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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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균(Yersinia pestis)

흑사병(黑死病)은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전염병으로 박테리아의 일종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가 원인균이다.[1] 페스트라고도 한다.

개요[편집]

1411년 토겐부르크 성서에 그려진 흑사병 환자

유럽에서는 1347년 처음 창궐한 이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여 공포의 대상이었다. 1340년대 흑사병으로 약 2천5백만 명이 희생되었다.[2] 이 때의 흑사병은 중앙아시아인도에서 발원하여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3] 이는 당시 유럽의 인구의 약 30%에 달하는 숫자이다.[4] 최초의 흑사병 확산이후 1700년대까지 100여 차례의 흑사병 발생이 전 유럽을 휩쓸었다. [5]

14세기 중세 유럽에 퍼져나간 흑사병은 "대흑사병"이라 불린다.[6]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은 사회 구조를 붕괴시킬 정도로 유럽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왜 생기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거지, 유대인, 한센병 환자, 외국인 등이 흑사병을 몰고 다니는 자들로 몰려서 집단폭력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학살을 당하기도 하였다. 물론 사회학적으로 비평했을 때 흑사병 기간동안 일어난 학살들은 마녀사냥처럼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전가한 희생양적인 폭력이었다. 한편, 흑사병의 창궐은 삶에 대한 태도도 바꾸어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신조를 낳았고, 이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등에 반영되었다. 흑사병은 유럽인들의 종교적인 사고에도 영향을 주어, 일부 사람들은 하느님이 흑사병으로 심판하니 고행을 함으로써 죄를 씻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흑사병 유행기간동안 벌어진 유럽인들의 유대인 학살.

흑사병이라는 이름은 1883년에 붙여졌는데, 피부혈소 침전에 의해 피부가 검게 변하는 증상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증상이 더욱 진행되면 검게 변색된 부위에 괴저가 발생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7] 흑사병은 임상병리학에서 서혜 임파선종 중 가장 위험한 종류로 다루어진다. 흑사병은 박테리아의 일종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가 원인균으로 이에 감염된 쥐의 혈액을 먹은 벼룩사람를 빨면서 병을 옮기게 된다. 19세기까지 흑사병은 쥐에 의해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20세기에 들어서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흑사병이 쥐와 사람이 함께 걸리는 전염병이기는 하나,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은 쥐가 아닌 사람이라는 주장이다.[5]

역사[편집]

영국 웨이머스의 흑사병 기념 동판
인구의 30 ~ 50%가 희생되었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전파

흑사병 전염경로에 대한 가설[편집]

14세기에 유럽에 전파된 대흑사병의 전염 경로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가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중앙아시아스텝 지역을 통해 전파되었다는 것이며, 그 외에도 인도에서 기원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역사학자 마이클 W 돌스는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의 비잔틴 제국의 흑사병 유행에 주목하면서 흑사병의 전염 경로를 북아프리카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8]

흑사병의 전염경로[편집]

이러 저러한 가설에도 불구하고 흑사병이 유럽에 들어온 데에는 비단길몽골 제국이 관련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몽골 제국비단길을 통해 중앙아시아유럽을 점령하였으며, 1347년 몽골의 포위 공격이 있었던 크림 공화국페오도시야에서 흑사병이 처음으로 창궐하였기 때문이다. 페도오시아를 포위 공격했던 킵차크 한국의 자니베크 칸은 흑사병에 걸려 죽은 군인시체투석기에 담아 도시의 성벽너머로 던져 넣음으로써 흑사병을 생물학 무기로 사용하였으며, 그 결과 도시에 흑사병이 퍼지게 되었다. 당시 페오도시야에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교역소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교역소 사람들중 일부가 시칠리아로 흑사병을 옮겼다. 그 후 흑사병은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9] 14세기 초 유럽의 기후는 중세온난기가 끝나고 연 평균 기온이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겨울 추위는 매서워지고 여름 기후도 좋지 않아 1315년에서 1317년 사이에 대 기근이 발생하였고 특히 북유럽의 피해가 심각하였다.[10]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흑사병에 의한 피해는 더욱 악화되었다.

