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포를란
| 디에고 포를란 | ||
| 개인 정보 | ||
|---|---|---|
| 풀 네임 | Diego Martín Forlán Corazo | |
| 출생 | 1979년 5월 19일 (34세) | |
| 키 | 179cm | |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
| 클럽 정보 | ||
| 현 소속팀 | ||
| 등번호 | 9 | |
| 청소년 클럽 | ||
| 페냐롤 다누비오 FC 인데펜디엔테 |
||
| 클럽1 | ||
| 연도 | 클럽 | 출장수 (골) |
| 1998-2002 2002-2004 2004-2007 2007-2011 2011-2012 2012- |
인데펜디엔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비야레알 CF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SC 인테르나시오나우 |
80 (37) 63 (10) 106 (54) 134 (74) 18 (2) |
| 국가대표팀2 | ||
| 2002- | 93 (33) | |
|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
||
디에고 마르틴 포를란 코라소(Diego Martín Forlán Corazzo, 1979년 5월 19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는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로, 현재 브라질 세리 A의 축구 클럽 SC 인테르나시오나우 및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이다.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난 그는 축구로 유명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파블로 포를란은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1966년, 1974년 FIFA 월드컵에 우루과이 대표팀의 수비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외할아버지 후안 카를로스 코라소(Juan Carlos Corazzo)도 전직 축구 선수로, 아르헨티나의 인데펜디엔테에서 활약했으며, 1962년 FIFA 월드컵에서 우루과이팀 감독을 맡았다.
그는 피치치와 유러피언 골든슈를 각각 두 번씩 받은 바 있으며, 국가대표로서도 그는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1골,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5골을 기록하였다. 2010 FIFA 월드컵에서 아디다스 골든볼을 수상(受賞)하였다.
2011년, 그는 이탈리아 세리에 A FC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하면서 7년만에 스페인 라리가를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월드컵 이후 시작된 노쇠화로 성공적이지 못한 시즌을 보낸 그는 1년만에 브라질 SC 인테르나시오나우로 이적하였다.
그는 스페인과 우루과이, 두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출처 필요]
목차 |
클럽 경력 [편집]
인디펜디엔테 소속 시절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방영되었던 인기 만화에 등장하는 마녀를 닮았다고 해서 그 캐릭터의 이름인 '카차바차(Cachabacha)'가 그의 별명이 되었다.[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2년~ 2004년)
비야레알 CF (2004년~2007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7년~2011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2011년~2012년)
SC 인테르나시오나우 (2012년~)
2008~09 시즌에 33경기에서 32골을 터뜨려 프리메라리가 득점왕이 되었다.
대표팀 경력 [편집]
포를란은 2002년에 처음 대표팀에서 뛰어 그 해 3월 27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대표팀으로서의 첫 골을 기록하였고, 그 해 열린 월드컵에서 6월 11일 세네갈과의 A조 3차전 경기에 출전, 발리골을 성공시켜 팀이 3-3으로 비기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우루과이팀은 조(組) 3위에 그쳐 프랑스와 함께 예선 탈락하고 말았다. 포를란은 그 이후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하였고, 2008년 6월 17일 열린 페루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2010년 FIFA 월드컵 [편집]
포를란은 이 대회에서 5골을 기록하여 우루과이팀이 40년만에 4강에 진출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2010년 6월 16일 벌어진 우루과이와 남아프리카의 A조 2차전에서 중거리 골을 포함하여 두 골을 터뜨려, 팀이 3-0으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7월 2일 열린 가나와의 8강전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넣어 1-1의 동점골을 만들었다. 우루과이는 그 경기에서 승부차기로 4-2로 가나를 꺾었다. 이어 같은 달 6일 벌어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도 그는 전반전에 중거리 골을 터뜨렸으나, 팀은 3-2로 패하고 말았다. 10일 열린 독일과의 경기에서도 포를란은 발리골을 터뜨렸다.
한편 포를란은 1990년의 로타르 마테우스 이래 월드컵 대회에서 페널티 라인 밖에서 슈팅을 해서 3골을 기록한 첫 선수가 되었다. 디에고 포를란은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의 주장(은 디에고 루가노)으로써 5골 1어시스트의 활약에 힘입어, 대회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되는 아디다스 골든볼을 수상(受賞)하게 되었다. 4위 팀 선수가 아디다스 골든볼을 수상하는 것은 역대 최초이다.
에피소드 [편집]
- 그는 원래 테니스 선수였으나, 12세이던 1991년에 다섯 살 위인 누나 알레한드라가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重傷)을 입었을 때, 25만달러(약 3억원)가 넘는 수술비를 감당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때 포를란의 아버지 파블로의 친구였던 디에고 마라도나가 적극 나서 기금을 모은 끝에 알레한드라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 유망한 테니스 선수였던 포를란은 그 길로 축구선수로 전향했다. 아르헨티나의 인디펜디엔테에서 뛰던 포를란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뛸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도 마라도나였다.[2]
- 아르헨티나의 패션모델 사이라 나라(Zaira Nara)와 교제중이었고 약혼까지 발표하였으나 심경 변화를 이유로 취소하였다. 그렇지만 이를 참지 못한 사이라 나라가 포를란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을 퍼트렸다.[3]
- 그는 모국어인 스페인어 외에도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영어 - 5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1]
- 디에고 포를란과 프랑스 대표팀의 유리 조르카에프는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와 프랑스 대표로 출전했는데, 그들의 아버지인 파블로 포를란과 장 조르카에프도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와 프랑스 대표로서 출전해 대결하였다.
