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살로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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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살로니키(그리스어: Θεσσαλονίκη 테살로니키[*], 또는 테살로니카, 살로니카)는 그리스의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그리스령 마케도니아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이 도시는 명예 지명으로 그리스의 '공동 수도'(Συμπρωτεύουσα)라고 일컫기도 하며,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는 '공동 황제 수도'(συμβασιλεύουσα)라 일컫기도 하였다. 2004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테살로니키 시의 인구는 386,627명이었으며, 테살로니키 도시 지역 전체의 인구는 995,766명으로 조사되었다.[1]
테살로니키는 그리스의 경제, 산업, 상업, 정치 면에서 제2의 중심지이며남동부 유럽의 교통 요지이기도 하다. 테살로니키 상업항은 그리스 뿐 아니라 남동부 유럽 배후지역에서도 무척중요한 항구이다. 이 도시에서는 해마다 국제 무역 박람회, 국제 영화제을 개최하며 2년마다 그리스 디아스포라 실향민 최대 회합이 열린다.[2]
[편집] 역사
기원전 315년 마케도니아의 왕 카산드로스가 건설한 이 도시는 그의 부인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누이의 이름을 따서 테살로니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원전 168년 마케도니아 왕국이 로마 공화정에 의해 멸망하자 테살로니키는 로마의 도시가 되었고 로마 속주였던 마케도니아 속주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테살로니키는 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의 중요한 상업중심지로 발달하였다. 사도 바울로가 이 도시의 교회에 보낸 두통의 편지는 기독교 신약성서에 포함되었다. (데살로니가전서, 후서)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 당시에는 지역 수비대장이 인기있는 전차 경기 선수를 옥에 가둔 것을 계기로 일어난 테살로니키 주민들의 폭동을 황제의 명령을 받은 로마군들이 진압하면서 테살로니키 주민들을 학살하는 일이 있었다.
이 도시는 6세기와 7세기에 여러 차례 야만족의 공격을 받았다. 732년 비잔티움 황제 레오 3세가 성상(聖像)의 숭배를 금지한 지 2년 만에 로마 교황의 지배권으로부터 분리시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 종속되도록 했다. 그러나 성상파괴주의자인 레오 황제와 그 후계자들이 성상파괴를 자행하는 동안 테살로니키는 성상을 옹호하였고, 성상과 예술품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힘이 약해지는 수세기 동안 불가르족, 노르만족, 라틴인들이 이 도시를 침략하고 파괴행위를 벌였다. 오스만 투르크에게 계속 시달림을 받다가 1423년 베네치아 공화국에 양도되었으나 1430년에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무라드 2세에게 점령되었다. 이후 테사로니키는 계속 투르크의 도시로 오스만 제국의 일부로 계속 남아있다가 20세기에 들어서 그리스군에게 정복되어 1913년 부쿠레슈티 협정에 따라 그리스에 양도되었다.
[편집]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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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 (아티키) • 케르키라 (이오니아 제도) • 이라클리오 (크리티) • 요안니나 (이피로스) • 코모티니 (동부 마케도니아와 트라키) • 코자니 (서부 마케도니아) • 라미아 (중부 그리스) • 라리사 (테살리아) • 미틸리니 (북부 에게) • 파트라 (서부 그리스) • 에르무폴리 (남부 에게) • 테살로니키 (중부 마케도니아) • 트리폴리 (펠로폰니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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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아테네 · 1986 피렌체 · 1987 암스테르담 · 1988 서베를린 · 1989 파리 · 1990 글래스고 · 1991 더블린 · 1992 마드리드 · 1993 안트베르펜 · 1994 리스본 · 1995 룩셈부르크 · 1996 코펜하겐 · 1997 테살로니키 · 1998 스톡홀름 · 1999 바이마르 · 2000 레이캬비크 · 베르겐 · 볼로냐 · 브뤼셀 ·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 아비뇽 · 크라쿠프 · 프라하 · 헬싱키 · 2001 로테르담 · 포르투 · 2002 브루게 · 살라망카 · 2003 그라츠 · 2004 릴 · 제노바 · 2005 코크 · 2006 파트라 · 2007 룩셈부르크 · 시비우 · 2008 리버풀 · 스타방에르 · 2009 린츠 · 빌뉴스 · 2010 에센 · 이스탄불 · 페치 · 2011 탈린 · 투르쿠 · 2012 기마랑이스 · 마리보르 · 2013 마르세유 · 코시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