아시아[편집]

몽골에 의한 전파가 흑사병 확산의 유일한 원인은 아닐지라도 전쟁기아, 그리고 기후의 변화 등이 흑사병 창궐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13세기 몽골중국 점령 시기에 농업상업은 심하게 붕괴되었고 기아가 만연했다. 이로 인해 13세기 후반에 중국의 인구는 대략 1억 2천만명에서 6천만명으로 급감하였다.[11] 14세기에는 중국에서도 흑사병이 번졌던 시기로 이로 인해 중국의 인구 중 약 30%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12]

흑사병이 중앙아시아에서부터 번지기 시작했다는 가설은 중국의 기록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1330년대 초 중국에서도 흑사병이 돌기 시작했으며 1334년 허베이에서 흑사병이 번졌으며, 유럽에서도 흑사병의 위세가 한창이던 1348년1354년 동안 중국 각지에서도 흑사병 확산이 있었다. 당시 흑사병이 심했던 지역으로는 허베이 이외에 장시 성, 산시 성, 후난 성, 광둥 성, 광시, 허난 성, 쓰이위엔[13] 등이었다. 이 시기 중국의 역사 역시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시대였으며 몽골과 비단길을 오가던 상인들에 의해 흑사병이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1347년에 처음 발생한 트라브존콘스탄티노플의 흑사병 역시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유럽[편집]

1347년 상선 함대 하나가 시칠리아메시나항에 당도했다. 이 배의 선원들은 이상한 전염병에 걸려 있었으며 당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사망하였다. 이것이 유럽에 흑사병이 전파된 첫 계기였다. 1347년 - 1348년 사이 제노바베니스에 흑사병이 퍼졌다.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된 흑사병은 유럽 전역으로 번져 나갔다. 1348년 프랑스, 에스파냐, 포르투갈, 잉글랜드 지역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였다. 1349년 - 1350년 사이 흑사병은 독일스칸디나비아 반도에까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노르웨이에서 처음으로 흑사병이 발생한 것은 1349년으로 아스퀴 항에 당도한 선박에서부터 전염된 것이었다. 이 흑사병은 베르겐에까지 번져나갔다. 1351년이 되자 흑사병은 러시아에서도 확산되었다. 결국 폴란드를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흑사병이 창궐하였으나 벨기에와 같은 몇몇 지역은 화를 면했다.

당시 시에나의 아뇰로 디 투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14]

매일 밤낮으로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 역병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머지 않아 온 땅이 묘지로 덮이리라. 나, 아뇰로 디 투라 또한 다섯의 아이들을 내 손으로 묻었다. …… 이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며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믿었다.

서아시아[편집]

흑사병은 서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도 발생하였다. 이 지역 역시 상당한 인구 감소와 이로 인한 사회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중동 지역의 흑사병 전파는 러시아 남부의 흑해 연안에서 시작되었다. 1347년 가을 알렉산드리아에 흑사병이 발생하였다. 이는 콘스탄티노플의 흑사병이 확산된 결과로 여겨진다. 이 후 흑해 연안의 여러 항구 도시를 중심으로 흑사병이 창궐하였다. 1348년이 되자 흑사병은 가자,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으로 확산되었다. 1348년 - 1349년 동안 흑사병은 안티오키아까지 번져 나갔다. 당시 안티오키아는 염료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이 때문에 서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흑사병 확산 목록에 추가되었다.

메카 역시 1349년 흑사병이 퍼졌으며 같은 해에 모술에서도 발생하였다. 1351년 이집트를 방문하고 돌아온 예멘 국왕 일행은 흑사병에 걸려 있었으며 이로 인해 예멘에도 흑사병이 번졌다.

이븐 바투타는 그의 여행기에서 1348년 4월 무렵 흑사병의 창궐로 다마스쿠스에서는 매일 2천명이 죽었고, 같은 시기 카이로이집트 전역의 사망자는 2만 4천명에 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흑사병에 맞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신에게 간구하는 것 뿐이었다.[15]

그들은 금요일 밤을 예배와 염송, 기도 속에서 지새웠다. 아침 예배를 근행하고 나서는 저마다가 손에 꾸란을 들고 걸어서 사원을 나왔다. 아미르들마저도 맨발이었다. 전 시민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심지어 유대인들은 그들의 구약성서를, 기독교인들은 신약성서를 제각기 들고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데리고 떨쳐나섰다. 모두들 경전과 선지자들의 이름으로 알라[주해 1]께 구원을 청하면서 방성대곡 하는 것이었다.[15]

