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모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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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모리뉴
Mourinho CSKA Moscow 05042010 2.jpg
2010년의 주제 모리뉴
개인 정보
출생 1963년 1월 26일(1963-01-26) (51세)

포르투갈 포르투갈 세투발

175cm
포지션 감독
클럽 정보
현 소속팀 잉글랜드 첼시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1980-1982
1982-1983
1983-1985
1985-1987
포르투갈 히우 아브 FC
포르투갈 CF 벨레넨세스
포르투갈 GD 세심브라
포르투갈 UF 코메리쿠 인두스트리아
0016 000(2)
0016 000(2)
0035 000(1)
0027 000(8)
팀 감독/코치
2000
2001-2002
2002-2004
2004-2007
2008-2010
2010-2013
2013-
포르투갈 벤피카
포르투갈 UD 레이리아
포르투갈 포르투
잉글랜드 첼시
이탈리아 인테르나치오날레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잉글랜드 첼시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03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03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조제 마리우 두스 산투스 펠리스 모리뉴(포르투갈어: José Mário dos Santos Félix Mourinho, 1963년 1월 26일 ~ ) 또는 줄여서 조제 모리뉴포르투갈축구 감독이자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현재 첼시 FC의 감독을 맡고 있다.

생애[편집]

유년 시절과 초기 경력[편집]

무리뉴 감독은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뛰기도 한 골키퍼 출신의 아버지 펠렉스 모리뉴의 아들로, 비교적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버릇을 제대로 들였다. 소년 시절부터 아버지 밑에서 상대팀의 약점을 찾아오는 역할을 맡으며 굉장한 스카우터로 성장했다. 또한 무리뉴 감독은 포르투갈 유소년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지만, 부상으로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삼류’였다고 하는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어 프로 선수로서 경력은 없었다. 하지만 스카우터와 리더쉽만큼은 타고났다

성인이 된 무리뉴 감독은 리스본에서 체육 교사가 되었지만 지도자로서의 길을 택해 스코틀랜드에서 영어를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스포르팅 CP의 감독으로 취임한 보비 롭슨 감독 밑에서 통역관으로 프로팀에서 스텝 역할을 맡게 된다. 이후 롭슨 감독의 신임을 얻어 FC 포르투FC 바르셀로나의 통역관 역할까지 함께 동행하였다. 이후 그는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에 지원하기 위해 많은 양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으나 회장의 눈에 과르디올라가 들어와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2010년 FC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모리뉴를 상대하게 된 반 할 감독은 "무리뉴가 이렇게까지 굉장한 감독인 줄은 몰랐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포르투[편집]

00-01 시즌 포르투갈의 SL 벤피카의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으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당시 부진에 빠진 벤피카를 되살려 라이벌 스포르팅을 3-0으로 꺾는 등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선수단내 파벌을 형성하며 클럽의 내분을 일으켰고 좋지못한 경기력에 단 여덟 경기만에 쫒겨났다. 다음 01-02 시즌에는 우나이앙 데 레이리아의 감독으로 취임해 19경기에서 9승 7무 3패 리가 4위의 성적을 거두며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반기가 끝난 2002년 1월, 부진에 빠진 수페르 리가의 명문 FC 포르투의 지휘봉을 잡아 남은 경기에서 15경기 11승 2무 2패의 최고의 성적으로 팀의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렸다. 포르투의 감독으로 취임할 당시 "(중위권에 만족하지못한다.) 다음 시즌에는 포르투를 챔피언으로 만들겠다"는 발언으로 승부욕을 내빛추기 시작하고, 이후 그 말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02-03 시즌, 모리뉴 감독의 말대로 FC 포르투는 스쿼드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술로 포르투갈 리가포르투갈 컵의 우승컵을 되찾아오며 다시 포르투갈의 왕좌에 등극하게 된다. 또한 UEFA 컵에서도 연장전 끝에 셀틱 FC을 물리치며, "트레블"을 달성해 유럽 무대에서 주목을 받게 된다.

03-04 시즌에는 보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리그 2연패를 달성하였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16강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8강에서 올림피크 리옹, 4강에서 데포르티보를 가볍게 격파하며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겔젠키르헨에서 AS 모나코를 3-0으로 격파해 17년만에 유럽 챔피언 자리에 등극시켰다.

첼시[편집]

04-05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첼시 FC에 부임한 그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전술이라 찬양받는 역습축구로 클럽 역사상 50년 만의 리그 우승과 리그컵에서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첼시는 05-06 시즌에도 다른 클럽과 다른 파워축구를 보이며 압도적인 경기력 끝에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다음 06-07 시즌에는 FA컵리그컵에서 우승하며 컵 더블을 달성했지만 구단주와의 마찰과 보드진과의 불화 끝에 2007년 9월 20일 첼시와의 계약을 상호 해지했다. 표면적으로는 상호 해지이나 사실상 해임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첼시는 수비수들이 부상으로 연달아 이탈해 모리뉴 감독이 겨울 이적 시장에서 수비수 보강을 요구했으나 보드진이 이를 거절해 불화가 시작됐다.

