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1세 (잉글랜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제임스 1세
JamesIEngland.jpg
잉글랜드 왕
스코틀랜드 왕
재위 1603년 ~ 1625년/1567년 - 1625년
왕비 덴마크의 앤
부왕 헨리 스튜어트
모비 메리 1세(스코틀랜드)
이전 왕 엘리자베스 1세(잉글랜드)
메리 1세(스코틀랜드)
다음 왕 찰스 1세
왕가 스튜어트

제임스 1세(James I, 1566년 6월 19일 ~ 1625년 3월 27일)는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은 왕이다. 그는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이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이고, 메리 1세의 아들이다.

경력[편집]

정치[편집]

엘리자베스 1세 때부터 의회(議會)는 독점권(獨占權) 부여를 에워싸고 국왕과 대립해 있었는데 제임스 시대에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한 의회 세력은 강력해지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신흥 세력을 충분히 평가하지 못하였고 의회에 부여되어 있던 특권·관행(慣行)에도 무지하여 종교·재정·외교 문제로 사사건건 의회와 대립했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서 영국을 다스렸으나 엘리자베스 1세의 위대한 업적에 가려져 별 볼일 없는 왕으로 평가받았다. 기록에 따르면 국민들은 위대한 엘리자베스 시대에 향수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제임스 1세의 인기는 점점 없어져 갔다고 한다.

국기의 변화[편집]

맨 처음 영국 국기잉글랜드 국기였으나 1606년 제임스 1세가 영국의 국왕이 된 계기로 스코틀랜드 국기와 합쳐져 최초의 영국 국기가 탄생하였다. 또 제임스 1세가 왕위에 오른 1607년 5월 14일 영국인이 배를 타고 처음으로 북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갔었는데 그곳을 제임스타운이라고 부른 것도 이 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리고 제임스타운을 포함한 당시 13주가 영국의 식민지에 속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줄무늬가 13개로 된 비공식 국기가 탄생하였고 이는 곧 미국 국기의 유래가 되었다.

종교 정책[편집]

제임스 1세는 영국 국왕에 오른 이후 의회를 해산시키고 청교도에게 영국 성공회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는 등 독재 정치를 폈다. 이에 1620년 청교도들은 박해를 피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자유를 찾기 위해 북아메리카 신대륙으로 떠나 그곳을 퓨리턴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모순된 사실은 종교적 사유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온 청교도들이 정작 미국에서는 영국의 박해자들이 그러했듯이 미국 원주민들의 종교를 사탄(악마) 숭배라며 말살시킴으로써 미국 원주민들의 종교의 자유를 박해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미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미국 원주민 강제 이주 학살등으로 미국 원주민들의 자유생명권을 짓밞았다. 이는 자신들을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1]

여담[편집]

암살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실제로는 1625년 3월 27일에 59세로 병사했다.

각주[편집]

  1. 《예수와 제국》/리처드 호슬리 지음/김준우 옮김/한국기독교연구소 刊

참고 자료[편집]

Heckert GNU white.svgCc.logo.circle.svg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다음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 임
엘리자베스 1세
잉글랜드의 왕
아일랜드의 왕
1603년 - 1625년
후 임
찰스 1세
전 임
메리 1세
스코틀랜드의 왕
1567년 - 1625년
후 임
찰스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