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린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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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린샤
MFdSantos-Garrincha.jpg
개인 정보
전체 이름 Manoel Francisco dos Santos
로마자 표기 Garrincha
국적 브라질 브라질
출생 1933년 10월 28일

브라질 브라질 파우그란지

사망 1983년 1월 19일 (49세)
168cm
포지션 (과거 윙포워드, 윙어)
청소년 클럽
1948-1952 브라질 SC 파우그란지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1953-1965
1966
1967
1968
1968-1969
1972
브라질 보타포구
브라질 코린치앙스
브라질 AA 포르투게자
콜롬비아 아틀레티코 주니어
브라질 플라멩구
브라질 올라리아 AC
581 (232)
010 00(2)
000 00(0)
001 00(0)
015 00(4)
010 00(1)
국가대표팀2
1955-1966 브라질 브라질 050 0(12)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03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03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마누엘 프란치스쿠 두스 산투스(Manoel Francisco dos Santos, 1933년 10월 28일 ~ 1983년 1월 19일)는 가린샤(Garrincha, 작은 새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브라질의 축구 선수이다. 주로 오른쪽 윙이나 공격수로 뛰었다.

생애[편집]

가린샤는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때문에 다리가 바깥으로 휘어지고 다리의 길이도 달랐는데, 이 때문에 그는 수비수들이 막기 힘든 특이한 드리블을 할 수 있었으며 '드리블의 황제'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브라질 국가대표팀이 1958년과 1962년 월드컵에 우승하는 데 큰 공헌을 했으며, 그의 프로 축구선수 인생의 대부분을 브라질의 클럽 보타포구에서 보냈다. 1983년 1월 19일 향년 50세로 사망했다. FIFA는 그를 펠레 이후 가장 뛰어난 브라질 선수로 평가하고 있으며, 1999년에는 IFFHS도 이와 비슷한 평가를 했는데, 그를 20세기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선수로 평가했다; 브라질의 많은 축구 역사가들도 그를 '최소한 펠레'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드리블의 황제로도 명성을 떨쳤지만, 크로스를 올리는 데나 프리킥을 차는 데에 있어서도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주요 경력[편집]

뒷 이야기[편집]

  • 가린샤는 12세 때 염소에게 동정을 잃었다고 한다.
  • 엄청난 성욕으로도 유명했다. 성기가 쥘 리메 컵만했다고도 하는데, 한번 관계를 가 진후 10분이면 회복이 된다고 했다. 수많은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었고 6명의 부인과 최소 14명 이상의 자녀를 두었다.
  • 1958년 FIFA 월드컵을 위해 소집된 대표팀의 비첸테 페올라 감독은 선수들에게 지능 지수 검사를 실시했는데 당시 24세의 가린샤는 4세 아동 수준인 33이 나왔고, 펠레 역시 유아수준인 68이 나왔다. 담당의사인 죠안 칼바레이스는 펠레와 가린샤를 투쟁심과 책임감을 가질 수 없는 지능이라고 대표팀에서 제외할 것을 권했는데, 동료 선수들의 설득에 제외결정이 취소되었다. 가린샤는 58년 월드컵에서 우승 후 '6경기만 이기고도 우승하다니 이상하다'라는 순수한 소감을 밝혔다.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

이 전
프랑스 쥐스트 퐁텐
제7대 FIFA 월드컵 골든슈
1962년
공동 골든슈
브라질 바바
칠레 레오넬 산체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드라잔 예르코비치
소련 발렌틴 코즈미치 이바노프
헝가리 얼베르트 플로리안
다 음
 포르투갈 에우제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