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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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7세
Charles VII de france.jpg
프랑스의 왕
재위 1422년 ~ 1461년
별명 승리왕
부왕 샤를 6세
모비 바이에른의 이자보
이전 왕 샤를 6세
다음 왕 루이 11세
왕가 발루아 왕가
백년 전쟁
Lenepveu, Jeanne d'Arc au siège d'Orléans.jpg
잔 다르크오를레앙 포위전을 그린 낭만주의 화풍의 그림
잉글랜드의 주요인물
에드워드 3세 흑태자 에드워드
리처드 2세 헨리 4세 헨리 5세
프랑스의 주요인물
필리프 6세 장 2세
샤를 5세 잔 다르크
샤를 7세 승리왕
주요 전투
크레시 전투 칼레 포위전
푸아티에 전투
오를레앙 포위전
슬로이스 해전
v  d  e  h

샤를 7세(프랑스어: Charles Ⅶ, 1403년 ~ 1461년 재위, 1422년 ~ 1461년)는 프랑스의 왕이다. 백년 전쟁을 다시 일으켜, 처음에는 잉글랜드 군에게 오를레앙에서 포위당하였으나, 포위망을 뚫고 나와 1422년 왕위에 올랐다. 그 후 잉글랜드 군을 무찔러 영토를 다시 회복하고 전쟁을 끝냈다. 그는 귀족의 반란을 평정하고, 왕권을 확립하는 데 노력하였다.

생애[편집]

즉위과정[편집]

영국과의 백년전쟁이 계속되던 당시 샤를은 오를레앙에 머무르며 잉글랜드군과 대치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정식왕이 아니었다 백년전쟁 기간동안 특히 그가 치세했던 시대에는 가장 치열했던 전쟁의 시기로 쉽게 즉위식을 거행하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게다가 다른 지방의 영주들 또한 잉글랜드와의 대치중으로 쉽게 구원군을 보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으며 누구도 병력을 보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때 한 신하로부터 프랑스를 구할 성녀가 왔다고 전해듣는다. 그녀가 바로 잔 다르크다. 그러나 의심이 많았던 샤를은 정말로 성녀인지 시험하기위해 하인 1명을 자신의 옷을 입게하고 자신은 그 하인의 옷을 입어 구석에 숨는다. 그러나 잔 다르크는 알현이 시작되자마자 왕의 복장을 한 하인을 쳐다도 보지않고 자신에게 다가와 파리로 돌아가 정식으로 왕으로 즉위하라는 계시를 성녀 마리아로부터 받았다는 말을 듣게된다. 그때부터 샤를은 잔 다르크가 조국을 구원해줄 성녀라는 말을 비로소 믿게 된다. 알현이 끝난 직후 샤를은 잔 다르크에게 명하여 지방에 있는 영주로부터 오를레앙을 구원해줄 군사를 이끌고 오라는 명령을 내린뒤 자신은 오를레앙 사수에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군은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오랜 싸움으로 인해 무기가 망가졌으며 활도 모두 떨어진 상태였다. 설상 가상으로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오를레앙이 포위되어 잉글랜드군에게 함락되어 포로가 될 위기해 처해 있었다. 그때 잔다르크가 각지방 영주들로부터 구원군을 받아 그녀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나타나 추격하는 잉글랜드 군사를 물리쳐 샤를을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을 재탈환하고 프랑스군 사기가 하늘을 찌르자 그때서야 비로소 파리로 돌아가 프랑스왕으로 정식 즉위한다. 말하자면 그는 잔 다르크의 도움이 있었기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잔 다르크와의 갈등[편집]

왕위에 오른 샤를 7세는 곧바로 잔 다르크로 하여금 오를레앙 사수와 동시에 지금까지 잉글랜드군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다시 탈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잔 다르크는 승승장구하여 수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와 프랑스군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전세가 자신에게 기울었다고 판단한 샤를 7세는 잉글랜드와의 평화협정에 몰두하고자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잔 다르크는 샤를 7세의 의견을 끝까지 반대하여 잉글랜드가 항복할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샤를은 강경한 태도를 취한 그녀를 점점 걸리적 거리는 존재로 여겨지게 되고 심지어 잔 다르크가 자신이 지시를 내린 적도 없었음에도 적진을 공격하는 행동이 계속되어 협정에 찬물을 끼얹자 그녀에 대한 분노가 점점 커진다. 사실 그는 전쟁을 수차례 치르며 싸움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잔 다르크의 생사가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1430년 오를레앙이 잉글랜드군에게 함락된 것이다. 게다가 오를레앙을 지키던 잔 다르크도 포로가 되고 잉글랜드는 이를 이용하여 샤를 7세에게 몸값을 요구하였으나 지금까지 자신에게 많은 승리를 안겨준 잔 다르크를 매정하게도 몸값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그녀를 매몰차게 버린다. 자신과의 생각과 입장이 전혀 반대인 강경입장을 취하고 있는 그녀가 잉글랜드군에 잡혀 포로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매몰차게 버렸던 것이다. 결국 잔 다르크는 잉글랜드에서 마녀라는 혐의를 받아 1431년 5월 화형을 당하게된다.

종전[편집]

이후 샤를7세는 잔 다르크가 화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과거 그녀가 말했던 잉글랜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받아들였는지 영국과의 전투를 계속 속행하며 크레시 전투, 칼레 전투, 푸아티에 전투에 승리하여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는 한편 잉글랜드군이 수세에 몰리고 영토 대다수가 회복이 되어 전세가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자 그는 평화협정을 맺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마침내 1456년 잉글랜드와 평화협정을 맺고 백년전쟁을 종식시킨다.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는 샤를 7세를 승리왕이라고 부르고 있다.

말년[편집]

전쟁이 끝난뒤 샤를 7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복구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몇몇 귀족들이 전쟁을 빌미로 반란을 일으켜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이를 진압하여 왕권강화에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그는 전쟁이 끝난뒤 5년 뒤인 1461년에 생을 마감한다. 오랜 전쟁과 복구사업에 힘을 기울인 나머지 몸이 쇠약해진 것이다.


전 임
샤를 6세
프랑스의 왕
1422년 - 1461년
후 임
루이 1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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