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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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뼤쪠르부르그
Санкт Петербург
View to Kazan Cathedral by Ivan Smelov.jpg
카잔 대성당
Flag of Saint Petersburg Russia.svg Coat of Arms of Saint Petersburg (2003).svg
시기 휘장
행정
나라 러시아
지역 북서 연방관구
설립 1703년 5월 27일
인구
인구 5,131,942명 (2014년)
인구밀도 3,668.29명/km²
광역인구 5,400,000명
지리
면적 1399km²
기타
시간대 UTC+4
우편번호 190000–199406
지역번호 812
웹사이트 eng.gov.spb.ru/

상트뼤쪠르부르그(러시아어: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듣기 , 이수르어: Pietari, 핀란드어: Pietari, 보트어: Pietari, 문화어: 싼크뜨-뻬쩨르부르그)는 러시아의 북서쪽에 있는 연방시이다. 네바 강 하구에 있으며, 그 델타지대의 형성된 자연섬과 운하로 인해 생긴 수많은 섬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발트 해핀란드 만에 접해 있다.

예전에는 페트로그라드(러시아어: Петроград, 문화어: 뻬뜨로그라드, 1914년1924년)와 레닌그라드(러시아어: Ленинград, 1924년1991년)로 불리기도 했다. 1924년 1월 21일 레닌이 죽자 1924년 1월 26일 그를 기념하여 레닌그라드로 불리게 되었고, 1991년 9월 6일 다시 옛 이름을 되찾았다.

러시아 제국차르 표트르 대제1703년 설립한 이 도시는 1713년 모스크바에서 천도하여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1918년 수도는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2002년 현재 469만 4000명이 살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는 수도 모스크바 다음으로,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모스크바에 이은 러시아의 대공업도시로 복잡한 정밀기계의 제조가 특색이다. 선박, 터빈, 발전기, 디젤기관, 트랙터, 공작기, 계기류(計器類), 각종 장치의 제조공장이 있고, 화학공업(고무제품·과린산비료·화학합성 자재·염료·도료·향료), 섬유공업, 인쇄업 등도 성하다.

다수의 학술 연구기관, 미술관, 박물관 등이 있어 학술·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1] 도심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레닌그라드 주와는 분리된 연방시를 이루고 있으나, 레닌그라드 주의 행정 중심 도시로 되어 있다.

규모[편집]

모스크바 다음으로,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인구는 470만 명으로 모스크바 다음으로 2번째로 인구가 많다. 면적은 1,439km²이다. 북위 59도 56분, 동경 30도 20분에 위치해 있다.

2003년 5월 29일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생긴 지 300주년 기념으로 다양한 축제가 열렸다.

역사[편집]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는 핀란드 만 주위로 처음 러시아인들이 정착한 것은 8~9세기부터이다. 이 지역은 노브고르트 공국에 귀속되었으나 습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았으므로 버려진 땅이었으며 이후 15세기에 모스크바 공국의 영토가 되었다. 1611년에 한번 스웨덴이 이 지역을 차지한 적이 있었으나, 표트르 1세북방전쟁에서 이 지역을 탈환하였다. 이곳의 수비를 목적으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를 짓기 시작함으로써 도시건설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표트르 1세는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장대한 도시계획을 세우고, 이 요새 근처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새로운 도시(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짓게 되었다.

