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홋스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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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핫스퍼 FC
전체 이름 Spurs
별칭 The Spurs, The Lilywhites
설립 연도 1882년
홈 구장 화이트 하트 레인
수용 인원 36,310
구단주 영국 ENIC 그룹(조 루이스)
회장 영국 대니얼 레비
감독 포르투갈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12-13 5위
홈경기
원정경기
서드킷

토트넘 홋스퍼 풋볼 클럽(영어: Tottenham Hotspur Football Club)은 잉글랜드 런던 북부의 토트넘을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이다. 홈구장은 화이트 하트 레인이다. 줄여서 토트넘 또는 스퍼스이라고도 한다. 라틴어에서 유래된 클럽의 신조는 Audere est Facere로 '실천이 곧 도전이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엠블럼은 축구공 위에 서있는 수평아리의 형상이다.

토트넘 홋스퍼는 1882년 창단되었다. 1901년 FA컵에서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이 결과로 풋볼 리그 창립 당시 12개 클럽 중 유일하게 논리그 클럽으로서 참여하였다. 토트넘 홋스퍼은 1960-61 시즌 리그 우승과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20세기에 더블을 기록한 최초의 클럽이되었다. 토트넘 홋스퍼는 또한, 1963년에 잉글랜드 축구 클럽 최초로 UEFA 컵 위너스컵을 들어올렸다. 1980년대에는 FA컵 두 번, 커뮤니티 실드UEFA컵을 각각 한 번씩 우승하였다.

토트넘 홋스퍼는 현재 프리미어리그에 속해있으며, 1992년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고 나서 한번도 강등이 되지 않은 팀중 한곳이다.

프리미어리그에 함께 소속되어 있는 아스널, 첼시과 라이벌 이며. 특히, 아스널과의 시합은 '북런던 더비'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2012-13시즌 들어서 첼시의 전 감독 이었던 안드레 빌라스보아스의 부임과, UEFA 챔피언스리그첼시가 우승함으로써 첼시 또한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다.

현재 100년이 넘은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의 노화 때문에 새로운 6만석규모의 홈구장인 뉴 화이트 하트 레인 구장 신축 계획을 발표하였다. 빠르면 2018년에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목차

역사 [편집]

창단과 클럽명의 유래 [편집]

1882년 크리켓 팀을 모체로 창설되었으나 축구팀으로 전환하였고 이때의 첫 이름은 'Hotspur FC'였다. 클럽명의 홋스퍼는 영국 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의 극중 인물인 해리 홋스퍼에서 유래하였다.

아스날과 악연의시작 [편집]

토트넘이 아스널 FC과의 사이가 처음부터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토트넘은 초기부터 런던 북부 지역인 토트넘이라는 지역에 있었지만, 아스널 FC는 그들의 연고지인 남부지역이었던 울위치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관중들이 다른 구단들보다 비교적 적었고, 이는 결국 구단이 재정적 문제에 빠지게 되는 원인이었다. 1910년, 헨리 노리스아스널 FC를 인수할 때는 파산이 유력해 보였다. 노리스는 연고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고, 1913년, 2부리그로 강등된 뒤 연고지를 북런던에 있는 하이버리의 아스널 스타디움으로 옮기게 된다. 아스널 스타디움과 토트넘의 화이트 하트 레인과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졌다. 이 때까지 원래 북런던 지역은 토트넘만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아스날의 연고지 이전으로 북런던 지역의 팬이 갈라지게 되었다. 이후 리그 막판에 강등권을 벗어날 순위였던 토트넘을 포함, 몇 팀을 강등시키고 승격시키냐를 두고 FA에서 회의가 있었는데(강등 순위가 아닌 토트넘이 왜 그 후보에 들어가 있는지부터 미스테리다), 강등권에 포함되지도 않는 토트넘이 강등되고 2부리그에서 아스날이 석연치 않게 승격된다. 이런 일들이 더해지며 두 팀의 사이는 더더욱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감정의 골은 해가 갈수록 깊어갔고, 양 팀의 실력차와 상관없이 북런던 더비의 경기는 매번 그 치열함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유명한 유다 솔 캠벨의 이적건 등도 한몫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상대전적에서 약간 밀리던 토트넘이 역량을 강화하며 아스날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근래에는 아스날을 포함해 여러 런던 팀들과의 더비에서 패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1950~60년대의 전성시대 [편집]

