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녀 사냥(魔女 - ,프랑스어: Chasse aux sorcières, Witch-hunt) 또는 마녀 재판은 중세 말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및 북아메리카 일대에 행해졌던 마녀나 마법 행위에 대한 추궁과 재판에서부터 형벌에 이르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현대에는 이러한 행위를 심리학적인 관점으로서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로 간주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전근대적인 문화나 고대부터의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마녀 재판과 비슷한 행위를 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일찍이 마녀 재판이라고 하면, 12세기 이후 기독교의 주도에 의해 행해져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이러한 견해는 1970년대 이후 마녀 재판의 학술적인 연구의 진전 덕분에 수정되어 본래 민중 사회에서 일어났던 마녀 재판은 15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볼 수 있었으며 전 유럽에서 최대 4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보고 있다.
목차 |
[편집] 유럽에서의 마녀 재판
[편집] 마녀 재판의 기원
고대 이래, 사람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은 거대한 힘 또는 자연을 조종하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힘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유럽에서 라틴어로 마레피키움(Maleficium)으로 불리는 마법의 개념으로 연결되었다. 원래 유럽 각지에서는 민사에 관한 한, 권력자가 아닌 민중이 자발적으로 실시하는 민중 재판을 통해 치안을 유지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 중에 폭력이나 절도와 함께 마법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건도 중재의 대상이 되고 있었지만, 특별히 무거운 형벌이 부과되지는 않았으며, 다른 범죄와 같이 피해를 보상하는 것으로 처벌하고 있었다. 또 같은 마법으로도 좋은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여겨졌던 것, 이른바 백마법은 일반적으로 인간 친화적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중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리스도교 사회권에서는(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아니지만) 악마가 인간이나 동물 등을 이용해 악한 행위를 한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이러한 생각은 그리스도교 이전부터의 민족 신앙에 대한 불신감이나 십자군 병사들에 의해 동방에서 가지고 온 사상 및 문화 등이 융합하여 생겨났다고 추측된다. 또 고대 이래, 악마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사람들은 그것을 근절하려고 애써왔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서 악마의 하수인으로 여겨진 인간에 대한 규탄이 있었다. 악마에게 이용된다고 여겨지는 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동물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중세 유럽에서 볼 수 있던 동물 재판에서는 악마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동물도 있었다. 사람들은 악마에게 사로잡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붙잡고는 민중 재판에서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여성 연구가 막스 다슈에 따르면, 중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마녀관은 그리스도교 이전의 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를 들어 로마의 민족 종교인 박커스 신앙이나 로마의 전설에 나오는 괴물 스트리크스(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올빼미로 변신해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여겨졌다.)와 마녀상간에 유사점이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일찍이 마녀 재판이라고 하면, 중세 유럽 사회에서 12세기 카타리파 탄압이나 성전 기사단 박해 이후에 로마 교황청의 주도 아래 이단 심문이 활발해졌으며, 뿐만 아니라 교회의 주도로 마녀 재판이 활발히 행해져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 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다양한 연구에 의해서 이러한 견해는 뒤집어지게 되었다. 특히 유명한 노맨 콘과 리처드 키크히퍼의 연구에 따르면, 마녀 재판은 스위스와 크로아티아의 민중 사회에서 시작되어 이윽고 민중 법정의 형태로 마녀를 단죄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단에 관해서는 깊이 개입했지만, 마녀에 관해서는 별로 관여하지 않았던 로마 가톨릭이 이단 심문을 통해 마녀 재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5세기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이것은 1384년과 1390년에 밀라노의 이단 심문소에서 마법을 사용한 혐의로 고발당한 두 명의 여성에 대해, 이단 심문소에서는 이런 종류의 고발에 대해서는 재판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온 것으로 보면 알 수 있다.
[편집] 마녀 사업
사실 마녀재판은 아주 상업적인 목적을 갖고 있었다. 마녀로 인식이 된 혐의자에게는 사형의 형벌을 내리는데 이 법 자체가 아주 황당한 것이 마녀는 그 혐의를 가리는 동안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마녀가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고문도구 대여료, 마녀를 고문하는 고문기술자 급여, 재판에 참여하는 판사 인건비, 마녀를 체포할 때 소요된 모든 시간과 비용, 마녀가 확정될 경우 화형을 집행하는데 소요된 모든 비용 및 관값, 교황에게 내야 하는 마녀세 등을 마녀용의자가 모두 지불해야 했고 심지어는 마녀가 화형에 처해진 이후 다시 한번 처해지는 형벌이 바로 '전재산 몰수'형이였다. 즉 마녀는 서류상으로는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는 집행관과 교황에게 급여를 지불해가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 되며 최후로는 자신을 살해한 교황과 그 일당들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상속하는 꼴이 된다.
[편집] 마녀 용의
때문에 마녀 용의자는 주로 엄청나게 부유한 과부들이다. 특히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으면서 돈은 엄청나게 많은 여자들이 마녀로 잡혀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자위행위를 하다가 발각이 될 경우 '마귀와 섹스를 한다.'를 혐의를 뒤집어씌워 마녀로서 잡아간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숭배하는 부두교라는 종교를 믿는 자들 역시 '악마를 숭배한다'는 명목하에 마녀로 잡아갔다. 마녀사냥꾼들은 마녀에 대해 이러한 혐의를 적용하며 설명한다.