네바 강과 상트페테르부르크

새 도시를 짓기에는 이 지역의 자연환경이 좋지만은 않았다. 연 평균 기온은 4.2도에 일조량은 31일 정도이다. 또 매년 한번씩 홍수가 터져서 곤혹을 치른다. 또 원래 습지였던 이 지역에 도시를 바로 짓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도시를 짓기 위해서는 석조 토대가 필요했는데, 이 때문에 도시를 지을 때 돌을 쏟아부어 습지를 메울 필요가 있었다. 물론 습지를 메우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돌이 필요했다. 따라서 표트르 대제는 돌을 충당하기 위해 도시를 들어오는 모든 선박과 사람들에게 돌을 가져오라고 칙령을 내렸다. 선박은 크기에 따라 30kg이상의 돌을 10~30개 가져와야 했으며, 육로로 들어올 경우에는 15kg이상의 돌을 세 개씩 가져와야 했다. 수많은 노예들이 습지를 돌로 메우는 데에 이용되었으며 가혹한 자연과 고된 노동을 이기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이때 죽은 노예를 습지로 던져버렸기 때문에 이 도시에는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있다. 이 때는 석조 건축물을 짓는 것도 금지되었다. 각종 물건들에도 세금이 붙었고 교회의 재산도 국가에 귀속시켜 버렸다. 표트르 대제에 반하여 구 귀족 및 종교 세력의 편이었던 그의 아들 알렉세이 황태자는 1718년에 무자비하게 처형되고 만다.

18세기 초반부터는 러시아 최대의 무역항으로 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851년엔 러시아 최초의 철도가 부설되기도 했다.(모스크바와 연결)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교통이 편리해짐으로써 이 도시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후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각종 러시아의 혁명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중심이 되었다.(피의 일요일, 3월 혁명, 11월 혁명) 또 세계 2차대전 당시 1941년 8월부터 29개월 동안 독일군에 포위당한 상태로 40만 명이 아사(餓死)당하면서까지 지켜낸 도시라고 하여 영웅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레닌그라드"라고 불렸다가,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 지구와 관련 기념물군은 1990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주민[편집]

상트페테르부르크시의 주민들 대부분이 러시아인이다. 89.1%를 차지하고 2.1%가 유대인, 1.9%가 우크라이나인벨라루스인, 나머지는 코카서스계 민족(대부분이 조지아인), 타타르인, 체르케스인, 우즈베크인, 벱스인, 핀란드인, 아제르바이잔인, 약간의 고려인중국인, 루마니아인이다.

러시아 정교회가 다수이나,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문화[편집]

네프스키 대로에 있는 수도원 주변에는 아치 형태의 문이 있는데 이 입구의 왼쪽에 있는 묘지가 라자레프 묘지이다. 이곳에는 건축가 보로닌, 자하로프, 고즈롭스키, 로시, 과학자 로마노소프의 묘지가 있다. 그리고 입구 오른쪽에 있는 것이 타흐빈 묘지인데, 도스토옙스키, 주콥스키, 카람진 등의 유명한 문학가와 차이콥스키, 무소르크스키 등 유명한 작곡가의 묘가 있다.[2] 로스트랄 등대는 바실리옙스키섬의 구증권거래소 광장에 위치하고 있는 높이 32m의 등대이다. 로스트랄은 뱃머리를 의미하며, 기둥의 대에는 러시아의 4대강인 볼호프, 네바, 드네프로, 볼가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있다. 1810년에 돔 두 토몬의 설계로 당시의 상품거래소와 함께 만들어졌다.[3] 궁전광장은 러시아 바로크 예술의 진수라고 알려져 있는 겨울궁전 반대편으로는 카를로 로시(Carlo Rossi)에 의해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반원형의 개선아치를 갖춘 구 참모본부가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광장의 중앙에는 1834년, 나폴레옹과의 조국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47.5m 높이의 알렉산더 원기둥이 서 있다. 궁전광장은 수많은 정치적인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05년의 제1차 러시아 혁명의 발단이 되었던 ‘피의 일요일’날 시위가 있었던 곳이 이곳이며, 볼셰비키 통치기간 중 ‘단결된 평화시위’와 군사행진을 위해 사용된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민주화된 오늘날에도 갖가지 종류의 정치적 집회(민주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군주제 옹호자, 반시오니스트 등) 및 문화 공연이 이곳에서 행해지고 있다.[4]

행정 구역[편집]

18개의 행정 구역이 존재한다.

자매 도시[편집]

주석[편집]

  1.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상트페테르부르크
  2.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라자레프 묘지와 티흐빈 묘지
  3.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로스트랄 등대
  4.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궁전광장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