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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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Sankt-Peterbúrg
floating
시문장

시 문장
floating
좌표
59°56′N, 30°20′E
지역 연방시
{{{군}}}
도시설립 1703년 5월 27일
도시등록 {{{등록}}}
면적 606km²
인구
인구년도
466만 1219명
2004
OKATO 번호 78, 98
전화번호 +7 812
우편번호 190000-199406
시차
-서머타임
UTC+3
-UTC+4
웹사이트
http://eng.gov.spb.ru/
나바 강과 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어: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듣기 , Saint Petersburg, 이수르어: Pietari, 핀란드어: Pietari 피에타리[*], 보트어: Pietari, 문화어: 싼끄뜨-뻬쩨르부르그)는 러시아의 북서쪽에 있는 연방시이다. 네바 강 하구에 있으며, 발트 해핀란드 만에 접해 있다.

예전에는 페트로그라드(Петроград, 1914년1924년)와 레닌그라드(Ленинград, 1924년1991년)로 불리기도 했다.

차르 표트르 대제1703년 설립한 이 도시는 1713년 모스크바에서 천도하여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1918년 수도는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2002년 현재 469만 4000명이 살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는 수도 모스크바 다음으로,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도심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레닌그라드 주와는 분리된 연방시를 이루고 있으나, 레닌그라드 주의 행정 중심 도시로 되어 있다.


목차

[편집] 지리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핀란드 만에 접해 있다.

[편집] 규모

모스크바 다음으로,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인구는 470만 명으로 모스크바 다음으로 2번째로 인구가 많다. 면적은 1,439km²이다. 북위 59도 56분, 동경 30도 20분에 위치해 있다.

2003년 5월 29일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생긴 지 300주년 기념으로 다양한 축제가 열렸다.

[편집] 역사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는 핀란드 만 주위로 처음 러시아인들이 정착한 것은 8~9세기 부터이다. 이 지역은 노브고르트 공국에 귀속되었으나 습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았으므로 버려진 땅이었으며 이후 15세기에 모스크바 공국의 영토가 되었다. 1611년에 한번 스웨덴이 이 지역을 차지한 적이 있었으나, 표트르 1세북방전쟁에서 이 지역을 탈환하였다. 이곳의 수비를 목적으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를 짓기 시작함으로써 도시건설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표트르 1세는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장대한 도시계획을 세우고, 이 요새 근처에 새로운 도시(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짓게 되었다.

새 도시를 짓기에는 이 지역의 자연환경이 좋지만은 않았다. 연 평균 기온은 4.2도에 일조량은 31일 정도이다. 또 매년 한번씩 홍수가 터져서 곤혹을 치룬다. 또 원래 습지였던 이지역에 도시를 바로 짓는것은 불가능하였다. 도시를 짓기 위해서는 석조 토대가 필요했는데, 이때문에 도시를 지을 때 돌을 쏟아부어 습지를 메울 필요가 있었다. 물론 습지를 메우는데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돌이 필요했다. 따라서 표트르 대제는 돌을 충당하기 위해 도시를 들어오는 모든 선박과 사람들에게 돌을 가져오라고 칙령을 내렸다. 선박은 크기에 따라 30kg이상의 돌을 10~30개 가져와야 했으며, 육로로 들어올 경우에는 15kg이상의 돌을 세 개씩 가져와야 했다. 수많은 노예들이 습지를 돌로 메우는데에 이용되었으며 가혹한 자연과 고된 노동을 이기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이 때 죽은 노예를 습지로 던져버렸기 때문에 이 도시에는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있다. 이때는 석조 건축물을 짓는것도 금지되었다. 각종 물건들에도 세금이 붙었고 교회의 재산도 국가에 귀속시켜 버렸다. 표트르 대제에 반하여 구 귀족 및 종교 세력의 편이었던 그의 아들 알렉세이 황태자는 1718년에 가차없이 처형되고 만다.

18세기 이후엔 러시아 최대의 무역항으로 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851년엔 러시아 최초의 철도가 부설되기도 한다.(모스크바와 연결)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교통이 편리해짐으로써 이 도시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각종 러시아의 혁명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중심이 되었다.(피의 일요일, 3월 혁명, 11월 혁명) 또 세계 2차대전 당시 1941년 8월부터 29개월동안 독일군에 포위당한 상태로 40만명이 아사(餓死)당하면서까지 지켜낸 도시라고 하여 영웅 도시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 지구와 관련 기념물군은 1990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편집] 사회

[편집] 주민

상트페테르부르크시의 주민들 대부분이 러시아인이다. 89.1%를 차지하고 2.1%가 유대인, 1.9%가 우크라이나인벨라루스인, 나머지는 코카서스계 민족(대부분이 그루지야인), 타타르인, 체르케스인, 우즈베크인, 베프스인, 핀란드인, 아제르바이잔인, 약간의 고려인중국인, 루마니아인이다.

러시아 정교회가 다수이나,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편집] 문화

[편집] 자매결연 도시

[편집] 행정 구역

20개의 행정 구역이 존재한다.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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