토트넘은 50년대 초부터 60년대 후반까지가 전성시대로 알려져 있다. 리그 2번 우승이 다 이 때의 기록이며, 나머지 대부분의 FA컵 우승이나 커뮤니티 실드 우승, 위너스컵 등 우승도 전부 마찬가지다. 현재도 토트넘은 FA컵 최다 우승 기록 보유팀이며, 이때 런던 시장의 부인이 컵에 푸른 리본과 흰 리본을 달아준 일화는 유명하다. 이때의 기록은 대부분 리그 1~5위 에 들었던 때였을 정도로 토트넘은 강하였다. 이 때 토트넘에는 지미 그리브스라는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필두로 레스 알렌, 테리 디슨, 바비 스미스로 이어지는 포워드진이 있었으며, 잉글랜드 최고의 공격 라인으로 손꼽혔다. 토트넘의 전설적인 캡틴 대니 블란치플라워와 그의 짝 데이브 마케이, 존 화이트(축구선수) 그리고 정상급 레프트 윙어 클리프 존스 등이 중심이 된 미드필드진과 피터 베이커, 론 헨리, 모리스 노만 등 수비진까지 전 포지션에서 리그 정상급 선수들을 갖추고 있었다. 1962년은 '더블'을 유럽 최초로 기록한 해로 의미가 더욱 깊다.

1970년대~80년대 초반의 토트넘 [편집]

이때가 토트넘이 성적이 조금 부진했던 때이다.

19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 의미없던 리그3위 [편집]

토트넘은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빅4가 시작되기전) 1984-85시즌 리그 3위, 1986-87시즌 리그 3위, 1989-90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하여 국제 대회(UEFA컵)를 참가할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으나, 리버풀 FC의 훌리건 들이 저질렀던 헤이젤 참사에 의해 잉글랜드 클럽은 국제 대회를 참가할수 있는 자격이 박탈되었 으므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빅4'에 대항하던 유일한 팀 [편집]

프리미어 리그가 시작된 90년대엔 '빅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리버풀 FC, 아스널 FC )체제였다. 거기에 2003년 로만이 인수한 첼시 FC가 추가 되면서 '빅4'가 되었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이들의 행보는 아주 뛰어났다. 2004년 마틴 욜 감독이 토트넘에 부임 후 토트넘은 이들에 맞서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하지만 정작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건 2010/2011 시즌이 처음이다.

드루피와 빅6의 등장 [편집]

토트넘 홋스퍼 FC의 가레스 베일

2008-09시즌 언어 장벽을 극복 못하고 경질된 후안데 라모스 감독의 후임으로 포츠머스 FC해리 레드냅 감독이 토트넘의 새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NK 디나모 자그레브루카 모드리치도 영입되었다. 이후 토트넘은 2008-09시즌을 8위로 마감하였다. 그리고, 다음시즌인 2009-10시즌에는 첼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아스널 FC에 이어서 빅4팀 이였던 리버풀 FC만수르의 인수후 강력해진 맨체스터 시티 FC를 제치고 리그 4위를 차지하였다. 2010-11 시즌 조별리그에서 강호 인터밀란, 트벤테, 베르더 브레멘과 함께 A조에 속하게 된다. 인터밀란와의 원정경기에서, 전반 초반에 골키퍼 고메즈의 퇴장(동시에 페널티 허용)으로 어쩔 수 없이 루카 모드리치를 빼고 쿠디치니 골키퍼를 투입, 10명으로 경기하다 4-0으로 전반을 마감한다. 그러나 후반에 가레스 베일이 해트트릭을 달성, 팀은 결국 4-3으로 패배하였지만, 베일은 평점 10점을 받고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세계적인 인터밀란의 수비수 마이콘이 "베일을 막기가 어려웠다." 고 하였을 정도였다. 이후 홈경기에서 토트넘은 인터밀란을 3-1로 꺾었다. 이 경기에서도 베일은 평점 10점을 기록, 인터밀란을 상대로 연속 두 번 평점 10점을 받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3승2무1패로 승점11점 A조 1위로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 진출했다. 16강전 AC밀란 과의 경기에서 토트넘은 원정0-1, 홈0-0, 합계 0-1로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 하였다. 8강전 레알 마드리드에게 합계 5-0으로 패하였다. 리그 후반의 부진으로 결국 5위로 밀려나는 바람에 2011-12시즌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였다. 2011-12시즌, 초반의 부진을 딛고 시즌 중반에 3위까지 올랐으나 해리 레드냅 감독의 탈세 혐의가 벗겨지는 동시에 카펠로 잉글랜드 감독의 사임(같은 날 거의 같은 시간의 일이었다), 그 후 레드냅 감독의 잉글랜드 감독설이 퍼지며 분위기가 흔들리게 된다. 힘든 3월 후 다시 분발했으나 시즌 후반 지켜오던 3위는 아쉽게 놓치고 4위로 시즌을 마감하였지만, 리그 6위로 마감한 첼시 FC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여 유로파 리그에 다시 출전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첼시 FC, 아스널 FC, 리버풀 FC 빅 4팀 중 아스널 FC, 리버풀 FC 2팀이 부진하면서 맨체스터 시티 FC와 토트넘이 가세해 빅6 개념이 등장하였다 . 잉글랜드 감독직과 관련하여 다니엘 레비 회장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UEFA 챔피언스리그 재진입에 실패하자 결국 해리 레드냅감독은 2012년 6월 14일 사임하였다. 하지만, 구단주의 압박이 심하였기에 경질이나 마찬가지로 보는 것이 중론이다.