공백 기간[편집]

이후 모리뉴 감독은 유럽 변방의 최고 클럽들로 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리뉴를 자극하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 유로 2008 예선에서 탈락한 스티브 맥라렌 감독의 아량으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고의 스카우터를 맡게 될 것이 굉장히 유력해졌다. 하지만 모리뉴 감독은 ‘심사숙고 끝에 잉글랜드 스카우터 직책을 사퇴’한다는 일방적인 성명을 발표해 잉글랜드 국민들의 반발을 샀다. 그리고 잉글랜드 대표팀에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취임했다.

인테르나치오날레[편집]

2008년 6월 2일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의 후임으로 이탈리아 명문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08-09 시즌 세리에 A수페르 코파에서 우승을 강탈했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만치니 감독 시절에 이어 세 시즌 연속이 되는 16강 탈락에 그쳤다.

하지만 다음 09-10 시즌에는 16강에서 첼시 FC에게 2연승(1차전 2-1 2차전 1-0), 8강에서 CSKA 모스크바에게 2연승(1차전 2차전 모두 1-0으로 승리) 4강에서 FC 바르셀로나에게 1승1패 (1차전 3-1 승리 2차전 0:1 패)를 기록 했으나 합산전적 3:2로 결승진출 , 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 (2-0 으로 승리) 각국의 강호들을 운으로 격파하며 클럽 역사상 45년 만에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차지했다. 그리고 같은 시즌 세리에 A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하며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하는 영광을 역사에 남겼다. 하지만 우승 기자회견에서 인테르나치오날레의 감독에서 물러난다고 밝히며 결국 2010년 5월 31일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다시 취임했다.

레알 마드리드[편집]

09-10 시즌,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이 다시 취임한 레알 마드리드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투자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카카 등 유럽 최고의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지만 결국 무관에 그쳤다. 보드진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당시 지휘봉을 잡은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이 시즌 종반 팀의 경기력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챔피언스리그와 코파 델 레이에서 조기 탈락한 것이 빌미가 되어 결국 해임되었다.

페예그리니 감독의 후임으로 취임한 모리뉴 감독은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도전은 매력적이다”라며 특유의 자신감을 표출했으며, 양쪽 풀백, 중앙 미드필더, 측면 윙어의 영입을 클럽에 요청하여 메수트 외질, 사미 케디라, 디 마리아, 세르히오 카날레스, 페드로 레온 등을 영입시켰다.

2010-11 시즌, 과르디올라에게 더비에서 5대0으로 졌고 겨우 리그 준우승과 코파 델 레이 우승에 그쳤으며, 다음 시즌인 2011-12시즌에는 연이은 연승 행진으로 승점 100점이라는 프리메라리가 승점 신기록을 세우며 리그 우승을 가볍게 했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 에서는 3시즌(2010-2011, 2011-2012, 2012-2013 ) 연속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012-13시즌 과르디올라가 떠난 라이벌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에는 감독 빌라노바가 올랐다. 그러나 그런 빌라노바를 상대로도 모리뉴는 아무런 우위를 점하지 못하며 자신의 무능력함을 입증했고 결국 한시즌만에 바르셀로나에게 리그 우승컵을 헌납했으며 빌라노바는 모리뉴의 승점 100점 기록에 도달했다. 프리메라리가 뿐 아니라 UEFA 챔피언스리그 에서도 도르트문트의 클롭 감독과 레반도프스키에게 지며 탈락했고 또한 코파델레이 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까지 패배를 당하며 결국 모든 대회를 통틀어 단 하나의 트로피도 따내지 못하는 무관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지원해준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과 열성적인 응원을 보여준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당연히 우승컵을 원했지만 아쉽게도 결과가 나오지 못했다. 호르헤 발다노, 지네딘 지단, 이케르 카시야스등과 또다시 연이은 불화를 겪은 것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없다는 점이 그의 감독직 유지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결국 그는 목표를 전혀 달성하지 못한채 레알 마드리드에서 사퇴했다.[1]

첼시로 취임[편집]

2013년 6월 3일 첼시로 취임하였다. 유럽 슈퍼컵에서 다시 만난 과르디올라의 뮌헨에게 굉장한 경기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퇴장과 연장후반 막판에 실점을 하면서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패하였다.

전술 스타일과 평가[편집]

전술은 각 팀에 따라 다르지만, 무엇보다도 과감한 파워를 통한 전술 구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선수 기용에 있어서도 굉장힌 능력을 보이며 선수를 잘 성장시켜서 스쿼드에 포함시킨다.