계속되는 재발[편집]

14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과 지중해 연안에서는 흑사병이 지속적으로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14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영국에서는 여러 차례의 흑사병 창궐로 인해 적게는 4백만 명에서 많게는 7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인구가 희생되었다. [16] 이 중 널리 알려진 전염은 런던 대흑사병(1665년1666년), 베니스 대흑사병(1679년), 이탈리아 흑사병 (1629년-1631년) 등이 있다. 계속되는 흑사병의 재발 원인 중 하나로는 30년 전쟁 당시 군대의 잦은 이동이 지목되기도 한다.[17] 1738년 대흑사병튀니지의 상선에 의해 전파되어 아드리아 해우크라이나로 번져 나갔다. 이로 인해 루마니아티미쇼아라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1940년에는 중국 동북부의 농안장춘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여 731 부대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하였다.[18]

감염의 원인과 증상[편집]

림프절 흑사병을 옮기는 것으로 알려진 쥐벼룩(Xenopsylla cheopis)

서혜임파선종 흑사병 이론[편집]

흑사병의 원인균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는 보통의 경우 토양 속에 서식하며 간혹 설치류와 인간의 체내에 들어와 기생하면서 전파되어 흑사병을 일으킨다. 미셀 드란코르가 흑사병의 발생 모델을 정립한 바 있다. [19] 야생화된 개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개들은 벼룩에 의해 감염되거나 감염된 시체를 먹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흑사병에 걸렸다.

유럽에서 있었던 흑사병의 출현, 전파, 소멸 과정에 대한 역학(疫學)의 가설 중 흥미로운 것으로는 비록 다른 종의 설치류라 하더라도 벼룩에 의해 원인균이 전파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곰쥐 뿐 아니라 원래부터 유럽에 있던 시궁쥐에 의해서도 흑사병이 전파될 수 있었다. 특히 시궁쥐는 다른 설치류와 달리 인간의 거주지에서 서식하는 생태학적 특성으로 인해 흑사병 전파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20] 흑사병의 확산과 소강, 재확산 및 갑작스런 소멸에 대한 원인으로는 설치류와 인간의 집단 면역 형성이 지목되고 있다.

종류 및 증상[편집]

흑사병에는 증상에 따라 폐혈성 흑사병, 폐 흑사병, 림프절 흑사병의 세 종류가 있다.

가장 흔히 발병하는 흑사병은 림프절 흑사병으로 전체 발병율의 75%에 달한다. 림프절 흑사병은 원인균이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에 있는 림프절을 공격하여 부종을 일으키며, 초기 증상은 38 - 41 °C의 고열과 함께 구토, 두통 을 보여 말라리아로 오인되기도 한다. 증상이 진행됨에 따라 흑사병 특유의 검은 반점, 부종이 나타난다. 림프절 흑사병은 사람간의 직접 전염은 일어나지 않으며 벼룩을 매개로 전파된다.[21]

폐 흑사병은 두 번째로 발병율이 높은 흑사병으로 원인균이 폐를 공격하여 폐부종을 일으키며 사망율이 95%에 달하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발병 후 8일 이내에 80%이상이 사망한다. 패혈성 흑사병은 원인균이 혈액에 직접 침투하여 일어나며 극히 드문 경우에만 나타나나 발병할 경우 단 시간안에 사망하게 된다.[22]

흑사병 창궐의 결과[편집]

유럽, 중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창궐한 흑사병으로 발생한 희생자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망율을 기록하였다. 흑사병에 의해 빚어진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인구 감소[편집]

유럽[편집]

유럽 지역의 인구는 흑사병으로 인해 지역에 따라 1/3 ~ 1/2 규모로 감소하였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희생자는 총 7천5백만 명에서 2억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23] 유럽 중세사를 연구하는 사학자 필립 데이리더는 2007년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24]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한 초기 4년간의 희생자는 통상 인구의 45% ~ 50% 로 추산되고 있으나 이는 총괄적인 수준의 기록이다. 실제 유럽에서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사망률을 보였는데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남부 등에서는 지역에 따라 인구의 80%가 희생되는 경우도 빈번하였다. 한편 북부 독일, 잉글랜드 등지에서 초기 4년 동안의 사망률은 20% 정도였다"

