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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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년 제작된 칼 데 카렌 성서에 그려진 솔로몬의 제판

솔로몬(Solomon 혹은 Shlomo, 히브리어: שְׁלֹמֹה 쉴로모), 구약성서에 기록된 이스라엘 왕국의 제3대 왕으로서, 기원전 1037년부터 기원전 998년까지 유다이스라엘의 민족을 다스린 것으로 여겨진다. 솔로몬 혹은 샬로모라는 말은 ‘평화’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다윗 왕의 아들로 이집트 왕녀와 결혼하여 동맹을 맺고, 국내 건설과 국경 방위에 힘썼다. 예루살렘 신전을 비롯한 장대한 도시를 건설하는 한편, 외국과의 통상을 맺어 이스라엘 전성기를 이루어 '솔로몬의 영화'라고 칭송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에 대한 과중한 세금과 사치스러운 생활로 이스라엘 왕국 분열의 원인을 가져왔다. 그는 지혜가 뛰어났으며, 문학에도 뛰어나 이스라엘 문학의 시조라 일컬어진다. 많은 작품 중 <잠언>이 남아 있다.[1]

생애[편집]

즉위[편집]

솔로몬은 다윗 왕(영어: David, 히브리어: דָּוִד, 아랍어: داود)과 밧세바(Bathsheba) 사이에서 태어난 두 번째 아들이다. 그러나 첫 번째 아들은 예언자 나단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하면서 일주일 만에 병으로 죽고 말았기 때문에, 사실상 솔로몬이 밧세바의 유일한 아들이다. 다윗 왕의 죽음이 가까워오는 것을 아는 밧세바는 왕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단 예언자에게 '솔로몬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솔로몬은 어머니 밧세바나단 예언자, 사제 차독(사독), 브나야 등 지지 세력과 함께 이스라엘의 왕에 오른다. 모반을 꾀하던 이복형제인 아도니야와 그를 지지하던 요압, 에브야타르, 시므이 등의 반대파는 숙청을 당한다.

솔로몬의 일천 번제[편집]

솔로몬 왕이 일천 번제를 곧 일천 마리의 제물을 바치는 성대한 제사를 드리자 하나님은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하였다(왕상3:4-5, 대하1:7). 이때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였다. 그리고 이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왕상3:10, 대하1:11-12). 이에 하나님은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왕상3:13). 이후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알려졌으며 남쪽 시바 여왕과도 교분을 가졌다.

솔로몬의 과오[편집]

그러나 솔로몬의 말년에는 백성들을 무거운 세금과 국가 노역에 허덕이게 하였다. 솔로몬의 사후 집권한 르호보암에게 백성의 대표들이 "노역을 줄여 달라! "고 요청할 정도였다. 게다가 말년에는 하나님을 예전처럼 잘 섬기지 않고 왕비로 맞은 이방 여자들의 꼬임에 넘어가 우상 숭배를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심판을 선포하고 그것을 바로 시행하였다. 먼저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원수가 되게 하였고(왕상11:14-22), 또 다메섹(수리아)의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원수가 되게 하였다(왕상11:23-25). 나아가서 예언자 아히야를 통해서 솔로몬의 신복인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 열 지파를 주겠다고 선언하였다.

르호보암[편집]

솔로몬 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하나님의 선언은 성취되었다. 열두 지파의 연합체로 구성된 이스라엘 왕국에서 열 지파가 독립하고 두 지파만 남은 것이다. 솔로몬 시대에 무거운 세금과 국가 노역에 피로해진 백성들은 르호보암 왕에게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왕상12:4). 이에 솔로몬 시대에 국정에 참여했던 노인(장로)들은 정치 경험이 많았으므로 르호보암 왕에게 백성들의 노역을 가볍게 해주어야 한다고 교도(敎導)하였지만, 르호보암은 자기와 함께 자라난 젊은 소년들의 가르침을 좇아 백성을 강압적으로 다스렸다(왕상12:6-15). 이에 불만을 품고 열 지파(르우벤, 시므온, 단,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에브라임, 므낫세)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면서 독립하여 북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스라엘 왕국은 단 두 지파(유다,베냐민)만이 남아 남 유다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그 입지가 줄어들게 되었다. 르호보암의 강압 통치가 이스라엘 국가 분열의 역사적 원인이지만, 그 이면에는 솔로몬 왕의 범죄와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기인한다.[2]

