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홋스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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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핫스퍼 FC
전체 이름 Tottenham Hotspur Football Club
별칭 The Spurs, The Lilywhites
설립 연도 1882년 9월 5일
홈 구장 화이트 하트 레인
수용 인원 36,214 명
구단주 영국 ENIC 그룹(조 루이스)
회장 영국 대니얼 레비
감독 아르헨티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프리미어리그 2013-14 리그 6위
홈경기
원정경기
서드킷

토트넘 핫스퍼 풋볼 클럽(영어: Tottenham Hotspur Football Club)은 잉글랜드 런던 북부의 토트넘을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이다. 홈구장은 화이트 하트 레인이다. 줄여서 토트넘 또는 핫스퍼라고 부르기도 한다. 라틴어에서 유래된 클럽의 신조는 "Audere est Facere"로 "실천이 곧 도전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엠블럼은 축구공 위에 서있는 수평아리의 형상이다.

토트넘 핫스퍼는 1882년 창단되었다. 1901년 FA컵에서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이 결과로 풋볼 리그 창립 당시 12개 클럽 중 유일하게 논리그 클럽으로서 참여하였다. 토트넘 홋스퍼은 1960-61 시즌 리그 우승과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20세기에 더블을 기록한 최초의 클럽이되었다. 토트넘 홋스퍼는 또한, 1963년에 대영제국 축구 클럽 최초로 UEFA 컵 위너스컵을 들어올렸다. 1980년대에는 FA컵 두 번, 커뮤니티 실드UEFA컵을 각각 한 번씩 우승하였다.

토트넘 핫스퍼는 현재 프리미어리그에 속해 있으며, 1992년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고 나서 한번도 강등이 되지 않은 팀 중 한 곳이다. 프리미어리그에 함께 소속되어 있는 같은 도시의 팀인 아스널 FC, 첼시 FC와 라이벌이며 특히 아스널과의 경기는 '북런던 더비'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현재 100년이 넘은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의 노후화 때문에 새로운 6만석규모의 홈구장인 뉴 화이트 하트 레인 구장 신축 계획을 발표하였다. 빠르면 2017년에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팀의 별명에는 스퍼스 등이 있다

역사[편집]

창단과 클럽명의 유래[편집]

1882년 9월 5일 화요일에 Mr. Cameron's School, 지역의 중등학교 학생, 그리고 당시 4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핫스퍼 크리켓 클럽(Hotspur Cricket Club)의 멤버들에 의해서 핫스퍼 FC(Hotspur Football Club; Hotspur FC)가 창단되었다. 1883년부터 존 립셔(John Ripsher)가 초대 회장직을 역임했으며 1884년 현재의 클럽명인 토트넘 핫스퍼 FC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게된다.

클럽명의 핫스퍼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의 극중 인물로도 등장했던 해리 핫스퍼(헨리 '핫스퍼' 퍼시로도 불뤼운다.)에서 유래하였다. 해리 핫스퍼는 노섬벌랜드 백작 헨리 퍼시의 아들로 1402년 호밀던 힐 전투(Battle of Humbleton Hill)에서 용맹함을 과시하며 스코틀랜드를 격파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국왕 헨리 4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1408년 슈루즈베리 전투(Battle of Shrewsbury)에서 전사했다. 퍼시 가의 직계 혈통은 1670년에 맥이 끊겼다.

아스날과의 라이벌 구도[편집]

토트넘은 창단시기부터 현재까지 대영제국 런던 북부 토트넘 지역에서 쭉 자리 잡고 있는 클럽이다. 아스널 FC는 원래 연고지인 남부지역의 울위치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탓에 관중들이 다른 구단들보다 비교적 적었고, 이는 구단이 다른 클럽과 재정적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1910년, 헨리 노리스가 당시 파산위기에 빠져있던 아스널 FC를 인수하였다. 노리스는 아스날의 연고지를 옮겨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고, 1913년, 2부 리그로 강등된 뒤 연고지를 북런던에 있는 하이베리의 아스널 스타디움으로 옮기게 된다. 아스널 스타디움과 토트넘의 화이트 하트 레인과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졌고 그전 까지 북런던의 유일한 팀이였던 토트넘 핫스퍼와 자연스레 대치하게 된다.

