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보암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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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1세(재위 기원전 998년경-977년경)는 분열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으로 남왕국 유다와는 다른 집안의 사람이다.

초기 생애[편집]

여로보암은 느밧과 과부 츠루아의 아들로 츠레다 출신의 에브라임 사람이었다. 솔로몬 왕이 밀로 궁을 건설하고 다윗 성의 갈라진 틈을 보수할 때 솔로몬 왕의 눈에 띄어 요셉 집안의 강제 노동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때 예루살렘으로 가다가 예언자 아히야를 만나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질 것을 예언했다. 이 이야기가 솔로몬 왕에게 알려져 죽을 것을 알고 이집트의 임금 시삭에게로 도망쳤다.

왕이 되다[편집]

솔로몬 왕이 죽자 여로보암은 이집트에서 돌아와 10지파의 지지를 받아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여로보암은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서 살다가 스켐을 세우고 거기서 살다가 다시 나와 프누엘을 세웠다. 그런데 이집트의 금송아지 신을 받드는 것이 문제가 되어 백성들을 금송아지에게 절하려 벧엘까지 갔고 사제는 레위 사람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을 임명하였다.

어느 날에는 여로보암이 여느 날과 다름없이 벧엘의 제단 옆에 서서 분향을 하려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이 와 경고를 하고 여로보암의 손을 굳게 만들고 벧엘의 제단이 무너졌다. 하나님의 사람이 기도하자 손이 다시 회복되었다.

죄악[편집]

이런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을 악한 일에서 돌아서지 않고 계속 일반 백성들을 산당의 사제로 임명하였고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산당의 사제가 되게 하였다. 이로 인해 하나님이 그를 버려 남왕국 유다와 전투를 벌일 때 크게 패배하여 생전에 그 패배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때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이 들었고 여로보암의 아내는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이에 대한 경고와 예언을 들었고 타르차로 돌아와 집 문지기 방에 들어서자마자 아비야가 죽고 말았다.

이후 80만 대군을 이끌고 유다 왕국의 아비암과 결전을 치르기도 했으나 에프라임 전투에서 50만 명에 달하는 군사와 영토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