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 Lisbo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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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 38°42′49.72″N 9°8′21.79″W / 38.7138111°N 9.1393861°W좌표: 38°42′49.72″N 9°8′21.79″W / 38.7138111°N 9.1393861°W | ||||
| 행정 | |||||
| 나라 | 포르투갈 | ||||
| 인구 | |||||
| 인구 | 545,245명 (2011년) | ||||
| 인구밀도 | 6,429명 / km2 | ||||
| 지리 | |||||
| 면적 | 84.8 km2 | ||||
| 웹사이트 | http://www.cm-lisboa.pt/ | ||||
리스본(영어: Lisbon, 포르투갈어: Lisboa 리스보아[*])은 포르투갈의 수도이다. 리스보아 주의 중심도시이자,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도시다. 대서양에 면한 항구 도시로, 인구는 564,477명 (2007년)이다.[1] 리스본의 경제적인 산출, 삶의 표준, 시장 크기, 그랑드 리스보아 (Grande Lisboa) 소구역에 기인하여 이베리아 반도의 두 번째로 가장 중요한 재정적 경제적 중심이다.[2]
유럽 연합의 유럽 마약 감시 센터 (EMCDDA)와 유럽 해양 환경청 (EMSA),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의 본부가 리스본에 있다. 시 공휴일은 파도바의 안토니오 날 인 6월 13일이다.
목차 |
시가지 [편집]
고지대인 알투지구와 중심부의 저지인 바이샤지구로 나뉜다. 두 지구는 공공 엘리베이터와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으며, 북서로 뻗어 있는 시가지에는 12개 이상의 언덕이 있다. 1966년에 완성된 서유럽 최장의 현수교인 "4월 25일 다리"는 처음으로 건너편 연안과의 사이를 연결하여 지역개발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현재 중심도로의 대부분은 1755년의 대지진 후 재상 조제 폼발 후작의 지휘로 부흥과 재개발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정비된 것이다. 헤스타우라도르스광장에서 북서로 향해 폼발 후작 광장까지 뻗은 나비 90m, 길이 1.5㎞의 리베르다드 거리는 리스본의 중심가이며 1880년 개통하였다. 바이샤지구는 문화·상업·행정·교통의 각 시설이 집중해 있는 곳으로 로시우광장과 코메르시우광장이 있다. 로시우광장 동쪽의 구릉 위에 상조르지성이 솟아 있다.
영국과 역사적 관련이 많으며 리베르다드 거리 북서쪽의 에드워드 7세공원은 영국왕의 포르투갈 방문을 기념한 것이다. 서쪽 끝의 벨렝지구에는 마누엘양식의 벨렝탑(1515)이 서 있고, 그 북동에는 16세기 마누엘양식의 제로니무스수도원이 있다. 국립고미술관, 굴벤키안미술관, 해양박물관, 고고학·인류학박물관 등 문화시설도 많다. 리스본대학, 공과대학, 가톨릭대학 등 5개의 종합대학이 있다.
역사 [편집]
리스본의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우선 기원전 1200년경 영국의 콘월 지방을 왕래하던 페니키아인이 세운 항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당시 타구스강 (포르투갈어로 테주강) 하구에 세워진 이 항구도시는 페니키아어로 안전한 항구를 뜻하는 알리스 웁보(Allis Ubbo)라 이름지어졌다고 추정되며, 여기서 리스본이란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다. 또는 로마 이전의 타구스강의 이름인 리소(Lisso) 혹은 루키오(Lucio)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로마시대에는 올리시포(Olisipo) 혹은 그리스어로 올리시포나(Olissipona, Ολισσιπόνα)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고, 올리시포나는 이후 민중 라틴어에 정착했다. 로마 제국 당시 카이사르에 연유하여 펠리키타스 율리아(Feilcitas Julia)라고 불렸다. 서고트족의 지배를 거쳐, 716년부터 이슬람의 지배 아래 있었다. 1143년 카스티야 왕국에서 독립한 포르투갈 국왕 아폰소 1세는 북방십자군의 지원을 얻어 1147년 10월 24일 리스본을 해방시켰다. 1249년 아폰소 3세의 알가르베정복에 의해 포르투갈의 레콩키스타가 완료되자 남부의 중요성이 높아져 13세기 중엽부터 리스본은 코임브라를 대신하여 포르투갈의 수도가 되었다.
그 이후 리스본은 지중해와 북해를 연결하는 무역로의 중계지로서 발전, 1383∼1385년 포르투갈 독립의 위기 때에는 리스본의 부르주아가 독립을 지키기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리스본시정은 24인의 길드대표로 구성된 24인회에 의해 이루어졌다. 1498년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발견에 힘입어 번영하였다. 그때까지 상 조르즈성에만 있던 국왕은 테주강가에 왕궁을 세웠으며 이어서 제로니무스수도원, 벨렝탑 등 마누엘양식을 대표하는 건조물이 세워졌다.
1755년 11월 1일 낮 9시 40분, 포르투갈 서부 지역에 진도 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진앙은 포르투갈 남서쪽으로 200㎞ 떨어진 대서양 해저로 추정된다. [3]시가지 대부분이 폐허화되자 폼발후작은 시가지를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하고 가옥의 배열도 이른바 폼발양식으로 통일하여 리스본은 계몽사상을 구현한 근대도시로 변모하였다.
산업·교통 [편집]
주요한 경제활동은 관광과 상업이며 특히 리스본항구는 화물의 집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재래의 지역산업인 비누·군용품제조·제철 등이 있고, 그 밖에 유리제조·전자기기·마가린제조 등의 산업이 있다. 타구스강 건너 연안쪽의 대규모 공업개발이 촉진되고 있는 공업지대에는 시멘트공장·곡물저장창고·제철콤비나트 등이 세워져 있다. 도심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7㎞ 거리에 포르텔라 공항이 있고, 국철의 역은 시내에 네 곳이 있으며 국내 각지와 스페인, 프랑스행 국제열차도 발착한다. 시내의 교통은 지하철, 버스, 전차가 있다.
스포츠 [편집]
리스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며, SL 벤피카, 스포르팅 CP, CF 벨레넨세스 등 다수의 축구팀을 보유하고 있다.
참고 [편집]
- ↑ Uma população que se urbaniza, Uma avaliação recente - Cidades, 2004 Nuno Pires Soares, Instituto Geográfico Português (Geographic Institute of Portugal)
- ↑ Competitive Cities in the Global Economy
-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02] 리스본 지진”, 《조선일보사》, 2011년 3월 19일 작성.
바깥 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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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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