플레이 스타일 [편집]
포를란의 플레이스타일은 전형적인 타겟형 스트라이커다, 그의 장점인 골 결정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며, 포를란의 스피드는 보통 공격수들에 비해 느리다. 그래서인지 골을 넣기가 어렵다고 들 하지만, 어디서나 골을 넣을 수 있음을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증명하였다.
주석 [편집]
바깥 고리 [편집]
|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
- (영어) 디에고 포를란 - FIFA 경기 기록
- Diego Forlán - FootballDatabase
- Portrait at Soccernet
- Profile at Yahoo Sports
| 이 전 |
제8대 FIFA 월드컵 골든볼 2010년 |
다 음 |
|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 2002년 FIFA 월드컵 |
|
|---|---|
|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 2004년 코파 아메리카 3위 |
|
|---|---|
|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 2010년 FIFA 월드컵 4위 |
|
|---|---|
|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 201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15회) |
|
|---|---|
|
프리메라리가 최다 득점자 |
|---|
|
1929: 비엔소바스 | 1930: 고로스티사 | 1931: 바타 | 1932: 고로스티사 | 1933: 올리바레스 | 1934: 랑가라 | 1935: 랑가라 | 1936 랑가라 | 1940: 우나무노 | 1941: 프루덴 | 1942: 수아레스 | 1943: 마르틴 | 1944: 수아레스 | 1945: 사라 | 1946: 사라 | 1947: 사라 | 1948: 파히뇨 | 1949: 세사르 | 1950: 사라 | 1951: 사라 | 1952: 파히뇨 | 1953: 사라 | 1954: 디 스테파노 | 1955: 아르사 | 1956: 디 스테파노 | 1957: 디 스테파노 | 1958: 바데네스/디 스테파노/리카르도 | 1959: 디 스테파노 | 1960: 푸슈카시 | 1961: 푸슈카시 | 1962: 세미나리오 | 1963: 푸슈카시 | 1964: 푸슈카시 | 1965: 레 | 1966: 바바 | 1967: 왈도 | 1968: 우리아르테 | 1969: 아만시오/하라테 | 1970: 아만시오/아라고네스/하라테 | 1971: 하라테/렉사치 | 1972: 포르타 | 1973: 마리아닌 | 1974: 키니 | 1975: 에레로 | 1976: 키니 | 1977: 켐페스 | 1978: 켐페스 | 1979: 크란클 | 1980: 키니 | 1981: 키니 | 1982: 키니 | 1983: 린콘 | 1984: 다 실바/후아니토 | 1985: 우고 산체스 | 1986: 우고 산체스 | 1987: 우고 산체스 | 1988: 우고 산체스 | 1989: 바우타사르 | 1990: 우고 산체스 | 1991: 부트라게뇨 | 1992: 마놀로 | 1993: 베베투 | 1994: 호마리우 | 1995: 사모라노 | 1996: 피시 | 1997: 호나우두 | 1998: 비에리 | 1999: 라울 | 2000: 살바 | 2001: 라울 | 2002: 트리스탄 | 2003: 마카이 | 2004: 호나우두 | 2005: 포를란 | 2006: 에토 | 2007: 판 니스텔로이 | 2008: 귀사 | 2009: 포를란 | 2010: 메시 | 2011: C. 호날두 | 2012: 메시
|
|
유러피언 골든슈 |
|---|
|
1968: 에우제비우 | 1969: 제코프 | 1970: 뮐러 | 1971: 스코블라르 | 1972: 뮐러 | 1973: 에우제비우 | 1974: 야살데 | 1975: 게오르게스쿠 | 1976: 카이아파스 | 1977: 게오르게스쿠 | 1978: 크란클 | 1979: 키스트 | 1980: 판던베르흐 | 1981: 슬라브코프 | 1982: 키프트 | 1983: 고메스 | 1984: 러시 | 1985: 고메스 | 1986: 판 바스턴 | 1987: 커머타루 / 폴스터 | 1988: 촐라크 | 1989: 마테우츠 | 1990: 산체스 / 스토이치코프 | 1991: 판체프 | 1992: 매코이스트 | 1993: 매코이스트 | 1994: 테일러 | 1995: 아베티샨 | 1996: 엔델라제 | 1997: 호나우두 | 1998: 마흘라스 | 1999: 자르데우 | 2000: 필립스 | 2001: 라르손 | 2002: 자르데우 | 2003: 마카이 | 2004: 앙리 | 2005: 앙리 / 포를란 | 2006: 토니 | 2007: 토티 | 2008: C. 호날두 | 2009: 포를란 | 2010: 메시 | 2011: C. 호날두 | 2012: 메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