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토 피노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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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아우구스토 호세 라몬 피노체트 우가르테(스페인어: Augusto José Ramón Pinochet Ugarte, 1915년 11월 25일 - 2006년 12월 10일)[1]1973년부터 1990년까지 칠레대통령을 지낸 군사독재자이다. 그의 정권 하에서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광범위한 경제 개혁이 시행되었으나, 좌파 정당,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 인사,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 당시 공직역임자 등에 대한 탄압 정책이 벌여져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피노체트는 인플레이션과 경제 정책 실패로 혼란스러운 살바도르 아옌데정권을 쿠데타로 붕괴시킨 1973년 9월 11일부터 1990년 3월 11일의 대통령 선거까지 칠레를 통치했으며, 권력을 독점하고 반공 정책을 실시했다.

피노체트는 쿠데타 이후, 시카고대 출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칠레 경제학자들('시카고 보이즈')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유지상주의적 경제정책을 펼쳐, 국영 기업과 광산 등의 민영화, 규제 철폐, 무역 장벽 해소 등에 집중했으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튼 프리드먼 등에게 '칠레의 기적' 이라 칭송받았다.

1970년 세계최초로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 정권(살바도르 아옌데정권)이 등장하자 미국이 친미정권수립을 칠레 쿠데타 세력을 지원했다는 비판도 있는데[2], 빌 클린턴 정부 시절에 비밀 해제된 미국 정부의 문서들에 미국이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의 초기부터 전복을 바라고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긴 하지만, 쿠데타에서의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은 공개된 문서들로는 증명되지도 부정되지 않는다. 이 사안과 관련된 상당수의 문서들은 아직도 비밀로 분류되어 있다. 한편, 미국의 CIA에서 과거의 기록과, 과거 요원들과의 인터뷰 등을 검토한 조사 결과[3]에 따르면 "(CIA는) 피노체트가 대권을 취하도록 돕지 않았다"고 하며, 2000년 11월의 백악관의 보도 자료[4]에 따르면 "이 당시 미국 정부가 허락한 활동들이 칠레의 정치적 분열을 악화시켰으며, 칠레의 오랜 민주 선거 역사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피노체트는 열여덟 살 때 군에 입대한 이래 줄곧 군인의 길을 걸었다.

피노체트의 장례식은 칠레 대통령의 거부로 국장으로 치러지지 못하였으며, 칠레 사관학교에서의 장례식에서는 피노체트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이 충돌하기도 했다.

목차

[편집] 피노체트 정권

[편집] 군사독재

피노체트의 군사독재는 '피의 독재'라는 별명이 붙었다.[5] 칠레 정부의 과거사조사결과에 따르면 피노체트의 17년간의 독재로 약 3,197명에 이르는 학살피해자가 발생했으며[6] 고문 피해자도 수 만 명에 달한다.[7] 또한 행방을 알 수 없는 실종자도 1,197명에 달한다. [8]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당시 탄압당한 사람들은 칠레 공산당칠레 사회당등의 좌파정당 인사[9]군사독재에 반대하여 결성된 공산당계 테러조직인 '애국전선' 용의자와 그들의 동조자, 살바도르 아옌데정권당시 공직 역임자[10]등이다.

[편집] 민주화 운동과 정권의 종식

피노체트의 군사독재당시 칠레 로마가톨릭교회는 교우들이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살해당하자, 1973년 10월 정의평화위원회를 구성,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정의평화위원회에는 로마가톨릭교회 외에도 칠레 성공회(스페인어: Iglesia Anglicana del Cono Sur de America), 유대교, 정교회, 개신교(감리교 등)에서도 참여했다. 7명의 로마가톨릭 사제들이 살해당할 정도로 평화위원회는 군사독재정권의 큰 탄압을 받았으며,지도자로 활동하던 추기경도 피노체트 군부독재정권으로부터 붉은 추기경(Red Cardinal)이라는 비난을 받을만큼 미움받았다.[11]

K-TV(한국정책방송)에서 2005년 2월 7일에 보도한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폭력〉'제6회 피노체트를 굴복시킨 낙선운동-칠레편'에 따르면, 칠레 민중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나 당시 목격자들이 '눈뜨고는 볼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가혹한 폭력으로 진압당했으며, 민중들의 거센 민주화 요구로 마지못해 치루어진 선거 당시에도 반(反)피노체트 진영에서는 텔레비전 광고와 토론 프로그램 참여등으로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의 취약점인, 하지만 언론의 자유 통제로 감추어졌던 인권 탄압 문제를 부각시켰다. 선거당일에도 유권자들은 피노체트에게 표를 주지 않는 비폭력저항을 벌여, 결국 피노체트는 권좌에서 물러냐야했다.