아스널은 1919년, 2부 리그에서 5위를 차지해 승격에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부 리그 팀 참가를 20팀에서 22팀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원래 1부리그 19위로 2부 리그로 강등 예정이었던 첼시는 남게 되었고 2부 리그 1위와 2위가 1부 리그로 승격 되고 3위 반즐리나 4위 울버햄튼 중 한 팀이 승격할 예정이었으나 아스널의 구단주 노리스는 아스널이 처음으로 풋볼 리그에 가입한 남부 클럽임을 강조해 풋볼 리그 역사에 기여한 점을 들어 풋볼 리그측을 설득하였고, 풋볼 리그측은 이에 동의해 투표방식으로 1부 리그 최하위 팀과 아스널 중 한 팀을 1부리그에 승격시키기로 결정을 한다. 결국 아스널이 선거에서 승리해 아스널이 1부 리그로 승격되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토트넘과 아스날의 악연이 시작된다.

1950~60년대의 전성시대[편집]

토트넘은 50년대 초부터 60년대 후반까지가 전성시대로 알려져 있다. 리그 2번 우승이 다 이 때의 기록이며, 나머지 대부분의 FA컵 우승이나 커뮤니티 실드 우승, 위너스컵 등 우승도 전부 마찬가지다. 현재도 토트넘은 FA컵 최다 우승 기록 보유팀이며, 이때 런던 시장의 부인이 컵에 푸른 리본과 흰 리본을 달아준 일화는 유명하다. 이때의 기록은 대부분 리그 1~5위 에 들었던 때였을 정도로 토트넘은 강하였다. 이 때 토트넘에는 지미 그리브스라는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필두로 레스 알렌, 테리 디슨, 바비 스미스로 이어지는 포워드진이 있었으며, 잉글랜드 최고의 공격 라인으로 손꼽혔다. 토트넘의 전설적인 캡틴 대니 블란치플라워와 그의 짝 데이브 마케이, 존 화이트(축구선수) 그리고 정상급 레프트 윙어 클리프 존스 등이 중심이 된 미드필드진과 피터 베이커, 론 헨리, 모리스 노만 등 수비진까지 전 포지션에서 리그 정상급 선수들을 갖추고 있었다. 1962년은 '더블'을 유럽 최초로 기록한 해로 의미가 더욱 깊다.

1970년대~80년대 초반의 토트넘[편집]

토트넘은 71년, 73년 리그컵을 우승하고 81년, 82년에는 연달아 FA컵 우승컵을 들었다. 이 시기에 토트넘은 유럽대회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는데 당시 인터 시티 페어스컵이 71-72시즌에 UEFA컵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고 바로 토트넘이 72년도 초대 UEFA컵 우승클럽이 된다. 74년도에는 준우승을 차지했고. 그리고 84년에 다시 UEFA컵 트로피를 손에 쥐며 유럽에 이름을 알렸다.

19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 의미없던 리그3위[편집]

토트넘은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빅4가 시작되기전) 1984-85시즌 리그 3위, 1986-87시즌 리그 3위, 1989-90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하여 국제 대회(UEFA컵)를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으나, 리버풀 FC의 훌리건 들이 저질렀던 헤이젤 참사에 의해 잉글랜드 클럽은 국제 대회를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되었 으므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빅4'에 대항하던 유일한 팀[편집]

프리미어 리그가 시작된 90년대엔 '빅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리버풀 FC, 아스널 FC )체제였다. 거기에 2003년 로만이 인수한 첼시 FC가 추가 되면서 '빅4'가 되었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이들의 행보는 아주 뛰어났다. 2004년 마틴 욜 감독이 토트넘에 부임 후 토트넘은 이들에 맞서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특히 2005/2006시즌 마지막 1경기 식중독 때문에 패배한것은 치명적 이었다. 하지만 정작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건 2010/2011 시즌이 처음이다.

'가레스 베일'과 빅6의 등장[편집]

