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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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주의

반미주의(反美主義, Anti-Americanism)는 미국을 반대, 혐오하는 것에서부터 정치적으로 미국패권주의적 행보를 반대하는 것에서 부터 저지하려는 것까지 폭넓게 이르는 사상이다.

특성[편집]

일본[편집]

일본은 1929년에 대공황의 결과, 강경 군부가 집권하여 만주 사변중일 전쟁 등을 일으켰으며, 그것이 진주만 침공으로 나아가, 미국과의 직접적인 전쟁이 발발하였다. 일본의 반미주의는 보통 주일미군이라는 존재가 일본 국내의 전쟁을 끌어올 수 있다는 점과 미군범죄를 이유로 들어 주일미군의 철폐를 주장하고 지지하는 일본인들이 생겨났다. 특히, 미국이 규정한 평화 헌법을 삭제하고 일왕 제정 시절로 돌아가려는 일본인들의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베트남[편집]

베트남은 프랑스제국주의 시절에 해방되어, 민족주의자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대항할 새로운 사상으로 공산주의 사상을 채택하였다. 그 결과, 공산주의자의 세력의 주도 하에 결성된 북베트남과 미국이 지원하는 자본주의 세력의 주도 하에 결성된 남베트남이 대립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벌어진 미라이 학살로 반미주의가 생겨났으며,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항복하자, 그것이 고착화 되었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견제하는 미국에 군사 공조를 하는 등의 비교적 온화한 중립노선을 채택하고 있고 현재는 옛날과 달리 중화인민공화국을 견재하기 위해 친미, 친일적 성향이 상당히 강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서는 한국 전쟁의 원인을 미국에 의한 북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사회구성원에게 반미주의를 주입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대한민국[편집]

반공의식이 뿌리깊은 1960~70년대를 거쳐서 1980년대에 들어서야 미국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에는 미국이 신군부의 쿠데타에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한편으로 전두환의 군사정권에 대한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이 반미주의자들의 핑계거리가 됐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도 타국의 내정에 함부로 간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현재 이러한 이유로 미국을 비판하는 한국인이나 논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1982년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이후의 광주 미문화원 제2차 방화사건,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사건 등이 사건이 발생하였지만 당시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어진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반영하면 몇몇 극단주의 단체나 인물의 소행만으로 반미주의가 확산되었다는 이야기는 별로 신빙성이 없다. 1993년문민정부 출범 이후, 주한미군의 이기순 살인 사건, 윤금이 피살 사건, 기타 주한미군 범죄가 발생하면서부터 대중들에게 반미감정이 시작되었으며, 2002년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생한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감정이 크게 악화되어, 주한미군 반대시위가 연달아 일어났다.

그 후 주춤하던 반미주의는 이명박 정권의 2008년 대한민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 이후에 일본과의 협상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시 나타나는 듯 싶었지만 반미주의라기 보다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울특별시 시민들은 촛불 집회이명박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였으며, 이명박 정부는 집회를 막으면서 명박산성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후 주한미군캠프 캐럴고엽제를 묻은 사실이 드러나, 반미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편집]

소련 시절 대표적인 라이벌이였으며, 현재에도 반미 감정을 가진 러시아인이 상당수 있는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지역[편집]

이슬람 지역의 반미주의는 이스라엘 건국 이후로 심화되었으며, 수차례의 전쟁으로 심화되고 있다.

중앙,남아메리카 지역[편집]

원래 미국에 의해 친미 군사정부가 세워진 경우가 많은 나라들이 대부분이였으나, 중앙, 남미국가들이 민주화가 되면서 현재는 반미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들이 많다.

아프리카 지역[편집]

아프리카의 반미주의는 미국과 서구 열강의 지배와 독립 후 독점 자본주의의 자원 착취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