언론에 대한 자신감있는 태도나 설득력있는 언행 등은 갈 때까지 가서 모든 축구팬들의 응원을 받고 있지만 일부는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의 대단한 인격은 FC 바르셀로나의 당시 수석코치인 티토 빌라노바와의 설전으로 잘 드러난다. 모리뉴 감독과 여러 번 설전을 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 역시 “모리뉴가 잉글랜드를 떠나는 것은 잉글랜드 축구계에 있어 큰 불행이다. 그를 뛰어 넘는 감독은 더 이상 축구사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평상시의 모습은 언론에서의 모습과 달라 스타 선수가 즐비한 팀에서도 자신의 소양을 바탕으로 굉장한 용병술을 펼친다. 항상 자신있는 자세이며 첼시 FC에서는 히카르도 카르발료, 파울루 페헤이라,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 등이 모리뉴 감독을 그리워했다. 특히 조 콜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선수의 기량을 최대로 끌어올리게 되며 그의 용병술을 입증하고 그 역시 인정했다.

선수들을 굉장히 존중하는 것으로도 유명해, 05-06 시즌에는 우승을 차지하자마자 우승 메달을 서포터석으로 던지며 서포터들에 대한 존중을 표현했고, 선수와 마찬가지로 서포터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첼시 서포터들은 모리뉴 감독이 첼시를 떠난 후에도 여전히 지지를 보냈으며, 이는 후일 그의 첼시 컴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팀의 주장인 이케르 카시야스와 팀의 에이스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와 불화가 있는 등 말도 안되는 설이 돌았고, 이로 인해 팀을 사퇴한다.

포메이션의 경우 상대팀에 따른 여러 가지 형태를 구사할 수 있고, 그 능력은 확실히 증명되었다. 지금까지 인솔한 팀에서도 역습 전술 주로 사용했지만, 레알 시절에도 역습 전술로 굉장히 매력있는 모습을 보여 서포터들의 환호성을 자아냈다. 대략적인 전술은 수비에 기반을 두다 한차례 역습을 골로 연결하고 그 이후로 잠궈놓고 공격적인 축구를 시작한다. 심판의 말도 안되는 판정에 항상 선수 편을 들며 익살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사생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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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버지로 부인은 앙골라 출신이다.

통역관 시절을 통해 6개국어(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카탈루냐어, 영어, 프랑스어)를 할 수 있다. 때문에 주요 축구 국가에 밀접할 수 있고, 언어상으로는 대화가 불가능한 선수가 거의 없다.

고향 클럽인 비토리아 세투발의 팬이며 미래에는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특이 사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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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0 시즌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여 6번째로 트레블을 달성한 감독(이탈리아 클럽 최초의 트레블).
  • 각기 다른 두 팀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한 세 번째 감독(FC 포르투, 인테르나치오날레).
  • 각기 다른 4개 리그 컵대회를 우승한 첫 번째 감독(코파 이탈리아, 포르투갈 컵, FA컵, 코파 델 레이).
  • 각기 다른 4개 리그를 우승한 첫 번째 감독(포르투갈 리가, 프리미어리그, 세리에 A, 프리메라리가).
  • 2002년 2월 23일 FC 포르투 감독 시절 SC 베이라-마르에게 2:3으로 패한 이후 9년간 리그 홈무패 (2011년 4월 2일 스포르팅 히혼 과의 프리메라리가 경기에서 9년만에 리그 홈경기에서 패배하며 종료).
  • 2002.01 ~ 2004.05월 포루투 감독 재직 시절, 포르투의 미드필더 세사르 페이소토(Cesar Peixoto)가 심각한 부상을 입어 왼쪽 다리 수술을 하게 됐을 때 부상을 당한 선수의 수술실까지 함께 들어간 축구사의 유일한 감독. 자신의 팀 휘하 선수들을 아껴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하고, 그래야 그의 회복을 위한 준비를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술실로 들어갔다고 함. 또한 세사르로 하여금 삶의 아주 어려운 순간까지 함께한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등 선수들의 동기부여와 심리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 (출처: 모리뉴 그 남자의 기술, 한준 지음)
  • 모리뉴는 전체 미팅 시 반드시 해당 리그의 모국어로 이야기했고 선수들과 개별 미팅 때엔 그 선수의 모국어로 대화를 시도하며 선수가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배려함. 더불어 심리적으로 친해지기 위해 장난을 치고 선수들간의 거리를 적극적으로 줄이고자 노력하는 인물.

