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주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반미주의

반미주의(反美主義, Anti-Americanism)는 미국을 반대, 혐오하는 것에서부터 정치적으로 미국패권주의적 행보를 반대하는 것에서 부터 저지하려는 것까지 폭넓게 이르는 사상이다.

특성[편집]

대한민국[편집]

대한민국의 반미주의는 미국한국 전쟁에 개입하였다는 시각과 미국이 1948년 단선단정을 고착화시켰다는 수정주의 사관의 주장에 의거해 처음 나타났다. 1945년 12월 27일에 동아일보모스크바 3상회의미국에게 유리하도록 보도를 하였는데, 이 보도는 대한민국에서 반미주의자들의 힘이 약해지고 친미주의자의 힘이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이 피어나던 1980년대 미국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에는 미국이 신군부의 쿠데타에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한편으로 전두환의 군사정권 설립을 묵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 1980년대 반미주의 확산의 원인이 됐다. 그리고 1982년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이후의 광주 미문화원 제2차 방화사건,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사건 등이 사건이 발생하면서 반미주의가 확산되었다. 1993년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이기순 살인 사건, 윤금이 피살 사건, 기타 주한미군 범죄가 발생하면서 반미감정이 진행되었으며, 2002년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생한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으로 미국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어, 반미시위가 연달아 일어났다.

그 후부터 주춤하던 반미주의는 이명박 정권의 2008년 대한민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 이후에 다시 나타났으며, 서울특별시 시민들은 촛불 집회로 반미주의를 표출하였으며, 이명박 정부는 집회를 막으면서 명박산성이 등장하였다. 이후 주한미군캠프 캐럴고엽제를 묻은 사실이 드러나, 반미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일본[편집]

일본은 1929년에 대공황의 결과, 강경 군부가 집권하여 만주 사변중일 전쟁 등을 일으켰으며, 그것이 진주만 침공으로 나아가, 미국과의 직접적인 전쟁이 발발하였다. 일본의 반미주의는 보통 주일미군이라는 존재가 일본 국내의 전쟁을 끌어올 수 있다는 점과, 미군범죄를 들어 주일미군의 철폐를 주장하는 일본 공산당미국이 규정한 평화 헌법을 삭제하고, 천황 제정 시절로 돌아가려는 넷우익 세력들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베트남[편집]

베트남은 프랑스의 제국주의 시절에 해방되어, 민족주의자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대항할 새로운 사상으로 공산주의 사상을 채택하였다. 그 결과, 공산주의자의 세력의 주도 하에 결성된 북베트남과 미국이 지원하는 자본주의 세력의 주도 하에 결성된 남베트남이 대립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벌어진 미라이 학살로 반미주의가 생겨났으며,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항복하자, 그것이 고착화 되었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을 견제하는 미국에 군사 공조를 하는 등의 비교적 온화한 중립노선을 채택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서는 한국 전쟁의 원인을 미국에 의한 북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사회구성원에게 반미주의를 주입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러시아[편집]

러시아의 경우는 현대에 들어서, 러시아 아이를 미국으로 입양 시키려는 정책과 크림 반도 침공에 반대하는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며, 소련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은 대표적인 반미주의자로서, 미국과의 전쟁을 하기도 하였다. 현재에도 반미 감정을 가진 러시아인이 상당수 있는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지역[편집]

이슬람 지역의 반미주의는 주로 19세기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분쟁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정치적인 요인으로는 미국의 일방적인 친이스라엘 정책도 요인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편집]

아프리카의 반미주의는 미국과 서구 열강의 지배와 독립 후 독점 자본주의의 자원 착취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