토트넘 홋스퍼 FC의 가레스 베일

2008-09시즌 언어 장벽을 극복 못하고 경질된 후안데 라모스 감독의 후임으로 포츠머스 FC해리 레드냅 감독이 토트넘의 새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NK 디나모 자그레브루카 모드리치도 영입되었다. 이후 토트넘은 2008-09시즌을 8위로 마감하였다. 그리고, 다음시즌인 2009-10시즌에는 첼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아스널 FC에 이어서 빅4팀 이였던 리버풀 FC만수르의 인수후 강력해진 맨체스터 시티 FC를 제치고 리그 4위를 차지하였다. 2010-11 시즌 조별리그에서 강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FC 트벤터, SV 베르더 브레멘과 함께 A조에 속하게 된다. 인테르와의 원정경기에서, 전반 초반에 골키퍼 고메즈의 퇴장(동시에 페널티 허용)으로 어쩔 수 없이 루카 모드리치를 빼고 쿠디치니 골키퍼를 투입, 10명으로 경기하다 4-0으로 전반을 마감한다. 그러나 후반에 가레스 베일이 해트트릭을 달성, 팀은 결국 4-3으로 패배하였지만, 베일은 평점 10점을 받고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세계적인 인테르의 수비수 마이콘이 "베일을 막기가 어려웠다." 고 하였을 정도였다. 이후 홈경기에서 토트넘은 인테르를 3-1로 꺾었다. 이 경기에서도 베일은 평점 10점을 기록, 인테르를 상대로 연속 두 번 평점 10점을 받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3승2무1패로 승점11점 A조 1위로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 진출했다. 16강전 AC밀란 과의 경기에서 토트넘은 원정0-1, 홈0-0, 합계 0-1로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 하였다. 8강전 레알 마드리드에게 합계 5-0으로 패하였다. 리그 후반의 부진으로 결국 5위로 밀려나는 바람에 2011-12시즌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였다. 2011-12시즌, 초반의 부진을 딛고 시즌 중반에 3위까지 올랐으나 해리 레드냅 감독의 탈세 혐의가 벗겨지는 동시에 카펠로 잉글랜드 감독의 사임(같은 날 거의 같은 시간의 일이었다), 그 후 레드냅 감독의 잉글랜드 감독설이 퍼지며 분위기가 흔들리게 된다. 힘든 3월 후 다시 분발했으나 시즌 후반 지켜오던 3위는 아쉽게 놓치고 4위로 시즌을 마감하였지만, 리그 6위로 마감한 첼시 FC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여 유로파 리그에 다시 출전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첼시 FC, 아스널 FC, 리버풀 FC 빅 4팀 중 아스널 FC, 리버풀 FC 2팀이 부진하면서 맨체스터 시티 FC와 토트넘이 가세해 빅6 개념이 등장하였다 . 잉글랜드 감독직과 관련하여 다니엘 레비 회장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UEFA 챔피언스리그 재진입에 실패하자 결국 해리 레드냅감독은 2012년 6월 14일 사임하였다. 하지만, 구단주의 압박이 심하였기에 경질이나 마찬가지로 보는 것이 중론이다.

2012년 7월 3일 토트넘은 해리 레드냅 감독의 후임으로 전 첼시 FC 감독이었던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를 임명하였다.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던 루카 모드리치라파엘 반더바르트가 각각 레알 마드리드, 함부르크 SV로 떠나고 얀 페르통언, 무사 뎀벨레, 휴고 요리스, 클린트 뎀프시, 길피 시구르드손등을 영입하며 보아스 감독은 다소 주축 선수들의 변화가 있던 상태에서 2012-13시즌을 치루게 되었다. 토트넘은 개막 3연전에서 비교적 약체팀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하면서 일부 팬들은 감독 경질론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이후 6라운드 올드 트래포트에서 23년동안 이기지 못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승리를 거두고, 팀의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승점 72점을 달성함으로써 첼시에서 실추한 명예를 상당부분 회복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종 승점 73점을 기록한 아스날에게 1점 뒤지며 최종 순위 5위를 기록함으로써 아쉽게도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실패하고 만다.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 감독은 시즌 초반 주로 기용하였던 시구르드손, 뎀프시가 만족스러운 활약을 펼치지 못하자 이내 아데바요르, 저메인 데포를 투톱으로 두는 전술 변화를 주었으나 아데바요르가 네이션스 컵에 차출되고, 데포가 부상으로 출전이 불가능해지자 레프트 윙어였던 가레스 베일을 중앙으로 배치하는 강수를 둔다. 프리롤 역할을 부여받은 베일은 12-13시즌 토트넘에서 30골 16도움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며 세계 최고 선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베일을 영입하기 위해 역대 최다 이적료도 지불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게 된다. AS 로마에서 뛰어난 스카우트 능력으로 이름을 알린 프랑코 발디니 단장을 영입한 토트넘은 이적 시장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13-14시즌 챔스 티켓 확보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컨퍼더레이션스 컵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준 파울리뉴FC 트벤테의 윙어 샤들리를 영입하여 스쿼드를 더욱 단단하게 구축했으며, 라리가 인간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불리는 로베르토 솔다도를 영입하여 12-13시즌 팀의 약점이었던 공격진을 완벽하게 보강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근 에티엔 카푸에도 영입하여 챔스 진출 팀에 밀리지 않을려고 스쿼드를 강화하고 있는 토트넘이다. 블래드 키리케스과 에리크 라멜라의 영입을 성공하며 스티븐 콜커의 이적으로 인한 수비진의 빈자리를 메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가레스 베일을 85.3m 파운드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켰다.[1] 그러나 라멜라와 솔다도 등 새로 영입된 선수들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2013년 11월 15일 리그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0-6 대패, 이어서 같은 해 12월 16일 리버풀 FC와의 홈에서 열린 리그 경기에서도 0-5 대패를 당하자 대니얼 레비 구단주는 빌라스 보아스의 경질을 발표했다.[2]

