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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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1세
찰스 1세의 초상화
찰스 1세의 초상화
잉글랜드의 왕
스코틀랜드의 왕
재위 1625년 ~ 1649년
왕비 프랑스의 헨리에타 마리아
이전 왕 제임스 1세
다음 왕 공석
(사실상 올리버 크롬웰)

찰스 1세(1600년 11월 19일~1649년 1월 30일)는 1625년 3월 27일에서 그가 처형되던 1649년까지 잉글랜드를 통치하던 이다.

스코틀랜드 던펌린에서 출생한 찰스1세는 의회와 벌인 권력투쟁으로 유명하다. 찰스1세는 왕권신수설을 지지했고 절대 권력을 얻으려고 했으므로, 많은 영국인은 찰스1세를 두려워 했고 찰스1세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져 갔다. 특히 의회의 동의 없이 하는 과세를 강하게 반대했다.

찰스 1세의 통치기는 기독교다운 갈등으로 가득했다. 의회와 여론이 반대하는데도 영국 종교개혁 이후 탄압받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자인 헨리에타 마리아와 혼인한 찰스1세는 진일보해 영국 성공회 대주교인 리처드 몬타규윌리엄 로드와 유대를 강화했다. 찰스1세는 윌리엄 로드를 캔터베리 대주교에 임명했다. 대주교 윌리엄 로드는 성공회에서 감사성찬례성사 집전에 사용하는 성공회 기도서를 개정했다. 찰스1세의 많은 신하는 개정된 기도서 내용이 로마 가톨릭 교회와 유사하다고 느꼈다. 찰스1세는 이후 장로교를 믿는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영국 국교인 성공회를 강요하는 종교 개정을 단행해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 전쟁은 영국을 약화시켰고 찰스1세 몰락에 결정타였다.

찰스1세의 통치 말년은 잉글랜드 내전(청교도 혁명)으로 얼룩졌다. 찰스1세는 의회파(찰스1세의 권력에 도전), 청교도(찰스1세의 로마 가톨릭 교회 우대 정책에 반대)와 맞섰다. 제일차영국내전(1642년~1645년)은 찰스1세의 패배로 끝났고 의회파는 찰스1세가 입헌군주제를 수용하길 기대했으나 찰스1세는 제이차영국내전(1648년~1649년)을 일으켰다. 결국 재판에서 찰스1세는 대역죄사형을 선고받았다. 향년 49세.

이후 잉글랜드는 왕정을 폐지하고 잉글랜드 연방으로 불린 공화정을 세웠다. 1660년 왕정 복고로 찰스1세의 아들, 찰스 2세가 차기 왕이 되었다.

바깥 고리[편집]

전 대
제임스 1세
잉글랜드의 왕
1628년 - 1649년
후 대
공석
영국 공화국 성립
(사실상 올리버 크롬웰)
전 대
제임스 6세
스코틀랜드의 왕
1628년 - 1649년
후 대
공석
언약도 성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