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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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주의(反美主義, Anti-Americanism)는 미국을 반대, 혐오하는 것에서부터 정치적으로 미국의 패권주의적 행보를 반대하는 것에서 부터 저지하려는 것까지 폭넓게 이르는 사상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대 반미주의가 주로 유행하면서 반미주의적인 정치성향을 지닌 NL(National Liberty, 민족 해방 주의)이라는 정치적 파벌도 탄생했다. 반미주의는 현재 라틴 아메리카·동남아시아·중동에 만연해 있다. 2000년대 반미주의를 내세우는 대표자로 정치인으로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이라크의 전 대통령 사담 후세인, 이란의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를 예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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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반미주의 [편집]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편집]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강행하지만 미국에 의해 저지되어 반미를 노골적으로 나타내게 되었다. 또한 국가 내 결집 수단으로 반미를 내세웠으며, 소련이 그러했던 것처럼 항상 피해 망상으로 모든 원인이 미국과 서구 자본주의의 책동인양 선전하였다.
일본 [편집]
일본은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강경 군부가 집권하여 만주 사변, 중-일 전쟁 등 전쟁 범죄를 저질렀으며, 그러한 세력 다툼이 태평양까지 확전되어 결국 미국과의 전쟁을 초래하였다. 일본의 반미주의는 보통 일본 공산당과 천황 제정 시절로 돌아가려는 일부 극우 세력들에서 볼수 있는데, 사회 전체가 친미 사대주의 성향이므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베트남 [편집]
베트남은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프랑스 제국주의 시절에서 해방되어 자주 국가를 완성하려는 민족주의자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대항할 새로운 사상으로 공산주의 사상을 채택하였다. 그 결과 공산주의자의 세력 주도하에 결성된 북베트남과 미국이 지원하는 자유주의 세력 주도하에 결성된 남베트남이 대립하였다.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의해 적화통일 당하고, 반미주의는 통일 베트남의 결집 사상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1979년 중-월 전쟁으로 인해 미국에 대한 반미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미국에 질서에 탑승하고 있으며, 미국의 중국 견제를 돕기 위해 군사적 공조도 마다하지 않는 등 비교적 온화한 중립노선을 채택하였다.
아랍권의 반미주의 [편집]
아랍권의 반미주의는 주로 19세기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분쟁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정치적인 요인으로는 미국의 일방적인 친이스라엘 정책도 요인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반미주의 [편집]
아프리카의 반미주의는 미국과 서구 열강의 지배와 독립 후 독점 자본주의의 자원 착취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
한국 [편집]
대한민국 [편집]
대한민국의 반미주의는 미국이 한국 전쟁에 개입하였다는 시각과 미국이 1948년 단선단정을 고착화시켰다는 수정주의 사관의 주장에 의거해 처음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집권자인 이승만, 박정희 등에 의한 의도적인 관제 반미주의도 존재했다.
1945년 12월27 동아일보는 모스크바 3상회의를 (의도적이었든 의도적이지 않았든) 미국에게 유리하도록 오보했다. 이 보도는 대한민국에서 반미주의자들의 힘이 약해지고 친미주의자의 힘이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이 피어나던 1980년대 미국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 미국이 신군부의 쿠데타에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한편으로 전두환의 군사정권 설립을 묵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 1980년대 반미주의 확산의 원인이 됐다. 1982년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이후의 광주 미문화원 제2차 방화사건,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사건 등이 사건이 발생하면서 반미주의가 대한민국에 보편적으로 확산됐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이기순 살인 사건, 윤금이 살해 사건, 기타 주한미군 범죄가 종종 발생하면서 반미감정이 나타났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인해 김동성이 쇼트트랙 종목에서 금메달을 놓친 사건과 같은 해 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생한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으로 반미감정이 절정에 달했다.
그 후 한동안 주춤하던 반미주의는 이명박 정권의 2008년 대한민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 이후로 다시 부활했다. 서울 시민들은 촛불 집회로 미국산 쇠고기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을 쌓으며 집회를 막았다. 명박산성 사건은 오히려 반미주의에 기름을 붓는 행위가 되었다.
이후 주한미군이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묻은 사실이 드러나자, 반미주의가 시민들에게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서는 한국 전쟁의 원인을 미국에 의한 북침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민에게 반미주의를 주입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매우 배타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반일 정책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