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콘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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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 함락
프란치스코 프라디야 오르티즈의 1882년 작품

레콘키스타(스페인어: Reconquista, 포르투갈어: Reconquista 헤콩키스타[*], 아랍어: الاسترداد 알 이스티라다드[*])는 718년부터 1492년까지, 약 7세기 반에 걸쳐서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주해 1]를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레콘키스타는 스페인어포르투갈어로 "재정복"을 뜻하며 한국어로는 '국토 회복 운동'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는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정복에 의해 상실하였던 기독교 국가의 영토를 회복하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레콘키스타는 보통 722년 코바동가 전투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본다. 포르투갈의 레콘키스타는 1249년아폰수 3세알가르브(포르투갈어: Algarve, 아랍어: الغرب)를 점령하였을 때 완료되었다. 아폰수 3세는 "포르투갈과 알가르브의 국왕"이라는 칭호를 쓴 최초의 포르투갈 군주였다. 1492년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스페인 연합왕국이 마지막 남은 이슬람 점령지인 그라나다를 정복하여 레콘키스타는 마무리된다.

주요 연표[편집]

레콘키스타의 진행

배경[편집]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정복[편집]

750년 무렵의 이베리아 반도
녹색 지역이 우마이야 왕조의 영토

711년 부터 756년까지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정복이 진행되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로마 가톨릭교회로 개종한 서고트족이 세운 서고트 왕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왕위 계승권을 놓고 서고트 왕국이 내분에 휩싸이자 모로코의 아미르였던 타리크는 서고트족의 지원 요청을 명분으로 이베리아를 침공하였다. 주로 북아프리카베르베르인으로 구성된 무어인 전사들은 이 기간 동안 이베리아 전역을 정복하였다. 이로써 피레네 산맥 이남의 이베리아 반도 전체가 이슬람화 되었으며 무슬림들은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고 이베리아를 통치하였다.

한편, 피레네 산맥을 넘어 오늘날의 투르까지 진격하였던 이슬람 군대는 프랑크 왕국카롤루스 마르텔에게 패배한 뒤 북상을 멈추었다. 이베리아의 서고트 영주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영지를 인정받거나 멸망하였다.[1]

이슬람의 통치 기간 동안 이베리아 반도는 알 안달루시아로 불렸다.

이슬람의 약화[편집]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정복이 완료된 뒤 첫 아미르가 된 알 왈리드 1세이후 오랫동안 이슬람의 이베리아 통치는 안정적으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우마이야 왕조는 다마스커스를 중심으로 한 시리아 지역 아랍인을 우대하는 차별 정책을 취했고 이는 내부에 여러 불만세력을 키우는 원인이 되었다.[2] 이는 결국 반란으로 이어졌고 우마이야 왕조는 해체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뒤를 이어 아바스 왕조가 들어서자 이베리아 반도에는 살아남은 우마이야의 왕자 라흐만 1세후우마이야 왕조를 세웠다. 또한 북아프리카에서는 파티마 왕조가 성립되어 이슬람 세계는 분열되었다.[3]

레콘키스타의 시작[편집]

718년 무렵 서고트족의 귀족이자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영주였던 아스투리아스의 펠라기우스는 이슬람 지방 영주인 무누자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후 펠라기우스는 칸타브리아의 페테르 공작 등과 연합하여 코바동가 전투를 치른다. 이 전투는 이슬람 지방 정부에 대항한 기독교 귀족의 반란에 불과하였으나 이후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국가 회복이라는 명분을 제공하였다.

프랑크 왕국의 침공[편집]

카롤루스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롤랑

750년 자브 전투에서 아바스 왕조가 승리하고 우마이야 왕조가 몰락한 후 세워진 라흐만 1세후우마이야 왕조는 여전히 이베리아 반도 거의 대부분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마이야 왕조의 붕괴 이후 이슬람 지방 영주인 아미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었다. 라흐만 1세에 반대하던 바르셀로나의 아미르는 카롤루스 대제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4]

778년 카롤루스 대제가 이베리아를 침공하였다. 전쟁 초기 카롤루스 대제는 이베리아 반도 북부를 장악하며 승리하였으나 론세스바예스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였다. 이 전투에서 카롤루스는 12명의 팔라딘을 잃었으며 그 중에는 총애하던 기사 롤랑도 있었다. 롤랑의 죽음은 후일 《롤랑의 노래》라는 서사시의 소재가 되었다.[5]

이후 바르셀로나는 프랑크 왕국과 후우마이야 왕조의 각축장이 되었으며 결국 801년 프랑크 왕국에게 점령되었다. 이후 프랑크 왕국은 바르셀로나 백작령을 세우고 바르셀로나를 통치하였다. 바르셀로나 백작령은 914년 다시 이슬람 군대에 의해 함락되기도 하였으나 11세기까지 유지되고 있었다.[6] 바르셀로나 백작령은 알비 십자군 이후인 1258년 프랑스루이 9세아라곤 왕국하이메 1세 사이에 맺어진 코르베유 조약에 의해 아라곤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7]

기독교 왕국의 성립[편집]

아스투리아스 왕국[편집]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718년 펠라기우스가 코바동가 전투에서 승리한 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성립을 선포하였으나 그의 생애 동안 이 왕국은 게릴라 전투에 기반한 군사 집단에 불과하였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영토를 확보하고 실질적인 국가로서 자리잡은 것은 펠라시우스의 손자인 알폰소 2세 시기였다. 우마이야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통치하고 있던 750년 무렵 북서부의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 내에 남은 유일한 기독교 국가였다.

