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 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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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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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정보
전체 이름 Paolo Rossi
국적 이탈리아 이탈리아
출생 1956년 9월 23일(1956-09-23) (57세)

이탈리아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프라토

177cm
포지션 은퇴 (선수시절 스트라이커)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1973-1975
1975-1976
1976-1979
1979-1980
1980-1981
1981-1985
1985-1986
1986-1987
이탈리아 유벤투스
이탈리아 코모 (임대)
이탈리아 비첸차
이탈리아 페루자
이탈리아 비첸차 (임대)
이탈리아 유벤투스
이탈리아 AC 밀란
이탈리아 베로나
0000(0)
0060(0)
0940(60)
0280(13)
0000(0)
0830(24)
0200(2)
0200(4)
국가대표팀2
1977-1986 이탈리아 이탈리아 0480(20)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03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03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파올로 로시 (이탈리아어: Paolo Rossi, 1956년 9월 23일, 이탈리아 프라토 ~ )는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이탈리아축구 선수다. 로시는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6골을 넣어 이탈리아의 통산 세 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끌면서, 최초로 골든 부츠와 골든 볼을 동시에 수상한 바 있다.

선수 경력[편집]

클럽 경력[편집]

파올로 로시의 아버지는 피오렌티나의 팬이었다고 한다. 축구팬인 아버지의 권유에 힘입어 공을 차게 되었던 로시는, 어린 시절에는 명문 유벤투스에서 실력을 쌓아갈 만큼, 꽤나 재능이 있었으나, 무릎이 좋지 못해서 유벤투스에서 코모 칼초에 팀을 옮겨야만 하였다.

20살, 파올로 로시는 세리에 B비첸차 팀에 몸담게 되었고, 여기서 그의 본격적인 실력이 발휘되었다. 스무살의 젊은이가 21골을 넣는 대활약을 펼치며 2부리그 득점왕을 차지하였고, 소속팀은 덩달아서 세리에 A로 승격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파올로 로시는 이듬해에도 세리에 A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이어나갔다.

세리에 A에서 걸출한 골감각을 펼쳐나가던, 젊은 로시는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으며, 1977–78 시즌 30경기에 출전해 24골을 넣어 또 다시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세리에 B, 세리에 A 연속 득점왕은 파올로 로시가 사상 최초로, 원래 이 기록은 100년의 역사가 넘는 이탈리아 축구에서 오직 파올로 로시만이 가지고 있었으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세리에 B, 세리에 A 연속 득점왕 기록을 달성하면서, 이는 역사상 두 사람의 기록이 되었다.

파올로 로시는 몸집이 작았지만, 위치 선정 능력이 아주 뛰어났으며, 특유의 빠른 스피드를 살려서 기회를 살리는 데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실력을 널리 인정받으며, 파올로 로시는 팀을 잠시 옮겨 페루자 팀에 몸담게 되는데, 이때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파올로 로시는 2년간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되면서, 한동안 경기장에서 뛸 수가 없었다.

1982년 유럽최우수선수상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으며, 월드컵 이후에는 유벤투스에서 뛰면서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어느 정도 공헌하였지만, 무릎이 좋지 않아 20대 후반 무렵에는 움직임이 많이 저하되었다. 현역 마지막에는 AC 밀란헬라스 베로나를 거쳐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국가대표팀 경력[편집]

세리에 A에서 걸출한 골감각을 펼쳐나가던, 젊은 로시는 1977년에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20대 초반에 세리에 A 득점왕까지 차지하며 승승장구하던 파올로 로시는, 1978년 FIFA 월드컵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이 때에도 파올로 로시는 3득점 2도움의 활약을 펼쳤고, 그의 활약 덕택에 이탈리아는 4강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파올로 로시는 이제 장래가 더 기대되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포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한 때 이탈리아의 새 기대주로 떠올랐던 로시는 승부조작 사건으로 치명적인 위기를 맞이하면서 선수 생명이 위태로워졌고, 1982년 FIFA 월드컵 직전에서야 출장 정지가 풀려 이탈리아 대표팀에 복귀하였다.

복귀한 로시에게 여론도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몇 년 쉬었던 선수를 대표팀 공격수로 쓴다는 비난도 있었고, 실제로 이탈리아는 좀처럼 활발한 경기를 펼치지 못하였다. 특유의 수비 축구를 내세우면서 3무를 기록, 간신히 2차 조별리그에 진출하였다. 파올로 로시는 1차 리그에서 부진을 거듭하며 무득점에 그쳤는데, 그럼에도 당시의 감독 엔초 베아르초트(Enzo Bearzot)는 파올로 로시를 계속해서 기용하였다.

이탈리아는 2차 조별리그 첫 경기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어렵게 승리를 따냈고, 그 다음 경기에서 1차 조별 리그에서 3전 전승을 거두고, 10골을 몰아붙인 브라질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당시 브라질에는 지쿠, 소크라치스, 팔캉, 토니뉴 세레주로 이루어진 사상 최고로 평가받았던 미드필더 진이 있었는데, 대중들은 이를 "황금의 4중주"라 불렀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팬들이 브라질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고, 심지어 이탈리아 자국 언론들 조차도 이탈리아의 답답한 축구운용방식에 불만을 표출하며 비난을 계속하였다.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월드컵의 손꼽히는 명승부로 남는 경기를 보여주었다. 브라질은 거침없는 공격축구로 나섰으며, 이탈리아는 특유의 역습과 조직력을 통해 결정력을 살리는 축구를 구사하였다.

이 날 약 2년간 축구를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대표팀에 복귀해서도 엄청난 비난을 당하였던 파올로 로시가 경기 시작 5분만에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전에는 2-2로 흐르던 치열한 경기에서 파올로 로시가 결승골을 터뜨렸다. 경기는 다소 밀렸지만, 결국에는 이탈리아가 3-2로 승리하였고, 파올로 로시가 3골 모두 넣어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기세를 탄 이탈리아는 4강전에서 파올로 로시가 또 혼자 두 골을 넣으면서 폴란드에게 승리를 거두었고, 결승전에서도 로시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이탈리아의 공격을 주도, 서독을 3-1로 완파하면서 1938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따냈다. 파올로 로시는 매우 중요한 경기들에서 6골을 기록해 골든 부트골든 볼 수상자가 되었다.

수상[편집]

이탈리아 유벤투스


이탈리아 이탈리아


개인

바깥 고리[편집]

이 전
초대
제1대 FIFA 월드컵 골든볼
1982년
다 음
 아르헨티나 디에고 마라도나 
이 전
아르헨티나 마리오 켐페스
제12대 FIFA 월드컵 골든슈
1982년
다 음
 잉글랜드 게리 리네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