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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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의 731 기념관.

731 부대(일본어: 731部隊 (ななさんいちぶたい) 나나산이치부타이[*])는 일본제국 육군 관동군 소속의 비밀 생물학전 연구 및 개발 기관으로,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에 있던 부대

1932년에 설립하였고 초기에는 '관동군 방역급수부', '동향부대'로 불리다가 향후에는 '731 부대'로 개명하였다. 중일 전쟁(1937~1945년)을 거쳐 1945년까지 생물·화학 무기의 개발 및 치명적인 생체 실험을 행하였다. 일본 요원이 악명 높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공식적으로는 ‘헌병대 정치부 및 전염병 예방 연구소’, '방역과 급수에 대한 임무'로 알려졌으며 실제로 '이시이 시로'는 731부대의 진짜 목적을 위장하기 위해 휴대용 야전 정수기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원래는 태평양전쟁 전 정치 및 이념 부서로 설립되어 적에 대한 사상, 정치적 선전과 일본군의 사상 무장이 임무였다. 첫 부임자였던 의사 이시이 시로(石井四郞)의 이름을 따라, 이시이 부대(石井部隊)라고도 불린다. 731 부대는 또한 히로히토의 칙령으로 설립한 유일한 부대이며, 히로히토의 막내 동생이 그 부대의 장교(고등관)로 복무하였다

설명[편집]

이 부대는 중국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하얼빈 핑팡(平房, 당시 만주국 괴뢰 정부의 영토)에 주둔해 관동군 관할 구역 내의 정수 업무를 하는 것으로 위장되었다. 이 부대는 일본의 정치적 선전, 일본 군대의 사상적 대표로서 업무를 수행했다. 처음에는 공산주의 정치 선동에 대항해 일했으나 나중에 그 영역이 확대되었고, 화학·세균전 준비를 위한 연구와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을 위한 것이었다.

731 부대는 크게 보면, 독일 나치의 SS같은 정치 선동 부서이다. 여기서는 일본인의 인종적 우월성, 인종주의 이론, 방첩 활동, 정보 활동, 정치적 사보타주, 적 전선 침투 등에 관한 활동을 하였다. 이 부대는 만주 헌병대, 만주 정보기관, 만주 정규 경찰, 만주 거류민 위원회, 지역 만주 민족주의 정당, 일본 비밀 정보기관과 긴밀히 연락했다. 이 부대의 만주에 있는 부문에서는 백러시아인, 중국인, 만주인, 몽골인과 기타 특수 부서, 비밀 부서 경력의 외국인을 활용했다.

민간인과 군인 모두 1만 명의 중국인과 조선인, 몽골인, 러시아인이 이 부대의 실험 대상이었다. 일부 미국인과 유럽인 등 연합군 전쟁 포로가 731부대의 손에 죽었다. 게다가 이 부대에서 생물학 무기 프로그램에 의해 연구된 생물학 무기의 사용으로 수만 명의 중국인이 죽었다.

731부대는 일제가 세운 생물학전 연구기관 중 하나였으며, 516부대(치치하얼 시, 齊齊哈爾), 543부대(하이라얼 시, 海拉尔), 773부대(Songo), 100부대(창춘, 長春), 1644 부대(난징, 南京), 1855부대(베이징, 北京), 8604부대(광저우, 廣州), 200부대(만주), 9420부대(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각지에 세워진 기관도 731부대와 유사하거나 731부대의 생체실험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일제의 헌병대가 관리하였다.

인체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는 부대의 속성상, 부대 주변 지역을 전부 소개하고 지역주민을 전부 추방시킨 사례나, 부대 인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생물학무기를 실험한 사례등 인근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사례까지 알려져 있는 등 하얼빈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부대 인근 지역을 통과 시 열차 커튼을 모두 내려야 하고 부대인근지역을 차창밖으로 내다보는 승객은 그 자리에서 체포/심문하는 규정이 존재하였을 정도로 보안에 매우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731 부대장 중장 이시이 시로

731부대와 관련된 많은 과학자가 나중에 정치, 학계, 사업, 의학 부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부는 소련군에 체포되어 하바로프스크 전범 재판에 회부되었다. 미국에 항복한 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료를 제공하는 대가로 사면받았다. 그들이 행한 잔인한 행위 때문에 731 부대의 활동은 국제연합에 의해 전쟁범죄로 선포되었다.

