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시칠리아 | |
|---|---|
![]() 시칠리아의 깃발 |
|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유적 |
|
| 위치 | |
| 시간대 | UTC +1 |
| 일반 정보 | |
| 국가 | 이탈리아 |
| 레기오네 | 시칠리아 주 |
| 주 수도 | 팔레르모 |
| 면적 | 25,708 km² |
| 인구 | 5,036,666 (10/2008) |
시칠리아 (이탈리아어: Sicilia)는 이탈리아의 자치주이자 지중해 최대의 섬이다. 북서쪽에는 사르데냐, 북동쪽에는 이탈리아 본토의 칼라브리아 반도, 남서쪽에는 아프리카 대륙의 튀니지, 남동쪽에는 몰타 영토인 몰타 섬이 있다.
목차 |
[편집] 지리
시칠리아는 메시나 해협을 사이에 두고 킬라브리아 반도에 인접해 있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트리나크리아(라틴어 Trinacria)로 불렸다.
시칠리아와 인근의 부속 도서는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섬이다. 시칠리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트나 산으로 시칠리아 북동부의 메시나 인근에 있으며 높이는 3,320 m에 달한다. 에트나 산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이다.
시칠리아의 가장 큰 강은 살소 강으로 시칠리아 중앙을 가로질러 에나와 칼라니세타의 인근을 지나 남부의 항구 리카타 인근에서 지중해와 만난다. 이 외에도 시칠리아 동부의 메시나를 지나는 알칸타라 강과 서부의 벨리스 강과 플라타니 강 등이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시트론, 오렌지, 레몬, 올리브, 아몬드와 같은 과일들과 포도주가 있다. 19세기 에나와 칼타니세타의 광산에서 황이 발견되었으며 1950년대부터 황 광산이 운영되고 있다.
[편집] 기후
| 시칠리아의 기후 | |||||||||||
|---|---|---|---|---|---|---|---|---|---|---|---|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
72
15
10
|
65
15
10
|
60
16
11
|
44
18
13
|
26
22
16
|
12
25
20
|
5
28
23
|
13
29
24
|
42
27
22
|
98
23
18
|
94
19
14
|
80
16
11
|
| 기온 단위: 섭씨 강수량 단위: 밀리미터 출처: "Sicily weather and climate". 2008년 1월 8일. |
|||||||||||
시칠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엔 따뜻하고 습기가 많으며 여름에 덥고 건조하다.
[편집] 역사
고대 로마 초기 시칠리아는 동부 지역은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인 시라쿠사의 지배하에 있었고 서부 지역은 카르타고의 통치를 받았다. 시칠리아 북부의 메시나와 시라쿠사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메시나는 동맹국이었던 로마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시라쿠사는 카르타고를 끌어들였고 이는 결국 기원전 264년 포에니 전쟁으로 발전하였다. 기원전 241년 패전한 카르타고는 강화조약을 통해 시칠리아를 로마에게 양도하였다.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전쟁의 결과 기원전 146년 로마는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지중해 서부의 유일한 지배 국가가 되었다.[1]
로마 제국의 멸망 후 시칠리아는 비잔티움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827년 튀니스의 아랍인들이 시칠리아를 점령하였다. 이들은 팔레르모에 수도를 세우고 200여년 간 시칠리아를 통치하였다. 1072년 노르만족이 팔레르모를 정복하여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다. 이들은 그리스로부터 넘겨받은 비단 생산 기술을 통하여 번영을 누렸으며 시칠리아 왕국의 영토는 나폴리 지역까지 확대되었다.[2] 노르만족은 관용적인 통치를 펼쳤다. 시칠리아 왕국에서는 비잔티움 제국 시절부터 있었던 그리스인뿐만아니라 아랍인도 관료로 중용되었다. 언어 역시 라틴어, 그리스어, 아랍어가 모두 공용어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13세기 전반에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이 된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이후 이러한 관용은 쇠퇴하였다.[3]
노르만 족 이후 시칠리아의 지배자는 독일의 슈타우펜 왕가, 프랑스의 앙주 왕가로 바뀌었다. 앙주 왕가의 프랑스는 시칠리아에서 학정을 일삼았고, 결국 1282년 앙주 왕가의 학정에 불만을 품은 민중들이 일으킨 시칠리아 만종 사건 이후 20여년간 계속된 민중 봉기 끝에 아라곤 왕국의 피터 3세가 왕위에 올랐다. 한 편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잃은 앙주 왕가는 나폴리 왕국을 세웠다. 16세기 이후 시칠리아는 다시 나폴리까지 통치하게 되었다.[4]
시칠리아 왕국은 1816년 나폴리 왕국과 합병하여 양시칠리아 왕국이 되었으며 1860년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된 후 1861년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편집] 주석
|
|
|---|
| 라치오 · 롬바르디아 · 리구리아 · 마르케 · 몰리세 · 바실리카타 · 발레다오스타 · 베네토 · 사르데냐 · 시칠리아 · 아브루초 · 에밀리아로마냐 · 움브리아 · 칼라브리아 · 캄파니아 · 토스카나 · 트렌티노알토아디제 · 풀리아 ·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 · 피에몬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