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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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북위 41° 0′ 31″ 동경 28° 58′ 48″ / 북위 41.00861° 동경 28.98000° / 41.00861; 28.98000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아 소피아(그리스어: Αγία Σοφία 고대: 하기아 소피아, 현대: 아야 소피아[*], 라틴어: Sancta Sophia 상크타 소피아[*], 터키어: Ayasofya 아야소프야[*],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는 이스탄불에 있는 정교회 대성당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티움 건축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물로 여겨지고 있다.

비록, 겉보기에는 가톨릭 성당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현대식으로 보자면 이슬람교와 관련이 크다. 실제로는 이슬람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예배를 보기도 하였다.

역사[편집]

비잔티움 제국 시대[편집]

하기아 소피아는 원래 정교회 대성당이며, 교회는 360년, 이스탄불이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불렸을 때,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서 처음으로 건립되었다. 이 정교회 대성당이 이때부터 하기아 소피아로 불리게 되었는지, 훗날의 재건 때부터 하기아 소피아로 명명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최초의 정교회 대성당은 목조 지붕을 가진 바실리카였던 것 같지만, 오늘날에는 그 위치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404년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성 크리스소톰)를 추방시키는데 수반된 난동으로 교회가 소실되어,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재건,415년에 축성되었다. 이 대성당도 현재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바실리카이며, 현재에도 일렬의 원주와 주기, 장식된 대들보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정교회 대성당도 532년 1월 13-14일 니카의 반란 도중 일어났던 대화재로, 황궁의 일부나 성 이레네 성당과 함께 다시 소실해 버린다.

두 번의 소실을 겪은 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즉위후 소피아 정교회 성당의 재건을 결정하여, 그 설계를 안테미오스이시도로스에게 맡겼다. 공사는 5년 11개월이라고 하는 단기간에 종료되어, 537년 12월 27일 유스티니아누스 1세를 맞이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메나스 총대주교에 의한 헌당식을 거행했다. 이때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왕 솔로몬의 신전을 능가하는 교회를 세웠다는 생각을 하여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에게 승리했도다!” 라고 외쳤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서 재건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의 소재지로서 동방정교회 제일의 격식을 자랑하였으며, 또 동로마 제국의 황제의 사당으로서 이용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한 순례자들의 기록을 보면, 대성당 안에는 현재는 없어진 시설이나 성유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4세기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한 러시아인 스몰렌스크이그나티오스의 기록에서는, 대성당 내부에는 많은 예배당이 설치되어 있으며 노아의 방주의 문이나 성 십자가[1], 아브라함의 테이블 등 많은 성유물들이 안치되어 있었다. 또, 이 시대에는 근처에 총대주교구의 자택이 병설되어 있어, 현재는 출입구가 되어 있는 부분은 총대주교 자택으로 통하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 시대[편집]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거한(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오스만 제국술탄 메흐메드 2세는, 그 날 오후에 도시로 입성하자마자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으로 향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없고, 알라만 존재한다.” 고 외치면서 영토 확장 목적의 달성을 기념하기 위해 대성당의 흙을 자신의 머리에 뿌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부터 이 대성당을 몰수, 모스크로 사용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때에 대성당과 연결되어 있는 총대주교 자택의 통로는 파괴되고 대성당 내부는 십자가가 떼어지고 성화(이콘)는 석회칠로 덮어지고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는 메라브가 더해졌다. 그 후, 네 개의 미나렛(첨탑)이 증축되어 교회 내에는 민발로 불리는 설교 단상도 장착되었다. 아야 소피아 자미로 불리게 된 이 정교회 대성당은 토프카프 궁전 쪽에 위치해 있어,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매주 금요일 예배마다 방문하게 되어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격식 높은 모스크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었다.

터키 공화국[편집]

1923년 오스만 제정이 무너지고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그리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은 하기아 소피아의 반환과 종교적 복원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터키 정부는 하기아 소피아를 인류 모두의 공동유산인 박물관으로 지정하고 아야소피아 박물관(Ayasofya Müzesi)으로 개조해 그 안에서 기독교이슬람이든 종교적 행위를 일절 금지했다. 하지만 2013년 11월 13일에 아른츠 부총리가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다시 바뀌기를 원한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2]

주석[편집]

  1.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형틀.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교회력 절기 중 하나인 성 십자가 발견일을 통해 성 십자가의 발견을 기념한다.
  2. 터키의 상징 '성소피아박물관' 이슬람사원화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