형성[편집]

1932년 이시이 시로는 ‘육군 전염병 예방 연구소’라는 이름의 의무부대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와 그 부하들은 종마 수용소를 건설했다. 이곳은 그 지역에는 종마 요새로 알려져 있다. 이 실험 수용소는 ‘베이인허’에 있는데, 하얼빈 시에서 남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이시이는 ‘토고 부대’를 조직했는데 화학, 생물학 작전을 하기 위한 비밀 연구 그룹이다. 1935년 탈옥과 폭발이 있었고, 이시이는 종마 요새를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중에 핑팡(하얼빈 시에서 남쪽으로 24킬로미터)으로 가서 훨씬 더 큰 새로운 시설을 만들었다.

이 부대는 나중에 관동군으로 통합되어 ‘전염병 예방부’가 되었고, 같은 시기에 ‘이시이 부대’와 ‘와카마쓰 부대’로 나위어졌다. 창춘에 있었다. 1941년부터 이 부대들은 합쳐서 ‘관동군 방역 급수부’ 또는 731부대로 불린다. 이 부대는 제국청년군(Imperial Young Corps), 대학의 연구소, 헌병대의 지원을 받았다. 어떤 이는 731부대가 헤로인 생산을 위해 만주에서 양귀비를 경작하던 미쓰이 재벌과 연계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활동[편집]

암호명 ‘마루타’의 특별계획은 실험할 때 인간을 사용하였다. 실험 대상은 주위 인구 집단에서 징용되었고 이들은 완곡어법으로 ‘통나무’(마루타)라 불리었다. 마루타란 용어는 구성원 중 일부의 농담에서 유래했다. 이 시설을 지역 당국에는 제재소라고 했기에 그런 농담이 생겼다. 실험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심지어 임산부까지 동원되었다. 수많은 실험과 해부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마취없이 이뤄졌고, 이는 실험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생체 실험 (또는 생체 해부)[편집]

  • 수용자는 마취없이 생체 실험을 당하였다.
  • 다양한 질병에 걸린 수용자를 생체 해부하였다. 과학자들은 수용자에 대한 침습적 수술을 하였다. 질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장기를 제거하였다. 모두 살아있는 상태에서 시행했다. 왜냐하면 부패 과정은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성인 남자, 성인 여자, 어린이, 영아 모두 대상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인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 생체 실험은 임산부에게도 시행되었다. 어떤 때는 의사에 의해 수태되고 그 태아는 꺼내졌다.
  • 출혈의 연구를 위해 수용자의 팔이나 다리를 절단하였다.
  • 절단된 팔이나 다리는 가끔 수용자의 반대편에 다시 봉합되었다.
  • 몇몇 수용자의 팔이나 다리는 얼려져 절단되었다. 어떤 때는 얼렸다가 녹여서 치료받지 않은 괴저 및 부패의 영향을 연구했다.
  • 일부 수용자의 위는 외과적으로 절제되고 식도와 장을 연결하였다.
  • 일부 수용자에게서 뇌, 폐, 간의 일부가 제거되었다.
  • 피부 표본을 얻기 위해 실험 대상의 피부를 산채로 벗겨내었다. 의식은 살아 있는 반 시체상태의 실험자는 소각 처리되었다.
  •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절단하여 각각 상대방의 국부에 이식하는 성전환수술실험을 했다.

무기시험[편집]

  • 보병소총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수용자를 3개조로 나누고 각각 일렬로 세우는데 이때의 복장은 한조는 팬티만 입은 상태, 또다른 한 조는 평상복, 나머지 한 조는 방한복 차림으로 실시했다.
  • 수류탄을 시험하기 위해 인간 목표물을 다양한 거리의 다른 위치에 세웠다.
  • 인간을 대상으로 화염방사기를 시험하였다.
  • 인간을 말뚝에 묶어 세균방출폭탄, 화학무기, 폭발성 폭탄을 시험하였다.