업적[편집]

  1. 솔로몬은 나라를 매우 견고하게 다스림.
    1. 아도니야를 죽임(왕상2:13-21,25).
    2. 제사장 아비아달을 추방함(왕상2:26-27)
    3. 요압과 시므이를 죽임(왕상2:28, 왕상2:39-46).
  2. 솔로몬은 나라를 지혜로 다스려 최강국으로 만듦.
    1.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였다(대하9:26, 왕상4:21).
    2. 최대의 부를 누렸다(왕상4:22-23, 왕상10:14).
    3. 최대의 안정(평강)을 누렸다(대상22:9, 왕상4:25).
    4. 많은 나라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몰려왔다(왕상4:34, 10:3,6-7,23-25).
  3. 솔로몬은 최초로 성전을 건축함.
    1. 하나님 중심주의 신앙에 기초하였다(대상22,28,29장).
    2. 성전을 건축한 장소는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이다(대하3:1).
    3. 성전의 식양(설계도)은 하나님이 친히 알려준 것이다(대상28:11-19).
    4. 성전을 건축할 때 동원된 인력은 총 183,850명이다(왕상5,9장).[2]

솔로몬 성전 건축 기간에 대한 새로운 견해[편집]

제 사 년 시브월에 여호와의 전 기초를 쌓았고 제 십일 년 불월 곧 팔월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전이 다 필역되었으니 솔로몬이 전을 건축한 동안이 칠년이었더라

열왕기상 6:37-38

먼저 (왕상6:37-38)에서 "칠년이었더라"는 기록을 살펴보자면, 이스라엘과 성경에서 사용하는 날짜의 계산은 모두 '일수'를 모두 포함하는 전통과 비교했을 때에 전혀 맞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성경에서 사용하는 일수 계산법으로 기록했다면, '7년 6개월'의 건축기간은 '8년이었더라'고 기록해야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문제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달력 방식인 <니산월력>과 <티쉬리월력>을 이해함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성전 건축은 솔로몬 제 사 년 시브(=2월) 2일에 시작하여(대하3:2) 제 십일 년 불월(=8월)에 끝났으며, 그 건축한 기간은 "7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상9:10)에서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20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쳤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왕상7:1)에서는 솔로몬이 자기의 궁을 건축하는 데만 13년이 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구절을 근거로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는 데 걸린 기간은 일수(=햇수)로 "7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니산월(1월)부터 시작되는 달력 체계로 볼 때는 '8년'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는 듯 보인다. 왜냐하면 솔로몬 성전 건축이 시작되는 솔로몬 제 4년부터 끝나는 제 11년까지는 여덟 해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솔로몬 성전 건축 기간을 '8년'이 아닌 "7년"으로 기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솔로몬 시대의 왕의 통치 연수를 계산할 때는 한 해를 니산월(1월)부터 시작하지 않고 티쉬리월(7월)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티쉬리월을 기준으로 할 때 솔로몬 제 4년 시브월(2월)은, 니산월 기준에서는 솔로몬 제 5년째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니산월 기준이 티쉬리월 기준보다 6개월 앞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티쉬리월을 기준으로 할 때, 성전 건축 기간은 '8년'보다 1년이 적은 "7년"이 되는 것이다.

또한 솔로몬이 성전 건축 기간을 니산월(1월) 기준으로 보면 7년 6개월이 걸린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실제로 사용하였던 티쉬리월(7월) 기준으로 계산한다면 약 6년 6개월이 나온다. 이렇게 1년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티쉬리월을 기준으로 한 통치 제 4년 시브월(2월)은 니산월을 기준으로 할 때의 통치 제 5년 시브월(2월)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6년 6개월의 성전 건축은 햇수로 정확히 "7년"에 해당하는 것이다.[2]

전 임
다윗
제3대 이스라엘 왕국 국왕
기원전 1037년 - 기원전 998년
후 임
(북 이스라엘)여로보암
(남 유다)르호보암

주석[편집]

  1.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2. 박윤식《영원한 언약 속의 신비롭고 오묘한 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