새로운 시대[편집]

유니폼[편집]

전통적으로, 토트넘은 남색셔츠를 입고 플레이 했으나, 다양한 컬러를 사용하기도 했다. 클럽 창단 초기 즈음엔 하늘색과 흰색로 이뤄진 반팔셔츠나 빨간색셔츠와 파란색 반바지를 입었고, 초콜렛빛 갈색과 황금색 유니폼을 거쳐, 1899-00시즌에 이르러서야 그당시 높은 주가를 달리고있던 프리스턴 노스 엔드팀의 영향을 받고 마침내 흰색셔츠에 남색 반바지를 입게 되었다. 2011-12 시즌까지는 푸마가 유니폼을 제조하였다가 2012-13 시즌 부터는 언더아머가 제조 하게되었다.

엠블럼[편집]

1910년 FA컵 우승 이후로 토트넘 홋스퍼의 엠블럼은 싸움닭이 그려진 문장이었다. 해리 홋스퍼는 그의 싸움닭 발목에 박차를 달곤 했는데, 이가 클럽 문장에 반영된 것이다. 토트넘의 상징인 닭은 일명 게임콕 또는 코크럴 이라 불리는 닭이다. 게임콕은 싸움닭 코크럴은 싸우기 좋아하는 젊은이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09년 이전 토트넘 선수인 윌리엄 제임스 스콧은 축구공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는 박차를 단 어린 수탉을 형상화한 청동 뱃지를 만들었는데, 그 후 부터, 수탉과 축구공이 그려진 문양이 클럽의 주요한 상징이 되었다. 초기에는 방패안에 닭을 그려 넣었으며 1966년 부터 축구공 위에 서있는 닭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서포터[편집]

토트넘 홋스퍼의 서포터는 '이드아미(Yidarmy)' 라고 하는데 줄여서 '이드(Yid)' 라고 한다. 이것은 유태인을 뜻하는 말인데 토트넘 홋스퍼의 구단이 자리 잡고 있는 토트넘이라는 지역이 예전부터 유태인들의 밀집지역이라 토트넘의 팬중에는 유태인의 피가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태인을 뜻하는 말인 이드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토트넘홋스퍼의 경기를 보다보면 얼핏 들어보면 이!이!이! 하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데 그게 바로 이드이다. 아무래도 유태인들은 나치에게 당한 아픈 과거가 있어서 라이벌팀인아스널 FC, 첼시 FC등은 항상 토트넘 홋스퍼의 서포터들 에게 "너희들은 아우슈비츠로가라" "저놈들을 가스실로 보내버려" 이런 응원구호를 상당히 많이 한다. 현재 런던에 속해있는 팀들중 가장 런던에서 서포터 수가 많으며 웨일스지역과 미국, 덴마크 벨기에, 아이슬란드에 많은 서포터들이 있다.

홈구장[편집]

토트넘 습지 (Tottenham Marshes)[편집]

토트넘은 그들의 첫 공식경기를 토트넘 습지(Tottenham Marshes)에서 치뤘고 6년동안 이곳을 홈그라운드로 사용했다. 정기적으로 늘어나는 관중을 수용하고 좀더 좋은 환경의 경기장을 사용하기 위해 이후 새로운 경기장으로 옮기게 된다.

노섬벌랜드 공원 (Northumberland Park)[편집]

1888년 클럽은 좀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자 토트넘 습지에서 노섬벌랜드 공원으로 홈구장을 옮기게된다. 클럽은 이곳에서 울위치 아스날을 상대로한 경기에서 14,000명의 폭발적인 관중수를 기록한다. 이로인해 토트넘은 훨씬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1899년 4월 현재의 화이트 하트 레인이 있는 곳으로 홈구장을 옮기게 된다.

화이트 하트 레인 (White Hart Lane)[편집]

토트넘의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

화이트 하트 레인(White Hart Lane)은 1899년 9월 4일 개장한이래 토트넘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어 왔다. 초기에는 주로 길핀 파크(Gilpin Park)라고 불뤼었으나 점차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1905년부터 토트넘은 부지를 완전히 사들여 영구적으로 홈구장을 소유하게 되었다.

