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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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1세
Edward I of England.png
잉글랜드의 왕
재위 1272년1307년
별명 다리 긴 왕
왕비 엘레오노르(1254–1290)
프랑스의 마르그리트 (1299–1307)
부왕 헨리 3세
모비 엘레오노르
이전 왕 헨리 3세
다음 왕 에드워드 2세
왕가 플랜태저넷 왕가

에드워드 1세(영어: Edward I, 1239년 6월 17일 ~ 1307년 7월 7일)는 키가 188 cm여서 ‘다리 긴 왕(Longshanks)’으로 알려져 있다. 생애 동안 웨일스스코틀랜드를 정복해 다스렸다.

헨리 3세의 장자로, 노르만 정복 이래 영국 최초의 국민적인 왕이라 불린다. 왕세자 시절에 가스코뉴아일랜드의 영주로서 활약했으며, 1258년1265년의 내란에는 부왕을 도왔다. 1265년 시몽 드 몽포르를 격파하는 데에 공을 세우고 1271년 십자군에 참가, 부왕의 사후 원정 중에 왕으로 선출되어, 1274년에 귀국하여 대관(戴冠)하였다.

아버지 헨리 3세 때부터 있어 온 외국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책을 썼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토지 등 부동산의 양도 및 상속에 관한 중요한 법률을 만들어 '영국의 유스티니아누스'라 불리었다.

재판 행정 제도를 확립하고 일련의 제정법(制定法)을 발포, 봉건사회의 질서 유지에 노력하였다. 또 산업에 주력하고 1285년 상인법을 발령, 양모와 가스코뉴의 술 생산을 장려하였다.그는 프랑스 왕에게 신종(臣從)하여 대륙에 있어서 나바라, 카스티야의 왕위계승문제, 아라곤 왕 알폰소와 교황·프랑스 왕 필리프 단려왕(端麗王)과의 조정(1291)에 활약이 컸다. 1295년 성직자와 귀족, 각주에서 2명의 기사 및 도시의 대표를 모아 '모범 의회'를 열어 영국 의회의 기초를 쌓았다. 말년에 단려왕의 가스코뉴, 플랑드르 공격을 받아 1303년 파리 협정에서 타협을 보았다. 그러나 또 스코틀랜드의 반란으로 인한 막대한 전비 조달 때문에 국내의 반란을 유발시키기도 하였다.

그는 1307년 그가 정복하였던 스코틀랜드가 로버트 1세를 중심으로 독립하자 이를 정벌하기 위하여 병력을 이끌고 진군하던 도중 그해 7월 7일 칼라일 근방에서 장남 에드워드를 불러 “나를 화장하여 뼈를 가죽 부대에 넣어 군사들과 함께 진군하라. 그리고 스코틀랜드를 완전히 장악했을 때 묻어 달라”라는 유언을 남기고는 사망하였다.[1]

주석[편집]

  1. 미셸 드 몽테뉴(1580), 《수상록》, Traduction Michaud. Firmin Didot, 1907 〈Livre I/Chapitre 3〉“Édouard premier, roi d'Angleterre, ayant constaté dans ses longues guerres contre Robert, roi d'Écosse, combien sa présence contribuait à ses succès, la victoire lui demeurant partout où il se trouvait en personne ; sur le point de rendre le dernier soupir, obligea son fils, par un serment solennel, à faire, une fois mort, bouillir son corps ; pour que, les chairs se séparant des os, il enterrât celles-là et transportât ceux-ci avec lui à l'armée, chaque fois qu'il marcherait contre les Écossais ; comme si la destinée avait fatalement attaché la victoire à la présence de ses ossements.”; 손우성(孫宇聲) 역 (1983), 학원출판공사(學園出版公社), 34쪽. “영국의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란드의 로버트 왕과의 사이에 일어난 오랜 전쟁에서, 자기가 몸소 출전(出戰)했을 때에는 늘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지휘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경험하고는, 죽은 뒤에도 자기의 시체를 삶아서 살과 뼈를 갈라, 살은 묻고 뼈는 잘 보관해 두었다가, 스코틀란드 군과의 대전(對戰) 때에 이 유골(遺骨)을 가지고 출정(出征)하라고 자기 아들에게 엄숙히 맹세시켰다.”

참고 자료[편집]

바깥고리[편집]

전 임
헨리 3세
잉글랜드의 왕
아일랜드의 영주
아키텐 공작
1272년1307년
후 임
에드워드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