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부투 세세 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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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butu Sese Seko 1973.jpg

모부투 세세 세코(Mobutu Sese Seko, 1930년 10월 14일 ~ 1997년 9월 7일) 는 1965년부터 1997년까지 32년간 콩고 민주 공화국 (1971~1997 자이르) 을 통치한 국가 원수이며 1997년 쿠데타로 권좌에 물러났다.

모부투는 1930년 10월 14일, 벨기에령 콩고의 리살라 (Lisala) 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의 이름은 조제프데지레 모부투 (Joseph-Désiré Mobutu) 였다.

1940~50년대 벨기에령 콩고의 보안대에서 일했고, 브뤼셀에 유학한 뒤에는 신문 기자를 거쳐 콩고민족운동에 참여하였다. 1960년 6월 콩고 공화국이 벨기에로부터 독립되자마자 연립 정부에서 국방장관과 참모총장을 지냈으며, 카탕가 주를 둘러싼 국내의 상황 악화에 따라 1960년 9월, 카사부부의 지지 아래 루뭄바를 내쫓고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하였다. 1961년 정권을 카사부부에게 이양하고 군의 최고사령관이 되었으나, 1965년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해 대통령에 올랐다.

대통령에 오른 뒤에는 국명을 콩고에서 자이르로, 수도명을 프랑스어식인 레오폴드빌에서 킨샤사로 개칭하는 등 아프리카화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1972년 자신의 이름 역시 응그반디어식인 모부투 세세 세코 은쿠쿠 응그벤두 와 자 방가[1]로 개명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동서 냉전을 이용, 반공주의를 지향해 그 담보로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을 받았으나, 대부분을 착복하여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모부투의 부정 축재는 대략 50억 달러로 파악되며, 서아프리카, 브라질, 모로코 등 각지에 호화 별장이나 대저택을 보유하고, 검은 돈을 은폐하기 위한 은행 계좌를 마련하는 등의 행위를 저질렀다.

1996년 스위스에서 암 치료를 받으려고 자리에 없는 사이 로랑 카빌라가 이끄는 반군에게 국토의 대부분을 점령당했고, 1997년 5월 결국 반군의 정권 장악으로 축출 당해 모로코라바트로 망명했으나, 그 해 9월 6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에피소드[편집]

  • 그는 축구를 자신의 정적의 제거에 활용하기도 했다.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당시 유고슬라비아 국적의 비디니치 감독이 지휘하고 있던 자이르 축구 대표팀브라질, 유고슬라비아, 스코틀랜드와 한 조에 속해 있었다. 조별 예선 1차전인 스코틀랜드전에서 0:2로 패한 자이르는 2차전인 유고슬라비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부투는 조별 예선 2차전 유고슬라비아전을 앞두고 비디니치 감독을 전력누설 의혹을 이유로 경질하고 체육부 장관을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감독 대행하에서 유고슬라비아전에서 0:9로 참패하자 이번에는 자신의 정적인 체육부 장관을 최다 점수차 패배를 이유로 경질했다.
  • 모부투의 국가 권력을 이용한 국민침탈 행위를 지칭해 도둑정치 (kleptocracy) 라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참조 문헌[편집]

  •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주석[편집]

  1. "초인적 인내와 불굴의 의지로, 지나가는 발자취마다 불을 남기며, 정복에 정복을 거듭하여 전진하는 전능한 전사"라는 의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