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로 애그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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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로 애그뉴
Spiro Theodore Agnew
스피로 애그뉴
스피로 애그뉴
미국 미국제39대 부통령
임기 1969년 1월 20일~1973년 10월 10일
대통령 리처드 닉슨
후임: 제럴드 포드(제40대)

출생일 1918년 11월 9일
출생지 미국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사망일 1996년 9월 17일 (77세)
사망지 미국 미국 메릴랜드 주 벌린
정당 공화당
학력 존스 홉킨스 대학교
볼티모어 대학교
종교 성공회
배우자 주디 애그뉴
자녀 파멜라 애그뉴
제임스 란드 애그뉴
수잔 애그뉴
킴벌리 애그뉴
서명 Spiro T Agnew Signature.svg

스피로 시어도어 애그뉴(Spiro Theodore Agnew, 1918년 11월 9일 - 1996년 9월 17일)는 미국 정치인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밑에서 1969년부터 부통령을 지냈으나, 1973년 불명예스럽게 사임하였다.

생애[편집]

1972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아폴로 17호의 발사를 축하하는 애그뉴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그리스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의 성씨는 본래 아나그노스토풀로스(Anagnostopoulos)였는데, 미국에서 영어식인 애그뉴로 바꿨다.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쟁 후 볼티모어 대학교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1952년 전역했다. 그 후 볼티모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공화당 소속으로 공직 진출을 시도, 1962년 볼티모어 군의 군수로 선출되었고, 1966년에는 역대 최연소로 메릴랜드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주지사 재임 중 주에 존속되어 오던 인종차별적 악법의 폐지에 기여하였다.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 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전격 지명되었다. 당시 그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노련한 닉슨의 러닝메이트로 신선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인기를 모아 당선되었다. 1969년 부통령에 취임했으며, 미국에서 그리스계로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다. 1972년에 재선에 성공하며, 그는 다음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유력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장래가 촉망되던 정치인이던 그는 1973년 완전히 몰락했다. 주지사 재직 당시의 뇌물 수수와 탈세가 폭로되었고, 이에 대해 언론을 비판하면서 더욱 물의를 빚었다. 그에 혐의에 대해 법원의 기소가 결정되었고, 기소되기 직전 그 해 10월 10일 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이로써 그는 1832년 사임한 존 C. 칼훈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부통령직을 사퇴한 인물이 되었고, 자신의 문제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사퇴한 것으로는 최초의 경우였다. 그는 탈세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며 자신이 사임하는 것은 국가를 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후 벌금 1만달러와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변호사직을 박탈당한 그는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닉슨 행정부 시절의 관리들을 비판한 회고록을 출간했다. 그 후 기업체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주로 메릴랜드 주 동남부 해안의 오션시티에서 은둔하며 지내다가, 부근의 벌린에서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