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월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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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월리스

조지 콜리 월리스(영어: George Corley Wallace, Jr., 1919년 8월 25일 ~ 1998년 9월 13일)는 미국의 정치인이다. 1960년대앨라배마 주지사를 지냈고, 오랫동안 인종 분리 정책 철폐에 저항하며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이로 인해 암살의 위협을 받은 후, 인종 차별주의적인 사상을 버리고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생애[편집]

출생과 초기 경력[편집]

앨라배마 주 동남부의 농촌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지방 검사로 활동하다 1946년 앨라배마 주의회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4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인종차별 철폐 조치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 후 주 법원 판사로 일했고, 1962년 민주당 소속으로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2년 임기의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그는 연방의 권력을 제한하고 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인종차별 철폐를 강하게 반대한 것도 흑인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주의 권리에 연방이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1963년 취임 후 앨라배마 대학교에 흑인 입학 문제가 이슈가 되었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연방군을 투입하여 일시에 큰 주목을 받았다. 결국 연방군의 투입으로 그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후로도 인종차별 철폐 문제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1964년에도 다시 당선되었으나, 앨라배마 주에서는 3선이 금지되어 있어 1966년에 부인을 출마시켜 당선되게 했으며, 그는 그 뒤에서 계속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부인은 1968년 5월에 사망하였다.

민주당 탈당과 복귀[편집]

한편, 그는 196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논란이 되자 민주당을 나와 인종 분리주의 철폐에 반대와 주의 권리 수호를 위한 아메리카 독립당을 창당하여 그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 그는 선거에서 남부지역 보수파 백인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미국에서 제 3당으로는 상당히 많은 표를 얻어 46석의 선거인단을 확보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표를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민주당휴버트 험프리 후보가 낙선하고 공화당리처드 닉슨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 후 민주당에 복귀하여, 1970년 주지사 선거에 재출마하여 4년 임기의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인종차별주의를 버리다[편집]

197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다시 남부지역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으나, 그해 5월에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그는 이후 휠체어에 의지하여 여생을 보냈다. 부상을 당했으나, 그는 계속 후보자 명부에 올라 몇몇 주 예비선거에서 승리했다. 1974년 다시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1976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 예비선거에서 남부 몇몇 주에서 지지를 받았으나, 휠체어에 의지하는 건강 문제도 있고, 같은 남부지역 출신인 지미 카터가 우세하게 되면서 중도 포기하였다. 그 후 1979년 초, 주지사 임기 종료와 함께 은퇴했다. 그 사이 그는 재혼한 부인과의 이혼, 종교적 관점의 변화 등 신상의 변동을 겪었고, 인종에 대한 견해를 바꾸어 인종차별주의를 완전히 버렸다고 선언했다. 1982년에 복귀한 그는, 앨라배마 주지사 선거에 다시 출마하였고, 그의 변화된 모습에 많은 찬사를 보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많은 지지를 받아 당선되어 1983년에서 1987년까지 한 차례 더 주지사로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