일례로 첼시 감독 시절, 첼시의 베테랑 미드필더 프랭크 램파드에게 샤워 중에 다가가 네가 세계최고의 선수라고 말해준 사연은 널리 알려짐. 더불어 인테르 감독 재직 시절 식사시간에도 감독과 스태프, 선수간 구분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했다고 함. (출처: 모리뉴 그 남자의 기술, 한준 지음)

  • 2009년 8월 8일 베이징에서 열린 이탈리아 슈퍼컵 기자 회견에서 중국 기자들이 쓸데없는 질문을 하자 "중국 축구가 왜 쓰레기인지 이제 알았다. 중국은 그 동안 올림픽에서 많은 금메달을 차지해 왔지만 축구는 아니다. 그 이유는 선수, 감독은 물론이고 기자들마저 쓰레기이기 때문" 이라고 중국 기자들의 수준낮은 행동에 일침을 놓았다.[2]
  • 지네딘 지단마르코 마테라치를 화해시켰다. 이 두사람 모두 모리뉴에게는 친분이 있는 선수들이였기 때문에 모리뉴가 직접 나서서 중재했다.
  • 2011,2012년 FIFA 발롱도르시상식에서 주제프 과르디올라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올해의 감독상 시상에 유리해지자 그는 시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2012년에는 "다음 경기 전술을 구상 중" 이라고 시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았으나 대신 아들의 유소년 경기를 관람을 하여서 논란을 빗었다.
  • 모리뉴는 상대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통해 상대의 심리를 흔들고 경기 중에 상대팀 선수에게 말을 걸어 집중력을 흐트러트리기도 함. 일례로 2012/2013 시즌, 레알마드리드 감독 재직 시절, 레알마드리드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준결승전에서 상대 수비수 마르첼 슈멜처를 불러 레알마드리드 미드필더 메주트 외질에게 전술지시를 전해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음. (출처: 모리뉴 그 남자의 기술, 한준 지음)
  • 단순히 감독으로 끝나는 인물이 아니라 자존심이 엄청나게 강력한 데다가 권력에 대한 열망이 엄청난 야심가이다. 이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재직중인 시절에는 호르헤 발다노, 지네딘 지단, 이케르 카시야스등과 모두 마찰을 빚었다. 하지만 사람 자체는 온후하고 선량한 인물인 관계로 자신의 아랫사람들과는 친분이 깊다.
  • 권력에 대한 야심이 엄청나면서도 아랫사람들을 아끼는 성격을 가졌다. 레알마드리드의 감독 시절 훈련하기로 되어있는 날 중 하루를 골라서 훈련 대신 고기(바베큐)파티를 하도록 조치해서 선수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줬다.
  • 약간은 건방진 어록들을 많이 남겼다. 때문에 모리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의 구분이 확실하다.

경력[편집]

우승 경력[편집]

개인 수상 경력[편집]

  • FIFA 발롱도르 최고의 감독 : 2010
  • UEFA 올해의 팀 최고의 감독 (2): 2002-03, 2003-04, 2009-10
  • 월드 사커 매거진 최고의 감독 (2): 2003-04, 2004-05, 2009-10
  • IFFHS 올해 최고의 감독 (2): 2004, 2005, 2010
  • BBC 선정 올해 최고의 감독: 2004-05
  • 포르투갈 리가 최고의 감독 (2): 2002-03, 2003-04
  •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감독 (2): 2004-05, 2005-06
  • 세리에A 최고의 감독 (2) : 2008-09, 2009-10
  • International Sports Press Association 최고의 감독: 2009-10
  •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감독 (3): 2004년 11월, 2005년 1월, 2007년 3월
  • 프리메라리가 최고의 감독 (1): 2010-11

감독 통계[편집]

2013년 11월 26일 기준

국가 부임 이적 및 해임 기록
G W D L Win % GF GA +/−
벤피카 포르투갈 2000년 9월 20일 2000년 12월 5일 11 6 3 2 54.55 17 9 +8
UD 레이리아 포르투갈 2001년 4월 14일 2002년 1월 20일 29 15 8 6 51.72 49 32 +17
포르투 포르투갈 2002년 1월 23일 2004년 5월 26일 125 90 21 13 72 251 92 +159
첼시 잉글랜드 2004년 6월 2일 2007년 9월 20일 185 124 40 21 67.03 330 119 +211
인테르 이탈리아 2008년 6월 2일 2010년 5월 28일 108 67 26 15 62.04 185 94 +91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2010년 5월 31일 2013년 6월 1일 178 128 28 22 71.91 475 168 +307
첼시 잉글랜드 2013년 6월 3일 12 7 3 2 58.33 21 10 +11
합계 647 437 129 81 67.54 1,328 524 +804

주석[편집]

  1. 조제 모리뉴, 레알 마드리드에서 하차
  2. 중국 기자들의 ‘도 넘은’ 비매너, 그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