보아스감독의 토트넘 개편 [편집]

2012년 7월 3일첼시 FC 감독이었던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이 해리 레드냅 감독의 후임 감독으로 영입되었다. 그 후 다음날인 7월 4일 길피 시구르드손이 영입되었고 7월 8일에는 얀 베르통헨이 영입되었다. 8월 21일 임대선수였던 아데바요르가 완전영입 되었다. 8월 29일 무사 뎀벨레가 영입되었다. 또한, 그동안의 팀의 에이스였던 루카 모드리치, 라파얼 판 데르 파르트가 각각 8월 29일, 8월 31일, 레알마드리드, 함부르크 SV로 이적하였다. 이적시장 마감을 앞두고 프랑스의 주전 골키퍼 위고 로리스를 리옹에서 영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무사 뎀벨레의 팀메이트 클린트 뎀프시리버풀 FC을 제치고 영입해냈다. 토트넘은 2012년 8월 17일 뉴캐슬 유나이티드 와의 원정경기를 시작으로 2012-13시즌을 시작하였다. 2012년 9월 30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과의 프리미어리그 6라운드 경기에서 23년 만에 올드 트래포드원정 승리이면서 동시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11년만에 승리하여 올드 트래포드 원정 징크스를 끝내었다.

유니폼 [편집]

전통적으로, 토트넘은 남색셔츠를 입고 플레이 했으나, 다양한 컬러를 사용하기도 했다. 클럽 창단 초기 즈음엔 하늘색과 흰색로 이뤄진 반팔셔츠나 빨간색셔츠와 파란색 반바지를 입었고, 초콜렛빛 갈색과 황금색 유니폼을 거쳐, 1899-00시즌에 이르러서야 그당시 높은 주가를 달리고있던 프리스턴 노스 엔드팀의 영향을 받고 마침내 흰색셔츠에 남색 반바지를 입게 되었다. 2011-12 시즌까지는 푸마가 유니폼을 제조하였다가 2012-13 시즌 부터는 언더아머가 제조 하게되었다.

유니폼 제조사:

엠블럼 [편집]

1910년 FA컵 우승 이후로 토트넘 홋스퍼의 엠블럼은 싸움닭이 그려진 문장이었다. 해리 홋스퍼는 그의 싸움닭 발목에 박차를 달곤 했는데, 이가 클럽 문장에 반영된 것이다. 토트넘의 상징인 닭은 일명 게임콕 또는 코크럴 이라 불리는 닭이다. 게임콕은 싸움닭 코크럴은 싸우기 좋아하는 젊은이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09년 이전 토트넘 선수인 윌리엄 제임스 스콧은 축구공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는 박차를 단 어린 수탉을 형상화한 청동 뱃지를 만들었는데, 그 후 부터, 수탉과 축구공이 그려진 문양이 클럽의 주요한 상징이 되었다. 초기에는 방패안에 닭을 그려 넣었으며 1966년 부터 축구공 위에 서있는 닭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닭 엠블럼은 2006년 부터 사용되었다.