아시아[편집]

중국의 원나라 시기인 1334년 허베이에서 창궐하여 인구의 90%가 사망하였으며 1353–54년 동안 중국과 몽골지역에서 2천5백만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25]

그 외의 영향[편집]

죽음의 무도에 그려진 흑사병
흑사병을 몰고다니는 닥터 쉬나벨, 파울 페르스트 1656년 작

1350년대 유럽의 문화는 흑사병의 영향으로 매우 음울하였다. 문화의 곳곳에서 염세주의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당시 사람들은 역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민간에서는 닥터 쉬나벨 폰 롬(독일어 Doktor Schnabel von Rom , 로마 출신의 부리 가면 박사)이 흑사병 환자의 집을 방문하면 환자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속설이 퍼졌다. 닥터 쉬나벨은 새부리 가면을 쓰고 긴 검은 겉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쓴 채 지팡이를 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하였다.[26]

문학 속의 흑사병[편집]

주해[편집]

  1. 이슬람의 알라와 유대교, 기독교여호와또는 야훼는 모두 같은 신을 대상으로 하는 호칭이다.

주석[편집]

  1. 흑사병 원인균의 약물내성에 대한 경고, pasteur.fr
  2. 흑사병, 네셔널지오그래픽
  3. 역사 속의 흑사병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고찰
  4. 사망자 추정: Stéphane , L'Histoire n° 310, June 2006, pp.45–46, - "1/3 내지 2/3 사이"; Robert Gottfried (1983). 흑사병, 중세 사전 제2권, pp.257–67, - "25 ~ 45%".
  5. 흑사병의 전파는 쥐가 아닌 사람에 의한 것, guardian
  6. Judith M. Bennett and C. Warren Hollister, Medieval Europe: A Short History (New York: McGraw-Hill, 2006), page 327 . ISBN 0-07-295515-5. OCLC 56615921.
  7. 앞의 책
  8. Michael W. Dols, "The Second Plague Pandemic and Its Recurrences in the Middle East: 1347-1894" Journal of the Economic Social History of the Orientvol. 22 no. 2 (May 1979), 170-171.
  9. [http://www.channel4.com/history/microsites/H/history/a-b/blackdeath.html 흑사병, channel4.com
  10. [Judith M. Bennett and C. Warren Hollister, Medieval Europe: A Short History (New York: McGraw-Hill, 2006), 326 . ISBN 0-07-295515-5. OCLC 56615921.]
  11. Ping-ti Ho, "An Estimate of the Total Population of Sung-Chin China", in Études Song, Series 1, No 1, (1970) pp. 33–53.
  12. 흑사병에 의한 인구 감소, med.nyu.edu
  13. 쓰이위엔은 중국 역사상의 현으로 한국에는 수원(綏遠)현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허베이내몽골 자치구에 속해 있다.
  14. 시에라의 흑사병, arizona.edu
  15. 정수일 역, 《이븐 바투타 여행기 1》, 창작과비평사, 2001년, ISBN 89-364-7066-3, 155쪽
  16. 흑사병의 재발, BBC
  17. Prinzing, Freidrich. Epidemics Resulting from Wars. Oxford: Clarendon Press, 1916.
  18. 일 731부대 '페스트균 기록' 발견, 《연합뉴스》, 2005.8.17.
  19. Michel Drancourt, 예르시니아 페스티스의 토양 및 인체 내 기생에 대한 연구
  20. Appleby, Andrew B. "The Disappearance of the Plague: A Continuing Puzzle", Economic History Review 33, 2 (1980) 161-173
  21. Rebecca Totaro, Suffering in Paradise: The Bubonic Plague in English Literature from More to Milton, (Pittsburgh: Duquense University Press: 2005), p. 26.
  22. Ziegler, Philip (1969). Black Death. ISBN 0-06-131550-8
  23. [http://www.abc.net.au/science/articles/2008/01/29/2149185.htm Will Dunham , 희생자를 차별한 흑사병,abc.net]
  24. Philip Daileader, The Late Middle Ages, audio/video course produced by The Teaching Company, 2007. ISBN 978-1-59803-345-8
  25. 흑사병의 결과,experiencefestival.com
  26. David Herlihy, The Black Death and the Transformation of the West, (Massachusetts: Harvard University Press, 1997), 72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