구장은 토트넘 최고의 레전드로 일컬어지는 빌 니콜슨의 이름을 딴 거리인 빌 니콜슨 웨이(Bill Nicholson way)에 위치해있으며 총 수용인원은 한때 7만명에 육박하였으나 축구장 전 지역을 좌석으로 바꾼 이후에는 36,310명으로 줄었다.

노섬벌랜드 개발 프로젝트 (Northumberland Development Project)[편집]

2007년 클럽은 홈구장의 수용인원을 늘리기 위한 경기장 신축안을 공개했다. 신축 경기장 수용인원은 56,250명 규모로 계획되어 있으며 기존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 옆에 건설될 예정이다. 경기장 신축을 포함해 지역 전반적인 재개발 사업을 뜻하는 프로젝트로 2018년 새 경기장의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토트넘의 구단주[편집]

토트넘은 2001년부터 대체투자시장(AIM)에 지분을 상장시켰고, 주로 스포츠나 미디어 분야에 투자를 해온 ENIC International Ltd에서 2001년부터 조금씩 지분을 사들여 2013년 현재 토트넘의 지분을 85% 소유하고 있다. 현재 조 루이스Tavistock Group을 통해서 이 투자회사의 지분을 70.6%, 다니엘 레비가 29.4%를 소유하고 있고, 토트넘은 바로 ENIC그룹의 상무이사 자리에 있는 다니엘 레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역대 감독[편집]

팀을 사상첫 챔피언스 리그로 진출시켰던 해리 레드냅 전감독.

2004~2007.10 마틴 욜 감독

2007.10~2008.10 후안데 라모스 감독

2008.10~2012.06 해리 레드냅 감독

2012.07~2013.12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 감독

2013.12~ 팀 셔우드 감독

2014.7~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역대 우승기록[편집]

리그

우승 (2): 1950-51, 1960-61
우승 (4): 1921-22, 1951-52, 1956-57, 1962-63
우승 (2): 1919-20, 1949-50
우승 (2): 1908-09, 1932-33
우승 (1): 1899-1900
우승 (1): 1903-04

우승 (8): 1901, 1921, 1961, 1962, 1967, 1981, 1982, 1991
우승 (1): 1987
우승 (4): 1970-71, 1972-73, 1998-99, 2007-08
우승 (2): 1981-82, 2001-02
우승 (7): 1920-21, 1951-52, 1961-62, 1962-63, 1967-68*, 1981-82*, 1991-92* (* 공동)

국제 대회

우승 (2): 1971-72, 1983-84
우승 (1): 1973-74
우승 (1): 1962-63
우승 (4강): 1961-62

선수[편집]

현재 선수 명단[편집]

2014년 6월 26일 기준

임대 선수 명단[편집]

2013-14시즌 2014.6.26 기준

클럽 레전드[편집]

토트넘의 60년대 전설적인 공격수인 지미 그리브스 선수. 토트넘의 60년대 전설적인 공격수인 지미 그리브스 선수.

토트넘의 60년대 전설적인 팀의 주장이자 미드필더인 대니 블란치플라워 선수. 사진 설명:(좌) 대니 블란치플라워 (우) 조지 베스트 1979년. 토트넘의 60년대 전설적인 팀의 주장이자 미드필더인 대니 블란치플라워 선수.

토트넘의 90년대 팀의 간판 공격수인 위르겐 클린스만 선수. 토트넘의 90년대 팀의 간판 공격수인 위르겐 클린스만 선수. (현재는 미국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토트넘의 2000년대 팀의 주장이자 간판 수비수인 레들리킹 선수. 토트넘의 2000년대 팀의 주장이자 간판 수비수인 레들리킹 선수.

잉글랜드 잉글랜드
웨일스 웨일스
북아일랜드 북아일랜드
독일 독일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주요 선수[편집]

잉글랜드 잉글랜드
웨일스 웨일스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북아일랜드
미국 미국
 
코트디부아르 코트디부아르
온두라스 온두라스
말리 말리
아일랜드 아일랜드
러시아 러시아
불가리아 불가리아
포르투갈 포르투갈
네덜란드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토고 토고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독일 독일
브라질 브라질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덴마크 덴마크
프랑스 프랑스
벨기에 벨기에
알제리 알제리
대한민국 대한민국

역대 선수 기록[편집]

최다 출장 기록[편집]

최다 득점 기록[편집]

역대 주장[편집]

관련 항목[편집]

주석[편집]

  1. 베일의 이적료는 85m
  2. 토트넘, 비야스 보아스 감독 전격 경질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