세균전 공격[편집]

  • 수용자에게는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접종되어 그 효과를 연구했다. 예방접종이라고 위장하였다.
  • 치료받지 않은 성병의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남녀 수용자에게 일부러 매독, 임질을 강간에 의해 감염시키고 연구하였다.
  • 질병 전파 벼룩을 대량으로 얻기 위하여 수용자에게 벼룩을 감염시키고 세균전의 유용성을 연구하였다.
  • 일부 수용자에게는 전염병이 퍼지는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만두에 집어넣고 급식시켰다. 당시 수용자에게 지급되는 음식이 만두였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 전염성 벼룩, 감염된 의류와 물자가 폭탄 안에 포장되어 다양한 목표물에 투하되었다. 이때 이시이 시로 중장이 직접 개발한 도자기 폭탄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도자기 폭탄은 폭발력을 고의로 약하게 만들어 안에 내장된 세균이 죽는 것을 최소화했다. 흑사병, 콜레라, 탄저 등 전염병으로 약 40만 명의 중국인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1][2]

기타 여러 실험[편집]

  • 일부 수용자는 질식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아보기 위하여 목을 매달았다.
  • 일부 수용자는 색전이 생기는 시간을 결정하기 위하여 동맥(또는 심장)에 공기가 주입되었다.
  • 일부 수용자는 신장에 말의 소변이 주입되었다.
  • 일부 수용자는 사망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결정하기 위하여 물과 음식을 전혀 주지 않았다.
  • 일부 수용자는 사망할 때까지 고압의 방에 놓였다.
  • 일부 수용자는 극저온에 놓이어 동상이 걸리게 하였다. 그런 조건에서 얼마나 생존하는지, 인체 살의 부패괴저가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이는 주로 여성 수용자에게 행해졌다.
  • 일부 실험은 온도화상, 인간 생존의 관계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 일부 수용자는 원심분리기에 넣어져 사망할 때까지 돌려졌다. 인체 수분 함량 비율을 알기 위해서였다.
  • 동물의 혈액이 일부 수용자에게 주입되어 그 효과가 연구되었다.
  • 일부 수용자를 가스실에 넣어 다양한 종류의 화학 무기를 시험했다.
  • 바닷물이 몇몇 수용자에게 주사되었다. 바닷물이 생리식염수를 대체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 일부 수용자에게는 진공 실험을 실시했다. 진공상태에서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 하는 실험이었다.

실험 외적인 살인행각[편집]

  • 731부대의 판임관(위관급 장교)과 고등관(영관급 장교 및 기사(의사))들은 실험이 이미 끝났지만 살아있는, 그러나 실험으로 인해 쇠약해지거나 병들어 죽음을 앞둔 수용자들을 원판에 묶은 뒤 원판을 돌리며 그 원판에 단검을 던지는 게임을 했다.
    • 이때 판임관들 사이에서 도박이 행해졌는데 명중되는 부위를 걸고 자신이 선택한 수용자의 신체부위에 단검이 명중되었을 경우 그 간부가 도박에 걸어놓은 돈을 전부 획득했다.
  • 731부대의 군인들은 때때로 아직 실험하지 않은 여성 수용자들을 강간치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 731부대에서는 병사들의 군기를 확립하기 위해 병사들에게 수용자 중에 가장 병약하거나 가장 저항이 심한 수용자를 실험재료로 사용하기 전에 육모방망이로 때려서 숨지게 하도록 강요했다. 이는 수용자를 인간으로 인식한 일본군 병사가 수용자를 탈출시켜 주는 것과 석방을 요구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구성[편집]

이시이 부대, 즉 731부대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은 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 장군(將軍) - 부대장인 이시이 시로 중장 이외에 총합 5명 이내만 존재한다.
  • 고등관(高等官) - 좌관급 장교. 731부대에서 실험에 종사하는 기사(의사)의 경우는 소좌 내지는 중좌와 같은 대우로서 고등관으로 분류되었다.
  • 판임관(判任官) - 위관급 장교. 실험 외적인 분야에서 책임자이거나 기사조수가 해당된다.
  • 고원(雇員) - 부사관. 부사관 및 기타 잡다한 일의 작업반장으로서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 용인(傭人) - 병사. 병사 및 가장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수용소 간수는 거의 전부 용인이다.

