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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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십자군
(십자군 전쟁의 일부)
십자군의 예루살렘 공격 (1099년)
십자군의 예루살렘 공격 (1099년)
날짜 1096년 - 1099년
장소 근동, 아나톨리아, 레반트
결과 십자군의 승리
십자군 국가의 성립
교전국
기독교 왕국

Holy Roman Empire Arms-single head.svg 신성 로마 제국

France Ancient.svg 프랑스 왕국

Henry II Arms.svg 잉글랜드 왕국

Aragon-Sicily Arms.svg 아풀리아 공국

Komnenos-Isaac-Arms.svg 비잔티움 제국
Armoiries Héthoumides.svg 실리시아 왕국

이슬람 왕국
터키 셀주크 투르크
Flag of Jihad.svg 다니슈멘드
이집트 파티마 왕조
모로코 알모라비드 왕조
아프가니스탄 아바스 왕조



제1차 십자군1095년 예루살렘으로 출병한 기독교 사상 최초의 십자군이다. 제1차 십자군의 직접적 원인은 1095년에 로마 황제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가 지원을 호소한 데 있었다.[1]

당시 이슬람 세계는 분열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십자군의 공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레몽, 고드프루아, 보에몽 등 쟁쟁한 군웅들을 앞세우고, 총사령관으로는 명목상이긴 하지만 아데마르 주교가 있었고 은자 피에르도 따라갔다.

제1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에 도착, 먼저 니케아를 공격하고 안티오키아를 공략한다. 그러나 도중에 아데마르 주교가 사망함으로 해서 군웅들 간에 유대감이 사라지고 군웅 할거로 치닫게 되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1099년 십자군은 마침내 예루살렘 정복에 성공한다. 성 안으로 난입한 십자군은 많은 시민들을 학살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결과, 시리아에서부터 팔레스타인에 걸쳐 이르는 중동 지역에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한 몇 개의 십자군 국가가 세워졌다. 예루살렘 왕국의 왕으로는 가장 존재감 없고 중립적인 고드프루아가 되었으나, 얼마 못되어 죽었다. 보에몽아데마르의 후임인 다임베르트와 짜고 예루살렘을 노렸으나 다임베르트는 일찌감치 온 고드프루아의 동생 보두앵에게 밀려나고, 보에몽은 무슬림들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며 공식적으로 끝이난다.

사죄[편집]

제1차 십자군 출정으로부터 900여년뒤인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는 그리스에 방문하여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행한 약탈과 살인 방화 등의 만행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출처 필요]

주석[편집]

  1. E. M. 번즈, R. 러너, S. 미첨, 《서양 문명의 역사 - 상》, 박상익 옮김, 소나무, 2007, p. 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