[편집] 퇴임 이후

1991년 선거로 권좌에서 물러난 그는 런던에서 요양을 하던 1998년 10월, 영국 사법 당국에 체포되었다. 독재 시절 국가 폭력 피해자 중에는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을 비판한 에스파냐 사람에 대한 납치사건 80건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에스파냐 정부가 국제 수배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2000년 3월 건강 사유로 석방되어 칠레로 귀국했다. 칠레 사법부는 독재자를 반드시 처벌한다는 신념에 따라 그를 가택 연금했으며, 약 300여 건의 국가범죄로 기소했으나 2006년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사법적인 처벌은 행해지지 못했다.

[편집] 마지막 생애와 죽음

2006년 11월 25일, 피노체트의 91번째 생일에 피노체트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보낸 연설문에서 "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오늘, 어느 누구에게도 원한은 없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조국을 사랑한다. 그동안 행해졌던 모든 것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지겠노라"라고 전했다. 연설문은 그의 부인이 대독하였다.

그가 집에 연금되고 난 이후인, 2006년 12월 3일 아침, 피노체트에게 심장마비 증세가 찾아왔고 그 날 로마가톨릭교회 사제에게 병자성사를 받았다. 12월 4일, 칠레 항소 법원은 그의 가택연금을 푼다는 명령을 내린다. 군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2월 10일 (공교롭게도 세계인권선언일), 피노체트는 울혈성심부전으로 사망했다.[12][13] 산티아고 중심가에서는 피노체트의 반대 세력이 모인 대규모의 거리 시위 및 집회가 있었고 한편 지지자들의 시위가 군병원 주위에서 있었다.

칠레 정부는 전임 대통령 사망 시 행해지는 국장은 없을 것이고 대신 전임 군사령관으로서의 군장(軍葬)을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칠레 정부의 애도일 선포는 없었으며 다만 군대 병영에 조기를 내거는 것은 허락하였다. 현 칠레 대통령 미첼레 바첼레트의 아버지는 한때 피노체트의 1973년 쿠데타 이후 투옥되고 얼마지 않아 심장합병증으로 별세한 바 있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피노체트의 국장에 참여하는 것은 양심에 위배된다"고 말했다.[14]

그의 화장은 2006년 12월 12일에 행해졌으며, 유해는 Parque del Mar 묘역에 묻혔다. 피노체트의 가족은 피노체트가 무덤에 대한 모욕과 파괴행위를 막기 위하여 화장을 원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15]

[편집] 주석

  1. 피노체트는 자신의 이름 'Pinochet'에서 't'를 발음하지 않는다. 유튜브 동영상을 참조할 것. http://www.youtube.com/watch?v=QksQSKboTL0
  2. 한국일보 2006년 12월 10일자,독재자 피노체트 사망… 칠레는 결국 그를 단죄하지 못했다
  3. https://www.cia.gov/cia/reports/chile/
  4. U.S. Dept. of State's White House Press Statement 11-13-00
  5. 동아일보, 1973년 칠레 민중가수 하라 처형
  6. http://freespace.virgin.net/nicole.drouilly/rettig.htm
  7. [1][깨진 고리]
  8. 칠레의 또 다른 9•11을 기억하라,한겨레 21 2006년 9월 22일
  9.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당시 칠레 공산당은 1천명의 공산당원들이 살해당할 정도로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한겨레 21 2006년12월21일 제640호 기사
  10.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당시 미국주재 칠레대사를 역임했던 올란도 레텔리에르는 칠레 군부의 쿠데타이후 칠레비밀경찰(DINA)에 의해 살해당했다.《열정의 편집》/앙드레 쉬프랭/류영훈 옮김/한국 출판마케팅 연구소
  11. 《한겨레 21 》2006년12월21일 제640호 기사
  12. Augusto Pinochet falleció en el Hospital Militar tras sufrir recaída, El Mercurio
  13. Chile's General Pinochet 'dead', BBC 뉴스
  14. Clashes Break out after Pinochet's death
  15. Family Wants Pinochet Cre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