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브 2세 아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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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2세 아돌프
Gustav II of Sweden.jpg
스웨덴 국왕
별명 북방의 사자
배우자 브란덴부르크의 마리아 엘레오노라
자녀 크리스티나
왕가 바사 왕가
부모 칼 9세
홀슈타인-고토르프의 크리스티나
출생 1594년 12월 9일
스웨덴 스톡홀름
사망 1632년 11월 6일 (37세)
작센 선제국 뤼첸
사인 전사
매장지 리다르홀멘 교회당
종교 루터교

구스타브 2세 아돌프(Gustav II Adolf, 1594년 12월 9일 ~ 1632년 11월 6일)는 스웨덴국왕(1611~1632)이자 구스타브 1세의 손자이다. 스웨덴을 강국으로 만든 왕으로 ‘북방의 사자,’ 또는 ‘설왕(雪王)’이라 불렸다.

생애[편집]

칼 9세홀슈타인-고토르프의 크리스티나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무(文武)의 재능을 겸비하였고, 어릴 때부터 프로테스탄트 교육을 받았다. 17세에 즉위한 뒤, 부왕의 유지(遺志)를 계승한 후 재판소를 전국에 세웠다. 경제적으로는 외국 자본을 도입하여 스웨덴의 무역을 개발하고, 풍부한 광산을 개척하여 스웨덴을 번영케 했다.

대외 정책[편집]

대외적으로는 1611년 덴마크, 러시아, 폴란드 등을 상대로 전쟁을 하여 발트해(Baltic Sea)를 자국의 내해(內海)로 하는 정책에 정진(精進)했다. 그 후에 리보니아와 잉그리아 등의 영토를 획득하였다.

포메른에 상륙한 구스타브 2세 아돌프

30년 전쟁[편집]

발트해에 제해권(制海權)의 수립을 지향하는 신성 로마 황제의 기도(企圖)를 저지하고, 그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이유에서 포메른에 상륙하여 30년 전쟁에 참전하였다. 9월에 일어난 브라이텐펠트 전투에서 작센의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 1세와 제휴하여, 틸리 백작의 군대를 물리쳤다.

라인란트 등의 지역들을 점령하고 뮌헨으로 남하하여, 레흐 강변의 전투에서 틸리 백작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이어서 페르디난트 2세가 기용한 발렌슈타인뤼첸 전투(Lützen)에서 회전(會戰), 전투는 스웨덴군이 승리했으나 이 싸움에서 중상을 입고 전사했다.

사후에 그의 시신은 스웨덴으로 옮겨져, 리다르홀멘 교회당(Riddarholmen Church)에 안장되었다.

가족[편집]

브란덴부르크의 마리아 엘레오노라와 결혼하여 단 하나의 딸 크리스티나를 두었다. 그녀는 부왕 사후에 왕좌를 물려받아, 여왕이 되었다.

평가[편집]

그의 전술은 당시 획기적이었고, 그의 군대는 사기엄정(士氣嚴正)한 정예무비(精銳無比)였다. 그 전술은 화기(火器)의 파괴력과 적에게 후퇴 및 재편성의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신속한 전투를 계속한다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요소가 종합되어 획기적인 전술이 전개되었고, 싸움터에서는 항상 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개발한 이 새로운 전술을 적군도 모방하게 되면서부터 우위를 차지했던 스웨덴군의 전투능력이 차츰 무너지기 시작했다.

함께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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