 계산
  17.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
  18.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
  19.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
  20.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
  21.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
  22.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
  23. 본선 진출 횟수 비율. 독립 이후로 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