서포터 [편집]

토트넘 홋스퍼의 서포터는 '이드아미(Yidarmy)' 라고 하는데 줄여서 '이드(Yid)' 라고 한다. 이것은 유태인을 뜻하는 말인데 토트넘 홋스퍼의 구단이 자리잡고 있는 토트넘이라는 지역이 예전부터 유태인들의 밀집지역이라 토트넘의 팬중에는 유태인의 피가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태인을 뜻하는 말인 이드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토트넘홋스퍼의 경기를 보다보면 얼핏 들어보면 이!이!이! 하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데 그게 바로 이드이다. 아무래도 유태인들은 나치에게 당한 아픈 과거가 있어서 라이벌팀인아스널 FC, 첼시 FC등은 항상 토트넘 홋스퍼의 서포터들 에게 "너희들은 아우슈비츠로가라" "저놈들을 가스실로 보내버려" 이런 응원구호를 상당히 많이 한다. 현재 런던에 속해있는 팀들중 가장 런던에서 서포터 수가 많으며 웨일스지역과 미국, 벨기에, 아이슬란드에 많은 서포터들이 있다.

홈구장 [편집]

토트넘의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

화이트 하트 레인(White Hart Lane)은 1899년 9월 4일 개장한이래 토트넘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어 왔다. 처음의 이름은 Gilpin park가 될 뻔했으나 점점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토트넘 최고의 레전드로 일컬어지는 빌 니콜슨의 이름을 딴 거리인 빌 니콜슨 웨이(Bill Nicholson way)에 위치해있으며. 표면은 인조 잔디로 되어 있다. 총 수용인원은 한때 7만명에 육박하였으나 축구장 전 지역을 좌석으로 바꾼 이후에는 36,310명으로 줄었다. 현재 100년이 넘은 홈구장의 노화 및 적은 수용 인원 때문에 새로운 6만석 규모의 홈구장인 뉴 화이트 하트 레인 구장 신축 계획이 발표되었다. 2018년 완공이 확실시 되어 보인다.

토트넘의 구단주 [편집]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와 축구기자, 축구팬들은 또는 토트넘의 팬들조차도 토트넘의 구단주를 다니엘 레비 회장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토트넘의 진짜 구단주는 ENIC 그룹의 소유주인 조 루이스로써 토트넘의 지분을 1% 소지한 최대 대주주이다. 조 루이스 구단주는 토트넘의 경기나 언론에 잘 모습을 안보여 토트넘의 구단주를 다니엘 레비 회장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조 루이스 구단주는 프리미어리그 구단주중 맨체스터 시티 FC만수르구단주, 첼시 FC로만 아브라모비치구단주에 이어 20번째로 재산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대 감독 [편집]

팀을 사상첫 챔피언스 리그로 진출시켰던 해리 레드냅 전감독.

2004~2007.10 마틴 욜 감독

2007.10~2008.10 후안데 라모스 감독

2008.10~2012.6 해리 레드냅 감독

2012.7~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

역대 우승기록 [편집]

리그

1950-51, 1960-61 * 풋볼 리그 1부 준우승: 4
1921-22, 1951-52, 1956-57, 1962-63
1919-20, 1949-50
1908-09, 1932-33
1899-1900
1903-04

1901, 1921, 1961, 1962, 1967, 1981, 1982, 1991
1987
1970-71, 1972-73, 1998-99, 2007-08
1981-82, 2001-02
1920-21, 1951-52, 1961-62, 1962-63, 1967-68*, 1981-82*, 1991-92* (* 공동)

국제 대회

1971-72, 1983-84
1973-74
1962-63
1961-62

선수 [편집]

현재 선수 명단 [편집]

2013년 5월 12일 기준

2군 주요 선수 명단 [편집]

2013년 5월 12일 기준

임대 선수 명단 [편집]

2012-13시즌 겨울 이적시장 기준

주요 선수 [편집]

잉글랜드 잉글랜드
웨일스 웨일스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북아일랜드
 
독일 독일
프랑스 프랑스
네덜란드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벨기에 벨기에
아일랜드 아일랜드
러시아 러시아
불가리아 불가리아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미국 미국
코트디부아르 코트디부아르
토고 토고
말리 말리
대한민국 대한민국
브라질 브라질

역대 선수 기록 [편집]

최다 출장 기록 [편집]

최다 득점 기록 [편집]

역대 주장 [편집]

관련 항목 [편집]

주석 [편집]

바깥 고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