812년에서 814년 무렵 알폰소 2세는 갈라시아를 점령하면서 야고보의 유골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를 명분으로 카롤루스 대제교황이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승인하고 지원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다. 알폰소 2세가 야고보의 유골을 발견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이 세워졌다.[8]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 계속된 기독교 국가와 이슬람과의 전쟁에는 성지의 수호라는 명분이 더해졌다.

레온 왕국[편집]

아스투리아스 왕국 출신의 알폰소 1세가 칸타브리아 산맥을 넘어 남하하여 레온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시작된 레온 왕국은 알폰소 3세(재위 866년 - 910년) 시기에 이르러 두에로 강 일대에 가지 영토를 넓혔다. 이전까지 아스투리아스-레온 왕국으로 불렸으나 뒤를 이은 가르시아 1세 대에 수도를 레온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레온 왕국으로 변경하였다. 한 때 나바라 왕국의 산초 3세에게 정복되나 산초 3세가 사망하자 다시 독립하였다. 카스티야 왕국은 본래 레온 왕국의 백작령으로 출발하였으나 나바라 왕국에 복속된 뒤 산초 3세의 차남이 계승하여 독립국이 되었다. [9] :64

나바라 왕국[편집]

1037년의 이베리아 반도
산초 3세 사후 나바라 왕국은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남부의 초록색은 이슬람 영토로 여러 타이파국으로 분열되어 있는 모습이다

824년 팜플로나와 남부 나바라를 중심으로 바스크인들의 반란을 통해 팜플로나 왕국을 건국하였다. 뒤에 나바라 왕국으로 이름을 바꾼 이 나라는 10세기 부터 레콘키스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1세기 산초 3세 대왕 대에 이르러 강대한 국가로 성장하였다. 산초 3세는 주변의 카스티야 백작령과 아라곤 백작령, 레온 왕국을 정복하여 이베리아 북부의 강자가 되었다. 산초 3세가 사망한 후 나바라 왕국의 영토는 3분 되어 장남 산초 가르시아 3세가 나바라 왕국을, 차남 페르난도 1세가 카스티야 왕국을, 그리고 서자인 라미로 1세가 아라곤 왕국을 물려받게되었다. [9] :65

이후 나바라 왕국은 나바라 지방의 영토를 유지한 채 레콘키스타의 주도권을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 등에게 넘겨주고 약소국으로 전락하였다. 1234년 나바르 왕국은 프랑스에 복속되어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잃었다.[10] 이후 나바라 지방은 오랫동안 프랑스의 영토였다. 1515년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군주를 겸하고 있었던 페르난도는 스스로 나바라 왕국의 군주를 선포하고 1516년 나바라 지방을 복속시켰다.[11]

타이파[편집]

1037년 기독교 국가와 계속되는 전쟁과 내부 반란으로 인해 후우마이야 왕조는 결국 패망하였다. 이후 타이파들이 후우마이야 왕조를 대신하였으나 오늘날의 모로코를 중심으로한 알 모라비드 왕조가 이베리아를 침공하자 복속되고 만다. 그러나 1147년 알 모라비드 왕조가 알 모하드 왕조에게 패망한 뒤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영토는 다시 타이파들에 의해 통치된다. 이후 레콘키스타 최후까지 남았던 타이파 통치 지역인 그라나다 왕국스페인에게 항복할 때까지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통치 지역은 크고 작은 독립적인 타이파 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십자군과 기사단[편집]

1200년 무렵의 이베리아 반도

애초에 레콘키스타는 단순한 일련의 정복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중세 후기로 접어들자 기독교 세계에서 레콘키스타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을 몰아내는 종교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으로 여겨졌다. 교황부르고뉴클루니 수도회 등의 종교 조직이 이슬람의 축출을 선동했으며 각지의 기사들이 "이교도"와 일전을 벌이기 위해 무장을 갖추고 모여들었다.