부대내규[편집]

  • 물의를 일으키거나 탈주를 시도한 수용자는 24시간 이내에 실험을 종료시킨다. 이 때문에 수용자가 폭동을 일으킬 경우 일정에 없던 실험을 하기도 했다.
  • 731부대의 모든 구성원(부대지휘관 포함)은 731부대에 몸담고 있는 도중 사망하면 그 시체는 생체실험의 대상으로서 해부된다.
  • 어떠한 경우라 해도 수용자는 석방시킬 수 없다.
  • 실험이 종료된 이후의 수용자는 살아있든 죽었든 간에 무조건 소각 처리한다.
  • 만약 적과의 교전에서 패배 또는 기타 다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731부대를 해체해야 할 경우에는 모든 수용자를 정리해야 한다. 여기서 정리란 수용자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
  • 수용자의 탈주를 도와준 731부대원은 직위해제는 물론이고 중죄인으로 분류되어 사형 또는 이에 준한 형벌을 받는다.
  • 처음 전입한 신병은 수용자중 가장 품질이 떨어지는 수용자를 때려 죽여야 한다. 이는 수용자를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인식하게 하기 위함이다.[3]

부서[편집]

731부대는 8개의 부서로 나뉜다.

  • 제2부: 생물학 무기를 연구했다. 특히 병균과 기생충을 퍼뜨리는 장치의 생산에 중점을 두었다.
  • 제3부: 병균을 포함한 수류탄의 생산. 하얼빈 시에 위치해 있었다.
  • 제4부: 기타
  • 제5부: 요원 훈련
  • 제6부 ~ 제8부: 시설, 의학, 행정 부서


부대원[편집]

부대원들중 이시이, 시로, 기요시, 기요사마등은 도쿄의과대 출신이다.

관련인물[편집]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 기요시 기와사마의 딸로 추정

희생자들[편집]

한국, 중국, 몽골, 러시아의 군인과 시민,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약 1만 명의 사람들이 생화학 병기의 실험 재료로서 살해되었다. 그 중에는 일부 흑인과 유럽인도 포함되었다. 731부대에서 개발된 생화학 무기로 인해 수십만 명의 중국인이 학살되었다.

한국인 희생자[편집]

2005년 8월 2일 하얼빈일보는 생체실험 대상자였던 1,463명의 명단을 발굴 공개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한국인 희생자는 6명으로 아래와 같다. 대부분 항일운동 또는 반파쇼 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인물로 파악되고 있다.

전후 처리[편집]

극동 국제 군사 재판 때 일본의 생체실험 문제가 언급되었으나, 관련자들은 실험에서 얻은 자료들을 미국에 제공하고 러시아에 넘겨주지 않는 대가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처벌을 막은것은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731부대가 아닌 일본내에서 소수의 미국인이 생체실험을 당하여 살해되었을 때 그 관련자들을 조사하고 처벌하였지만 731부대를 비롯한 자국민이외의 사람이 생체실험을 당한 경우에는 전혀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금전까지 지급하며 보호하였다.[4] 731부대의 잔인한 행위는 현재 전쟁범죄로 공표되어 있는 상태이다.

관련 항목[편집]

주석[편집]

  1. 또다른 역사왜곡 ‘세균전 부정’, 《동아사이언스》, 2001.4.19.
  2. 전쟁…끝나지 않는 아픔 (69), 《미디어오늘》, 2004.5.17.
  3. 처음 전입한 신병이 여자 수용자와 사랑에 빠졌는데 전입신병이 이 여자 수용자에 대한 계속적인 석방을 요구하다 자살한 사건이 발생된 이후에 군 기강확립을 위해 이런 내규가 생겼다.
  4. - Unit 731: Japan's biological force.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