“마녀들은 악마와 섹스를 하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이를 실행하기 위해 빗자루를 매개체로서 활용한다.”[1]
[편집] 마녀 재판의 전개와 쇠퇴
12세기에 시작된 이단 심문이 민사 재판으로 재판되었던 마법까지 취급하게 된 것은 15세기에 들어가면서부터이지만, 그것은 왈도파가 많았던 스위스나 프랑스의 알프스와 가까운 지방에서만 취급되었다. 노맨 콘에 따르면 기록을 보면 1428년의 스위스 Valais 주의 이단 심문소가 마녀 건을 취급한 것이 최고였다고 한다. 원래 이 지방의 이단 심문소는 주로 왈도파를 추궁하는 성향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윽고 이단자들의 집회 이미지가 마녀의 집회 이미지로 변용되어 간다. 악마 숭배 행위, 혹은 성물을 모독하는 행위, 아이를 납치해 잡아먹는 행위 등의 마녀의 집회가 가지는 이미지는 일찍이 이단의 집회에서 행해졌다고 여긴 이미지 그대로였다(마녀는 본래 군집생활을 했었으며, 숲에 혼자서 사는 마녀의 이미지는 그림 동화의 영향이 크다).
한발 더 나아가 마녀의 개념이 당시 유럽을 뒤덮고 있던 반 유대주의와 결합하게 되면서, 아이를 잡아먹는 매부리코를 가진 여인이라고 하는 마녀상이 만들어졌다. 마녀의 집회가 유대인의 안식일과 같은 명칭인 사바트로 불리게 된 것도 반 유대주의의 산물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마녀의 이미지가 완성된 것이 15세기였다.
15세기에 들어가면서, 마녀와 마법에 관한 서적이 일종의 붐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서적의 대부분은 속설이나 소문을 근거로 집필된 것이었으며 마녀의 위험성을 부추기는 저속하고 선정적인 물건이었다. 또,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마녀의 혐의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여러 가지 잔인한 고문 행위도 이러한 풍설에 근거한 것이었다. 유럽에서는 1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에서는 1970년대말 이후 공식적으로 마녀재판이 사라졌다.
이후 2003년 3월 5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시에 따라 교황청은 《회상과 화해 : 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해 과거 교회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각종 잘못을 최초로 공식 인정했다. 이때 마녀사냥에 대한 잘못도 인정하며 전세계적으로 가톨릭의 이름으로 사죄했다.
[편집] 마녀재판의 실례
[편집] 마녀 재판을 하는 방법
- 네 가지 방법 중 첫 번째로 눈물 시험(Traenenprobe)이 있었다. 마녀망치에서는 ‘마녀들은 사악하기 때문에 눈물이 없다, 그래서 혐의자가 눈물을 흘릴 수 있나 시험해보라’고 나와 있다. 눈물을 흘려서 혐의자가 죄가 없다는 것을 실증해 보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데, 생사가 걸린 문제에서 눈물을 억지로 짜내는 게 쉽게 될 턱이 없다.
- 두 번째는 바늘 시험(Nadelprobe)이다. 바늘시험은 성경 구절의 예언서에서 유래된 것으로, 구원받은 자의 표식으로 이마에 먹이나 도장을 친다는 논리에서 유래됐다. 타락한 악마들은 지울 수 없는 표식을 가지고 있으며, 마녀 또한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따라서 재판관이 그녀들의 나체를 관찰하고, 또 관찰의 용이성을 위해 몸의 털, 음모, 눈썹을 깎거나 태운다. 관찰에 의해 사마귀, 융기, 부스럼, 기미 ,주근깨 등 마녀의 점이 나오면 형리는 그 자리를 누르거나 바늘로 찔러 감각을 느끼는지, 피가 흐르는지 시험한다. 사바스에서의 난교에 의해 마녀는 피를 다 써버렸기 때문에, 마녀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고 간주되었다.
- 세 번째는 불시험(Feuerprobe)이다. 재판관은 혐의자에게 그들의 무혐의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달구어진 쇠로 지지는 것을 견딜 수 있는지, 그리고 다치게 될지를 시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안했을 때 혐의자가 승낙을 한다면 그는 마녀가 된다. 마녀는 이 난관을 악마의 도움을 받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 네 번째는 물시험(Wasserprobe)이다. 일반적으로 물은 깨끗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졌다. 형리들은 혐의자를 단단히 묶고 깊은 물에다 빠뜨린다. 물은 깨끗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녀가 들어올 경우에는 물 밖으로 내쳐진다고 믿어졌다. 만약 혐의자가 물에서 익사한다면, 그는 혐의를 벗게 되겠지만, 물에서 떠오른다면 마녀로 간주되어 화형 되었다. 마녀든 아니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편집] 시기와 지역, 희생자 수
- 희생자 : 잔 다르크,
[편집] 마녀 재판의 의미
[편집] 광적인 마녀 재판
[편집] 관련 항목
유사한 유형의 사형으로는 인민재판이라는 것이 있다.
[편집] 주석
- ↑ 그래서 오늘날 마녀의 이미지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형상이 된 것이다.
[편집] 바깥고리
- The Stages of a Witch Trial ? a series of articles by Jenny Gibbons.
- 1913 Catholic Encyclopedia entry on "Witchcraft"
- The Burning Times A Wiccan discusses what she considers the three myths of "The Burning Times"
- Jenny Gibbons (1998). Recent Developments in the Study of The Great European Witch Hunt. Retrieved 21 November 2006.
- Crises: Witch hunt
- The Decline and End of Witch Trials in Europe by James Hannam
- Witch Trials Documentary Archive and Transcription Project
- Witch Trial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