1064년 교황 알렉산데르 2세는 기독교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호소와 함께 바르바스트로를 함락할 것을 요구하는 교서를 반포하여 바르바스트로 전쟁을 시작하였다. 교황은 이 전쟁에 참여하는 자들에 대하여 면죄부를 발급하였다. 이는 교황 우르바노 2세제1차 십자군을 소집한 것보다 30년 전에 있었던 일로 사실상 십자군의 시작이었다.[12]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제1차 십자군을 소집하여 예루살렘을 침공하였다. 한편, 우르바노 2세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과 치르는 전쟁에 참전하는 것 역시 예루살렘과 성지에서 벌어지는 십자군과 동등한 축복을 약속하면서 타라고나의 점령을 촉구하였다. 이로 인해 십자군 전쟁 기간에도 많은 기사단과 무장조직들이 이베리아 반도의 타이파들과 전쟁을 벌였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서 전쟁을 치른 기사단에는 산티아고 기사단, 몬테사 기사단, 칼라트라바 기사단과 같이 이베리아 반도를 근거지로 하는 기사단들과 함께 성당 기사단과 같이 제1차 십자군에 합류하였던 기사단들도 있었다. 이들은 1195년의 알라르코스 전투, 1212년의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와 같은 전투를 치렀다. 그 결과 전쟁에 참전한 기사단들은 오늘날 스페인안달루시아 지방, 에스트레마두라 지방포르투갈알레테주에 해당하는 광대한 지역을 정복하여 자신들의 라티푼디움으로 삼을 수 있었다.[13]

1215년 알모하드 왕조가 붕괴되고 사하라 서부에 마리니드 왕조가 세워지면서 이베리아 반도의 타이파들의 영토는 더이상 어떤 왕조에도 속하지 않는 사실상 독립적인 국가가 되었다. 한편 이베리아의 기독교 왕국은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의 세 나라가 주변을 통합하고 주요 세력이 되었다. 이들 기독교 왕국은 십자군의 일환인 기사단들과 함께 이슬람 지역에 대한 정복을 계속하였다. 1236년 이슬람 통치의 중심지였던 코르도바가 함락되었으며 1236년 지금의 세비야까지 함락되었다.

1348년 흑사병의 창궐과 모로코를 중심으로한 마리니드 왕조의 반격으로 레콘키스타가 주춤하기도 하였으나 이미 이베리아에서 이슬람의 영토는 바르셀로나그라나다 를 중심으로한 남쪽지역으로 축소되어 있었다.

스페인의 성립과 레콘키스타의 종결[편집]

알함브라 궁전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최후의 이슬람 국가였던 그라나다 타이파의 궁전이다.

1469년 아라곤 왕국의 왕위후계자 페르난도카스티야 왕국의 왕위 계승 후계자 이사벨이 결혼하여 두 나라는 공동 국왕이 지배하는 아라곤 카스티야 공동왕국이 되었다. 이후 스페인(에스파냐)로 이름을 바꾼 공동왕국은 1478년에는 카나리아 제도를 정복하고 1492년 1월 2일,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이던 그라나다를 정복하여 레콘키스타를 종결하게 되었다. [9] :109 이로써 이베리아 반도에서 있었던 781년 간의 이슬람 통치가 종식되었다. 한편 1492년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해이기도 하다. [14]

그라나다를 정복한 스페인은 알람브라 칙령을 반포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추방하였다.

주해[편집]

  1. 가톨릭 국가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의 무슬림을 흔히 무어인이라 불렀다.

주석[편집]

  1. 진원숙, 이슬람의 탄생, 살림, 2008, 63쪽, ISBN 89-522-0808-0
  2. 전국역사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교과서1, 휴머니스트, 2007, 98쪽, ISBN 89-5862-070-6
  3. 전국역사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교과서1, 휴머니스트, 2007, 100쪽, ISBN 89-5862-070-6
  4. 알렉산더 데만트, 전은경 역, 16일간의 세계사 여행, 북로드, 2007, 187쪽, ISBN 89-91239-28-5
  5. 헨드릭 빌렘 반 룬, 이종훈 역, 인류이야기, 서해문집, 2008, 124쪽, ISBN 89-7483-305-0
  6. 이상국 역, 엘 시드의 노래,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9, 53쪽, ISBN 89-7464-521-1
  7. 콜린 존스, 방문숙 외 역,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시공사, 2006, 111쪽, ISBN 89-527-1623-X
  8. 안영옥, 올라 에스파냐 - 스페인의 자연과 사람들, 고려대학교출판부, 147 - 148쪽, ISBN 89-7641-652-X
  9. 이강혁 (2006). 《스페인 역사 100장면》. 가람기획. ISBN 89-8435-147-4
  10. 콜린 존스, 방문숙 외 역,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시공사, 2006, 132쪽, ISBN 89-527-1623-X
  11. 토머스 모어, 황문수 역, 유토피아, 범우사, 2007, 62쪽의 각주, ISBN 89-08-01001-7
  12. Study II : Fernando I and the Origins of the Leonese-Castilian Alliance With Cluny, Studies in Medieval Spanish Frontier History, 미국 중세 스페인 역사학회 홈페이지
  13. O´Callaghan, Joseph F.: "Reconquest and crusade in Medieval Spain",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02, ISBN 0-8122-3696-3
  14. Stanley G. Payne, Chapter Nine The United Spanish Monarchy, A History of Spain and Portug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