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1세 (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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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1세
JamesIEngland.jpg
잉글랜드 왕
스코틀랜드 왕
재위 1603년 ~ 1625년/1567년 - 1625년
왕비 덴마크의 앤
부왕 헨리 스튜어트
모비 메리 1세(스코틀랜드)
이전 왕 엘리자베스 1세(잉글랜드)
메리 1세(스코틀랜드)
다음 왕 찰스 1세
왕가 스튜어트

제임스 1세(James I, 1566년 6월 19일 ~ 1625년 3월 27일)는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은 왕이다. 그는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이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이고, 메리 1세의 아들이다.

경력[편집]

정치[편집]

엘리자베스 1세 때부터 의회(議會)는 독점권(獨占權) 부여를 에워싸고 국왕과 대립해 있었는데 제임스 시대에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한 의회 세력은 강력해지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신흥 세력을 충분히 평가하지 못하였고 의회에 부여되어 있던 특권·관행(慣行)에도 무지하여 종교·재정·외교 문제로 사사건건 의회와 대립했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서 영국을 다스렸으나 엘리자베스 1세의 위대한 업적에 가려져 별 볼일 없는 왕으로 평가받았다. 기록에 따르면 국민들은 위대한 엘리자베스 시대에 향수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제임스 1세의 인기는 점점 없어져 갔다고 한다.

국기의 변화[편집]

맨 처음 영국 국기잉글랜드 국기였으나 1606년 제임스 1세가 영국의 국왕이 된 계기로 스코틀랜드 국기와 합쳐져 최초의 영국 국기가 탄생하였다. 또 제임스 1세가 왕위에 오른 1607년 5월 14일 영국인이 배를 타고 처음으로 북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갔었는데 그곳을 제임스타운이라고 부른 것도 이 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리고 제임스타운을 포함한 당시 13주가 영국의 식민지에 속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줄무늬가 13개로 된 비공식 국기가 탄생하였고 이는 곧 미국 국기의 유래가 되었다.

종교 정책[편집]

제임스 1세는 영국 국왕에 오른 이후 의회를 해산시키고 청교도에게 영국 성공회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는 등 독재 정치를 폈다. 이에 1620년 청교도들은 박해를 피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자유를 찾기 위해 북아메리카 신대륙으로 떠나 그곳을 퓨리턴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모순된 사실은 종교적 사유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온 청교도들이 정작 미국에서는 영국의 박해자들이 그러했듯이 미국 원주민들의 종교를 사탄(악마) 숭배라며 말살시킴으로써 미국 원주민들의 종교의 자유를 박해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미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미국 원주민 강제 이주 학살등으로 미국 원주민들의 자유생명권을 짓밞았다. 이는 자신들을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1]

킹 제임스 성경 편찬[편집]

"번역은 빛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어주고, 성스러운 땅이 보이도록 장막을 걷어주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우물 덮개를 치워주는 것이다"

제임스 1세가 발간한 킹 제임스 성경의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중세시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경을 금서로 지정하여 일반인들이 읽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윌리엄 틴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박해와 체포 위협 속에서도 유럽 대륙을 떠돌며, 라틴어가 아니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에 의한 번역 작업을 계속해 1526년 영어 신약 성서를 완성하고 독일에서 인쇄해 영국으로 보냈다. 틴들은 1535년 네덜란드에서 가톨릭 교회에 붙잡혀 화형당하고 그의 성서는 제임스 1세의 킹 제임스 성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제임스 1세는 47명의 학자들을 동원하여 위클리프의 필사본 성서, 윌리엄 틴들의 성서, 『대성서』, 『제네바 성서』, 『비숍 성서』 등을 종합적으로 참조하여 최고의 영어 번역 성서를 출판했다. 이것이 오늘 날까지 내려오는 킹 제임스 성경이다. [2]


화약음모사건[편집]

제임스 1세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 왕위에 올랐을 때 잉글랜드에는 스페인의 무적함대와의 전투 이후부터 심화된 반가톨릭적 정서가 강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1세가 시행한 가톨릭 정책은 그 당시로서는 놀랄 만큼 온건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제임스 1세의 대가톨릭 정책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를 암살하고자 시도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605년 가톨릭 교도인 가이 포크스에 의해 저질러진 화약음모사건이다. 이 사건 직후 제임스 1세의 가톨릭 정책은 강격책으로 돌아섰지만 그렇다고 가톨릭에대해 가혹한 박해로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역사가들은 제임스 1세가 종교적 관용의 정신에 따라 가톨릭을 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3]

여담[편집]

암살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실제로는 1625년 3월 27일에 59세로 병사했다.

각주[편집]

  1. 《예수와 제국》/리처드 호슬리 지음/김준우 옮김/한국기독교연구소 刊
  2. 부길만 《출판기획물의 세계사》(커뮤니케이션북스)
  3. 강미경《제임스1세의 가톨릭 정책,영국 연구 27호》(영국사학회, 2012)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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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임
엘리자베스 1세
잉글랜드의 왕
아일랜드의 왕
1603년 - 1625년
후 임
찰스 1세
전 임
메리 1세
스코틀랜드의 왕
1567년 - 1625년
후 임
찰스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